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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lecture
특강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1-05 (일)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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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편과 성령의 사역과 교회에 대한 신앙
은혜의 방편과 성령의 사역과 교회에 대한 신앙

                                        화원언약교회(이종덕 목사)

Ⅰ. 공적 신앙고백

1. 교회에 가입할 모두의 의무(벨직신앙고백서 28항)

 제도적 교회를 떠나 개인적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명 ‘가나안 신자’입니다. 또 정규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지역교회에 회원으로 등록하지 않고 그저 주일 예배만 드리고 있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자신의 양심의 자유로 치부하며 자기 소견에 따라 행하도록 그저 내 버려두어야 할까요? 신앙고백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벨직신앙고백서 27항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하여 말합니다. “우리는 한 보편적, 또는 우주적인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 이 교회는 거룩한 총회이며, 참된 기독신자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개개의 죄인들을 따로 불러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방편들을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교회에 위선자가 있음이 제도적 교회를 부인할 이유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를 고백할 뿐 아니라, ‘성도의 교제’로서의 교회를 고백합니다.

 벨직신앙고백서 28항은 교회에 연합해야 할 각 사람의 의무에 대하여 말하면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에 대해 로마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개혁교회는 사도적 교리를 따르고 순수한 말씀의 설교와 성례의 순수한 시행과 교회 권징이 바르게 집행되는 교회에 구원이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각각 교회에 가입하고, 교회와 연합함으로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왜 우리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믿음이 없이는 그리스도에게 나아올 수 없고, 믿음은 복음 설교를 통해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2. 공적 신앙고백

 고백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증거한다”는 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함께 ‘하나’(한 입)처럼 말함을 통해 고백공동체인 교회를 만드는 증표가 됩니다.

고백의 내용은 삼위 하나님의 경영, 즉 창조와 구속에 관한 것입니다.
고백의 대상은 삼위 하나님과 회중들입니다. 고백자는 이로 말미암아 회중들과 하나가 되고, 회중은 이에 대한 증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의 회원이 되기 위해 공적으로 고백(시인)하려 한다면 먼저 교회가 신앙하는 것에 대한 일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확인은 교회가 채택하여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과 질서를 통해서입니다.

 야웨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주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자들을 교회로 모으십니다. 교회는 ‘누가’ 하나님께서 모으시고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신앙의 고백을 통하여 확증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창 4:26은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은 공적 고백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신명기 26장 5-11절은 초기 구약의 신앙고백을 반영하는 구절입니다. 고백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죄와 구원과 찬송(감사)입니다. 이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세 부분의 구성과 일치합니다. 세 부분은 1부 죄의 비참, 2부 그리스도의 구원, 3부 감사입니다.

신명기 27장 14절 이하의 구절은 언약적 고백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회중)들은 한 몸으로서 응답했습니다. 본문에서 증거되는 고백의 내용은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에 신약성경 행 2:17-21에 인용된 욜 2:32은 공적 고백을 암시합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공적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믿음은 고백을 요구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믿음과 고백은 롬 10:10 이하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요엘서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참된 신자들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고후 4:13).

2.1 보편 신경들(The Ecumenical Creeds)

① 사도신경
② 니케아신경
② 아타나시우스신경

2.2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 종교개혁 후 북유럽 저지대에서 채택된 고백서들

① 벨직신앙고백(1561년)
②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년)
③ 돌트 신경(1618-19년)

- 교회개혁 시대의 다른 나라의 몇몇 신앙고백서들

① 제 1스위스 신앙고백(1536년)
② 제 2스위스 신앙고백(1566년)
③ 프랑스 신앙고백(1559년)
④ 스코틀랜드 신앙고백(1560년)
⑤ 아일랜드 신앙의 조항(1615년)
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년)

3. 신앙의 고백을 해야 하는 이유

 초창기부터 신앙의 공적고백은 주의 만찬에 참석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공적인 고백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세례의 약속(죄용서, 영생)들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응답(아멘)함을 통해 주의 만찬에 참여할 것을 허락받습니다.

 이 만찬에의 참석은 필히 복음의 약속들을 의식적이고 공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명입니다(딤전 6:12). 공적신앙고백에서 우리는 복음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모든 것에 대해 고백하고 반응해야 합니다(HC 7주일).

22문: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할 여지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 줍니다.

Ⅱ. 은혜의 방편에 대한 고백

 1. 여러분은 은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신앙고백에서 은혜는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삼위 하나님께서 당신을 알리시고 당신에게 굳건한 신뢰를 둘 수 있도록 믿음을 일으키시는 사역임을 가리킵니다.

 신앙고백서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순수한 복음 설교, 순수한 성례의 시행, 기도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경영과 뜻을 알려주시고 우리는 그 계시에 기초하여 신앙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죽었고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주시고 우리에게 당신을 알려주심으로만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알리시고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신뢰하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데, 이 믿음과 관련된 하나님의 사역을 은혜의 방편이라 합니다.

제59문)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은 지금 무슨 도움을 줍니까?
   답) (이 모든 것은 앞의 8~22주일의 내용인 사도신경(보편신경)에서 제시된 삼위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가리킵니다. 이 고백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며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됩니다.

제60문)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됩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① 이 믿음은 어디로부터 옵니까?(믿음의 원천)
답) 성령께서 믿음을 일으키십니다(창조하신다). 그분은 복음 설교로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시며,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강화시킵니다(돌트신경 3,4조 14항 참조).

② 믿음의 대상은 누구이며? 믿음은 무엇입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의가 믿음의 대상입니다. “이 믿음은 그의 모든 공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우리의 소유로 삼으며, 그분 외에 어떤 것도 찾지 않는다”고 말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 말하고 있습니다(벨직신앙고백서 22항). 여기 사용된 ‘받아들이고’, ‘소유로 삼으며’, ‘찾는다’ 등의 동사를 첨부한 것은 믿음은 단순히 지식이나 이해나 느낌이 아니고, 행동이고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신앙고백은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 즉 그에게 매달리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 즉 그가 행하신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 ‘다른 것을 찾지 않는 것’, 즉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으로 매우 생생한 개인적인 활동의 표현으로 서술합니다.

③ 우리가 믿음 자체 때문에 구원을 얻습니까?
답)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품도록 성령이 주신 선물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방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되는 방편일 뿐이고 의롭게 되는 근거는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의’뿐입니다.

④ 제61문) 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답) “내 믿음의 가치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거룩함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직 믿음으로 이 의를 받을 수 있으며 나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제63문) 상(상급)에 대하여 무엇을 믿습니까?
   답) 우리의 선행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이 상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입니다.

제64문) 이러한 가르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선행에 대하여 소홀하고 악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답)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사람이 감사의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벨직신앙고백서 24항). 신앙고백서는 이 감사에 대한 내용으로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언약의 요구에 대한 순종과 기도는 감사의 열매입니다.

 신앙고백은 죄의 비참에 빠져 있는 인생에게 참된 위로에 대하여 증거하며, 그 위로에 대한 내용으로 삼위 하나님의 사역, 그리스도의 구속을 요약하여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복음을 통해 선언된 약속을 믿고 위로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시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요구됩니다.

7주일 제21문)은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답)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내가 진리로 받아들이는 확실한 지식입니다.
   동시에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순전히 은혜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영원한 의와 구원을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주신다는 견고한 확신입니다. 이 믿음을 성령께서 복음으로 내 마음에 일으키십니다.

요약하면 참된 믿음은 확실한 지식 + 견고한 확신이며 이를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2. 그렇다면 이제 ‘은혜의 방편’과 성령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제65문)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답) 성령으로부터 옵니다. 성령은 순수한 복음 설교로 믿음을 일으키시고,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제66문) 성례란 무엇입니까?
   답) 거룩하고 눈에 보이는 표와 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사용하셔서 복음의 약속을 더욱 충만하게 선포하고, 인치십니다.
성례에서 선포된 약속은 무엇입니까?  죄용서와 영생입니다(70,76문답).

 본래 성례라는 말은 ‘거룩한 행위’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로마군대의 충성 맹세와 같은 일종의 입문예식을 뜻합니다. 세례와 만찬을 제정하시며, 그것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함’을 나타냅니다.

 성례와 말씀의 관계에 대해 신앙고백은 둘 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근거로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우리의 믿음을 집중하도록 의도되었다고 말합니다(HC 67문답). 성례는 표와 인으로 약속된 것을 지시하며 확증해 줍니다. 우리의 연약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듣는 말씀(복음설교)과 함께 보는 말씀(성례)을 제정하셨습니다. 듣는 것은 보는 것과 하나가 되어 삼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가 견고한 토대를 갖게 해 줍니다.

 구약에도 성례들(할례와 유월절)이 사용되었는데 구속역사의 진전에 따라 신약 성례들(세례와 만찬)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성례인 할례와 유월절은 ‘피’를 포함하나 신약 성례인 세례와 만찬은 더 이상 ‘피’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이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바를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피는 더 이상 어떠한 피흘림의 행위도 폐지합니다(히 10:14). 할례와 유월절은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에 대한 필요성과 확실성을 가리켰습니다. 반면 거룩한 세례와 주의 만찬은 이 제사의 실재를 확정합니다. 그런 이유로 신약 성례들이 더 크고 더 부요하다고 할 것입니다(다 이루었다; 요 19:30).    

 세례로 우리는 주의 교회로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의 언약으로 접붙여집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하나님을 섬김에 우리의 삶을 헌신합니다(책임, 의무). 그리스도는 언약 안에서 우리를 당신께 묶으시고 우리는 새로운 복종과 날마다 회개함으로 살아갑니다.    

성례에 대한 또 다른 신앙고백서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성례들(벨직신앙고백서 33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며 확증하시려고 성례를 제정하셨다...

○세례의 성례(34항)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며, 영원히 은혜로운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증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이 수세자에게 뿌려졌을 때 그에 몸에 물이 보이듯이, 그렇게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에 의해 그 영혼에 내적으로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을 우리에게 표시하십니다...

 재세례파는 이를 부인하지만 우리는 오직 한 번의 세례만을 신앙합니다. 세례는 물이 뿌려졌을 때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유익을 줍니다. 세례가 어떤 방식으로 세례자에게 유익을 주는가 하면, 몸에 새겨진 할례의 표가 약속을 상기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요구하는 방식으로입니다. 동일하게 세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십자가의 죽으심)의 연합과 그리스도가 획득하신 공효에 대한 보증과 함께 오직 신앙을 지속적으로 요구합니다.

○ 주의 만찬의 성례(35항)

 주의 만찬의 성례는 본질적으로 구약의 유월절 절기와 동일합니다(마 26:26-30). 유월절은 두 요소를 가집니다. 그 요소는 제물과 식사입니다. 이때, 제물로 죽임당한 어린 양은 갈보리를 상징합니다. 식사는 가족 진영 안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는 성도의 사귐을 상징합니다. 언약백성에게 이 절기는 애굽에서의 종살이와 해방을 기억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구속의 복음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 가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과 주의 만찬 둘 다 주의 구속을 노래하지만,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의 성만찬에서는 더 이상 피흘림의 제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에서 피흘림의 요소는 제거되고 식사의 요소만 더 강조되어 남아있습니다. 이는 구원 역사가 진전되고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유월절 식사를 대신한 떡을 사용합니다. 축복하고 떼어진 떡은 그리스도의 부서진 몸을 상징하며.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① 주의 식탁에서 내가 먹은 떡과 포도주는 무엇을 인쳐줍니까?
답) 복음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표요, 주의 식탁의 복음을 인쳐줍니다(떡과 포도주가 실제인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도 실제이다).

② 주의 식탁에서 먹는 것이 어떻게 내 영혼을 육성하게 됩니까?
답) 믿음으로 먹을(참여할) 때에만 그렇습니다.

③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주의 상에 앉는 것은 언제 가능합니까?
답) 나의 죄가 제거되고 더 이상 그리스도와 원수가 아닐 때에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성찬의 참여, 즉 떡과 포도주를 먹음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별할 것이 요구됩니다. 성경은 자기를 살핀 후에 참여할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④ 자기를 살핀다는 것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무엇을 말합니까?
답) 죄와 저주받음(겸비),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에 대한 믿음, 참된 감사를 말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역의 증거가 내 삶에, 말에, 태도에 나타난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당신의 식탁에 앉으라고 명령하십니다.

⑤ 성례가 은혜의 방편이라 한다면 누구든지 주의 만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데 주의 상에 울(팬스)을 치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이 울을 치는 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답) 날마다 나는 나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장로(당회)는 나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례는 받는 성례인 반면에 주의 만찬은 행하러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방식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영’으로 먹습니다. 그런 이유로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요구됩니다.

 성만찬의 효력이 모두에 의해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교회는 ‘성체’를 먹음 자체를 구원의 표로 생각하지만, 개혁교회는 먹음과 함께 자신이 참여하는 것에 대한 바른 신앙을 요구합니다. 만일 이 살핌이 없이 참여한다면 오히려 정죄에 이르게 됨을 경고합니다.

※ 주의 몸을 분변한다는 것의 의미(고전 11:29)는 무엇입니까?

 고전 11장 29절에서 성찬 때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자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신령한 영적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성찬에 적합지 않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이 성찬이 가지고 있는 ‘성도 간의 관계’ 즉 성도의 교제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성찬에 적합하지 않음을 말해 줍니다.

 ‘분변한다’(디아크리노)는 말은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분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분변할 수 있다’는 말의 뜻은 교회가 지금 먹고 마시고 있는 이 떡과 포도주가 보통의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특별하게 제정하신 신령한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분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 때의 의미는 먼저 이 떡과 포도주가 ‘우리 영혼의 양식과 음료가 된다는’ 신령한 목적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 떡에 참예하여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의 의미, 즉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참예함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3. 기도에 대하여

○ 기도에 대하여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왜 기도해야 합니까?

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살전 5:17)하시고, 예수님께서도 기도의 가르침에서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마 7:7). 히브리서는 우리 마음과 입술의 제사가 주님께 가장 즐거이 드려지는 제사라고 말합니다(히 13:15).

②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제45주일).

③ 야웨 하나님께서는 오직 기도의 방식으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의 복과 선물을 주십니다. 기도는 주님의 복을 받는 근거가 아니라 주님께서 정하신 방편입니다. 기도로 우리 믿음은 또 시험받습니다.

○ 기도를 주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방식으로 행하기 위해 알아야 할 기도의 규범이 무엇입니까?

① 하나이고, 참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② 우리 자신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③ 우리 구주와 우리를 위한 그의 중보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벨직신앙고백서 26항).

Ⅲ. 성령의 사역에 대한 교회의 고백

제53문: 성령에 관하여 무엇을 믿습니까?
답: 첫째,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참된 믿음으로 나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모든 은덕에 참여시키시고, 나를 위로하시며, 나와 함께 영원히 계시기 위해 나에게도 또한 주어졌습니다.

 교리문답은 “첫째, 성부와 성자와 함께 성령도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라고 말할 때, 이는 일체감, 충분한 조화, 다시 말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사이의 전적이고 완전한 협력이 있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이 사실은 성령께서 결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았고 스스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함축하며 성령께서는 결코 아버지와 아들과 분리될 수 없고, 항상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사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삼위 하나님의 협력에 대해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의 큰 아름다움은 성령께서 홀로 독립적으로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셨고, 항상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항상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이루신 사역으로 향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세례 예식문에서도 정확하게 성령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전체 구속 사역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십니다. 이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삼위 하나님의 협력입니다.
 
 이 성령의 사역은 매우 결정적이고 중요합니다. 만일 성령께서 계시와 선포와 중생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지 않으셨다면, 그때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할 수 없고, 믿음의 열매인 기쁨 가운데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체 성경이 말씀의 선포, 표와 인을 주심, 그래서 믿음을 일으키시고 강화시키시는 성령의 규정적인 사역으로 가득 차 있는데 자꾸만 어떤 다른 특별한 성령의 사역을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성령께서는 은혜의 방편(도구)과 함께 일하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방편없이 홀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꼭 유심해야 합니다. 구원은 결코 변하기 쉬운 인간 감정의 느낌에 달려 있지 않고, 굳건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기초는 우리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장소는 온 세상입니다.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은 편재하십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 139:7)?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교회가 성령께서 일하시는 곳임을 믿습니다. 엡2:22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표준에 따라 모이고, 예배와 직분과 방편들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모인 이 회중들에게 당신을 보이시고 일하시는 장소는 바로 이 교회입니다. 성령께서는 신실한 복음 설교로 이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선교와 복음 전도로 이 교회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또 교리문답은 “둘째로, 성령도 또한 나로 하여금 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시고, 나를 위로하시고, 나와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 나에게도 또한 주어졌다고” 말함으로 “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나’를 개인주의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회중’으로의 나를 강조하여 말합니다. 신앙고백은 개인적인 방식으로 말하지 않고 공동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 생각할 때 회중과 분리된 단지 개인의 신앙과 경험으로 접근하거나 헤아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에게 주어졌고, 내가 그 교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또한 내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정말로 살아있는 교회의 회원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도들의 교제 안에서 주님께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께서 “또한 내게도” 임하셨다고 확실하게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리문답은 성령께서 일하심의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또한 나로 하여금 참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고, 그분의 모든 유익에 참여하게 하시고, 나를 위로하시고, 나와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 나에게도 주어졌다.” 성령께서는 나로 하여금 당신 자신에게 참여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참여하게 하십니까? 성령께서 믿음을 일으킴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이 믿음과 관련하여 은혜의 방편이 강조됩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은혜의 방편과 함께 일하셔서 언약의 회중들에게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시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인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와 함께 모든 은덕을 나누며 교회로 모이기를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마지막으로 교리문답은 성령께서 “나를 위로하시고, 나와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 나에게도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견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우리의 유일한 위로라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주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시고, 우리가 믿음의 기쁨 가운데서 살도록 하시는 위로자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삶의 시련 가운데서도 그리고 나의 모든 날 동안 당신의 큰 위로를 가지고 나와 함께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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