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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lecture
특강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19-02-10 (일)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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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기초된 그리스도인의 삶

부활에 기초된 그리스도인의 삶
(나실인 삼손과 사무엘 기사를 통해 계시된 이스라엘의 부활)
2018년 7월 8일 주일 오후 설교
성경봉독 : 삿13:1-7, 룻4:13-22, 삼상3:1-9
설교본문 : 창22: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회중 여러분!
 우리에게 사사기는 다소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본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사사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입니다. 타락 -징계- 회개- 구원이라는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는 사사기의 구조는 이스라엘의 타락상과 영적 쇠퇴를 먼저 대면하게 합니다. 그렇다보니 본문 속에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는 에덴의 회복, 무엇보다도 여자의 씨를 통한 원수의 머리를 바수어 버리는 승리의 복음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또 곳곳에서 소개되는 새로운 출생, 즉 부활의 메시지도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짧게나마 사사기에서 증거되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 약속된 메시야가 수행하게 될 복음의 사역이 무엇인지, 또 그 은혜를 따라 세워진 교회가 부활에 기초하여 살아가는 삶에 대해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오전 저는 “ 하나님께서 삼손과 사무엘과 오벳의 출생 기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심판과 새로운 탄생을 계시하신다.”는 주제로 교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려 합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삼손과 사무엘과 오벳을 통해 계시된 이스라엘의 부활
 둘째, 참 왕이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새 시대의 도래
 셋째, 부활에 기초된 그리스도인의 삶

 첫째, 삼손과 사무엘과 오벳을 통해 계시된 이스라엘의 부활

 먼저 우리가 알 것은 삼손과 사무엘과 오벳이 비록 동시에 출생한 것은 아니지만 연대기상 20(?)년 미만의 나이차를 가지고 있는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먼저 삼손입니다. 삼손에 대한 기사는 삿13장에서 16장까지 단락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은 구원자 삼손이 블레셋에 내려가 블레셋의 여인과 결혼하려 한 점과 들릴라에게 나실인의 비밀, 즉 힘의 근원에 대하여 알려줌으로 스스로 더럽혀지고 수치를 당하는 사건입니다. 또 삼손의 죽음에 대한 기사입니다. 삼손의 최후에 대한 이 장면은 마치 최후의 순간에 복수를 하는 것 같은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왜 사사인 삼손이 이런 행동을 할까? 도대체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삼손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사사의 모습과 너무나 이질적이라 잘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직분자로서의 삼손의 사역이 그리스도직을 수행하는 예수님의 구속과 관련해서의 의미를 찾기보다 그 사람의 행위의 도덕적 윤리적 태도를 먼저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놓치고 전혀 다른 윤리적 모범을 구하게 됩니다.

 일단 14장에서 삼손의 결혼과 관련해서 삼손이 딤나의 블레셋 여인에게 내려간 것은(이방인과 결혼이라는 교리적 부분은 배제하고) 사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을 삼손의 타락이나 실패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 사건에 대해 말하길 여호와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설명합니다.(열방의 제사장인 이스라엘이 고의적으로 직무 수행을 실패하고 오히려 이방인의 압제를 받으며 거짓 안전감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상화 하에 하나님께서 삼손을 격동시켜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서로 충돌하게 만드셨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의 혼합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여인(블레셋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하도록 삼손이라는 ‘방편’을 던지신 것이다. 결과 블레셋은 신실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결코 블레셋 안에서는 평화롭게 살 수 없음을 증거한다.) 블레셋의 압제가 시작되던 해에 태어난 삼손이 20세가 되었을 즈음에,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삼손의 마음을 격동하셔서 이로 인해 삼손은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소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피로 연회장에서 삼손이 낸 수수께끼를 그 소년들이 풀지 못하고 이로 인해 그들이 삼손에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줘야 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그 소년들이 화를 내며 여자를 위협하여 그 답을 토해 내게 합니다. 이 무뢰배들의 행위로 인해 이제는 삼손이 그 소년들에게 삼십 벌의 베옷과 겉옷을 줘야 될 상황이 됩니다. 이에 야웨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여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의 답을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그 아비 집으로 올라갑니다. 그 후 여자의 부모가 그 딸을 임의대로 블레셋 남자에게 출가시켜 버립니다. 이 일은 이 후 지속적으로 삼손이 큰 용사가 되어 블레셋을 치게 되는 빌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삼손에게 일어난 이 사건과 동시기에 사무엘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른 사건을 비교함으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상 4장에서 아벡에서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투가 벌어져, 그 때 이스라엘이 패하고 언약궤도 빼앗기게 되며 엘리의 두 아들도 죽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엘리(이다말 계열)도 죽게 됩니다.

 사사기 13:1에 의하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제한 기간은 40년입니다. 이 압제는 미스바 전투에서 끝이 납니다.(삼상7:7-13) 미스바 전투는 궤를 빼앗긴 아벡 전투가 있은 지 20년 후에 일어났습니다.(삼상7:2) 엘리가 죽었던 아벡 전투 때에 사무엘은 사사로서의 자신의 사역을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때 사무엘의 나이가 대략 30세 전후였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대략의 연대기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이 압제를 시작할 무렵(삿13:1) 하나님은 삼손의 어머니에게 나타나셨고, 그녀는 잉태하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사무엘1장에서 불임의 여인인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사 그녀도 잉태하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 베들레헴에서 나오미의 노년의 상속자인 오벳이 출생합니다. 두 아이(삼손,사무엘)들은 나실인, 구별된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새로운 일을 하신다는 것에 대한 두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나실인(나지르)은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유래한 말로 “성별된 자, 봉헌된 자, 분리된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어떤 특별한 서원을 드리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사람으로 그 성격상 ‘한시적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신적 속성 중 대표적인 것이 ‘거룩’입니다. 이 거룩이 외부로 발현된 것이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하셨습니다. 이 거룩은 구별된 사람 나지르에 가장 적합한 말입니다.(나실인의 대표적 규정; 1. 머리에 삭도 금지.(머리의 ‘표’는 자신이 하나님께 성별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머리를 미는 것은 부정한 새인 독수리의 모습을 반영함으로 스스로 부정함을 나타내기에 금지됐다.) 2. 술이나 포도(주)를 먹는 것이 금지.(포도주가 종말론적 안식을 구현하고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직 안식이 오기 전의 상황이기에 금지됐다.) 삼손과 사무엘은 평생을 나실인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들은 평생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스스로 구별되었고, 나실인으로서의 그들의 직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었습니다. 즉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시작하게 하는 일! 과 또 성막시대를 끝내고 성전 시대를 여는 일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은 참 왕이 세워짐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이 사역을 삼손과 사무엘과 오벳이 연합하여 수행했습니다.

 언약의 백성이 죄에 빠져 철저하게 세상(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되고 타협할 때, 이스라엘은 새로운 탄생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탄생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삼손의 이야기(13-16장)과 사무엘의 이야기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서에서 아이를 갖지 못한 한나의 불임이 먼저 소개되고 그 다음에 사무엘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뒤따릅니다. 이 이야기는 3장에서 성막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묘사됩니다. 엘리의 눈이 어두웠고, 동시에 성막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었습니다.(3:2-3) 원래 성막의 등불을 간검하는 일이 제사장의 임무(출27:20,21)입니다. 따라서 이 둘은 실상 같은 것을 나타냅니다. “야웨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육신의 장막이든, 성막이든 빛은 사라져가고 있었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두움의 한 밤중에 야웨께서 어두운 성막의 ‘내부’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이 사건 이전 사무엘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삼상3:7) 그러나 그 밤 주의 음성을 들은 이 경험은 사무엘에게 일종의 새로운 출생이 되었습니다. 이 날 이후부터 사무엘이 이스라엘에게 야웨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사무엘이 야웨께로부터 받은 그 메시지는 놀랍게도 엘리와 그 집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더러워진 엘리의 이스라엘을 심판하사 정결케 하신 후, 사무엘의 새 이스라엘을 재건하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출생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은 아이러니합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은 먼저 이 언약궤를 빼앗김으로 제시됩니다. 이는 범죄한 주의 백성들을 위한 대속물로서 하나님 당신께서 블레셋에게 포로로 잡혀 간 사건을 나타냅니다. 이 사건은 애굽에서의 출애굽에 병행합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하나님은 홀로 거짓 신들과 전쟁하시고, 블레셋에 재앙을 내리셨고, 그 후 야웨의 궤는 전리품(금 독종 다섯, 금 쥐 다섯의 보물)과 함께 이스라엘로 되돌아왔습니다. 이 새로운 속박과 그로부터의 엑소더스(탈출)는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무엘상 4-6장의 이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삼손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고자 한 사건은 아마 20세쯤일 것인데, 사무엘서에서 아벡 전투의 결과로 블레셋이 승리한 시점입니다. 이 때는 블레셋의 초기 20년 압제의 끝 무렵입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수단을 사용하셔서 두 번째 20년 기간의 블레셋의 가혹한 압제를 제지하셨습니다. 첫째는 블레셋을 당혹스럽게 만든 삼손의 엄청난 힘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둘째는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했던 언약궤의 탈취 이후의 일련의 일들입니다. 분명 블레셋이 군사적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블레셋은 스스로 위축되어 이스라엘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삼상5-6장) 또한 삼손이 마지막에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과 대부분의 귀족들을 일시에 죽인 사건은 삼상 7장에서 미스바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일 바로 직전이거나 아님 조금 앞서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보면서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같은 시점에 발생한 두 사건간의 관련성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사무엘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번제 이후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그 승리는 삼손의 최종적이고 가장 강력한 복수를 통해서 블레셋의 대부분의 머리(지도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이 사건은 마치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한 사건입니다.)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사실이고 옳습니다.

 이제 룻기로 시선을 돌려 봅시다. 룻기는 당시 이스라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세 번째 관점을 제공합니다. 유다 지파 출신의 베들레헴 사람인 엘리멜렉은 그 땅에 기근이 왔을 때,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하고, 약속의 땅에서 모압으로 도망갑니다. 엘리멜렉은 모압을 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떠났습니다(역출애굽). 그리고 그는 그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생명을 회복해 주셨습니다.(룻1: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는 복된 소식이 나오미에게 들리자 괴로움 가운데 있던 나오미는 이스라엘로 돌아오는데, 길에서 나오미는 자기의 이름을 ‘괴로움’을 뜻하는 ‘마라’로 바꾸었습니다.(룻1:20) 왜냐하면 이 때 나오미의 태는 닫혔고, 그녀의 아들들은 죽었고, 그녀의 남편도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에덴에서 추방되어 저주 아래 있는 존재인 아담의 모습과 같은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오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룻을 나오미의 대리인으로 준비해 주셨고, 수혼의 법으로 나오미의 가문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도록 기업무를 권리를 기꺼이 짊어지기를 기뻐하였던 보아스를 준비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벳은 나오미의 구속자라고 불리웁니다.(룻4:14下)  

 오벳의 출생은 삼손과 사무엘과 거의 동일한 시대입니다. 삼하 5:4에 보면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은 30세였고, 행 13:21에 의하면 사울은 40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울의 재위 10년에 태어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삼상8장에서 사무엘이 그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을 때에 사무엘이 매우 늙었습니다. 이 기간이 사무엘이 사사로 통치한 40년입니다. 따라서 늙은 사무엘 이후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재위한 것을 고려해 보면 사무엘 나이 80세 즈음에 다윗이 출생하였을 것입니다.

 또 역대상2:12에 보면 다윗의 아비 이새가 오벳의 장자로 소개됩니다. 아마 오벳 나이 20세 경에 이새가 출생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삼손, 사무엘, 오벳이 같은 나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동시대에 태어나 이스라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새로운 출발에 이 세 사람이 각기 관여되고 있음을 성경은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일련의 연대기를 통해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룻기4:18-22의 연대기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참된 왕이 다윗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다윗은 오벳의 후손입니다. 오벳이 없으면 다윗도 없는 것입니다. 오벳은 수혼에 의하여 나오미의 무릎에서 태어난 엘리멜렉의 상속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엘리멜렉 가문이 하나님의 저주로 죽었지만, 엘리멜렉이 없으면 다윗도, 왕도 없는 것입니다. 창38장의 유다의 범죄로 인하여 왕의 지파였지만 참된 왕이 등극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족보에서의 10대(代)는 다윗이 출생하기까지 이 노역(회복)의 기간이 이제 다 채워졌음을 알려줍니다.(삿11:1-3)

 그럼에도 우리는 단순히 혈통적 10대의 계보에만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왕의 계열은 배교했고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나오미의 대리인인 룻이 엘리멜렉의 대리인인 보아스와 수혼을 통해 참된 왕권의 도래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룻기는 전체의 내용을 통하여 삿13장이나 삼상1-7장에서 소개되는 이스라엘의 죽음과 부활의 또 다른 형태로 ‘죽음과 재창조의 모티브’를 제공해 줍니다.

 성도 여러분! 구속역사에서 삼손과 사무엘과 오벳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심판과 죽음에서 부활을 일으키심을 증거해 줍니다. 사사기의 시대가 경과되면서 이스라엘은 점점 더 부패하고 완악해 갔습니다. 자신들의 죄에 대한 야웨의 심판으로 회개하던 이스라엘은 급기야 회개조차 하지 않고, 이방인의 압제 가운데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붙이셨을 때,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삼손을 보내주셨습니다. 삼손의 출생에 있어서도 야웨의 사자가 스스로 제물이 되어 승천함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불임의 마노아의 아내의 태를 여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무엘의 이야기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은 대적에게 언약궤가 끌려가는 모습으로 당신 자신에게 심판을 내리심으로 엘리와 이스라엘의 집의 죄를 일소하셨고, 불임의 여성인 한나의 태를 여셔서 사무엘을 일으켜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룻기에서도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엘리멜렉(나오미)은 자손을 보지 못하고 죽어 대(代)가 끊겼으나, 하나님께서 룻과 보아스를 통하여 유다에게 약속된 참된 왕, 오벳-다윗을 일으켜주셨습니다.

 둘째, 참 왕이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새 시대의 도래

 우리는 사사기 곳곳에서 인간적인 왕권을 추구하는 이스라엘의 반역을 목격합니다. 사무엘서에서는 거짓된 직분자들인 엘리와 사울이 왕께 반역하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룻기에서도 초기 언약의 심판이 쏟아진 상황을 불순종으로 회피하는 엘리멜렉 가정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그럼에도 야웨의 은혜가 다시 이스라엘에게 임하여 그 기업이 회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해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신앙공동체의 모습도 소개됩니다. 언약의 요구에 신실하게 순종한 보아스와 이방인 여인 룻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룻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편에 서서 참 이스라엘을 세우실 ‘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룻기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참된 왕은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를 제시합니다. 보아스는 참된 왕의 실례이고, 그의 후손인 다윗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참된 왕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뜻의 엘리멜렉은 역설적으로 그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재출생의 기적에 의해 허락된 오벳의 이름이 ‘종’을 나타냄을 통해 참된 왕의 모습은 여호와의 종으로 사역하시는 메시야임을 알게 됩니다.(사52:13)

 우리 주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세상의 질서와 통념과 전혀 다르게,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와 관계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을 나타내는 언약궤가 블레셋의 포로된 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진노를 짊어지심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신약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에서 성취됩니다. 낮아지신 예수님, 영광의 왕께서 이스라엘과 동일시되어 먹고, 마시며, 뒹굴며 자기 백성과 동류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의 왕, 오벳의 후손으로 오셔서 오벳(종)을 성취하신 주님의 사역입니다. 유다지파의 사자(Lion)이신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방식은 겸손과 낮아짐이었습니다. 힘과 권능이 아니라, 어린 양처럼 당신 안에 세상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나라는 군림하지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 나라는 오히려 큰 자가, 대인이 소자를 섬기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공로가 아니라 은총에 의해 세워집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셨고 세우신 새 왕국의 질서는 무궁한 죄의 빚을 용서(탕감) 받았기에 날마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고 죄를 용서하는 나라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진리의 영,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죄를 이기고,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끌립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신자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생명 있는 자로 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다윗도 삼손도 사무엘도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다윗보다 더 위대하시고 탁월하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신 것이 우리를 새 생명으로 일으켜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얻는 유익에 대하여 HC 45문의 답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도 새로운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아버지와 교제하는 자리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우리도 당신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심으로 죄의 비참이 지배하는 파산한 삶 가운데서도 죄의 권세와 싸우며 공로가 아니라 은총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경계선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매일 새롭게 합니다. 그러나 또한 죽음도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느 한 편에 서야 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나오지 않는 모든 것은 죄입니다.

 셋째, 부활에 기초된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확인됩니다. 복음의 약속이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가 그리스도인의 소명의 자리에서 세상에 흘러갑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침묵한다면 에덴의 입구가 열린들, 세상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담 이후 전체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로 구속의 날들까지 보존되고 유지되어 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일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육체의 욕심에 사로잡혀 세상에 깊숙이 개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의 자리이기에 땅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회복과 관련해서 여러분은 온 세상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관여하고 있고, 또 기도합니까?

 세상은 우리가 외치는 복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통해서 또 이웃(전체 세상)을 사랑하는 우리의 봉사와 섬김을 통해 먼저 만납니다. 세상은 온통 환란당한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은 사랑이 없어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속히 오실 것을 고대합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진리를 알고 있습니까? 진리가 여러분 속에 있습니까? 그 증거는 사랑입니다. 개혁신앙을 추구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리폼드 교회를 세우고자 한 우리의 열망과 기대가 자기도 모르게 법규정을 지키고 규정으로 몰아가고 서로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또 반대의 면에서 그리스도에 기초한 교회를 믿음으로 상속받았음에도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지혜를 따라 행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두렵습니다.

 법으로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세우지 못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 그런 줄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앞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고백은 관념이 되고 맙니다.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는 성령께서 말씀의 주인을 사랑하고 그분께 우리의 신뢰를 두게 하셨다면, 동일하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교회의 지체를 사랑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이루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으로 주의 회중을 참교회로 이끄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죄사함의 은혜를 간직한 곳, 서로에 대하여 용서를 실현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마음 문 앞에 엎드려 죄의 틈, 기회를 엿보는 원수에 당당히 맞서 죄의 소원을 다스리며 사는 모습입니다. 우리 각자가 왕적 그리스도인이지만 자기소견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를 따라 교회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서로 격려하며 짐을 나누어집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의 이유가 아니라, 편익을 따라 되고 있는 이 어둠의 시대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보존하시는 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더욱 함께 하며 서로 복종합시다. 이 땅에, 우리가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이 곳에 천국이 침노한 ‘대조사회’로서의 거룩한 공동체를 보존하는 일에 우리 스스로가 쓴 뿌리가 되지 않도록 겸손히 왕의 다스림에 복종합시다. 참된 교회와 신앙을 보존하는 일에 헌신하는 여러분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선대해 주실 것입니다. 죄와 분투하고, 은총이 지배하는 날마다의 여러분의 삶이 되어 여러분이 참으로 하나님께 속했음을 증거하고 하늘의 예루살렘 보좌에 좌정하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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