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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2-09-11 (일)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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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2022년 9월 11일 제46주일 오후설교
성경읽기 : 히2:5-18
설교본문 : LD 4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감사의 절정이고, “최고의 기도”는 바로 주기도문이라고 교리문답은 말하고 있습니다. 45주일 118문에 보면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에 모두 담겨 있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거스틴과 루터와 칼빈 같은 이들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가장 완벽한 기도”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기도가 나와 있지만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더 흡족한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이 주기도문의 취지나 의미를 잘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기도의 모델이 ‘주기도문’에 들어 있으므로 우리의 기도가 바로 이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늘 애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의 첫 번째 부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르면서 시작한다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을 이렇게 부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교리문답은 그 정신을 잘 캐치하여 주기도문의 첫 부분에서 바로 간구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지 않고 호칭에 대한 문제를 한 주일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상고하여야 할 점은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에 대해 우리는 별반 거부감이나 의아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릴 적 교회를 다닐 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 왔고, 그것은 우리의 언어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친숙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친숙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는 달리, 구약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예는 거의 없다는 점은 우리의 주의를 끕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구약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는 것은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15번 정도). 그러나 이 사실과 구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표현은 대부분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구절은 매우 적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구절은 한 곳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구약 성경 시대뿐만 아니라,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 기록된 책들인 외경이나 쿰란 문헌 등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정확한 자료에 의하면 마카비 3서에 4번, 지혜서에 3번, 토빗에 한 번, 시락에 2번, 쿰란 문서에 2번뿐입니다. 신구약 중간기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은 보편적인 일은 아니었습니다. 즉, 구약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일이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에 급격한 변동이 생기는 시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난 후에 급격한 변동이 생깁니다. 복음서 안에서만 해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무려 170번이나 나옵니다. 복음서의 증거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당대 유대인들이 드물게 사용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표현은 말할 나위도 없고, 유대인들이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아람어 ‘아바’와 아람어 ‘아바’의 헬라어 번역인 ‘파테르’(아버지), ‘나의 아버지’라는 등의 표현을 대단히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사실은 가히 혁명적인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에서 자연스레 의문이 하나 생겨납니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입니까?  교리문답 제 13주일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다룹니다.
 33문 :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분을 왜 “하나님의 독생자”라 부릅니까?
   답 : 왜냐하면 오직 그리스도만 본질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교리문답 13주일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신 이유가 “그분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다”라는 점이요 그분의 독특한 지위 때문입니다. 아무도 갖고 있지 않았던 우주에서 유일한 지위, 하나님의 친아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는가?

 문제는 “예수님께서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가에 있습니다!

 교리문답 제 9주일이 이 사실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9주일은 사도신경의 가장 첫 부분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무엇을 믿는 것인지를 질문하는 부분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묻는 것입니다. 교리문답은 이 대답을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한 번 언급했던 13주일을 다시 찾아 조금 더 상세한 질문을 듣도록 합시다.

문 :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분을 왜 “하나님의 독생자”라 부릅니까?
답 : 왜냐하면 오직 그리스도만 본질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3주일 답의 뒷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는지를 조금 더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우리가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 양자로 입양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케 된 방식이 히브리서 2장 말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함께 2장 10절과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입양되게 된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주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까?
 10절은 말씀합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 하나님입니다. 문법상 이 구절은 앞절의 하나님을 받습니다. 즉 하나님께는 “많은 아들들인 우리들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주를 고난에 내버려 두시는 일이 당연하였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아들들인 인류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에 버려두시는 것이 마땅하였다, 당연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실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서 11절은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다!”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구원의 주’를 받습니다. 즉 예수님입니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많은 아들들’을 받습니다. 즉 우리들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인 고난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우리들이 다 한 근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같아지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형제’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부는 어떠셨습니까? 성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고난에 내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친히 자신의 친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기를 망설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오롯이 성부와 성자의 연합 사역의 결과물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시작점인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오늘 교리문답 제 46주일의 내용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친 아버지로 부르는 자들이 기도할 때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이 사실을 고백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교리문답은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으므로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 때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불러 일으키기를 원하신다”라고 정리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교리문답은 이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가 땅의 좋은 것들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삶에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왜 내게는 나쁜 일만 생깁니까?”라고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교리문답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이것은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주 내 삶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기고, 하나님은 나를 돕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낍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애로우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끝까지 보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우리의 영과 우리의 믿음과 관련된 것”임을 또한 잊지 맙시다. 육체의 유익은 약간의 것입니다. 그러나 영을 살찌게 만드는 경건은 범사에 유익한 것으로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어떤 것을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부모라면 육체의 약간의 고통을 통해 영이 살찌는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영이 죽는 것을 알면서도 육체에 기쁨이 되는 것을 주는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기도문의 가장 첫 번째 부분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독특한 지위, 즉 유일한 지위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 지위에서 오는 호칭인 ‘아버지’라는 호칭을 자기 백성들인 우리 성도들에게도 허락해 주셔서, 기도할 때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형제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복락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됨을 입은 우리는 이 자녀됨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이 아버지께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121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이 왜 덧붙여 있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교리문답의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을 “땅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할 때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주시는 위엄과 선물이 “땅의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기도가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 되도록 주기도 서두에서부터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새언약 시대의 백성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목소리 높여 기도합시다. 찬송합시다. 하늘의 것이 우리를 가득 채우도록.
하늘의 질서가, 가치가 오늘 우리에게 부어지도록, 부흥이여 우리에게 오소서.
하늘에 속한 아들로 주 앞에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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