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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11-21 (일)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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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가르친 헌금의 목적과 방법
사도가 가르친 헌금의 목적과 방법
2021년 11월 25일 주일 오후 설교




들어가는 말

 예배에 참석할 때 제일 큰 시험(?)거리 중에 하나가 헌금일 것이다. 어떤 분들은 십일조나 헌금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분도 있다. 불신자들은 교회가 크면 클수록 부자라고 생각하고 마치 목사를 절의 주지스님에 비교해서 “그 교회 목사 돈 많이 벌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교회는 왜 그렇게 헌금종류가 많으냐고 하기도 한다. 십일조, 감사, 선교, 구제, 건축 등등

 사실 헌금만큼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금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또, 십일조는 어디까지 해야 온전한 십일조가 되는가? 십일조는 꼭 자기 교회에만 내어야 하는가? 헌금은 기명으로 해야 옳은가. 무기명으로 해야 옳은가? 헌금은 예배 때 내어야만 헌금이 되는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것, 선교하는 것도 헌금이 되는가? 이러한 많은 질문들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1. 헌금의 명칭

 1. 자비의 봉사란 무엇인가?
 흔히 헌금(獻金)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교회는 ‘자비의 봉사’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교회 안에 곤경에 처한 가난한 자의 필요를 채워주고 또 교회가 다른 교회를 불쌍히 여기고 돌아보기 위해 헌금을 하였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과 곤경에 처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자비를 베풀기에 자비의 봉사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복음의 일을 위하여 헌금으로 섬기는 것을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봉사의 직무라고 하였다(고후9:12). 이는 헌금이라고 사용하기 이전에 연보(捐補)했는데, 이 말이 자비의 봉사에 가장 가깝다고 보여진다.

 2. 성경에서는 헌금을 어떤 말로 사용하고 있는가?        
 성경에서는 먼저 ‘코이노니아’ 즉 교제라는 말을 사용한다(고전16:1, 고후9:13 등, 한글개역은 연보로 번역). 이는 성도사이에 물질로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도론’ 즉 선물이다(마5:23:예물, 눅21:4:헌금). 한글개역은 예물, 혹은 헌금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헌금이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와 가난한 자에게 거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로게이아’ 즉 기부금을 말한다(롬15:26:동정). 로마교회가 마케도이아와 아가야에 있는 성도들을 돕기 위해 기부했다는 것이다.

 2. 헌금의 목적
 우리는 먼저 헌금을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모든 행위에는 목적이 있다. 목적이 없다면, 그 행위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헌금을 하라고 명하셨는가?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 성도들은 알아야 하겠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성도들이 어떤 목적으로 헌금을 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다. 그것은 우리의 정당한 모범이다. 신약의 교회는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신약성경에서 사도와 사도들의 교회가 보여준 것은 바로 우리가 그대로 행하여야 할 행위이다. 또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규범이다.

1) 구제를 위한 헌금

① 사도행전4:32-37 :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기 위해서, 특별히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하는 헌금의 목적도 구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② 사도행전6:1-6 :  과부들을 위해 구제하였다. 이 일을 위해 직분을 세우게 된 것이 바로 집사이다.

③ 사도행전11:27-30 :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구제헌금을 하였다. 아가야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마케도니야에 있는 교회를 위해서 일년 전부터 구제헌금을 준비한 사례가 있다(고후9:2). 이 구제헌금을 전달한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이었다.

2) 선교와 선교사를 위한 헌금

① 로마서15:22-29 :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선교사역을 완수한 후 서바나(스페인)로 선교를 떠나고자 계획하였다. 그는 이 계획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알리고 조만간 그들과 만나 교제하기를 원한다고 밝힌다. 그 목적은 바로 자신의 스페인 선교를 위해 로마교회 성도들이 물질적으로 도와달라는 것이다.

3) 목회자의 생계를 위한 헌금

① 고린도전서9:7-14 :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생활비를 위해 헌금을 하였다. 사도들이 당연히 생활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논증하고 있다. 첫째, 일반적인 예를 따라 말한다. 즉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는 사람이 없고, 포도를 심고 실과를 먹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양떼를 기르고 그 양의 젖을 먹지 않는 사람이 없다. 둘째, 율법에 근거를 둔다. 신25:4의 말씀은 사실 목회자를 위해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도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 예수께서 직접 명령하셨다는 사실인데, 목회자들은 반드시 생계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교회로부터 당연히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12절).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목적은 목회자의 생계비로 쓰여져야 한다!

② 빌립보서4:15-18 :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생계를 위해 헌금으로 참여하였다. 그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한 두번 정도 생활비를 지원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헌금이다. 목회자나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고 목회를 하는 일에 교회는 헌금으로 참여해야 한다.  

4) 나그네들을 위한 헌금

① 요한삼서 5-10 :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칭한하기를, 나그네 된 자들의 쓸 것을 대접한 일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나그네 접대를 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접하고자 하는 자들을 금하고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한 개인의 대접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사업임을 알 수 있다. 가이오가 출석하는 교회는 마땅히 행하여야 할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이 디오드레베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주석가들은 여기 나그네를 순회전도자들이라고 한다. 당시에 목회자들이 많지 않았고, 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두벌 옷이나 전대를 갖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가 이들의 의식주 문제를 도왔던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목회자나 선교사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일하는 모든 곳에 우리는 헌금을 해야 할 것이다.

5) 예배모임(성례)을 위한 헌금

이상에서 우리는 신약성경에 헌금의 목적을 살펴보았다. 헌금은 첫째, 구제를 위하여 둘째, 목회자의 생계비를 위하여, 셋째, 선교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예배모임을 위하여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금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3. 헌금의 방법

1. 헌금은 미리 준비하여서 드린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로 하여금 헌금을 미리 준비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 헌금이 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5절). 미리 준비하지 않는 헌금은 억지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사도 바울은 고전16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준비할 것을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돕기 위하여 고린도교회에 헌금을 부탁했는데, 매주일 첫날에 각 사람이 돈을 번대로 저축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방문하는 그 날에 갑작스럽게 헌금을 하지 않도록 당부를 했다(고전15:1-3).

이러한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도 헌금을 미리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각 사람이 미리 수입에서 얼마를 따로 떼어놓아야 한다. 우리는 억지로 헌금을 해서는 안 되는데, 미리 준비하는 것이 참 연보답다. 또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를 도울 때도(혹은 선교) 미리 준비해서 헌금하는 것이 좋다. 이때 교회는 헌금의 정확한 용도와 목적을 교회에 충분히 알려서 각 사람이 기도 중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헌금의 액수는 각자가 그 마음에 정한다.
고린도후서9장 7절을 보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여기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헌금은 교회가 얼마를 해야 한다고 정해주지 못한다. 헌금은 각 성도들이 자기 마음으로 결정하는 것이다[프로애래따이]. 한글개역, ‘정한대로 할 것이요’에서 동사 [프로애래타이]는 완료, 능. 직, 3, 단, 프로아이레오마이, 그 뜻은 결정하다이다. 여기서 완료형태로 쓰였는데,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얼마를 결정하여 현재 결정된 상태를 말한다.
헌금을 얼마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하는 행위이고, 사도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주님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역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액수를 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는 행위이다. 각 사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각 성도의 양심은 오직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을 뿐 교회나 교회 직분자가 성도와 그의 양심을 주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작정된 헌금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당회나 제직회가 일정한 금액을 정할 수 없다. 또 현재 현금이 없어 앞으로 얼마를 헌금하겠다고 일정금액을 작정하고, 수입이 생길 때마다 작정한 헌금을 갚아나가는 식으로 헌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금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없는 것을 받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것은 교회가 예배당 건축이나 차량 등 목돈이 들어가는 일을 할 때 시행하는데, 이럴 경우도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것에 거치고 액수를 정하게 해서 빚 갚아나가듯이 헌금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작정헌금을 시키지 않고, 1년 정도 여유를 주어 미리 준비하도록 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3. 헌금의 액수는 인색하게 정해서는 안 된다.
한편 비록 각 성도들이 자기 마음으로 결정하지만 헌금액수를 절대로 인색하게 결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기 사용된 말은 원래 슬픔이나 고통을 의미한다. 즉 헌금을 하기는 하는데, 헌금하는 그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럽는 것은 결국 마지못해 하는 것이 되고, 헌금액수가 인색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살폈듯이 교회가 교회본연의 사명을 충분하게 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해야 할 것이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하나님은 교회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교회가 구제와 선교, 목회자의 생활비가 모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를 원하신다(9절). 우리가 구제하고, 선교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복음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덕이 선전된다. 그래서 각 사람은 교회가 넉넉하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인색하지 않고 넉넉하게 헌금해야 한다. 물론 그 액수는 각 가정이 정해야 한다. 이때 지나치게 헌금을 많이 하여 생활이 되지 않게 해서는 안 된다. 생계비와 자녀 양육비, 부모공양비, 세금 등도 마땅히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이다.

4. 헌금은 의무감으로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헌금을 할 때 억지로 하지 말고 헬라어 [아낭케]는 압박, 고통, 강제, 속박 등의 뜻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어떤 분들은 헌금을 하기는 하지만, 의무감으로 하는 분들이 있다. 원문의 헬라어는 압박이나 고통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든지, 특히 목사나 장로의 외적인 압박을 받아서 한다든지, 혹은 자신의 명예나 위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런 헌금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겨내는 자와 그의 헌금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적어도 헌금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의가 교회의 복음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거룩한 열망의 표현이다. 가난한 자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와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의무감에서 억지로 하지 않고 즐겨 헌금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을 주시도록 또한 기도해야 한다.

5. 헌금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주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의를 사람에게 보이려는 의도로 행하지 않도록 경고하셨다. 그런 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마6:1). 우리가 헌금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라고 하셨다. 이는 우리가 헌금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전혀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아니다. 은밀하게 하라는 말씀도 역시 같은 의미인데, 적어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거나 칭찬을 얻기 위한 동기나 목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실제 행동에 옮겨야 하는데, 예배 중에 헌금명단을 발표하고 축복기도해 주는 것은 목사가 나서서 나팔을 부는 외식적인 행동이므로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 또 주보에 헌금 명단을 기록하는 것 역시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행위이므로 이 역시 금지되어야 한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명단발표를 할 때 괜히 우쭐댈 수 있고, 또 헌금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열등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또 사람들은 주보에 기재되어 있는 이름을 보고 누구 헌금을 하고 안 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외식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 생각해 보기: 무기명으로 할 것인가? 유기명으로 할 것인가?  
 

4. 개혁교회의 헌금생활의 예

1. 교회경상비
교회운영위원회가 목회자생계비, 건물관리비, 각종 운영비 등 1년 예산을 세운다. 그 다음 교회 각 가정에 일정율 배당을 한다. 이 배당은 그 가정이 교회를 위해 1년 동안 드릴 기본적인 헌금이다. 배당을 어떻게 하는가? 먼저 각 가정은 1년 동안의 수입총액을 교회운영위원회에 보고한다. 교회운영위원회는 교회1년 예산 총액을 각 가정의 수입총액 대비 100분율로 나눈다. 어떤 가정은 조금 높은 비율이 될 것이고 수입이 적은 가정은 배당률이 조금 낮게 될 것이다.

2. 구제비
이 구제비는 철저하게 집사회에서 관리하고 집행한다. 구제헌금은 그 때 그 때 필요를 따라서 한다.

4. 헌금을 모으는 방법

1. 예배 중에 거두는 방법과 예배 전에 헌금함에 넣는 방법 중 어느 것이 좋은가?
헌금은 예배 중에 거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헌금은 예배의 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예배 중에 헌금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해서 예배 전에 헌금함에 넣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2. 예배 중에 헌금을 거둘 때 헌금 바구니 혹은 헌금 주머니가 좋겠다.
3. 헌금을 할 때 헌금봉투에 넣어서 하는 것이 좋겠다.

5. 헌금을 위한 기도

헌금을 위한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보통 복(福) 주시기를 기도 드린다. 이것이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헌금은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 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 궁핍한 자와 배고픈 자, 핍박받는 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2)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요를 “너무 적게 가지고 있고 너무 많이 고생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3)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4)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맡겨 주신 것임을 알고 선한 청지기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5) 헌금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자비의 봉사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6.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

1. 교회는 마땅히 해야 할 본질적인 사명을 위한 헌금 외에 다른 목적으로 헌금을 강요하거나 혹은 헌금을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2. 우리는 각종 감사헌금을 드리고 있다. 그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가? 위의 성경의 예들에 비추어 볼 때 굳이 감사헌금이라는 것을 드릴 이유가 있다고 보는가?

3. 오늘날 대다수 성도들은 복을 받기 위해 헌금을 한다고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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