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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9-12 (일)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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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되신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의 주되신 하나님의 독생자
2021년 9월 12일 제13주일 교리 설교
성경읽기 : 엡1:3-14
설교본문 : LD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 13주일은 예수님을 두 가지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33문은 “하나님의 독생자”, 34문은 “우리 주”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독생자’라는 말은 ‘유일한 아들’이라는 뜻이요, ‘주’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또 33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독생자이심과 우리가 입양되었음을, 34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 주인이 되셨는지를 말합니다. 오늘 설교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내용, 예수께서 ‘독생자’와 ‘주’가 되셨다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아울러 ‘독생자’와 ‘주’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설교를 듣는 여러분의 마음에 복 주사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독생자’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언급한 구절이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 1장에는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 3장의 유명한 구절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질문1.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는가?”
 교리문답이 이를 설명하는 방식은 ‘본질’이라는 단어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말은 우리는 본질상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질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부와 성자는 본질에 있어서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의 의미는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본질로’라는 단어로 말하자면 우리는 죄짓기 이전의 인간이었을지라도 예수님과 같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아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리문답은 우리가 “입양되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와 같은 말씀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본질상’ 아들이 아니라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 말씀에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아들들이 되다’라고 할 때의 단어 ‘휘오데시아’는 ‘입양하다’, ‘양자삼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에베소서 1장 5절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양자를 삼으셨으니”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 말씀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휘오데시아)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양자’된 아들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입양된 자녀”임을 깨닫게 될 때, 우리에게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양자되었다’는 점은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첫째는, 우리는 원래 아들들이 아니었다는 점이요
 둘째는, 누군가를 통해 우리는 건짐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양자됨의 은혜가 누구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교리문답 33문은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기에서 이 “말미암아”에 주목합시다. “참 아드님이신 분께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심으로써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며, 이것이 바로 ‘독생자’이신 예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었던 에베소서 1장 말씀에 보면 이 일이 얼마나 커다란 기쁨인지가 상호 연결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런데 이 아들이 된 것, 양자가 된 것은 3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성경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잘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복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양자됨이 ‘독생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입니다. 모든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사실상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에서 벗어나 “마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원래 신분은 죄 때문에 마귀의 종살이를 하는 존재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귀의 자녀’의 신분이란 우리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 가운데서는 어떤 영웅이 날지라도 이 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신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들 중에서’가 아닌 ‘독생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 나셨다는 것은 곧 우리가 전혀 극복할 수 없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별생각 없이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고백할지 몰라도, 이 구절 안에는 커다란 하나님의 섭리와 호의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그분은 독생자이십니다”라고 부릅니다. 이 안에 우리의 구원과 복이 들어 있고, 이분 때문에 우리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분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마귀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그분께서 ‘독생자’이시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4문은 이 독생자이신 분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양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독생자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속하셨는지 입니다. 답은 “그분께서 우리의 ‘주’가 되심으로써”입니다.
 
 원래 ‘주’라는 말은 단순하게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퀴리오스’는 ‘권세 있는 자’, ‘권위 있는 자’, ‘공직자’라는 뜻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는 ‘왕’에게도 사용된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로마세계에서 1세기 문헌에 보면 그들의 왕을 ‘퀴리오스’라고 부르는 많은 전통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주’라는 말은 훨씬 더 강력한 용어로 사용됩니다. 우리는 대표적으로 ‘주’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의미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대부분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사용하였는데, 그 헬라어역 성경(70인역)에서 무려 6천번 이상 ‘하나님’이 ‘주’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 베드로가 거기 모인 무리들에게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2:36)라고 말했을 때 거기 모인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라는 인물이 ‘하나님’이시라고 베드로가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주’는 자주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 2장 말씀은 이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셨음을 ‘주’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이에수스 퀴리오스(Iesous Kurios), 예수 주, 예수는 주님이시다.
 
 이상에서 ‘주’라는 말은 한편으로 하나님, 다른 한편으로 온 세계 만물의 통치자를 나타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주’라는 말은 하나님의 강력하신 권세와 통치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로 ‘하나님’이셨고, 그분께서 또한 실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의 통치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머물 뿐 아니라 중요한 다시 한 번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34문의 질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 주께서 거기에 계시기만 할 뿐 아니라 이 분이 ‘우리의 주’가 되실 때, 그 사람에게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살폈던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서 이 베드로의 설교, 그 중에서도 앞에서 언급했던 2장 36절 말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라는 말씀! 이 말씀은 분명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시던 그분께서 실은 하나님이셨고, 사도행전 이 구절대로 하자면 “하나님이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도행전 2장 36절 말씀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말씀하지만, 이어지는 37절의 말씀은 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탄식하는 장면으로 연결되고, 이 반응에 대해 베드로가 준 답은 바로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였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인정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어찌할꼬”라는 반응을 낳게 했고, 또한 이 “어찌할꼬”라는 반응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아들일 때 죄사함을 얻게 된다”는 사실로 연결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인정은 곧바로 신자의 구원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의하자면 신자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받아들일 때 바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교리문답 34문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질문은 “예수님을 ‘우리 주’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서 “그분께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죄로부터 구속하시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사셔서 주의 것으로 삼으셨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마귀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보여준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핵심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33문의 ‘독생자’라는 이름과 34문의 ‘우리 주’라는 이름의 관련성을 살핌으로써 말씀을 맺도록 합시다. 우리가 아까 ‘양자됨’을 살피기 위하여 에베소서 1장 말씀을 보았습니다. 3절과 5절을 함께 읽을 때 ‘양자됨’이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임을 들었습니다. 이제 9절과 10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다!” 이 통일이 바로 7절에 나오는 바 “구속 곧 죄사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본문 전체를 놓고 찬찬히 읽어보면 인류의 구원이란 단순히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일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장대한 교향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인류의 구원이야말로 그리스도의 통치권, 곧 주되심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해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이라는 대업을 이루셨을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에베소서 1장의 말씀은 ‘독생자’께서 ‘주’가 되심을 함께 보여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께서 우리를 ‘양자’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구속 곧 죄사함”(7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장대한 대서사시였습니다. 즉, 독생자께서 주가 되실 때 한편으로는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장대한 구원역사가 이루어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독생자께서 주가 되심으로 이루신 하나님의 장대한 구원계획”의 결과물이 바로 ‘교회’임을 기억합시다. 에베소서 1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우리가 방금 논한 이 모든 내용들이 에베소서의 ‘교회론’ 안에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1장의 마지막이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22절)고 하시면서 “교회는 그이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23절)는 말씀으로 맺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방금 살핀 이 장대한 서사시는 ‘교회’로 끝납니다. 독생자로서 주가 되신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모든 것을 자신의 발 아래 두시는 통치를 행하시면서, 온 세계를 다스리실 때, 그 다스리심의 결과물로 ‘교회’를 낳으셨습니다. 23절 말씀은 교회가 “만물의 충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께서 최종적으로 만드신 결과물!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주로써 통치하시며 행하신 일의 최종적 완성품!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 우리는 인자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신 의미를 복음전파와 관련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의하면 복음전도란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정복하는 행위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주되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나타났었고, 그 일을 행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통치권을 대신 수행한다는 점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할 때 ‘교회의 영광스러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구원이 하나님의 얼마나 영광스러운 작업의 결과물인지 알게 됩니다. 아울러 교회로서의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주의 통치를 기쁨으로 받고, 그 통치의 권세가 온 땅으로 뻗어가도록 힘써 복음전파를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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