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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5-02 (일)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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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질서와 권징
교회의 질서와 권징
2021년 5월 2일 주일 오후 설교
설교본문 : 벨직신앙고백서 제 32항


 제 32조는 교회의 정치와 관련된 교리의 마지막 항목입니다. 이는 교권이 지배하는 로마 교회와 제도적 교회를 무시하는 그 시대의 재세례파의 두 극단에 맞서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경적인 질서를 따라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칼빈이 1536년 제네바에 처음 와서 발견한 도시는 무질서할 뿐만 아니라, 범죄 소굴이 되어 있는 도시였습니다. 대부분의 제네바 시민들이 오락과 즐거움의 생활을 추구하며 음주, 춤, 도박을 즐기며 살고 있었고 매춘이 공적으로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 뒤에는 그 도시를 존 낙스가 보고 “사도 시대 이후 지상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가장 완전한 학교”라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질서 있는 생활의 결과였습니다.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세 가지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첫째, 성경의 진리에 따른 교리를 작성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딤전3;15). 교회는 성경적인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이 교리를 파수하고 전할 사명을 가집니다.

 둘째, 교회의 질서 있는 생활을 위해 규칙을 제정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고전14:33)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라”고 말합니다.

 셋째, 권징의 질서를 정하고 시행하는 일입니다. 주께서 그의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하지 않은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 5:13)라고 했습니다.

 이 32조는 바로 둘째와 셋째에 관계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불러 세운 사역자들에게 그가 피로 산 교회를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자들은 한 지역 교회를 위해서나 교회간의 연합을 통해서 교회간의 일치와 안녕을 위해서 질서를 만들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한계를 가집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이 한 몸으로서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체제 아래 모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되고, 교회는 자연히 규칙과 규정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교회의 유일한 주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의 한계에 머물러야 합니다. 교회의 봉사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으로부터 결코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32조에서는 교회가 권징과 출교를 실행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조화와 일치의 보존과 증진”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든 신자들을 지키기” 위하여서라고 고백합니다. 교회는 그 자신의 권위로 권징과 출교를 실행하지 않아야 하고 그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도 권징과 출교를 실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으로 우리는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를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우리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아”(고전4:6)야 합니다.

 예배에 대하여

 본 32조는 두 가지 항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배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속박하고 강제하는 모든 인간적인 고안이나 규범들이 도입되는 것을 배격합니다.”고 합니다. 교회법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자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영적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본 신앙 고백서에서는 “우리는 인간적인 고안이나 규범들이 도입되는 것을 배격한다”라고 선언합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96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것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함으로 같은 원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어떤 성인이나 사람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나 성만찬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을 거부하였습니다.

 그것을 거절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의 고안’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이 법들이 믿는 자들의 “양심을 구속하고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신 안에서 사람의 종이 아니라 그 말씀만을 좇아 사는 그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16세기 믿음의 선진들처럼 로마교회로부터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예배하도록 강요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여러 교회 속에서 각양 인간의 고안들이 교회 예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일반 신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관심을 갖게 하려고 교회에서 공적으로 세움을 받지 않은 분들에게 공예배의 순서를 맡겨 성경 본문을 읽게 하거나 공기도를 하게 합니다. 또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부르는 자들이 영광을 취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공예배는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자들의 인도와 감독 아래 온 회중이 하나가 되어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의 주 삼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늘 왕국의 열쇠(천국열쇠)

 마16:16-19에서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한 베드로의 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읽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늘 왕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31주일 83문답에서 읽을 수 있는데, 거기에 보면 왕국의 열쇠는 “거룩한 복음 전파와 교회의 권징이고, 이 두 열쇠에 의해서 왕국이 믿는 자들에게는 열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닫히게 된다”고 말합니다.

 마16장에 따르면, 이 왕국 열쇠들은 두 가지 일을 하도록 베드로에게 주어졌습니다. 즉 왕국의 문들을 매고/닫고, 풀고/ 여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베드로라는 사람이 죽은 이래로 그의 계승자(오늘날의 교황)가 하늘로 갈 수 있는 사람을 결정한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요점은 하늘의 문에 서 있는 베드로라는 사람이 아니라 마16:16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한 고백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그 자신이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반응하십니다. 이 고백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하늘로 출입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고백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이 있는 교회의 대표자라고 선언하십니다. 베드로는 믿는 교회를 통하여 하늘 왕국의 열쇠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습니다.

 직분자들의 사역

 이것은 또한 직분자들이 이 열쇠들을 실행할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늘로 들어갈 사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직분자들이 주께 받은 책임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이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 어떤 교우들은 유아시절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말씀인 성경을 듣고서 일어나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교회로 가고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좋은 습관을 발전시켰습니다. 우리는 쉽게 “내가 ‘이런 모든 올바른 일들’을 행했기 때문에, 내가 죽을 때 하늘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결론을 짓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들이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행했으므로, 하늘의 문들이 나에게 열릴 것이고 나는 그 문들을 통과하여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늘의 문들을 통과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늘 왕국의 열쇠들을 실행함에 있어서 직분자들은 믿음의 증거를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무가 그 열매로 알려지는 것처럼, 직분자들은 믿음의 열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마7:17이하). 믿음의 열매는 순종에 의해서 증거 됩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은 그런 열매가 없이 믿음의 고백을 하려고 하는 어떤 사람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문들을 열기 위해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든지 나타나지 않든지 간에 그들이 보는 바에 대해 그들과 토론하는 것은 직분자들의 사역입니다.

 형제에게 “너의 생활이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자신이 불순종하는 삶을 사는 동안도 하늘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다고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삶을 살아가는 형제를 그냥 버려두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형제는 언젠가 지옥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그런 사람과 맞서서 그의 고백과 그의 행위 사이의 불일치를 지적하고, 훈계하고, 필요하다면, 출교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장로들: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

 겔33장에서 주님은 도성의 파수꾼의 일과 비교하여 하늘 왕국의 열쇠들을 실행하는 일의 중대함을 설명합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도성의 파수꾼의 사역을 그 시대에 교회의 파수꾼인 에스겔의 사역에 적용합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이 파수꾼의 사역은 오늘날 교회의 장로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성경에 따라 말하고 경고하는 것은 직분자의 의무입니다. 믿음의 순종 안에서 사는 것은 모든 신자들의 의무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이고, 참된 믿음이 있는 곳에 또한 믿음의 증거, 믿음의 열매 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순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은 이생에서 그리고 이생의 끝에 하늘의 문에서 구원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장로들이 우리에게 경고한다면, 그것은 우리 영혼의 파수꾼인 장로들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장로들은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에 관하여 모든 기만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임감 있는 사역을 부여받은 장로들은 그들의 무거운 짐 아래서 모든 교회의 회원들의 많은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인들의 사역

 교회 권징 곧 하늘의 문들을 지키는 사역은 오로지 직분자들만 감당해야 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이 일은 전체 교회에게 주어진 사역입니다. 이 일은 모든 교회 회원들이 참여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교회의 회원인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지키는 자이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가운데 행하는 다른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8:15-16을 보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타당한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죄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죽도록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웃을 위하여서도 동일한 일을 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나의 이웃의 죄를 본다면 나는 그에게 그의 죄에 대해 말해줌으로 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이웃이 죄로 강팍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그의 영원한 복이 위태롭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의 이웃에게 행하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고, 또한 주님께서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라.” 나의 이웃이 나의 권고를 듣지 않는다면, 나는 두 세 증인을 데리고 가서 그들이 나의 권고를 듣고서 나의 형제에 대한 나의 의무가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당회에게 증거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 나의 사역이 있습니다. 비록 직분자들이 교회 권징이 행해질 때 결정적인 권위를 가질지라도, 교회 권징은 직분들과 함께 시작되지 않습니다. 교회 권징은 우선적으로 교회 회원 전체의 책임입니다. 당회는 결코 교인들과 분리하여 일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교회 권징의 사역을 당회에게만 떠맡겨버린다면, 권징은 행해질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직분자들보다 더 개인적으로, 그의 생활 방식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가 첫 단계를 실행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연관된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경고들이 겸손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만일 교회 권징이 성도의 교제 안에서 실행되는 사랑의 행위라면, 이 말은 만일 어떤 사람이 내게 있는 어떤 죄에 대해 경고하러 온다면, 나는 겸손한 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의 믿음의 고백을 할 때, 또 세례를 받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막아주시기를 바라지만, 만일 그대가 교리나 행위에 있어서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그대는 교회의 훈계와 권징에 기꺼이 복종할 것을 약속하십니까?" 그때 나는 복종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이 질문과 약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내가 교리와 행위에 있어서 태만하지 않게 되리라는 가능성입니다. 다윗이 행한 일 즉 간음하고 살인한 것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한 일 즉 예수님을 부인한 일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가장 확실히 다윗이나 베드로가 범했던 동일한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도 거짓 교훈에 빠진 형제들이 있었다(딤전1:19이하)는 사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동일한 잘못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만일 교인 가운데서 한 형제나 혹은 한 자매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에게 경고한다면, 나는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찾아와서 경고하는 것으로 나는 들어야 합니다. 나는 분명히 내가 나의 형제 혹은 자매가 나에게 경고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내가 다윗과 베드로가 행했던 것처럼 행할 수 있다는 것이 굴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실재적이어야 하고, 나의 지속적인 죄악됨을 인정하고 나에게 경고하는 모든 사람의 말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의 권징의 목적
 
 첫째는 구원을 위한 최후의 노력입니다. 죄를 범하고 그 속에서 사는 것은 사단의 지배 아래 사는 것이고 멸망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를 교회가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면 가서 먼저 너와 그 사람이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권징은 성도들 상호간에 시작이 됩니다. 형제자매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 중에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권징도 항상 회중의 기도의 협력 속에서 시작이 됩니다.

 둘째 목적은 교회의 성결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죄는 누룩처럼 번지기 쉽습니다. 바울은 바로 고린도 교회가 죄가 있음에도 방치하는 것을 책망하면서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교회는 죄를 벌함으로 범죄자가 구원받게 할 뿐 아니라, 회중을 죄로부터 보호하여 교회의 성결을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성적인 문란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행위는 주의 교회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에 대한 이방인들의 멸시를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죄를 추방함으로 거룩을 지키며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은 출교입니다. 출교도 구원을 위한 최후의 노력입니다. 범죄자가 회개하지 않을 때는 출교를 행합니다. 하지만 이 출교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치유 수단이며, 범죄자를 영원히 파멸에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출교는 범죄자에게 주께서 정해주신 법대로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을 때, 최후의 영원한 정죄에 대한 경고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최후의 수단인 출교를 통해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때 교회는 거기서 풀어주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 권징이 사라져가고, 권징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권징은 본질적으로 교회 직분자들이 교회의 주이시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징은 단순히 말씀의 불순종자들에 대한 벌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장을 돕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성경과 우리 신앙 고백은 교회를 우리의 영적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교회로 말미암아 영적 양육을 받고 돌봄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권징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준비케 하시는 한 방편으로 그의 교회에 주신 하나의 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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