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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1-15 (일)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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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2020년 11월 15일 주일 오후 설교
성경 본문 : 고후 12:1-6; 고전 4:1-6
설교 본문 : 벨직 3,4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한순간에도 그냥 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있지 않는다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의 책장에 꽂혀있는 채로 홀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 말씀을 들을 사람을 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의 마음에 살아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패하여 신실하지 않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부패와 우리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유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완악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망각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대로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그럼에도 주의 백성들은 저주의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는 동안에도 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사실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으로 우리에게 있다고 해서 그냥 한 권의 책으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살아서 자기와 언약한 백성들의 마음에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계시가 아니라 자기 백성과 언약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성취가 있으며 성취에 따라 자기 백성들에게 복과 저주가 임하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살아있는 언약의 말씀이 어떻게 오늘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으로 있게 되었으며 그 말씀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였는지에 대해서 살피려고 합니다. 이 시간 저는 “ 하나님께서 기록해주신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다”는 주제로 교중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설교하려 합니다. 이 주제로 다음 두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의 관심을 기록한 말씀에 제한해야 한다.
 2. 우리의 관심을 기록한 말씀 전체에 두어야 한다.

 1. 우리의 관심을 기록한 말씀에 제한해야 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말씀을 전하는 일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들은 복음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동시에 그 말씀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기록한 말씀이 분실되기도 했고 기록한 말씀을 훼손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시대마다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특히 모세가 성경을 기록한 것이 기록된 성경으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모세의 기록에는 선지자가 있기 이전 시대를 살던 많은 조상들의 역사가 나옵니다. 창조에서 모세시대까지 있었던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떤 형식으로 보존해 오셨는지는 우리가 여러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기록이 시작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문명의 발달로 문자가 발명이 되고 기록할 수 있는 종이나 필기도구가 발명이 되면서부터 였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마도 사람들의 기억과 부모에게서 전해 듣는 반복되는 이야기에 의존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면서 어떤 사람은 좀더 정확하게 또 어떤 사람은 왜곡시키기도 했을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하신 말씀을 자녀들에게 보다 신실하게 전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셋의 자손들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교적 잘 보존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으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신 일들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다른 종교들의 기원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족장 시대가 끝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왕국을 가나안 땅에 세우려는 시점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기록하여 이 세상에 영감된 말씀을 두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모세오경을 완성하게 하신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 그동안 구전이나 여러 가지 기록들로 전승되어오던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를 통해 확정지어 기록하신 목적은 왕국 건설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경영을 알리시므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특히 기록된 말씀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침묵하십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 외에도 더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기록한 글들도 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중에서 일부를 성경으로 확정하여 주셨습니다. 기록된 성경을 주신 이유는 이 세상에 유일한 한 왕국, 신앙의 일치가 있는 한 백성들을 두시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친히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당시에 실제로 들었던 말씀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 가운데 오직 기록해놓으신 말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그것만을 기록하도록 감동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록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한 예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신 더 많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서신으로 기록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그중에서 일부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사도는 고후 12:1-6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후 12:1-6)

 여러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참으로 많은 환상과 계시를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그 경험이 자랑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고 말합니다.  사도는 자신이 자고한 마음을 품는 죄로 기울어진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교중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여기에 성령님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본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참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오직 자신만 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기록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목적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는 침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계시의 말씀 가운데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만 주목해야 합니다. 기록된 말씀에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다 계시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계시하신 기록 외에 더 많은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해놓으신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넘어가지 않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다고 성령님을 통해서 사도와 선지자들에게 감동하셨습니다.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하늘의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말씀은 절제된 말씀입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것만으로 제한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다 채워주려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만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침묵하는 부분에까지 우리의 궁금증을 발전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사를 따라 성경을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의 관심사를 따라가면서 성경을 따라 말하고 성경이 침묵할 때에 함께 침묵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호기심을 제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보다 훨씬 더 크십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을 성경에 제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말씀들 가운데서 오직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어떤 주장이 진실한 것일지라도 사도의 고백처럼 그만 두는 것이 바른 일입니다. 자신이 남다른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고하게 만들며 교만은 교회의 몸을 이루는데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나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성경이 계시한 보편진리를 모든 교회의 지체들이 다 함께 깨닫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누군지를 지적으로 접근하고 탐구하여 하나님에 대한 어떤 지식을 갖도록 하려고 주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순한 신학이론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구체적인 언약의 당사자들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허공에 대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서점에 많은 책이 있지만 그 저자가 구체적인 당사자에게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 책에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매일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하면서 살아가야 할 요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만 아니라 그 약속에 책임을 지는 언약 당사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 그들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언약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에 대해 어떻게 복을 주셨으며 동시에 불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형벌을 내리셨는지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책이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선한 일을 행하도록 양육하는 책입니다. 이를 위해 성경은 기록되어야 했습니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 반복할 수 있습니다. 매일 반복해서 들음으로 기억할 수 있고 삶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인쇄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당시에도 이 말씀을 문설주와 인방에 기록해야 했고 아주 간단한 쪽지에 요긴한 말씀을 적어 자신의 기억을 매일 날카롭게 해야 했습니다.

 이런 언약의 말씀을 기록하여 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만 아니라 우리에게 하신 말씀으로 믿습니다. 내가 성경으로 듣는 말씀과 동일한 말씀을 우리 모두가 듣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겸손히 한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약속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해야 하는지 똑같은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과 다른 말씀을 나의 형제들에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듣는 외에 다른 말씀을 우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기록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겸손히 기록된 말씀 안에 있고자 하는 지체들과 온전하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로소 일치가 있는 나라가 설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의 관심을 기록한 말씀 전체에 두어야 한다.

 기록한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은 기록한 말씀에 자신을 묶어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성경의 말씀에서 어느 한 부분만을 치우쳐 강조하고 다른 부분은 빼버리거나 소홀하게 여기는 것도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부패한 이성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의 마음에 좋아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한 말씀에 빨간 밑줄을 긋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건성으로 읽고 넘어가는 경우도 대단히 많습니다. 교회사에서도 하나님의 신성 가운데 죄를 극도로 미워하시고 그들을 지옥불로 태우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받아들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의 하나님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철학이나 논리를 따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편집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한편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정도는 아니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비록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마음과 눈길이 자꾸 한편으로만 기웁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의 주권에서 나오는 선택에 대한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택받은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고 지나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두 가지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누군가를 선택하셨다면 그것이 취소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선택받은 사람은 결코 버림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추론하기 시작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믿음을 버렸다면 애초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성경에서 시작했지만 거기에 사람의 생각이 더해졌습니다.

 그 결과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멸망한 사실을 교훈으로 삼기를 거절하게 됩니다. 어떤 이유든 그들이 멸망한 것은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성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면 필경 선택은 두 종류일 것이라고 추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는 내적인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선택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 사람은 기록된 말씀과 사람의 생각을 뒤섞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는 하나님의 엄중한 요구가 들어설 자리를 제거해버렸습니다. 비록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고 요구할지라도 사실상 선택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면 그 요구와 상관이 없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래서 율법의 요구를 사람의 편에서 자발적으로 감사해서 순종하는 것으로 바꾸어버리며 엄중한 요구이며 거룩한 의무라고 생각하기를 꺼려합니다. 바울 사도가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단지 우리 편에서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어쨌건 선택은 영원히 취소될 수 없다고 말해버립니다.

 이 사람은 성경에서 한 부분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성경이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속으로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36절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이런 주의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엡 1:4절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말씀을 내세우면서 선택은 이미 정해졌다. 그리고 한번 정하신 뜻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스스로 성경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논리에 맞도록 편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불편한 부분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합니다. 특히나 율법의 요구에 대해 거절하며 하나님의 저주나 위협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기록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우리의 생각에 서로 모순으로 여겨지는 경우일지라도 의심하지 않고 모든 말씀을 다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성경은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약속하신 저주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려하거나 작게 말합니다. 이 역시도 사람의 마음에 성향을 따른 것이며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히 받아들이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우리의 비뚤어진 성향 때문에 언약의 요구에 대해서 말하면 그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주권에 관한 다른 말씀과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진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기록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내용이 아닐지라도,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느 한 말씀이라도 빼거나 강조점을 마음대로 옮기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치우친 태도를 고집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언약의 요구를 율법주의로 보고 언약의 요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들 가운데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극히 일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일부를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다른 기록자들을 성령으로 감동시키셔서 기록으로 남기게 하셨습니다. 이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성경입니다. 소위 성경이라고 하는 것들 가운데는 외경도 있습니다. 외경도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만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균형있게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벨직 4항에는 66권을 일일이 열거해두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기 66권의 이름을 기억해두고 또 그 내용을 익숙하게 익혀두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66권 가운데 단 한 권도 덜 중요한 말씀으로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이므로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믿음을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생활 전체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어떤 요구는 고향을 떠나도록 하기도 했고 어떤 요구는 100년이 넘도록 배를 만들어야 했고 어떤 요구는 생명을 바쳐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전쟁에 참전해야 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계속됩니다.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돈을 합당하게 사용하는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가? 등등

 이런 요구는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에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매일 그 기록된 말씀을 펼쳐야 합니다. 또한 그 말씀의 설교를 잘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과 함께 설교자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기록된 말씀에만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또한 기록된 말씀에만 착념해야 한다는 말은 그 말씀 가운데 단 하나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사람의 이성의 판단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게 되면 역사적인 많은 이단의 길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성을 언제나 기록된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말할 때에 고의적으로 그 말씀을 다른 말씀과 충돌하도록 남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겸손히 우리가 무지함을 인정하고 샛별이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벧후 1:19)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록된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을 것입니다. 기록된 모든 말씀으로 계시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은혜로운 일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진리로 인도를 받으며 참된 믿음과 영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으로 이미 영생을 얻었음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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