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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0-18 (일)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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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잔치에 초청하시는 예수님!
큰 잔치에 초청하시는 예수님!
2020년 10월 18일 주일 오후 설교
성경읽기 : 눅14:1-14, 사25:6-9,
설교본문 : 눅14:15-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회중 여러분!
 오늘 우리는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특별히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또 잔치는 포로에서의 돌아옴에 대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공사역 기간 중에도 큰 잔치를 배설하고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된 사람을 초청하였는데 모두 거절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전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하나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시고, 종들에게 명령하기를 길과 산울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전의 초청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외부의 새로운 사람들이 이 큰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게 될 것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잔치에 초청하십니다. 우리는 이 초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곧 초청의 문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이시간 저는 “예수님께서 큰 잔치를 배설하사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셨다.”는 주제로 설교를 하려합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준비된 큰 잔치
 둘째, 초청을 거절한 손님들
 셋째, 초청을 받은 외부인들입니다.

 첫째, 주께서 배설한 큰 잔치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경은 자주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와 주의 백성의 영원한 기쁨을 잔치 혹은 절기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잔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서 미리 맛보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구약 성경에 이런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 주일 우리가 기념하는 성찬상을 나타내는 시23편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셨다.” 여러분, 야웨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원수의 눈앞에서 풍성한 잔칫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구약의 희생제사를 또 봅시다. 교제의 제사를 드리고 난 후, 예배자들이 하나님 앞에 둘러앉아서 교제의 식사를 나눕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메시야 예수와 함께 즐기게 될 최종적이고, 영원한 잔치를 미리 보여줍니다. 희생을 통해 얻게 된 화평의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며 즐김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서 미리 맛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이사야 25장 6-9절도 이 잔치에 대해 말해줍니다. 특히 이사야의 잔치에서 강조되는 것은 이 잔치의 대상입니다. 이 잔치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잔치입니다.

 사25장 6절은 만군의 야웨께서 만민을 위하여 풍성한 잔치를 베풀 것을 말합니다. 또 7절에서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눈멀게 했던 그 덮개를 제거할 것이라, 그 천을 걷어 내실 것이라 말합니다. 9절에 그날에 이방인들이 말하길,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야웨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성도 여러분!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든 자들이, 야웨께서 부르시고 모으시는 땅의 모든 족속들이 이 큰 잔치에 참여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분명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신구약 중간기 시대 동안 잊어졌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동안 많은 유대인 문헌들이 종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방인들을 위한 여지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에녹서’에 보면 인자가 돌아와서 이방인들을 파멸시키고 모든 유대인들을 초청하여 인자와 함께 영원히 먹고 마시게 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 문헌들의 공통점은 이방인들의 제외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극단적인 것도 있습니다. 엘리트주의 유대인들의 저서를 보면 이방인들이 제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가난한 유대인들, 앉은뱅이나 소경까지도 제외되어 있습니다. 그런 책에서는 마지막 날에 메시야께서 유대인들 가운데 지혜롭고 학식이 있고 완전한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당신과 함께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것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책에는 이방인들뿐 아니라 불완전한 유대인들까지도 제외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이해를 가지고 눅14장을 봅시다. 누가복음 14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의 한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 계시는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과 함께 먹고 계셨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집에서 고창병으로 고생하는 한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12-14절입니다. “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본문을 사용하셔서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적실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보다 더 못한 사람을 환대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중심적 삶을 삽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기 친구, 자기 영역 안에서만 바쁘게 삽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외로운 사람들, 홀로 사는 사람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초청하고 만나고 환대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함께 먹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이 말씀, 즉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그가 어떤 의도로 이 말을 하였을까요? 이 사람은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예수께서 너희 완전하고 흠 없는 자들만 마지막 날에 큰 잔치에 참여하여 먹을 것이라고 말해 줄 것을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기대와 달리, 우리 주님께서는 잔치에 관한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설교본문입니다.

 16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여러분! 이 잔치는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는 큰 잔치입니다. 잔치할 시간에 잔치를 배설한 사람은 그 청했던 자들에게 자기 종들을 보내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이 종들은 손님들을 청하러 간 것이 아니라 이미 초청을 받아서 오겠다고 한 사람들에게 알리러 갔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잔치가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이해를 위해 유대인들의 잔치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열려고 할 때, 그는 먼저 자기 종들을 보내어 초청을 하여 그들이 올 것인지를 확정합니다. 그래서 이 초청은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주인이 손님들에게 제공할 음식의 양과 종류를 미리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음식의 양과 종류는 초청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4명의 손님을 초청할 때와 500명의 손님을 초청할 때의 음식의 종류와 양은 다를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음식의 종류와 양은 초청을 받아들인 사람의 숫자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관습과 전통입니다. 일단 잔치가 시작되면, 그 잔치는 멈출 수 없습니다. 적당한 동물들을 이미 잡아 놓았고, 음식을 장만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청을 받아들인 손님들은 반드시 초청받은 날과 시간에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인이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잔치를 시작할 시간에 손님들은 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첫 번째 초청에 응한 손님들은 잔치가 시작할 시간에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려고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잔치를 함은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되었다. 새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구원의 날이 이르렀다. 구원의 날이 메시야 예수 안에서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고 새 언약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이 잔치에 대해 말하길,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하고, 이스라엘에 신랑이 온 것을 축하할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큰 잔치의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초청 받은 손님들이 예수님 당대의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구약 전체가 이들에 대한 초청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잔치를 즐기기 위해서 함께 모이라고 초청합니다. 이미 초청받은 유대인들을 지금 잔치의 때가 되매 종들을 보내서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본문의 상황은 갑자기 놀라운 상황으로 바뀝니다. 두 번째 요점입니다.

 둘째, 초청받았던 손님들이 초청을 거절하다.

 여러분! 초청받았던 자들은 거의 모두 비슷하게 어떤 이유로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큰 잔치에 참석하기로 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거절하는 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지 아주 좋지 못한 행동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도 그렇고,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행동은 아주 실례가 되는 행동이며, 주인을 공개적으로 욕보이는 행동입니다.

 모든 일이 이미 진행되었습니다. 청하였던 사람들은 받아들였고, 동물들을 잡아서 고기가 요리되었고, 이미 초청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에 용서하라. 미안하다. 이미 받아들인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거절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은 소위 부동산 전문가입니다.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분명히 거짓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고대근동에서 어떤 사람도 밭에 대해서 훤히 잘 알지 않고는 그 밭을 사지 않습니다. 샘, 우물, 돌, 벽, 나무, 길, 예상 강우량, 지난해 소출 이 모든 것들은 받을 사기 위해 말하기 전에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농부가 나는 밭을 샀으니 지금 보러 나가야 된다고 말하면서 식사 약속을 거절하거나 내가 집을 샀으니 지금 보러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 당대의 이스라엘에서 아마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명백하게 거짓 변명을 하면서 주인을 고의적으로 모욕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약간의 예의도 보이지 않으면서 예의 바른 척하면서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라고 말합니다.

 다음 사람은 농사 전문가입니다. 그 사람도 변명을 합니다.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여러분! 이 말 역시도 허튼 소리이고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입니다. 농부는 제 정신으로 먼저 시험해 보지도 않고 소 다섯 겨리를 살 리가 없습니다. ‘겨리’는 소 두 마리가 끄는 큰 쟁기입니다. 그러니까 소 다섯 쌍 곧 10마리 소를 사는데 시험도 안 해 보고 샀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만일 겨리 소가 함께 한 팀으로서 제대로 쟁기를 끌지 못한다면, 그 소들은 쓸모없이 될 것입니다. 소들을 보는 사람은 그 소들이 강하게 그리고 고루 밭을 잘 가는지 먼저 시험해 볼 것입니다. 그 후 맘에 들면 비로소 값을 흥정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농부는 소 다섯 겨리를 산 후에 그 소들을 시험해 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그저 변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농부의 처서 또한 초청한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첫 번째 사람이 초청한 주인보다 당의 한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한 것처럼 이 사람도 소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례한 행위를 하면서도 그는 예의바르게 변명하려고 합니다.

 이제 세 번째 손님의 반응입니다. 그는 아주 단순하게 말합니다.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이 사람은 첫 번째, 두 번째 손님이 한 것처럼 예의바르게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나는 갈 수 없다고 말해 버립니다. 그는 초청을 받아들이고 잔치에 가기로 했는데 이제 거절해 버립니다. 나는 바쁘다. 나와 내 아내는 바빠서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어설픈 변명입니다. 누가 잔치에 강제로 오라고 했습니까? 자기 스스로 오겠다고 약속해 놓고 음식장만 다 해 놓고 준비를 하고 부르니까 이제 와서 장가를 들어서 못 간다고 하는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뻔한 변명을 합니다. 잔치는 늦은 오후부터 시작되니까 저녁시간에 신부와 단둘이 있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그 당대의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유대인 지도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 종류의 사람들과 세 종류의 변명은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유대 공동체의 지도자들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떡을 먹기를 구하는 자들은 주 예수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를 따르고 주 예수께 가르침을 받는 대신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변명거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 예수는 죄인들과 함께 먹는다. 예수는 그들의 엄격한 안식일 규정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어쨌든 예수는 메시야의 기대를 성취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큰 잔치를 거절한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변명하면서 영생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 세 부류의 사람들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하심 이후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변명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큰 잔치를 거부하고 영생을 아무렇게나 여깁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구원의 큰 잔치의 초청에 계속적으로 응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도 갖가지 변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일로 너무 바빠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설교의 세 번째 요점입니다.

 셋째, 초청받은 외부인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들은 가서 주인에게 초청받았던 사람들의 거절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노하여 그 종에게 말합니다. “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여러분, 우리는 엄청나게 모욕을 당한 주인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초청을 거주한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러나 집주인은 은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도성의 버림받은 자들에게로 눈을 돌립니다. 가난한 자들과 지체장애자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도성에 있는 죄인들이고, 유대인들 가운데서 소외당하고 사회적 낙오자 취급당하던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실제적인 역전을 봅니다. 언약적 역전현상입니다. 원래 초청받은 자들은 부자들이었습니다. 밭을 살 수 있고, 소 다섯 겨리를 한꺼번에 살 수 있고, 또 장가들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들은 잔치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주인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에게로 눈을 돌립니다. 언약 백성이라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거부함으로 버림을 당하고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초청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집주인은 천대받고 버림받은 자들이 준비된 잔치에 초청받기를 원했습니다. 원래 초청받은 사람들은 집주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받아서 그들과 함께 먹는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죄인들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을 죄인들이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눅15:1,2절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올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면서 말합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몰았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들, 지체장애자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이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초청에 응했습니다. 그들이 잔치에 참여했지만 여전히 자리가 있습니다. 잔치에 아직 빈 자리가 있습니다. 이제 주인은 종들에게 말합니다.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여러분, 종들은 이제 그 도성을 넘어서서 가야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당했던 사람들은 그 도성에서부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유대인공동체의 낮은 자들이요, 소자들입니다. 또 다른 일단의 사람들이 길과 산울가 너머에서 도성안으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외부인이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언약 백성 가운데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보내십니다. 이사야 25장의 약속이 비로소 성취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잔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전해진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질 것입니다.  

 종들은 길과 산울 가 즉 도성 외부로부터 사람들을 강권하여 잔치에 참여하러 오도록 했습니다. 이 초청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초청받은 나그네들은 대로를 따라 이동을 해야 합니다. 종들은 각기 만난 외부인들에게 이같이 말합니다. “ 여러분들이여, 당신들은 나와 함께 나의 주인의 잔치에 가자. 도성으로 가자. 잔치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자.” 여러분, 그때 이방인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당신은 아마 착각했거나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아마 그 잔치는 나를 위하여 준비된 것이 아닐 것이다. 당신의 초청은 감사하지만 나는 여행을 계속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그 잔치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도를 할 때, 누가 반응합니까? 부유한 자들과 유명한 자들은 복음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물론 때때로 반응할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잘 반응하지 않습니다. 소위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은 복음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급 주택에 살고 부유한 사람들이 교회로 오는 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부유하고 잘난 사람들은 복음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복음없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홀로 있고 외로운 사람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은 거절하였지만, 길과 산울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엇인가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들었을 때 긍정적으로 반응함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인은 자기 종들이 대로와 산울에서 그런 충격과 놀라운 일을 만나게 될 것을 아시기에 종들에게 명하길, “나가서 데려오라.” 말씀합니다. 은혜는 참으로 놀랍고 신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어린양 혼인잔치에 초청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 잔치 자리에 오도록 강요합니다. 이에 우리는 저항하지 않고 잔치 자라에 참석했습니다.

 비유에서 집주인이 말하는 것처럼 집이 채워져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잔치집은 채워져야 합니다. 잔치집의 식탁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경고로 이 비유를 끝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여기에서 “너희”라는 단어는 복수입니다. 이 말은 비유에서 주인이 더 이상 종들에게만 말하지 않고 이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 주님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적용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만일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면, 오래 전에 초청되었던 너희들은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는 경고를 들어야 한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이 잔치를 어린양 혼인잔치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 경고는 이 비유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경고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순종함 없이도 잘먹고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경고입니다. 이 경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변명을 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잔치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잔치에서 스스로 자신을 배제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염려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 없이도 잘 해 나갈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은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초청에 반응하십시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반응하십시오. 그 반응을 지키십시오. 잔치에 참여하도록 자신을 강요하십시오. 저항하지 마십시오. 초청에 응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뻔하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 마십시오.

 잔치는 영원히 열려있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잔치의 자리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초청이 끝날 날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반응하십시오. 오늘 회개하고 믿으십시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요받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잔치상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집에 여러분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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