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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3-15 (일)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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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제 1계명)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제 1계명)
2020년 3월 15일 제 34주일 교리문답설교
성경읽기 : 출20:2-3
설교본문 : HC 34주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래전 교회는 ‘믿음이냐?“ ”순종이냐?’, ‘복음이냐?’ ‘율법이냐?’로 논쟁해 왔습니다. 주의 말씀은 둘 다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마치 충돌하는 요구로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약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과 그분의 요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순종은 결코 대립되거나 충돌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교리문답의 제 3부, 십계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받고자하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많습니다.

 교리문답의 제 3부는, 1부에서 비참을, 그리고 2부에서 구속을 깨달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자의 삶의 구체적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감사’입니다. 이 감사의 삶에 대해 앞서 살펴본 요일5장 3절 말씀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께 구속의 감사함을 드리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그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믿음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묘한 반감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게 되었을 때, 혹은 회심하여 새롭게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가 묵상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도덕적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라는 개념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영적 생활’과 우리의 ‘사회 생활’이 별개의 것으로 다루어지는 때가 많습니다. 기도하고 말씀 읽고 전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유익한 행동들”로 인정되고 권장되지만 빛의 자녀로 세상에서 착한 행실을 할 것을 권면하면 “행위구원론자로” 의심하든지, 아님 개인적 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반적인 양상들 속에서는 한 사람이 믿고 회심하게 되었을 때 그가 얼마나 ‘종교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만 살피지, 그가 얼마나 행실에 있어 더 훌륭한 삶의 변화를 보였느냐? 하는 점은 간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반성경적이며, 반역사적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회심과 구원, 그리고 그에 따르는 신자의 삶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교회 역사 안에서도 항상 교회는 새롭게 된 신자가 삶에서 바른 행위를 보이는 것 자체에 대해 많은 강조점을 두어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우리가 방금 들은 이 요한일서의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신자는 육을 입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의 믿음이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이 가르치고 있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행위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문답이, 구원받은 신자가 살아야 할 삶에 대한 지침으로 ‘십계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복음주의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구속받은 사람에게 율법적 행위는 필요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였으므로 행위적인 요구 같은 것이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거꾸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우리는 결코 행위 폐기론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만 묵상하고 있는 사람은 신자가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은 용감히 세상의 삶을 향해 발걸음을 딛는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는 명령입니다. 쉽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상숭배 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십계명을 설명하면서, “성경에 표현된 명령과 금지에는 말로 표현된 것 이상의 것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명령하셨을 때에는 그 안에는 항상 문자적으로 그 문장이 말하는 내용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명령 안에는 단순히 육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잘 대하라는 명령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속에서 질서상 상위에 있는 사람들, 즉 더 위에 있는 자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보내야 한다는 포괄적인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칼빈은 그래서 성경의 명령과 금지를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첫째는 그 명령과 금지가 가르치고 있는 원 내용입니다. 명령의 경우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이고, 금지의 경우에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그 명령을 주셨을 때의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간파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더 확장된 방식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앞의 것을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적극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떠어떠한 것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면, 그 하지 말라고 명령된 것만 하지 않는 것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측면에서, 즉 그 하지 말라의 반대편에 있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측면까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씀했을 때에는 단순히 살인을 행하지 않는 것만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신 이유인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소극적인 면뿐 아니라 더 적극적인 면, 우리가 더 능동적으로 행해야 할 무언가까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단순히 살인을 하지 않는 것만 제 6계명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미워하거나 욕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서는 세상의 복지제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까지 6계명의 의도 안에 포함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은 이렇게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외형’만 읽었기 때문에 그 본의를 실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율법을 실천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그 진의를 들여다보는 대신에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걸음 수와 들고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의 kg 한계, 그리고 안식일에 해서는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했기 때문에 계명을 준행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우상숭배’를 금하는 계명을 읽을 때에도 단순히 우상숭배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리문답 94문은 그래서 우상숭배를 칼빈의 방식처럼 더 포괄적으로 정의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온갖 우상 숭배, 마술, 점치는 일, 미신,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분만을 신뢰하는 것”, “모든 겸손과 인내로 그분께만 복종하고, 모든 좋은 것을 그분께만 기대하고,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까지를 일 계명이 정의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실로 이 정의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관련된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을 포함합니다.

우르시누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1)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무지  2) 하나님에 대한 오류 또는 그릇된 관념들 3) 마술, 점술, 주술 4) 미신 5) 피조물에 대한 신뢰 6) 우상숭배 7) 하나님을 멸시함입니다.

 우리는 이 십계명의 첫 번째 조항이 매우 다양한 내용들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집에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것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 속에서 수없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함께 포함됩니다. “우리가 피조물에 대해 지나친 신뢰를 가지는 것”도 일 계명을 어기는 것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자면, 신자가 과학자일 때 과학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해서 무지한 것”조차도 일 계명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무지한 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알라’고 명령하신 것이 성경말씀 이라면” 부지런히 그 일을 행치 않은 것 역시 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그저 아무렇게나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일 계명에 대한 위배인  것입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마술, 점술, 주술들과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미신들은 일 계명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서도 이사할 때 길일을 택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결혼할 때 궁합을 보거나,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거나, 신문의 오늘의 운세(젊은이들은 타로 점 같은 것)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일 계명을 무시하는 것들입니다.

 즉 교리문답이 정리하고 있는 성경에서의 우상숭배란, 교리문답 95문 말씀대로 “우상 숭배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대신 혹은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어떤 것을 신뢰하거나 고안하여 소유하는 것입니다” 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에서 두 구절에 주의합시다. 첫째는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란 구절이고, 둘째는 “하나님 대신 혹은 하나님과 나란히”라는 구절입니다. 이 두 구절에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명령의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먼저 둘째의 내용인, 우상숭배가 “하나님 대신 혹은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어떤 것을 둔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를 살피는 데에 좋은 지침을 주는 것이 출애굽기 20장의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라는 구절의 정확한 이해입니다. 한글성경이 ‘나 외에는’이라고 번역한 부분의 정확한 번역은 ‘나의 앞에서’입니다. 이 점을 주의합시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다른 신’을 만들 때 행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문장 전체의 정확한 번역은 “너는 있게 말라 다른 신들을 나의 면전에”입니다. 즉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본문이 규정하고 있는 우상숭배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종교적인 삶이든, 일상의 삶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목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라면 더더욱, 그 결정은 “하나님의 면전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은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두 신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는 상황, 즉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잘 기억합시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벌어지는 반역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불꽃같은 눈빛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일 계명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교리문답은 이 대답을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방법” 즉,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정의해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이 십계명 전체의 서문이 되는 출애굽기 20장 2절 말씀이 제공합니다.

 2절의 말씀은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것은 우리가 “구속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해 주신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열 가지 계명을 가르치시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어떤 분으로 계시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많고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기술하려면 전 우주를 종이와 잉크로 가득 채워도 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신 만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려면 내 계명을 지켜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계명의 첫머리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의 하나님 야웨다”라고 쓰셨습니다. 그분께서 불리기를 원하신 방식대로 우리는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이러한 방식으로 나를 섬겨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숭배하지 않고 우리를 죄의 땅 애굽으로부터 탈출시켜 주신 “구속자‘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듣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친히 계시하시길, “나는 구속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려 할 때, 항상 이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까? 왜 성경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덕적 행적을 모아놓은 선한 행위의 지침서가 아닙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그렇게 계시하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삶에서, 사사들과 사무엘의 삶에서, 사울과 다윗의 삶에서 우리의 삶에 적절한 도덕적 표본을 찾거나, 인생의 묘미가 되는 지혜를 찾거나, 마음의 쓴 뿌리를 해독시키는 치유방법을 찾거나,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사람의 행적과 글과 말과 행동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성경의 말씀 속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발견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숭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시하신 대로 성경을 읽고, 계시된 야웨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 계명을 지키는 방법이며, 계명을 따라 사는 첫 번째 계단입니다.

 오늘 우리는 언약의 열 가지 말씀들 중 첫 번째 발걸음을 뗐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의 감사의 방편임을 늘 잊지 맙시다. 그리고 늘 스스로의 생각과 기준과 관점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우상숭배’의 길을 걷지 않는지 살피고, 구속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을 위해 계명을 순종하는 일에 믿음을 사용하면서 참으로 주와 교회를 사랑함을 증거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나타내는 신실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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