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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4-05-19 (일)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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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보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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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 주일 오후 설교
설교 본문: 요한복음 14:12-31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14:1-11 말씀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앞서 했던 설교를 잠시 정리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집(성전)을 준비하셨습니다(3절). 이 집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언약의 교제를 나누기 위함인데, 이 집은 일차적으로 예수님 당신이고(요2:21), 또한 그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우리 교회입니다.(엡1:23).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도 예수님 당신이라고 하셨습니다(6절). 예수님은 아버지를 온전히 계시하시는 진리이시고, 또 그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설교본문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는 당신이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2절). 그리고 덧붙혀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을 구하든지 당신이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13-14절).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오해하여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큰 기적과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의 흐름을 통해 볼 때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일을 하셨듯이(10절)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아버지와 하나가 된 우리도 아버지의 일을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아버지의 일을 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15절, 21절).

 그리고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께 구하실 것이고, 아버지는 그의 요청을 수락하여 우리에게 보혜사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16, 26절). 그래서 오늘 설교는 이 보혜사가 누구며,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왜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께 구하셨나?

 16절을 봅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에서 "보혜사"라는 말은 여기서 처음 나오는 말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성령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실 이 말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헬라어로는 [파라클래토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돕는 자, 변호자, 위로자, 상담자, 교사 등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 한글번역성경은 "보혜사(保惠師)"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보혜사를 우리말 그대로 풀어보면, 성령님은 우리 신자들을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뜻이 영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문에 비추어 볼 때 미흡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6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제자들을 위하여 다른 보혜사를 구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보혜사가 어떤 일을 하는 분인지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17절 끝에는 보혜사가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고, 또 제자들 속에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께 구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죽기 전에 아버지께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요청를 들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바로 마지막 오순절 날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후 50일 후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오신 성령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오셨습니다. 무릇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는 이미 보혜사께서 그 사람과 함께 거하시며,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줄 믿기를 바랍니다(16-17절). 이렇게 보혜사 성령님이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오셨으므로, 예수님도 우리에게 오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결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고아처럼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멀리 떠나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다 준비하신 예수님은 다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당신께로 영접하신 것입니다(3절). 그러니 우리는 아버지의 집에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우리 곁에 없는 줄 알고 근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주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27절).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평화입니다. 세상은 부족한 것이 다 채워져야 근심이 사라지고 평화가 오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없더라도 예수님이 계시고, 보혜사가 계심으로 우리 마음은 평화가 넘치는 것입니다.

 2. 보혜사는 어떤 분이신가?
-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시는 진리의 영이시다.

 15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21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나를 나타내리라. 여러분, 21절 마지막 구절 "나를 나타내리라"는 말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은 모세가 하나님께 그의 영광을 자기에게 보여달라고 할 때 사용했던 말입니다(출33:13, 18).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밑에 있었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겠다고 하실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백성을 다시 주의 백성으로 여겨달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도 친히 이 백성과 함께 가실 것을 기도했습니다(13절).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가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14절). 그런데, 모세는 거기서 그만두지 않고 주의 영광까지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18절).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달라고 한 것인데, 비록 하나님께서는 그의 등만 보여주셨지만 모세의 요청에 응답하셨습니다(19-23절).

 나를 사랑하는 자 곧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저 모세처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등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다시 21절을 읽어봅시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데, 누구에게 나타내십니까? 예수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계명에 순종하는 것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24절).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 다시 말해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그런 사람들과는 거처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에게 내리시는 언약적인 심판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보혜사를 아버지께 구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15-16절).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계명을 잘 지킬 수 있도록 그들을 돕기 위하여 예수님은 아버지께 보혜사를 보내주시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그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17절). 왜 보혜사를 진리의 영이라고 하십니까? 원래 진리는 예수님 당신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6절). 그 말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증거하신다는 뜻입니다(7-11절). 이와같이 보혜사 성령님이 진리의 영이라는 말도 예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로서 아버지를 잘 나타내셨듯이 보혜사도 진리의 영으로서 예수님을 잘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보혜사 성령님은 어떻게 예수님을 잘 증거하십니까?

 26절을 보십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잠시 15:26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또 16:13-14을 보겠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

 보혜사 성령님은 절대로 예수님과 무관하게 일하지 않으십니다. 자의(自意)로, 당신의 생각대로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듣는 것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의 영광만이 우리에게 나타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보혜사를 가리켜 진리의 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은 이미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함께 계시고, 또 우리 교회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가르침을 잘 받아서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계명을 잘 지키므로 하나님과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서, 그의 영광을 맛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우리가 지켜야 할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예수님의 계명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라고 하셨고, 21절에서는 "나의 계명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21절). 또 23절에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계명이란 무엇입니까? 13:34을 봅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 주 예수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계명 -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 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고백이 진정한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진리가 그 사람 안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요일2: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우리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사랑하는데, 우리 형제들은 덜 사랑한다는 말은 모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 열심히 하고, 헌금하고 소위 교회 일을 위해서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웃에게 거짓말하고, 속이고, 악의를 품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까? 다시 13:34절을 봅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또 15:12을 봅시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여러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기준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입니까? 15:13-14을 봅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 주시면서 당신은 친구인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버려 주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이렇게 예수님이 하신 대로 서로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어렵게 느껴지십니까? 요일5:3에 보면, 사도 요한은 이것이 결코 무거운 계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요일5:4). 우리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라면 다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된 이것은 결코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요1:12-13).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이길 능력이 있습니다. 옛 사람을 이길 능력을 주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옛 사람은 결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친구의 목숨을 죽이고서 자기는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계명을 순종할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요일5:4).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로 났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증거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24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요일3:14에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이 진리를 잘 깨달아 알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예수 신앙이 결코 성경과 무관하고 아주 엉뚱한 개인주의 신앙, 기복주의 신앙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영생 얻는다는 이 복음은 결코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에 가는 차원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고, 그가 우리를 위하여 구속의 일을 하시고, 부활 승천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를 아버지의 집에 거하게 하신 이 진리가 도데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잘 깨달아 알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을 정리해 보면,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의 집(처소)을 준비하셨는데, 아버지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거하심으로 우리들을 아버지의 집에 거하게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보혜사 성령은 제자들이 항상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신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아버지의 집에 계속 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 곧 아버지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모세 율법,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율법/성령의 율법을 통하여 우리는 이 사랑의 계명을 삶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 안에 당신을 나타내심을 보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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