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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3-12-03 (일)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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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교리를 가르치는 목적
선택교리를 가르치는 목적
2023년 12월 3일 주일 오후 교리설교
성경 봉독 : 신 7:1-11
설교 본문 : 도르트신경 Ⅰ-14



 창세기를 배워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마치 미리 잘 계획되어 있고 설계도가 잘 그려져 있는 건축물을 세우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족장들을 세우신 것은 단지 역사상에 위대한 어떤 사람들을 여기저기 드문드문 세워 놓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신정 왕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구속사적 단계 아래에서 차근차근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를 구현하시기 위하여 백성들, 곧 신민이 필요하셨고, 또 그들이 구성되었을 때 영토, 곧 땅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세우셔서 큰 민족에 대한 언약과 땅에 대한 언약을 주셨는데, 이것을 아브라함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 가면서 서서히 이루어 가셨습니다. 요셉이 창세기의 마지막 족장으로서 하는 일은 큰 민족의 마지막 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선택 교리의 두 가지 목적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이러한 세계를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는 조금씩 성숙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때에는 그저 내 복이 어떻고, 내 건강이 어떻고, 일신상의 사업이나 재물운이 어떻고 하는 기복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배워 가고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하나님의 뜻의 기이함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그분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고, 또 그 뜻을 깨달을수록 감탄하고 놀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 이해에서 가장 핵심에 위치해야 하는 가치관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일관된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 뜻을 위하여 계획하시고 일하십니다. 그분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뜻, 이루시려고 하시는 방향을 정확하게 가지고서 일하십니다. 따라서 신자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목적의 방향을 잘 알아서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삶을 말합니다.

 도르트 신조 첫째 교리의 '선택'이라는 주제를 이와 같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셨고 또 그 선택을 알려주셨습니다. 선택을 하신 것에도 목적이 있고 선택하신 것을 알려주신 것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왜 선택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선택을 통해서 무엇을 도모하셨나요? 목적이 무엇입니까?

 방금 말씀드린 창세기의 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창세기의 시절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언약을 주시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택에서는 어떨까요? 이 선택을 숨겨 놓지 않으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도모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14조는 선택의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에 영광이 되고,
그분의 백성에게는 살아 있는 위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대답은 “선택 교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왔습니다. 그 대답이 두 가지로 정리되었습니다. 선택교리는 첫째,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둘째, 그분의 백성에게 살아 있는 위로가 됩니다.

 선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우리의 위로'라고 하니 어떤 분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는 분도 계시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이 대답은 매우 ‘그저 그런'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물으면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면 “그래, 뭐 익숙한 이야기야.”라고 할 수 있어도, 사실은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지는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 주제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좀 더 섬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신명기 7장의 말씀에서 선포된 선택의 이유와 목적

 먼저 살필 본문은 신명기 7장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장부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7장 5절까지가 되고 6절부터는 왜 너희가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와 목적을 알려 주십니다. 이 부분을 주목하도록 합시다.

6절: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6절과 7절에서 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6절에 “택하셨다”라는 말씀이 있고 7절에도 "택하셨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선택’에 사용된 단어이고(히, 바카르) 따라서 6절과 7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에서 6절은 “왜냐하면 무엇무엇 때문이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말에는 “왜냐하면"이 번역이 되지 않았지만 원래 6절의 시작은 "너는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합니다.

 “왜냐하면”이 들어간 이유는 그 앞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단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야 한다."라고 5절에서 말했는데, 그 이유가 6절에서 설명된 것입니다.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5절 : 단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며 목상을 찍어라.
6절: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즉 이 첫 구절은 그들이 행하는 '일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왜 이방 신들을 몰아내야 하느냐?”라고 물을 때, 그 이유는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문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읽어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6절의 시작 부분, “왜냐하면 너는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에는 전치사가 붙어서 “여호와에게" 혹은 “여호와를 위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째, 다음 부분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셨다.”라고 선택이 나오는 부분인데,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다시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부분은 우리말로는 의미가 명확히 잘 안 드러나는데, 원문에는 “자기에게”라는 말과 “되도록”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즉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셨다.”를 정확하게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실 때 “자기에게” 기업의 백성이 “되도록”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요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하나님 자신 위주로' 말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선택의 요점',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에는 '백성인 우리를 위하여'라는 측면도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이 선택이 '하나님께 무언가가 되도록', 곧 하나님께 의미가 있으시도록 선택을 한 것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의미를 조금 더 밀도 있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움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어떠함'이 정체성이 아니고 '하나님의’ 어떠한 이들이 되었다는 데에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삶의 가치와 살아가는 이유 같은 것은 우리 스스로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 '하나님을 통해 가치 부여를 받도록' 그렇게 선택된 것입니다. 선택된 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냐? 나에게만 의미 있던 삶을 살던 것에서 하나님께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나는 나인 채로 있긴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가치 판단이 "나를 위한”에서 “하나님을 위한”으로 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는 것임을 이 신명기 7장 6절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택의 목적
 6절을 이렇게 이해하고 읽을 때, 7절의 의미가 훨씬 더 강력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7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강하고, 힘이 세고,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우리말 번역(개역한글)으로는 “수효가 많은”이라고 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숫자가 많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강함', ‘풍부함’, ‘큼’ 모두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너희를 택하심은 …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의 보다 정확한 뜻은 '너희는 크지 않다', '너희는 강하지 않다', '너희는 풍부하고 여유롭지 않다' 이런 의미입니다.

 7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왜 선택하셨다고 말합니까? 작고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왜 여호와께서는 작기 때문에 그들을 기뻐하셨고, 왜 이스라엘이 대단하고 위대한 민족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입니까?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둘째, 선택의 독점적 지위 : 우리의 영광

 둘째 주제를 위해서는 구약에서 '선택'이라는 말이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된 본문 둘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신명기 16장 6절입니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_신 16:6

신명기에 비슷한 몇몇 구절이 더 있는데 한 군데만 더 읽어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_신 26:2

 이 말씀들은 (신명기의 시점에서) 장차 지어지게 될 성전을 위한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지정하신 한 위치’를 말씀하셨다는 것에 주목합시다. 신명기 16장과 26장 모두에서 그 장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은 성경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성전이 있어야 할 위치'를 말하는 보편적인 표현입니다. 신명기의 이 표현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언약궤가 있었던 임시 성전의 처소로부터 나중에 솔로몬이 짓게 되는 진짜 성전의 처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정착했을 때 매년 세 차례씩 하나님께 나아와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또 연중 소산을 가져가서 하나님께 바치고 즐거워 할 특정한 장소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 성경은 “선택하다"라는 말을 자기 백성들에게만 쓰셨을 뿐 아니라 '거룩한 성전'이 있는 장소, 곧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구별하신 장소를 말씀하실 때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안에서도 아무 곳에나 계시지 않고 독점적 처소, 곧 성전이 있는 곳에만 특별히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삶의 중심, 예배의 중심, 절기의 중심, 신앙생활의 모든 중심을 여기 성전에 두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이 성전 쪽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했고, 범죄 했을 때 이곳을 향하여 간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둘째 구절, 똑같이 “선택하다"라는 말이 사용된 다른 본문을 봅시다. 열왕기상 8장 16절 말씀입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왕상 8:16

 여기 “택하다”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이 "택하다"라는 말을 중심으로 읽어 보면 이 말씀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였다”.

 열왕기상 8장 16절 말씀은 대단히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 시대 때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거하실 처소’를 '성읍'이나 '건물'에 두신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거하실 처소를 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을 '성막'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성막은 '이동식 처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이동식 처소'만 허락하시고 '고정 처소'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단지 그들이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런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사실은 구속 역사에서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고정 처소’를 갖게 될 때가 옵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 아직까지는 약속의 땅을 갖지 못한 '약속의 것을 얻기 위하여 전투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처소도 전쟁터에 있는 '이동형 군막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에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고정 처소에 머무르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고정 처소에 머무르게 되는 일이 우리 생각으로는 '성전에서’ 이루어질 것 같은데 그렇게 말씀을 안 하셨다는 점입니다. 열왕기상 8장 16절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이동형 처소인 성막에서 고정식 처소인 성전으로
     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동형 처소인 성막에서 고정식 처소인 다윗으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이 분명히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디에 거하시는가?
 즉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을 열왕기상 8장의 빛으로 읽을 때, 하나님께서 신명기 때부터 말씀하신 “내 이름을 두기 위한 특별한 곳”이란 본질적으로 '건물 성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건물 성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 성전'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벽돌 건물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구약의 건물들은 '장차 올 어떤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된 자기 육체”(요 2:21)를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의 궁극적 성취는 '사람 그리스도'셨습니다. '임마누엘''', 곧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 속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 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 때 그'성전', 곧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됩니다. 고린도전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

 심지어는 이렇게 각 개인이 성전 된 것이 ‘연합적 건물로서의 성전’이 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성전'이 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_엡 2:21-22

 하나님께서는 건물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선택한 그곳"이 건물 성전을 가리키도록 잠시 그렇게 하셨었지만, 구속 역사가 다 성취될 때의 '임마누엘'은 '그리스도-그리스도인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벽돌 성전에 계시지 않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흥분되게 합니까!

 우리는 우주의 지존자이신 분의 처소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둘째로 기억해야 할 주제는 ‘이 선택의 독점적 지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특별히 선택한 곳”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늘들의 하늘조차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될 수 없다"(왕상 8:2742)라고 하였는데, 비루하고 부실한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독점적 지위입니다. 선택의 의의를 발견하는 것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첫째 주제에서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강요된 의무'일 때 우리의 선택은 빛이 바랠 것입니다. 선택받은 것이 그다지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째 주제는 선택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일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영광을 위한 소모품'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의 임재가 친히 거하는 위대한 처소'가 되었습니다. 선택교리에서 이것을 배우십시오. 요지는 이것입니다.

선택은 얼마나 하나님을 드러내며
동시에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광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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