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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3-10-29 (일)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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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2023년 10월 29일 주일 오후 설교
성경봉독 : 엡 2:1-10; 1:3-6
설교본문 : 도르트신조 Ⅰ-5





 평소에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다가, 어떤 큰 사고나 불행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유럽 대륙은 종교개혁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체 인구가 그리스도교였다가 점차 이 신앙을 탈출하고 있는 반면, 한국 사회는 애초에 이교의 세계였다가 전도를 통해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서구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게 애초에 무신론의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이 세상에 기독교의 신과 같은 존재는 없다고 하는 강력한 반증이 바로 세상에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나, 폭탄 테러가 발생하거나, 나라 간 전쟁으로 아이들과 부녀자가 죽게 되면 이들은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맹목적 덮어씌우기'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주고 계시는 은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도, 나쁜 일이 생기면 오롯이 하나님께만 책임을 돌립니다. 이렇게 하는 배후에는 자기가 죄인이어서 발생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싫어하는 우리의 근본적 죄악이 들어 있습니다.

 도르트 신조 첫째 교리 5조는 바로 이 문제, 곧 “죄의 근원은 어디이며, 믿음의 근원은 어디인가?"라는 문제를 다룹니다. 주제를 요약하자면 본문은 "사람이 믿지 않는 원인이나 죄에 대한 책임은 결코 하나님께 있지 않으며 사람에게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대답은 이렇습니다. 죄의 근원은 사람, 믿음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10절까지를 읽어 보면,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에베소 교회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성경이 각각의 기원을 어디에다 두고 있는지 주목해 봅시다.

 여기에는 '의도적 대비'가 있습니다. 2절에 “그 가운데서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가운데”는 ‘안에’라는 뜻이고, "행하다"라는 말은 ‘페리파테오’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10절 끝부분에도 똑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라는 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동일한 문구가 처음과 끝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그 가운데서 행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보십시오. 2절 말씀에서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했다”라는 문구는 과거형이면서 1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즉 그들이 “그 가운데 행했다”라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중에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의 주체가 되는 이는 “너희", 곧 자기 자신들입니다.

 그런데 다시 10절을 보면, 여기에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는 가정법입니다. ‘의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려 했다는 것이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누구의 만드신 바입니까? “그의 만드신 바”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십니다.

 이 대비는 중요한 통찰을 비춰 줍니다. 먼저 2절은 '우리가 원래 가졌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우리가 원래 가졌던 것은 “허물과 죄로 인한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행했던" 이들입니다. 그런데 10절은 이런 우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적입니까?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즉 원래 우리가 가졌던 것은 죽음 안에서 행하는 일이었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선한 일 안에서 사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죄와 죽음'은 나의 것이었고,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2장 말씀이 신조의 첫째 교리 5조를 매우 훌륭하게 설명해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목적

같은 맥락에서 에베소서 1장 4절과 5절 말씀도 봅시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_엡 1:4-5

 '예정'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목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예정이라는 주제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예정 자체만을 생각하느라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예정하셨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과 5절은 바로 이 점을 밝히 비춰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지만, 택하심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이유는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에베소서 2장과 1장의 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명한 의도를 읽게 됩니다. 서론에서 우리는 사람이 자주 하나님께 온갖 탓을 돌리려는 경향이 있음을 말했는데, 에베소서 말씀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저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항하십니다. 무엇에 대해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져 있는 인생들의 현실을 불쾌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우리들을 ‘건지시기’ 원하십니다! 에베소서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의 모습이란 죄에 빠지고, 죽어 있고, 하나님 곁에서 떠나있는 인생들 혹은 그로 인하여 멸망 받게 되는 이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 이 죄의 원인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나라의 왕이 끊임없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할 수만 있으면 모든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려고 하는데, 어둠의 세계의 악을 자행하는 무리들이 그 나라 안에 존재한다고 해서 악을 척결하려는 왕이 그 어둠의 주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험한 벼랑이 있는데, 거기 온갖 종류의 경고문과 울타리와 막기 위한 시설물들을 설치해 두었는데도 굳이 그것을 다 뚫고 들어가서 누군가 떨어져 죽었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 경고문과 울타리를 설치한 주체를 누구라도 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금하셨고, 미워하셨고, 경고하셨습니다! 추호라도 인간에게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성이 있다면, 하나님을 비방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양심이 있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악들로 인해 하나님을 비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와 악은 하나님께서 종용하셔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라고 늘 가르치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하나님께 저항하고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우리의 악의 결과물을 마치 하나님께 원인이 있는 것처럼 돌리기를 좋아합니다.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죄의 원인이나 죄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상태가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이 사실을 밝히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예정을 말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묵상함

 그러므로 ‘예정’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묵상합시다! 죄는 분명 하나님께서 예상하시지 못한 돌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일이 없으시며, 만사의 모든 일들이 그분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를 “죄가 하나님을 놀라시게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이 모르는 새에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하나님께서 죄가 일어날 것을 아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는 그러한 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죄의 원인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게 되거나 “혹 하나님께서 죄의 원인이 되시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에도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이 '선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묵상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예정을 대하는 참으로 올바른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받으셔야 할 분이며, 하나님은 탐구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논리를 따랐다

 이 문제에서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논리를 따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항론파들, 곧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입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둘 중에 하나만이 논리적 대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① 불신앙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다면 신앙의 원인도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
② 신앙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면 불신앙의 원인도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이런 주장은 매우 논리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논리는 언제나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사고의 틀 안'에 집어넣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대 하나님을 우리 사고의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논리를 따른다는 것은 항상 이런 위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자의 자세는 '경배의 자세'요 ‘송영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아닌 다른 자세로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 특히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처럼 ‘논리 자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거기 끼워 넣는 것, 이것은 반드시 성경과 배치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불신앙에 대해서 사람에게 책임을 캐물으려면, 신앙에 대해서도 사람에게 원인을 물어야 하지 않겠어?", "만약 신앙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신 것이라면, 불신앙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전적으로 나와야 하지 않아?" 이 주장에서 핵심은 '일관성'입니다. '논리의 일관성'이지요. 아르미니우스주의는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일관성이라는 잣대로 하나님마저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가 없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태도 대신에 성경이 예정을 말할 때 어떤 입장을 가지고 이야기하는지를 보고 성경의 태도를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3장 11절과 1장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_엡 3: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_엡 1:11

 우리는 앞의 주제에서 에베소서 1장과 2장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예정'이라는 주제 속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에베소서 3장 11절 말씀은 하나님의 경륜이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나타났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때 성경은 이 일이 “예정하신 뜻대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말에서 이 말은 두 단어이지만 원래는 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헬. 프로떼시스) '차려 놓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 말 번역에는 '예정'이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뜻/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목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선명하게 한 사실을 비춰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일이 ‘그분의 뜻’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헬라어 사전은 이 하나님의 뜻의 의미를 '하나님의 원초적 결정'이라고 했고, 바빙크는 “하나님의 뜻은 특히 구속 사역과 연관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의 지도를 받아 사고할 때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실은, '예정'이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 혹은 '하나님께서 죄를 예정하셨는가?' 따위의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아르미니우스주의적으로 접근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정을 단순히 '논리적으로 무엇이 바른가?'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점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파의 이론을 가지고 예정을 아무리 잘 설명하더라도 그 사람이 예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그 예정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개혁파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혁파적'이란 무엇입니까? 개혁파가 아르미니우스주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가 더 논리적이고, 우리가 더 설명을 잘한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더 성경 말씀을 따르고, 우리가 더 유일하시고 최고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굽혀 절한다'는 것입니다.
 예정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3장 11절과 1장 11절에 나오는 이 하나님의 ‘뜻’ 혹은 '목적’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헬. 프로떼시스)가 사용된 용례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_롬 8:28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서게 하려 하사_롬 9: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_엡 1:11 (개역한글판의 번역)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 3:11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헬, 프로페시스)가 '하나님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는 이 다섯 번이 전부입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신약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뜻이 말씀될 때 일관되게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사람을 부르시는 구원의 사역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언급된 모든 말씀들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람이 죄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 자녀의 자격을 잃게 되는 일들을 두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거나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이 거기 있었다”하는 구절을 단 한 구절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논리는 이에 대해 '대답'을 합니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도 예정이라고 해야 하고, 반대로 죄에 빠지게 되는 것, 구원으로부터 탈락하는 것,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도 역시 예정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를 구원하시기를 '뜻'하셨다면, 동시에 이 말은 어떤 이는 구원하지 않으시기를 ‘뜻’하셨다고 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이 둘은 붙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구원과 은혜에만 있다는 것을 늘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알려 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우리를 '건지시는 일이요, ‘사랑하시는 일입니다.

 당연히 유기는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를 선택하지 않으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더 우리의 마음을 쏟도록 합시다. 듣지 않고 멸망당하는 것은 사람의 완고함 때문이요 죄의 영향력 때문이지, 구원의 하나님의 본연의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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