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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11-07 (일)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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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적 직분 이해
개혁주의적 직분 이해
2021년 11월 7일 주일 오후



개혁주의 교회 역사에서 교회가 가장 경계해 온 것 중의 하나가 교권이었다. 개혁교회는 사도직의 계승을 주장하는 감독교권체제를 성경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폐기했다. 칼빈이 사역한 제네바 교회는 1941년에 목사, 교사, 장로, 집사 직분만을 성경적인 항존직분으로 보고 도입했다. 지난날에 감독이 하던 역할은 “당회”에 돌려졌다. 지난날 감독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교권이 직분자(목사,장로)들의 치리회(治理會)에 돌아간 것이다. 칼빈의 영향을 받은 스콧틀란든 장로교회에서는 지난 날의 독의 역할을 “장노회”(Presbytery)에 돌렸다. 이로서 칼빈의 교회정치 이념을 따른 개혁주의 교회는 교회 안에 감독의 교주권(敎主權)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결과 개혁주의 교회 세계에는 직분에 대한 높고 낮은 개념이 살아지고, 모든 직분자들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함께 봉사하는 “섬기는 자”(diakonos)라는 직분관이 정립된 것이다.

개혁주의 장로교회 정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장로직이다. 그래서 장로직의 존재여부가 개혁교회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표준이 되어 있다. 장로직을 부정하는 교회는 장로교회라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장로들이 설교, 성례, 권징의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로는 “다스리는 장로”와 다스리는 일과 함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로 구분을 하게 된다(딤전 5:17). 원래의 한국장로교 헌법(정치)에는 장로에는 "다스리기만 하는 장로"와 "다스리는 일과 설교를 하는 장로" 두 반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목사 장로의 교회정치에 있어서의 동권을 강하게 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 개정된 고신교회의 교회정치 제28조에는 “목사(말씀과 치리에 봉사하는 장로), 교인의 대표인 장로”라고 함으로 동등권이 매우 약화된 듯한 이상을 남긴다. 그런데 1991년에 개정된 미 정통장로교회의 교회정치는 제6장에서 “목사 혹은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s)" 제10장에서 ”다스리는 장로“(Ruling Elders)라고 분명하게 밝혀 양 직분간의 동등권을 부각시키고 있다.(The Standards of Government, Discipline and Worship of 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Revised 1988,1992)
가르치는 장로는 목사로서 설교, 성례집행, 교리교육 외에 행정 권징에 봉사하고, 다스리는 장로는 행정, 권징에 목사와 동등권을 가지고 봉사하게 된다. 목사와 장로는 기본적으로 장로이다. 단지 목사와 장로의 구별은 그 직책의 다름에 있을 뿐이고 교회를 다스리고 감독해 가는 데는 동권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에 목사 장로는 부름받은 개 교회건설을 위해서는 동역자의 입장에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회에는 일찍부터 목사와 장로의 직분을 계급적인 교권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직분관이 자리를 잡게 되어졌다. 이것도 미 북장로교회 선교사들의 강한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게 된다. 19세기에 미, 남북 장로교회는 목사와 장로의 직분에 대한 이견으로 논란을 했고, 이 서로 다른 견해가 양 교회에 정착되었었다.  특별히 북장로교회는 프린스톤 신학교의 핫지(C. Hodge)교수의 영향을 받았었다.  핫지는 목사를 장로와는 차원이 다른 교회에서 “가장 높은 항존직”으로 보았으며, 장로교를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소교구 감독정치제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남 장로교회는 목사와 장로를 기본적으로 장로(presbyter"로 보고 계급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거절하는 쏘넬(James H. Thornwell)의 견해를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회에는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강한 영향으로 목사를 장로보다 높은 “감독직”으로 보는 직분관이 관료주의적 사고와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한국 문화와 조화되어 그대로 수용되고 정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역사적 칼빈주의 전통속에서 교회정치를 마련한 유럽의 개혁교회는 일찍부터 이런 계급적 교권적 직분관을 전적으로 거절하고 경계하여 왔다. 1619년에 화란 개혁교회가 받은 “교회정치”는 목사와 장로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을 절대로 지배할 수 없게 규정되어 있다. 개혁교회의 “교회정치”는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를 지배해서는 안되고, 어떤 직분자도 다른 직분자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결과 개혁주의 정치원리에 의하면 목사가 장로를 지배할 수 없고, 장로가 목사를 절대 지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개혁교회에서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지배한다거나 한 직분자가 다른 직분자를 지배한다는 것은 교권적 스캔들이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회에는 교권문제가 심각한 형편이다. 교회 안에 목사의 교권, 장로의 교권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근본 원인은 교회 직분관에 있어서 일찍이 고하(高下)의 개념을 수용하게 되어, 직분에 대한 계급적인 이해를 하게 함으로 교회직분에 대한 속화를 초래한데 있다고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계급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승진을 추구하며, 지시하고 순종하는 상하 관계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 목사, 장로의 교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두 가지 문제를 짚어 본다.
첫째, 지역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목사와 장로의 심각한 대입현상이다. 목사들 편에서는 목사직을 교구감독직(parochial bishopric)처럼 이해하고 장로들을 단순한 협조자로만 간주하여 장로들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장로들 편에서는  장로직을 “교인들의 대표자직” 한국장로교회 정치에는 장로를 “교인의 대표자인 장로”라고 정의하고 있다.(고신교회 정치 제28조). 한국장로교세계의 모든 교회의 정치는 장로를 이렇게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원래의 Westminster 교회정치 원문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으로 이해하여 목사의 교권에 도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목사와 장로들의 교권장악에 대한 관심은 개 교회를 넘어 노회와 총회등 개교회 밖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목사 장로들이 노회와 총회의 회장(부회장)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교회내의 연합기관 혹은 교파 연합기구의 “장” 혹은 임원이 되기 위해서도 치열한 운동을 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운동은 세상에 선거가 있을 때에 나타나는 부패와 본질적으로 다름이 없다.

 교회에서 교권장악을 추구하는 이런 일들은  교회직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바로 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다. 교회에서 실질적으로 교권을 가진 분은 사람이 아니고, 교회의 머리와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성령으로 교회(신자들)에 내주(內住) 하시고, 교회를 통해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를 불러 세워 그의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을 바로 이해하는 곳에 교권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한국 장로교회의 미래의 과제는 성경적인 개혁주의 직분관을 정착시키는 일이다. 교회는 직분을 계급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입신양명으로 생각하는 세속적인 문화의 오염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목사의 교회도 장로의 교회도 아니고, 회중의 교회도 아니다. 교회는 그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사신 그리스도 예수의 것이다. 마16:18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엡1:22,23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런고로 교회에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권위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교회의 법이요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가 섬기는 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섬기는 자로 평생 사셨다. 그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하시고,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이 있노라”(눅22:27)하셨다. 그리스도의 종은 주가 되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야 한다. 그는 “사람이 나를 섬리려면 나를 따르라”(요12:26)고 하셨다. 이 기독론을 바로 이해하는 곳에 교권의식이 자리잡을 수 없다. 교회의 직분자는 그리스도의 종이요 그의 ”교회의 일꾼“일 따름이다(골1:25). 교회 직분의 권위는 교회의 주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고 섬길 때에 드러나는 것이다.  

목사와 장로는 기본적으로 같은 장로요, 교회건설을 위해 직임(function)만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양자는 가르치고, 다스림으로 교회를 건설해가는데 동역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는 지금 육체적으로는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을 통해 지상에 있는 그의 교회의 “직분자”로 계시면서, 목사를 통해 그의 교회에 그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장로를 통해 그의 교회를 다스리시며, 집사를 통해 그의 교회를 돌보시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로서 그리스도의 큰 선지자 직분을 봉사하고, 다스리는 장로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의 직분을 봉사하며, 집사는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대제사장직을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삼직에 상하(上下)의 개념이 있을 수 없듯이, 교회 직분 상호간에 상하의 개념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목사와 장로의 직분은 원천적으로 개 교회의 봉사와 건설을 위해 부름 받은 직분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도시대 이후에는 여러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을 주신 일이 없다. 그러니 목사 장로는 부름받은 개교회의 건설을 위해 철두철미 봉사해야 한다. 개교회를 위해 부름받은 목사 장로가 그 개교회 밖의 노회, 총회등의 장을 사모하고 추구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양명(揚名), 교권의 추구이외에 다른 것으로 볼 수 없다. 물론 저런 교회의 치리회가 필요하고, 이 회를 봉사할 “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봉사는 자연스럽게 추대되고 선택을 받았을 때에 할 일이다. 목사 장로의 봉사영역은 철두철미 부름받은 개 교회이다. 한국 장로교회가 참된 개혁주의 교회가 되기 위한 미래의 과제는 기독론에 입각한 봉사로서의 직분관을 바로 정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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