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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4-04 (일) 15:18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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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2021년 4월 4일 주일 오후 설교
설교본문 : 벨직신앙고백서 제 27항







 교회에 관한 이 조항은 벨직 신앙고백서의 다른 조항들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조항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교회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계시를 근거로 두는 대신에 우리 눈에 보이는 것에 기초를 두고 교회를 정의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매주일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모든 것은 오직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교회에 대한 주님의 계시가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반대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계시를 기초로 해서 보아야 합니다.

 벨직 신앙고백서 제27항이 아무런 의미 없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기에, 제27항은 앞에 있는 제1-26항의 모든 내용 뒤에 나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앞의 조항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과 죄 가운데로 타락한 당신의 선택하신 자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는지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이 제27항에 더 브레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에 요약하였습니다. “또 이 참된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완전한 구원을 기대하며,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았고, 또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더 브레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았고 또 그의 영으로 거룩하게 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교회의 객체를 형성합니다. 교회는 사탄의 편에 여전히 속해 있는 사람들(유기된 자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교회는 사탄의 편에서 하나님의 편으로 되돌아 온 사람(택한 받은 백성들)들이 속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론과 하나님의 선택 교리를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동시에 아래에서 설명할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교회와 선택받은 자를 동일하게 볼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1) 성부 하나님께서 타락한 모든 인류 가운데서 일부 특정한 사람들을 생명에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자에게 주신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서 성자께서 자기피를 흘리셨습니다.

  2) 성부께서 성자께 주신 사람들로부터, 성자 하나님은 교회로 모으십니다. 성자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당신의 교회를 모으시고, 또 마지막 날까지 이 사역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다 채워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건축중에 있는 건물과 비교될 수 있는데,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최종적으로 완성될 건물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으시는 사역은 전 세기에 걸쳐 진행됩니다. 단 한 세대 만에 교회의 기초와 그 완성을 보일 수 없습니다. 일생동안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건축하시는 사역을 보는 사람들은 모든 프로젝트(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계획)의 작은 부분만 볼 따름입니다. 이 이유로 인하여 저는 제가 오늘 교회를 볼 수 있는 것에 기초해서 교회에 관한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3) 성령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그들을 중생케 하셔서선택함을 받은 자들을 계속해서 새롭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거룩한 생활을 점점 더 증가시키셔서, 교회 안에서 거룩한 자들이 마땅히 되어야 할 자로 만드십니다.

 고백서들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대는 거룩한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하여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 온 인류로부터, 세초에서 세말에 이르기까지 친히 당신의 영과 말씀으로 참된 신앙의 연합 안에서 영생에로 선택하신 교회를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보존하실 것을 믿습니다.”(HC 제21주일 제54문답) 성자께서는 성부께서 선택하신 택함 받은 자들을 당신의 교회로 당신의 영과 말씀으로 모으십니다. 제27항 역시 교회에 관하여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우리는 한 보편적이고 혹은 우주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이 교회는 참된 신자들의 한 거룩한 모임이자 회합이며, 또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완전한 구원을 기대하며,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았고, 또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부에 의해서 선택함을 받았고, 성자에 의해서 의롭다함을 받았고, 성신에 의해서 거룩하게 된 사람들인데, 이들은 사탄의 편에서 하나님의 편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선택되고,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하게 된 구원받은 자의 이 구성원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받은 자의 총수라고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은 이러한 이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만일 교회가 모든 선택받은 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제28항의 내용은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1648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역시 교회를 하나님 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 정의를 내렸습니다. 제25항 1절에서 이 사실을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교회는 볼 수 없는데, 이 교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하나로 모이는 모든 택한 백성으로 구성된다…”고 말합니다.]

 교회라는 용어의 기원

 “교회(church)”라는 용어는 “주님께 속해 있다”는 의미를 가진 “퀴리아케(kuriake)”라는 희랍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교회가 주님의 피로 샀기에, 주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보기 좋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러나 “퀴리아케”라는 단어가 교회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성경은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초기 신약 시기의 헬라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였습니다. 또 이 단어는 모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의 은장색인이 데메드리오에 의해서 야기된 소동을 읽을 수 있습니다. 32절에서 “그러므로 사람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시의 사무관이 모인 무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응수했습니다.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39절) 이 말을 함으로서, 그는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였습니다.”(41절) 이들 구절에서 사용된 헬라어가 바로 “에클레시아”입니다. 이 단어는 그 당시 통용되던 헬라어로는 “모임, 함께 모이다, 회합”등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에클레시아의 본래적인 의미는 모임의 개념입니다.

 더욱이 신약의 하나님의 계시는 구약 계시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셉투아진트에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모임, 회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예를 들면 신명기 5:22에서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의 열 가지 말씀을 주실 때를 회상합니다. 시내산 아래에서의 이 모임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한정시켰습니다. “이 말씀을 야웨께서 너희 모든 회중들에게 말씀하셨노라.” 구약이나 바울 당대에 희랍어를 사용하는 문화권 둘 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람들의 모임”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었고, 또 우리가 마치 신약 성경에서 마치 이 단어가 선택 받은 자들의 총수를 말하는 것으로 읽는다면, 틀린 것입니다.
 교회라는 용어의 정의

 교회를 말할 때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 즉 택함 받은 자와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백성의 모임 사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백성들의 총수와 같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선택함을 받은 자”와 “교회”는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 즉 택함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더 브레는 이 구분을 제27항에서 했습니다. 그는 기록하기를 “우리는 한 보편적이고 혹은 우주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이 교회는 참된 신자들의 한 거룩한 모임이자 회합이며…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모든] 참된 기독 신자들이 아니라, 참된 신자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18에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모든 택함 받은 자들로 구성된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임 혹은 회합을 말씀하시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의도하는 것은 바로 모임 혹은 회합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선택받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의 모임”입니다. 이 정의가 함축하는 바는 교회 밖에도 택함을 받은 자들이 있다 즉 어떤 이유로 인해서 참된 신자들의 모임으로부터 떠나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양 우리로 말씀하셨을 때에 다음과 같이 하신 말씀과 동일합니다. “또 이 우리 안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10:16)”.

 요한복음10:16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미래시제는 당신의 교회를 모으시는 사역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여전히 건설 중에 있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여전히 당신의 양들을 당신의 교회로 모으시는데 전념하시고 계십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택함을 입은 자들이 하나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네 가지 특징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하신 교회는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통상적으로 네 가지 특징이 고백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니케아 신경은 다음과 같은 속성들을 진술해 놓았습니다. “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이 신경이 작성된 해는 AD 3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신자들이 거의 1700년 동안 성경을 기초로 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해 왔습니다.
- 교회의 통일성/ 교회의 거룩성/ 교회의 보편성/ 교회의 사도성

 이 네 가지 교회의 속성 역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본 것을 기초로 해서 고백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에 관하여 말한 바를 기초로 해서 고백한 것입니다. 이 속성들은 현금(우리 눈에는 보이든 안 보이든 상관없이)의 교회를 특징짓는 것이며, 또 영원히 교회를 특징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속성들은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들이며, 동시에 이 속성들에 담겨 있는 고유한 본성들은 교회에게 내린 명령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하나이며,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이 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1) 교회는 하나입니다.

 은사: 교회가 하나라는 이 고백은 분명히 사람이 교회에 대해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결과로 작성된 고백이 아닙니다. 통일성은 전혀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교회의 “하나 임”에 대해서 말씀한다는 사실은 교회가 모든 택함 받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실체라고 많은 사람들을 믿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크고 보이지 않는 실체(몸)가 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 참 교회가 각 지역 교회 혹은 각각의 회집을 만들어내었고, 또 이러한 각 지역 교회들은 큰 혹은 진짜 교회를 [밖으로]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아브라함 카이퍼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하나라고 계시하실 때에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구원받는 한 길만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천사는 오실 아기를 예수라 부르라고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이라.” 제자들은 일관되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6). 이렇게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 많은 교회를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 한 교회 즉 “내 교회들이 아니라, 내 교회(마16:18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라)”를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나기 때문에, 한 교회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교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다. 곧 내가 저의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요17:20-23)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신 응답이 사도행전 2:44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4:32에서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물건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초대교회는 분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실은 한 복음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 임 혹은 연합으로 특징을 지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에베소서 4:4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의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얻었느니라.”

 요한계시록 14장은 교회가 완성될 때에 누리게 될 완전한 연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14:3) 그들은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노래하고 고백했고, 또 그들 모두가 어린양의 만찬을 즐겼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함께 모인다는 사실로 이 선물의 실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주님의 만찬에서 한 떡을 먹고 또 한 잔을 마십니다. 성도의 교통이 교회의 하나 됨으로 지역[공간]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좀 더 넓은 차원에서, 멀리 떨어진 교회와의 자매 관계와 같은 교회의 연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27항을 맺으면서, “믿음의 능력으로, 또 한분이시며 동일하신 성령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명령: 만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하나로 만드셨다면, 교회는 하나가 되기를 명령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모여 경험하는 하나임은 계속해서 자라가야 하며 또 격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의 교통이라는 은사는 반드시 계발되어서 우리가 더더욱 적극적이고도 살아있는 교제를 해야 하며, 또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모든 회원들이 함께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더 넓은 차원에서, 교회의 연합은 우리나라 안에서든 또 국제적으로든 자매 교회를 맺어 반드시 표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계속해서 당신의 교회를 모으시는 사역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참되고 신실한 교회들이 있는지를 여러모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2)  교회는 거룩합니다.

 은사: 제 27항 마지막 단락에 “이 거룩한 교회”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베드로전서 2:9과 같은 성경 본문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들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거룩하다는 것은 분리되어 있다, 회생시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의 사역입니다. 교회는 교회 안으로 모여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함을 받았고 또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거룩함으로 특징짓습니다. 교회는 사탄의 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고 또 동일시 될 수 없는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바울 역시 에베소서에서 교회의 거룩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5-27).

 명령: 교회는 거룩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제 자신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거룩한 것은 제 자신이 행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 안에 기쁘시게 행하셨던 일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저를 거룩하게 만드셨다면, 그렇다면 저는 거룩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은 교회에 있어서도 동일한 진리입니다. 이 신자들의 모임은 거룩함을 중시합니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자신을 죄로부터 점점 더 멀리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점차적으로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7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목적을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 표현은 미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우리가 거룩하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이 거룩함을 향해 수고해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은사 즉 실체이기에,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해야할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3) 교회는 보편적입니다.

 은사: “보편적”이란 말은 우주적, 전 세계적이라는 뜻입니다. 제27항에서 우리는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에게 국한되거나 구속되어 있거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퍼져서 확장되어 있습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온 세상에 퍼져 있다는 것은 카톨릭이라는 단어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개념입니다. 이 용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두 번째 개념은, 제27항이 언급하고 있듯이, “교회가 세초부터 세말에 이르기까지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보편적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교회가 모든 시대에 항상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증거를 창세기 22:18절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만민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시편 87을 보라). 이 교회는 인종, 언어, 성, 나이, 사회적 신분과 같은 여부와 관련 없이 모든 민족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7:9; 5:9; 15:4). 그러하기에 교회 안에는 차별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교회의 보편성은 실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더욱이 이 사실은 자동적으로 교회가 오늘날 어디에서나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보편적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교회가 어디에서나 모든 곳에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 제가 “아합의 학정 때”에서처럼 전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보편성이란 단지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시라는 사실 때문에 교회가 얼마나 작은지는 상관없이 어느 곳엔가 항상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명령 : 교회가 보편적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교회는 세상 어딘가 또 모든 곳에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실체와 이 은사는 선교사역을 수행하는 명령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그분의 은사라면, 이 복음은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고백은 아직 복음을 듣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보편성은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가 고백하는 하나님을 연상할 수 있도록 제가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고백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의 삶을 통해서 말하고 증명하여, 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어떤 문화권에 있는 사람이든지 교회에 가입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을 위한 축복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4) 교회는 사도적입니다.

 은사 : 바울은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엡2:19,20).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에서 수행하시고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행1:22;2:32).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도록 성령에 의해서 무장하였습니다(요16:3). 그들은 그렇게 하도록 영감을 받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들이 가르쳤던 모든 것을 담지 하는 것은 교회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굳건하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계시하셨습니다.

 명령 : 만일 교회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다면, 교회 역시 사도들이 말씀했던 바를 반드시 믿어야 하며, 또 그들이 말씀했던 바와 일치하지 않는 어떤 것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사도의 교리를 담지 한다는 것이 교회의 속성이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라고 말했습니다(딤후1:13). 디모데는 이 진리를 “자신에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겨야” 했습니다(딤후2:2). 유다는 자기 편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말씀했습니다(3절). 사도들이 설교한 복음으로부터 더하거나 빼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일 수 없습니다. 사도성이라는 은사는 하나님의 모든 계시에 전적으로 신실하게 또 사도적인 성격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으라는 명령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에 시종여일하게 전념하여, 교회가 신실하고, 또 항상 개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이 속성들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파산되고 죄된 생활로 인하여 누구나가 교회의 단일성과 거룩성과 보편성과 사도성을 충분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속성들의 어떤 부분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우리가 보는 가장 작은 것조차도 죄에 의해서 더럽혀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만을 믿습니다. 우리가 오늘 교회 지도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교회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회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이 현실의 죄스러움이 너무도 분명하게 우리에게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대단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의 권세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생의 죄된 생활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배설될 위대한 날까지 계속해서 모으실 것이고, 보호할 것이고 보존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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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파루시아 2021-04-04 67
188 율법의 성취이신 그리스도 파루시아 2021-03-21 88
187 성화와 율법 파루시아 2021-03-14 92
186 믿음에 의한 칭의 파루시아 2021-03-07 81
185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 파루시아 2021-02-28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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