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회소개 | 예배안내 | 금주의말씀 | 자료실 | 포토갤러리 | 교제의광장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2-07 (일) 15:26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ㆍ추천: 0  ㆍ조회: 17      
IP: 121.xxx.81
구속이 필요한 인간
구속이 필요한 인간
2021년 2월 7일 주일 오후 설교
설교 본문 : 벨직신앙고백서 제 17항



 17항은 사람이 죄에 빠진 이후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은 죄에 빠져서 하나님을 떠나 죽음에 이르므로 구원을 위한 아무런 행동이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에서 구원받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본 고백서는 17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람의 죄와 비참이 얼마나 큰지를 앞에서 말했던 이유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죄와 비참을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서 전적으로 비참하게 되었다……” 비록 사람이 여전히 숨을 쉬고 있을지라도, 이런 점에서 그는 육체적으로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고, 무덤은 그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비록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서 살도록 창조되었을지라도,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멀어졌다는 점에서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사람은 죽었고, 완전히 죽었고, 죽은 자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도움을 구하거나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모든 선물들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점점 더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처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그는 자기 죄로 말미암아 그의 참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에게서 끊어졌고, 그의 본성이 모두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써 그는 자신을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서 스스로 전적으로 비참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죄에 대해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처럼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런 상태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아담과 같은 범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 반항하였고, 하나님께 전혀 아무것도 제공받을 수 없도록 철저히 파산하였습니다. 심지어 (아담 안에서) 우리는 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키려고 “하나님께로부터 두려워 떨면서 도망갑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먼저 나와 자신의 죄를 고하고 하나님과 회복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묘사는 매력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묘사는 구속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필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17항은 사람의 죄와 비참에 대한 진술을 반복하면서 구속에 대한 이 조항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를 살펴보아도 죄악론을 철저히 말한 뒤에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말씀을 전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죄와 비참함을 자각할 때에, 이 복음의 메시지는 정말로 더욱더 놀라운 것이 됩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존재였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죽어 있고, 비참하며, 역겨운 존재라는 것을 다 아십니다. 또한 그분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가 과거에 했던 일을 훤히 다 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야웨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야웨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에 숨은지라. 야웨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8,9) 비록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편으로 연합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보셨고 또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조를 찾으시는 행위는 가장 놀랄 만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회복시키도록 하나님께서 동기를 부여한 것

 나의 하나님이 그런 비참한 우리를 찾으시도록 동기부여를 한 것이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피하여 도망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르십니까?
 고백서는 “...우리는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와 같이 육신의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 떨어지게 된 것을 보시고, 두려움 가운데 그분에게서 도망하던 인간을 그분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찾기 시작한 것을 믿습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생생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눅1장 77-78절에서 성경은 인류의 상태 때문에 당신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 감동을 받으신 것으로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사가랴는 “우리 하나님의 한없는 긍휼(하나님의 긍휼)을 통한 그들의 사죄”에 대해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빠진 그 비참 때문에 안타까와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 비참을 보시고 은혜와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움직이사 당신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17항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심과 연관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말합니다.
  첫 번째 복음

 창 3:15에서, 우리는 사람이 사단에게 연합하여 그의 편이 되어버린 후에,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하신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단으로 말미암아 사단에게 결속되어 버린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 자신 사이에 상실되어버린 결속을 다시 탄탄하게 하려고 하십니다. 비록 사단이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데 성공할지라도(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에서 사단의 머리가 부수어질 것을 보증합니다. 이 말씀에 포함된 것은 아주 간결한 전체 복음입니다. 이 첫 번째 복음에서, 하나님은 이 타락한 인간에게 당신께서 그의 비참에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실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17항에서 말하고 있는 이 부요한 계시는 다시 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지적해 줍니다. 이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영원하십니다. 오래 전에 아담이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갔을 때, 하나님을 저버렸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죄에 빠져서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항상 먼저 찾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이 먼저 찾아 오셨지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주님을 모셔 내린 것은 아닙니다. 또 우리가 우리 죄값을 아들을 통하여 치러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긍휼과 자비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상태를 보시고 아시면서도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동정하심으로 나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자녀다. 내가 너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내어주었다.” 나의 매일의 삶의 투쟁 가운데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께서 스스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찾아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 엄청난 위로를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당신의 눈에 보시기에 귀중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동시에 한없이 부요하게 만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가 삶의 투쟁 가운데서 필요로 하는 격려를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1) 언약은 그 기원에 있어서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행위는 언약의 문맥 속에 있고, 언약의 문맥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언약은 엘로힘이라는 1장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성호가 아니라, 창세기 2장의 문맥에 주로 “여호와”라는 성호가 자주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언약의 당사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언약이야말로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로 가는 사랑의 관계이고,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은 친히 사람과 (그리스도 안에서) 결속하십니다.
  창 17:7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주님의 약속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는 말씀을 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당신의 백성과 친히 세우신 것을 읽습니다. 여기 인간과 언약을 맺어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말씀으로 언약을 맺으셨고, 그것에 의해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부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시지 않으시고, 단순히 당신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이 떠난 뒤에도 변치 않고 영원히 시행하셨고 시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신실하고 영원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 언약의 내용

 창 17:7에서 우리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은 창 1장의 상황으로 돌아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것이 되도록,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설립하셨습니다. 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 관계요, 변치 않는 사랑으로 친절하게 돌보시겠다는 관계를 포함합니다. 이 하나님은 당신께서 처음 사람을 두신 에덴 동산의 풍성함을 말씀하고 있으십니다.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언약의 하나님의 손 안에서 전적으로 안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풍성하였습니다. 부족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죄가 들어왔고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만을 듣고도 두려워서 동산에서 피하여 숨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찾으시어 다시 언약을 설립하시어 타락한 인간을 한없이 부요하게 해 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당신의 언약을 재설립하실 때에도(출애굽 후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제 아무리 이스라엘이 저항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과 결속하시고, 당신 자신을 이스라엘과 결속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과 당신 자신 사이에 사랑의 결속 관계를 부과하십니다. 자신이 그 언약 관계에 친히 매이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내가 너를 보호할 것이다.” 이 언약 안에 포함된 이스라엘의 무가치함은 애굽의 종의 민족이라는 그들의 모습에 의해서 지적됩니다. 저들은 바로와 같은 왕의 노예로 또 그 백성들의 업수히 여기는 종된 민족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의 모습은 바로 사단과 죄의 종노릇을 하였던 우리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그리고 자비롭게도 처음에 이 백성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 죄악된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3) 언약은 그 유지에 있어서 쌍방적이다

 일단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고 설립된 언약이 존재한다면, 그때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신 백성들은 그 언약을 계속해서 지켜야 합니다. 언약의 계속되느냐 아니면 끊어지느냐는 언약안에 있는 약속과 책임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책임을 다하십니다. 단 한번도 하나님 편에서 그 언약을 변치 않으셨고 책임을 다하셨으며 또 하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께 이 약속을 기억하여 달라고, 그리고 이루어달라고 호소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언약을 기억해달라고 하고 그리고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행동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책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십계명에 순종하라고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출20:3-17).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기에 그들에게 그 언약의 말씀을 순종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약속을 기억하고 이루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고별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다……”(신26:16-18). 우리는 여기서 두 당사자에 대해 읽는데, 그들 각자는 상대편에게 선언합니다. “너는 나의 보배로운 백성이다”고 하는 하나님의 선언에 반응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체의 뜻을 행할 책임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양편이 그들의 언약의 약속에 신실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 안에서 두 당사자를 봅니다. 따라서 언약 안에 두 당사자가 존중해야 할 약속과 책임이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언약은 낙원에서 시작되었다

 ‘언약’이란 단어는 창1, 2장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나중에 하나님의 언약에 관해서 계시한다면, 우리는 이미 낙원에서 언약이 있었다고 이해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은 당신께서 원숭이나 나무를 대우하는 것과 달리 사람을 대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과 사람 사이에 결속을 두셨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지적되는 개념입니다(14항).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부터 사람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즉 선과 의와 거룩에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조성하셨음을 믿습니다. 사람의 뜻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선악과를 통하여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과 결속되어지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낙원에서 이와 같은 언약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죄에 빠짐은 너무나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타락은 언약을 파괴시킨 인간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언약 파괴는 인간이 사단의 편에 있게 했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비록 인간이 언약을 파괴시켰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 편에서 신실하게 언약을 유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즉 “너는 나의 백성이다”라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한 몸에 지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재설립하시고,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언약적 진노의 짐을 지실 구주를 주시어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사단과 원수가 되시어서 사단과 우리와의 관계를 끊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 21장 3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 17:7, 출 20:2, 신 26:16,17에서 발견된 언약적 언어, 용어를 사용하십니다.

 5) 오직 한 언약만 있습니다

 사람이 죄에 빠진 후에 하나님은 인간과 당신의 언약을 재설립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바로 창 1장과 2장에서 맺은 언약과 동일한 언약의 연속입니다. 재설립된 언약에는 그리스도의 중요성이 추가되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창9:9), 아브라함(창17:7), 이스라엘(출20:2)과 언약을 설립하셨다는 것을 읽는다면, 이 언약들은 새롭거나 다르거나 구별된 언약들이 아니라 낙원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원래 언약을 재설립하고 확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설립된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충만한 꽃이 분명하게 피기까지 언약의 봉우리가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할 때마다 언약을 갱신하십니다(히8장).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역사가 진행될지라도 항상 하나님의 한 언약만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언약 역사 안에서 다른 단계 혹은 다른 시기를 말할지라도, 언약은 언제나 한 언약이고 동일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언약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그 언약을 영속시키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에 걸쳐서 이 사랑의 관계를 가지시는 곳에서 계속해서 보여집니다.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새언약들은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언약의 통치 안에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언약 역사의 시대적 순서를 토론할 때, 예를 들면, 신약 시대 안에서 우리 시대와 의식법들에 의해서 특징지어지는 구약 시대를 대조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구약 백성들이 살던 시대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한 언약의 지체들입니다. 항상 한 가지 조건만 언약 안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사랑의 관계를 부과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실함을 표현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진리이고, 오늘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거룩한 것같이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을 순종함이 우리의 신실함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아멘.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84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파루시아 2021-02-21 10
183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파루시아 2021-02-14 12
182 구속이 필요한 인간 파루시아 2021-02-07 17
181 하나님의 선택 파루시아 2021-01-31 16
180 원죄 파루시아 2021-01-24 26
179 사람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사람이 진실한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 파루시아 2021-01-17 19
178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믿음 파루시아 2021-01-10 29
177 천지만물의 창조 특별히 천사들의 창조 파루시아 2021-01-03 20
176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파루시아 2020-12-20 38
175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성경의 증거 파루시아 2020-12-13 29
174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나, 세 위격으로 구별되신다 파루시아 2020-12-06 34
173 구원 얻기 원하는 사람은 성경 전체를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파루시아 2020-11-29 30
172 모세의 무능함을 사용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파루시아 2020-11-29 29
171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너무도 분명해서 아이라도 믿을 수.. 파루시아 2020-11-22 44
170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파루시아 2020-11-15 39
169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신 계시 파루시아 2020-11-08 45
12345678910,,,12
교회전화 : 053-638-2100 / 문의메일 : goorsend@hanmail.net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23 
운용지침 : 개인정보 관리책임 화원언약교회 운영위원회 / 개인정보 보호기간 : 회원탈퇴시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