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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1-17 (일)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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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사람이 진실한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함
사람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사람이 진실한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함
2021년 1월 17일 주일 오후 설교
설교본문 : 벨직 제 14항



 사람은 누구인가?  

 제 14항은 피조물인 사람이 중심주제입니다. 오늘날 인류 가운데 대다수는 사람이 누구이며, 사람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또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 채 공허하게 살아갑니다. 사람을 진화의 산물로 보면, 사람은 단지 우연히 생긴 것입니다. 창조주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나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 줄 존재가 없고 옳고 그름도 없습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동물들로 창조하시지 않으셨고, 특별히 사람, 즉 인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인간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창 1:26-27에서 우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이고, 또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읽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두 표현은 의미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여러분! 언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바로 “그리고 난 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과 땅과 각종 나무와 식물들과 모든 동물들을 다 만드시고 난 뒤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온 세상이 마치 무대에 비교될 수 있는데, 즉 그 위에서 연기할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과도 같이 온 세상이 사람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또 창 1:27에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서 창조하셨다는 말씀애 주목합시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두 성(genders) 즉 남성과 여성사이의 구분을 두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비춘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행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인류를 하나님처럼 여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작정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들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처럼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주시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하시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사람 역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지혜로우시고, 선하시고, 질투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 역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이 모든 하나님의 속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별, 인종, 나이, 은사, 능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창 1:26로부터 우리는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비춘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과업을 수행함을 통해 행해진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여기서 다스린다는 것은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스립니까?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동일한 방식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은 왕의 자격으로 모든 피조물을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하여 땅에 모든 피조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땅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시 8편에서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한 다윗은 사람의 하찮음을 인식하여, 하나님께 다음과 아뢰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을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관대하시나이까?”(4-5절)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비교하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이 어떠하도록 창조하셨는지를 주목하십시오. “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의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른 피조물과 명백하게 다르게 하시어, 당신께 가까이 있는 위치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고귀한 사역을 찬양합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6-9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이 고귀한 소명을 우리는 “문화명령”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는 사람의 지위에서 죄에 빠진 타락의 결과

 죄에 빠지기 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 빠졌을 때(하나님의 편에서 사탄의 편으로 전락됨), 우리가 돼지나 식물이 되지 않았고 여전히 사람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비추어야 할 우리의 과업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비출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우리가 죄에 빠졌을 때에, 에베소서 2:1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분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죽음은 우리가 타락하였고, 부패하였고, 죄스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필한 후에 봉헌식에서 “범죄 치 아니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이다”(왕상8:46)고 고백했습니다. 다윗도 이와 비슷하게 시130:3에서 “야웨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라고 인정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야웨 앞에 죄책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친히 노아 당대의 사람을 내려다보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6:12). 죄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바입니다.

 사람이 죄로 인하여 어느 정도까지 타락하였습니까? 사람이 얼마나 악하게 되었습니까? “야웨께서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창세기 6:5) 이 본문에서 사람의 타락의 깊이가 얼마나 큰지를 강력한 용어를 구사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동, 생각, 말이 전적으로 동시에 계속해서 타락하였을 뿐 아니라, 사람의 행동 배후에 숨어있는 모든 의도와 모든 의향에 이르기까지 다 타락하여 부패하였고, 계속해서 악을 행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단지 어떤 특정한 국면만이 아니라, 출생해서 죽을 때까지 타락한 모든 인류를 특징짓는 것입니다. 로마서 8:7에서, 우리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 즉 사람 자체가 하나님에 대해서 무감각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서 적대감을 품고 있고, 또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아주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여 사람의 타락의 범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낫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낫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3:9에서 아주 강력하게 “결코 그렇지 아니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나 헬라인이나 똑같이 죄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구약에서 가장 확실한 용어로 이스라엘의 죄를 정죄하는 본문을 인용하여 사람의 죄의 보편성과 깊이를 증거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사람의 타락이 너무 심하여, 사람이 하는 것이란 악한 것을 말하고, 속이고, 거짓말하고, 협박하고, 저주하고, 상처주고, 죽이고, 파괴시키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선도 할 수 없기에,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 이 사실을 항상 반영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내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바울이 죄인에 대해 묘사하는 모든 말들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해 묘사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나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비추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죄에 빠졌고, 그 결과로 나는 죄악 되고, 타락하고, 부패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고, 하나님의 속성들을 반영하도록 하나님께 창조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속성들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불의, 부정, 불신, 어리석음, 증오를 드러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품성과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것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시 8편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를 창조하실 때에 가득 채우셨던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위치로부터 저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줍니다. 타락은 부분적이 아니라, 최상의 영광의 자리에서 최악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제가 얼마나 악합니까? 제가 제 자식을 죽일 수도 있나요? 제가 저의 형제조차도 외국의 노예 중간상인들에게 팔 수도 있나요?(창37장). 제가 저의 부모를 배반할 수 있고 또 죽음으로 넘겨줄 수도 있나요?(마24장). 제가 의인을 당국자들에게 넘겨줄 수도 있나요?(마26장).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에 아주 강력하게 “아니다!(NO!)”라고 답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대답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시면서 정죄하셨습니다.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 …” 사람이 가공할 만큼 타락하였기 때문에, 야곱의 열 명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혈육지친인 형제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입은 유대인들이 그 당대에 자신들 가운데 있던 단 한 번도 죄지은 적이 없었던 완전한 의인이 있다는 것을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목소리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고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의 나락으로 떨어짐으로서 극악무도한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자신이 떨어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까지 떨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14 항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받은 생명의 명령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본성이 부패하여 스스로 육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 사람은 모든 방향에서 악하여졌고 삐뚤어졌고 부패하여졌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탁월한 은사들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타락의 실제적인 범위가 요리문답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타락하여 완전히 선을 행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전적으로 악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여기에 대해 “그렇습니다(제3주일 8문답)”라고 강력한 답변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사탄의 진영에 자리를 잡았기에 우리 스스로 모든 종류의 악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성상 저는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악한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리문답에서 아주 단정적으로 내가 너무 타락하여서 본성상 모든 생각, 게획, 행동이 전적으로 악하다고 말합니다.

 타락한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속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영광스러운 구속의 신비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맨 밑바닥”으로 떨어져 죽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저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소위 저를 시궁창에서 끌어올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이 위대한 일은 나같은 비참한 죄인을 구원하심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가 넓고도 큼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성경은 다음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형상이시라…”(고후4:4) 똑같이 골로새서 1:15 역시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빌립이 예수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요14:8,9).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낙원에서 완전했던 것처럼 완전하시고, 완벽하게 하나님을 드러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거짓말을 하신 적이 없으시며,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진리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탐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당신의 자녀를 돌보시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반영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을 드러내셨습니다.

 구속받은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재창조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심으로서, 선택받은 자들을 사탄의 편에서 끌어내셔서, 하나님의 편으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더욱이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속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죽은 상태에 있지 않으며, 동시에 죄로 마비된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주의 날 제3주일, 제 8문답에서 사람이 너무 부패하여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중생함 없이는” 단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사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며, 또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사람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최초에 사람을 지으실 때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자신들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바울은 골로새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성령님의 재창조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3:9,10)

 바울은 다시 한 번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 사실을 반복하여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다시 창조된 사람은 그의 생각, 말, 행위에서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날 제3주일, 제86문답은 이러한 사실을 성경으로부터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재창조된  사람이 다시 완전하게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인용하여 언급한 고린도후서 3:18의 말씀과 같이, 바울은 “변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이 순간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람의  일생 동안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비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비춤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즉 복음 전도는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를 포착해서 그리스도를 말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비록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기회가 오기도 해 우리가 그런 기회를 사용할 수 있을지라도) 오히려 복음 전도란 나의 태도와 말과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언약의 열 가지 말씀은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 안내서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이 십게명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십계명에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 할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태초에 모든 인류에게 주셨던 과업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라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로서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반영합니다. 이 지식은 내가 왜 일해야 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하는 안목을 제공해 줍니다. 나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또 우연히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한 가지 이유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제 14항은 성경을 근거로 해서 사람이 “모든 방향에서 악하여졌고 삐뚤어졌고 부패하여졌다”고 고백하고선,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배격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은 죄의 노예일 뿐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지 않는 한, 스스로 아무 것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 고백합니다.

   아담(아담 안에 모든 인류가 있었다)이 타락하기 전에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두 왕국 사이에서 한 나라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었고, 또 반대로 하나님 나라를 등지고 사탄과 연합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우리도 마찬가지이다)이 타락하면서 사탄의 나라와 연합할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결과로서 아담은 단지 사탄의 나라 범주 안에서 어떤 특정한 행위의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인생은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차가 언덕을 내리 치닫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래로 곤두박질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즉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좌우로 치우치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담이 사탄을 선택함으로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었던 자유의지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즉 아담이 가진 자유의지는 두 나라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경계선을 반대하여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탄왕국의 경계선 안으로부터 택한 자를 이끌어내,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데려오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에 다시 들어온 자들이 자유의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는 그들 안에 남아 있는데, 그러하기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전적으로 어떤 선을 행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은 죄짓기를 결정할 수 있는데, 즉 사탄의 편에 들어서서, 사탄 나라의 경계선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택하신 자들을 붙들고 계시며 또 그들을 당신의 나라로 되돌려 놓으십니다.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입은 자녀들이 행할 수 있는 선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인하여 선행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입니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선을 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이며 또 그렇게 시도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단지 주님께 감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저를 당신 안에서 섬길 수 있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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