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회소개 | 예배안내 | 금주의말씀 | 자료실 | 포토갤러리 | 교제의광장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1-10 (일) 15:22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ㆍ추천: 0  ㆍ조회: 51      
IP: 121.xxx.81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믿음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믿음
2021년 1월 10일 주일 오후 설교
성경본문: 로마서 5:12-21; 창세기 1:24-31; 로마서 8:26-30
설교본문 : 벨직신앙고백서 13항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섭리에 대한 벨직 13항의 고백은 HC 1문답에서 요약하는 우리의 위로를 기억하게 합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나의 머리털 하나도 떨어질 수 없게 하시는 방법으로 나를 보호하시며...” 오늘 오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살피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위로가 얼마나 큰 위로인지 살펴보려 합니다.

 섭리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하나님 안에는 죄가 없으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죄는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집니다. 성경은 이 죄의 기원에 대해 증언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이 없으시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고백에 이를 것입니다.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어두운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죄와 죄가 야기한 비참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세계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죄를 창조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 죄가 가득합니다. 그러면 이런 죄가 세상에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타락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천사의 타락은 사람의 창조 이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경은 천사가 자기의 자리에서 이탈하였다고 말합니다. 유다서 1:6입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천사들의 과업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는 일입니다(히1:13-14). 천사들은 구원 얻을 후사들을 도와서 그들이 맡은 직무를 잘 감당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돕는 부리는 영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적지 않은 권능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천사들은 이 세상의 역사 곳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들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들 가운데 일부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일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더 이상 사람들의 종이 되기를 거절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미혹하는 거짓말쟁이들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직접 하나님을 상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사탄은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허용한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망치는 것이 스스로 취한 그들의 과업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우리가 창조된 이후 죄가 어떻게 들어왔는가? 입니다. 벨직은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들의 조성자가 아니시며 그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할 이유도 없으십니다.” 라고 정리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증거합니다. 특히 사람에게 비천한 것이 없었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비추고 있었습니다.

 비록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께 가까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영광이 찬란하였습니다. 사람 자신에게서 나오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동안 빛나는 영광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에 사람이 지닌 영광의 핵심은 하나님과 가까이함으로만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진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온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한 것들을 축복으로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적 왕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은 운명에 넘겨진 세계가 아닙니다. 이 세계는 언약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운명이 아니라 복과 저주를 포함한 언약이 주장하는 세계였습니다. 언약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거룩한 요구가 있고 사람 편에서도 하나님 앞에 책임과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언약에 대한 불순종의 책임은 전적으로 아담에게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아담은 그 언약에 순종으로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고 사탄의 미혹에 대해서는 방어해야 할 과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떤 운명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죄는 창조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죄는 분명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아담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림으로 죄가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언약으로 지켜지고 다스려지는 세상입니다.

 언약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죄가 언약의 당사자인 아담의 불순종으로 들어왔고 그 책임도 사람에게 있듯이 의로움도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죄가 따로 기원을 갖지 않듯이 의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의 범죄를 인하여 대속하시고 얻으신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롬5:14-16)

 우리의 아버지 아담과 우리는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죄로 죽을 때에 함께 죽었습니다. 아담은 오실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아담이 가진 대표로서의 지위를 그리스도께서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담이 모든 후손의 머리인데 반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자들의 머리, 곧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섭리교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섭리에 대한 벨직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뜻에 따라 이 세계 속에서 그분의 감독하심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계시하신 만큼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 너무 적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부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혹자는 이 ‘하나님의 뜻’을 마치 기독교 운명론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다 미리 아실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계시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언약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분명하게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을 받은 사람들 모두가 다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능력이 부족했다거나 마음이 변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결과는 언약을 따라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오직 이삭만 후사가 되었고 이삭의 두 아들 모두가 할례로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에는 야곱만 참여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언약보다 훨씬 더 크시지만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여주신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매이실 수 없지만 언약으로 인해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에 기왕 정하신 뜻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기꺼이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섭리하실 때 정해놓은 운명이 있어서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언약으로 백성이 된 우리의 기도를 위해서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할 때에 약속대로 용서도 하시고 복을 주시기도 하시며 진노를 내리겠다고 하신 후로도 복을 주시고, 반대로 돌이켜 저주로 갚으시기도 하십니다. 이것이 이 땅의 대리왕의 통치권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약이 없으면 우리의 기도도 단순한 희망사항을 중얼거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바로 이 약속이 변치 않습니다. 언약하신대로 의인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벨직 13항에서 하나님의 뜻은 그런 의미입니다. 결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이것도 약속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그 약속은 일방적인 운명이 아닙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 편에 그 언약이 유지되기 위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이 참되고 신실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성령님께서 말씀의 설교로 일으키실 때에 그 말씀을 잘 듣고 참된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그 약속을 받고서 믿지 않을 때는 언약의 복 대신에 저주를 받아 영원한 지옥에 던져집니다. 이 약속 때문에 우리 중에 누구든 불신을 나타내면 진정한 신자가 아닌가보다 하고 의심하는 대신에 그가 회개하도록 열심히 권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약속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그를 용서하시고 축복을 회복해 주십사 간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이 취소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관하여는 성경은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보좌의 생명책을 펼쳐 거기서 자기 이름을 엿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가 있을지라도 직접 그것은 알아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약속입니다. 우리가 붙들 것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선택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히 야웨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으로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밝히 계시하여 약속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또는 나의 불순종을 하나님께서 탄식하신다고 확신할 수도 있습니다.

 섭리교리는 믿는 자에게 위로이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이 우리의 삶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는가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신실한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교회의 직분자가 세상을 떠났거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면 우리는 훨씬 더 심각한 슬픔을 느낍니다. 그런 일들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의 표정은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고 좌절감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오늘 13항을 우리가 그대로 믿고 의지한다면 참으로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될 것입니다. 섭리교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위로가 됩니다. 어떤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롬 8:28).

 하지만 여러분, 섭리의 교리는 위로만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교리가 주는 위로는 그것이 큰 만큼 요구도 큽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가나안이 흉년이 들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굶주리게 되었을지라도,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 애굽에서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을지라도 그것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서 즐거워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때로는 죽을 것 같은 절망감을 주기도 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일에 실족합니다. 너무나 쉽게 좌절하고 괴로워하면서 우리의 이웃을 힘들게 합니다. 형제들의 위로를 거절하기도 합니다. 라마의 통곡 소리처럼 베들레헴의 어머니들이 아기 예수의 안전으로 기뻐하지 않고 자기 아들 죽은 일로 슬픔에 잠겨있었던 것처럼 마땅히 기뻐할 일을 슬퍼함으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립니다.

 참으로 우리는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섭리교리가 주는 위로를 너무도 쉽게 거절합니다. 설사 우리가 말씀이 주는 위로나 지체를 통해서 받는 위로를 노골적으로 거절하지는 않을지라도 실질적인 위로가 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섭리교리를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수도 없이 슬픔과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위로를 얻기 위해서 섭리교리 대신에 많은 인간적인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때로는 차를 몰고 바람을 쏘이며 한적한 길을 달리노라면 잠시 긴장이 해소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취미생활에 몰두함으로 긴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영화를 보면서 잠시 자신의 현실을 잊어보려고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섭리교리는 분명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큰 위로를 주는 교리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교리를 의뢰하는 믿음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를 들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더욱 커지고 자라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겨자씨만큼도 믿음이 없음을 인정하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일터로 우리 자신을 이끌어야 합니다. 보다 겸손한 자세로 말씀의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보다 겸손하게 형제들의 권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들의 권고를 받을 때 우리 자녀들은 그 가르침을 경청해야 합니다.

 섭리교리는 여러분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섭리교리가 주는 위로는 오직 믿음으로만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여러분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순간에,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에게 고통이 있도록 하실 때에 여러분에게서 이 믿음을 찾으십니다. 이 시험에서 낙심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섭리교리를 단순히 선한 뜻이 결국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오면 기쁨의 날도 오는 것이 우리가 경험한 일상의 법칙입니다. 대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즐거운 날에 즐거워하고 슬픔의 날을 슬퍼한다면 불신자보다 나을 것이 무엇입니까? 섭리교리를 우리에게 계시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슬픔의 날 동안에 하나님의 섭리교리를 믿고 소망을 갖고 슬퍼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말씀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언약백성을 위한 기도의 자리가 있습니다. 선을 이루기까지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부르짖고 필요한 것을 간구하면서도 주어진 처지에서 자족하고 기뻐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시작합시다. 아멘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91 교회의 직분자들에 대하여 파루시아 2021-04-18 1
190 ‘참‘교회 와 신자의 의무 파루시아 2021-04-11 10
189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파루시아 2021-04-04 16
188 율법의 성취이신 그리스도 파루시아 2021-03-21 26
187 성화와 율법 파루시아 2021-03-14 46
186 믿음에 의한 칭의 파루시아 2021-03-07 36
185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 파루시아 2021-02-28 44
184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파루시아 2021-02-21 36
183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파루시아 2021-02-14 38
182 구속이 필요한 인간 파루시아 2021-02-07 40
181 하나님의 선택 파루시아 2021-01-31 37
180 원죄 파루시아 2021-01-24 48
179 사람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사람이 진실한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 파루시아 2021-01-17 52
178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믿음 파루시아 2021-01-10 51
177 천지만물의 창조 특별히 천사들의 창조 파루시아 2021-01-03 48
176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파루시아 2020-12-20 65
12345678910,,,12
교회전화 : 053-638-2100 / 문의메일 : goorsend@hanmail.net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23 
운용지침 : 개인정보 관리책임 화원언약교회 운영위원회 / 개인정보 보호기간 : 회원탈퇴시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