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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1-01 (일)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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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
2020년 11월 1일 주일 오후 설교
성경본문: 시편 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항에서 하는 요약은 사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매우 중요한 고백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교인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이 아무 의심 없이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신학 이론을 고백한 결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목격하였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여 주신 돌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그랬지만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뭐가 다른 것입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이 믿음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언약의 말씀으로 자기를 계시하신다 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는 자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여러 비유들을 보면 당신께서 친히 창조하신 세상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나 땅과 바다도 사용하시고 아버지나 아들 신분이나 혼인잔치와 같은 생활의 양식들도 사용하십니다. 이 말은 이런 피조물이나 질서들이 본래 하나님의 계시를 위해 마련하신 방편들이라는 뜻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밭에 씨를 뿌렸더니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단순히 씨를 뿌렸더니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 피조물과 그 속에 있는 결실하는 법칙을 주님께서 비유로 사용하여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14-20).

 여러분! 이 말씀을 읽고 생활하는 언약백성들이 길을 거닐 때나 자신의 밭의 식물들이 열매를 맺는 것을 바라볼 때에 그들에게는 어떤 소리가 들립니까? 밭고랑이나 밭두둑에 밟혀 부러진 곡식을 볼 때 어떤 소리가 들립니까? “얘들아, 인내로 백배나 결실하는 자녀가 되도록 하여라. 환란을 당할 때에 결코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인내로 결실하라.”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처럼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는 성경을 읽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자들의 귀에만 그렇게 들립니다. 무슨 신비한 음성이 들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연의 재료들을 사용하여 가르치신 교훈이 우리의 귀에 그렇게 들리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들에 있는 백합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단순히 보이는 그대로 그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약의 백성들은 계시를 통해서 배운 언어로 이방인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습니다(마 6:28-31).

 “여러분, 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계십니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오직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혀주시고 여러분의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돌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더욱 먹이고 입히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눈에 보인 저의 모습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위로를 상기시키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일상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거룩한 소리를 듣고 묵상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감사의 생활을 한다면 우리 주변의 만물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신 계시와 비유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됩니다. 만물은 계시의 방편이며 계시의 도움을 받아 자기 언약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상기시키는 눈에 보이는 언어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분주하고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이런 자연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자주 바라보고 묵상하는 여유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을 보고 단순히 우리의 삶의 환경으로서 감사할 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기하면서 묵상하는 방편 삼아야 하겠습니다.

 무지개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언약을 상기시켜주듯이 우리는 길거리의 돌맹이들을 보고서도 그들이 하는 권고를 들어야 합니다. “만일 너희들이 마땅히 주님을 찬양해야 하지만 하지 않겠다면 우리라도 소리를 질러 그의 영광을 찬양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점에서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보면서 살아갑니다. 계시를 자연계시와 특별계시 둘로 나누지만, 사실상 한가지 계시만 있다고 말해야 맞습니다. 자연을 통한 계시는 성경을 떠나 독립적으로 계시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계시로 주신 것은 성경(언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흔히들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언약의 말씀이라고 부르기를 원합니다. 언약이라고 할 때에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성취되었고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도와줍니다. 성경은 어떤 신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책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책입니다.

 약속이라고 할 때에 우리는 당연히 누가 누구에게 한 약속인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면 그 약속의 한쪽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달리 말해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날마다 읽어야 할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족장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한쪽 당사자는 늘 족장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을 떠올립니다. 노아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왕국시대가 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의 족장과 약속하시고 그에게 언약의 요구를 짐 지우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창 12:7).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물론 언약의 대상에는 그의 후손도 포함이 되지만 언약의 당사자는 아브람입니다. 그를 통하여 그의 온 자녀들이 그 언약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또 노아와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과 직접 언약을 맺지 아니히시고, 가장인 노아 한 사람을 상대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에는 그의 온 가족이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만 언약의 당사자로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의 아버지이며 족장인 노아를 택하셨습니다. 그는 가족들의 아버지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분명 하나님은 자기 아버지 노아의 하나님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삭이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족장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는 아버지에게 위탁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통해 가족들과 교제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한 아버지가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단순한 혈통 그 이상으로 계시의 전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앉으나 서나 길을 걷거나 항상 동행하면서 받은 계시를 자녀들에게 전달해야 했습니다.

 계시가 이 땅에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족장)를 사용하셨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리는 직분입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하나님과 은혜로운 언약을 맺은 위대한 피조물이었습니다. 족장들은 자기들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상대로 교제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말 자체가 언약적인 용어입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이며 아들에게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계시를 맡은 직분자로 과업이 있다는 말입니다.

 언약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왕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언약백성의 규모와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한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 한 민족이며 왕국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아버지와 언약을 맺었던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의 당사자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한 족장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을 언약의 당사자로 세우셨습니다.

 출 19장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게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설립하시는 내용입니다. 이로 인해 언약의 당사자가 될 백성들은 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의복을 빠는 형식으로 표현하지만 전 인격과 생활을 성결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언약을 체결하고 언약의 요구를 모세에게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언약의 당사자로 한 백성을 다 불러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세는 이 언약 체결 예식에서 하나님과 백성들이 언약을 체결하도록 중보자로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것과 같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갈 수 없는 그들의 죄와 부패로 인해서 중보자가 없이는 하나님께서 사귀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비유입니다. 우리에게는 모세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신 하나님께 나갔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을 맺도록 길을 열어놓기 위한 봉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와 언약을 맺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중보자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당사자는 반드시 그 견고한 언약에 신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언약의 당사자는 언약의 말씀을 늘 묵상해야 하고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의 백성들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의 당사자가 되었으므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할 책임을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여 세상에 자신을 계시하신 이유는 단순히 당신이 창조주임을 알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어떤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계시의 목적은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을 맺어서 그 안에서 하나님과 피조물이 교제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사귐이 가능하도록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두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에 반응하여 순종할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이유는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사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할 때에는 단순히 얼굴이나 행동이 비슷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할 의무를 자녀가 가졌다는 뜻입니다. 한 가정에 있는 가족들은 서로에게 순종해야할 언약에 묶여 있습니다.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신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생들과 맺은 약속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약속을 떠나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단순히 신에 대한 정보를 얻는 말씀으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알아도 하나님의 요구에 신실하게 응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지식으로 알았어도 그분이 하신 약속에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언약의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과 4장에는 오래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멸망을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교훈으로 소개합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히 3:18).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 4:6).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순종하지 않아서 멸망한 것입니다. 언약은 그 당사자에게 믿음의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지식만 가지고 있고 언약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객관적인 지식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한 신에 관한 지식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멸망한 이스라엘이 그 증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이라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믿는 증거입니다. 약속 안에 요구를 두셔서 그 약속을 진심으로 믿는지를 시험하십니다. 요구가 있을 때, 언약 백성은 당연히 믿음을 사용하여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표가 됩니다. 이 불순종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을 야기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다는 말은 거기에는 요구가 있고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 있다는 뜻에서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언약의 말씀으로 이해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언약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이 밝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는 당사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객관적으로 좋은 말씀이어서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분명한 약속이기 때문에 읽는 것이고 거기에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서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언약의 말씀이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이름을 가진 구체적인 한 사람에게 약속하십니다. 약속을 허공에 대고 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불특정한 다수에게 듣거나 말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하나님과 언약이 체결된 구체적인 당사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 책임감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약속이며 우리가 눈과 입으로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 약속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에 그 약속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바른 신학체계를 세우려고 계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깊고 정통한 신학이론을 익힌 위대한 학자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넓게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 말씀을 언약의 말씀으로 알고 두려워하며 그 말씀에 일생 반응하여 살아가는 그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가정에는 여러 자녀가 있습니다. 어떤 자녀는 장성해서 부모의 말을 잘 이해하지만 어떤 아이는 어려서 간단한 말만 알아듣습니다. 누가 부모를 기쁘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기만 하는 자녀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로 이해하고 그 말에 반응하는 자녀가 아버지를 기쁘게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학문적인 관계가 아니고 언약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약속으로 이해할 때에 우리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약의 말씀은 매일 성경을 읽을 것을 요구합니다. 만일 훌륭한 신학서적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서 책장에 꽂아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은 우리가 이것으로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날마다 읽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별해서 듣고자 하거나 가끔 한번씩 듣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호흡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이 말씀 가운데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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