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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0-11 (일)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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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 붙이셨다.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 붙이셨다.
2020년 10월 11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사사기6:1-10, 신7:1-11
설교본문 : 사사기6:1-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기 6장은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기드온의 기사를 시작하는 내용입니다. 이 단락은 전체 기드온의 사역에 대한 배경에 해당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것은 기드온의 기사 전체를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우리가 알 것은 사사기 속에서 확인되는 이스라엘의 행태를 보면 교회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는 것이 거의 기적 같은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패악은 구토를 일으킬 만큼 처참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대적의 압제 하에 있는 이스라엘의 간구를 들으시고 구원자인 사사를 세워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한없는 은총과 긍휼의 하나님 앞에 교회는 찬양과 영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교회가 계속해서 진전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의 사역을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두 면을 보게 합니다. 먼저 교회 구성원의 반역과 불신앙, 유아기 같은 신앙형태로 육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교도적인 모습은 우리를 노엽고 낙담되게 합니다. 또 한 면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주권적이고 엄위로우신 사역입니다.

 사사기는 이런 두 면이 그 어느 성경보다도 더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인간 군상들이 행하는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덩어리의 교회 모습만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실망스럽고 불쾌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의 교회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손이 행하신 은혜의 사역을 보아야 합니다. 전 역사에 걸쳐 교회는 계속 갱신해 왔습니다. 그 때마다 교회는 이전의 실패와 나락에서 구원을 받고 새로운 개혁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사기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과 같이 교회의 개혁은 새로운 출발은 결코 오랜 시간동안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이내 옛 길로 돌이켰고 다시 타락했습니다. 이런 교회의 실패는 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 실패였으므로 더 슬프고 악한 행위입니다.

 이런 교회의 죄악과 실패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니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의 손이 행하신 위대한 승리로 인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교회로 모이며 교회 속에서 보고 확인해야 하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죄악된 백성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다”입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야웨께서 분노하신 이스라엘의 죄
2. 야웨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린 심판
3. 야웨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언하신 말씀

 1. 야웨 하나님을 분노하게 한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으로 진격해 간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행한 삶의 모습은 참으로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야웨께서 이미 주신 그 땅의 거민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우상과 거짓의 문화를 파괴하며 그들과 타협하거나 언약을 맺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특별한 소명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요구되어진 소명입니다.

 성도여러분!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은 단순히 그들을 도와서 기업의 땅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야웨께서는 이스라엘을 주의 기업의 땅에서 야웨의 백성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야웨와의 친밀한 교제를 즐기는 선택받은 백성 삼고자 했습니다.

 이 언약의 특권은 오직 야웨만을 섬기며, 야웨만을 즐거워하며 그분과만 친밀한 교제를 나눌 요구와 함께 주어졌습니다. 이 언약관계는 야웨안에서만 맺어져야 할 결혼관계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훼방되거나 침해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야웨가 아니라, 다른 것들에 의해서 지배당하거나 영향을 받게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사기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이 영광의 자리에서 쫓겨나 비참의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을 봅니다. 처음의 승리가 무력해 보이고 이스라엘은 가나안 거민들의 삶의 형태와 전혀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이교화 되었습니다.

 야웨와의 결혼에 불신실했던 이스라엘을 5장에서 실핀 것처럼 야빈과 시스라의 손에 붙여 고통과 압제로 인해 신음하게 했습니다. 이런 주의 백성들이 그 신음 중에 부르짖으며 주의 자비를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사사 드보라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삿5장 31절은 주를 사랑하는 자의 삶이 번영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그로인해 그 땅이 40년 동안 태평하였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협하던 원수가 제거되어졌습니다. 참으로 돋는 해가 비취었습니다. 그러나 삿6장에서 우리는 또 다시 “이스라엘이 야웨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본문은 말하고 10절에서 선지자의 책망을 보게됩니다. “  ”

 여러분! 이스라엘의 타락은 번영을 쫓아간 옛 방식과 같습니다. 비와 다산 등 자연의 힘, 즉 번영을 숭배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깊숙이 이 죄에 연류되어 있는지 지적합니다. 오브라에서 기브온의 아버지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고, 그는 바알에게 드리는 제단을 치장했습니다. 나무 목상에서 음란이 우상에게 절했고 또 음행했으며 자녀들을 희생제사로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야웨께서 참으로 혐오하는 죄악입니다. 어떻게 40년의 태평한 세월을 보낸 이스라엘이 이렇게 철저하게 타락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적 침체의 결과입니다. 야웨의 일에 대한 영적 무관심이 일으킨 결과입니다. 오브리에서 우상 앞에 절하는 순간조차도 이스라엘이 야웨를 잊어버리거나 멀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예배했습니다. 야웨의 교회를 무너뜨리고 자기 자신들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랫동안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악한 습성, 나쁜 성격, 잘못된 사고방식 등 이런 것들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과 다르게 행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교회 개혁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 기드온조차도 8장에 세겜에 가나안 여인인 첩을 두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재빨리 진리에서부터 벗어나 세상의 풍습을 받아들이고 쫓아가는 것, 이것이 진리를 쫓아가는 우리에게 암초입니다.

 이런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지함에서 벗어나 진리를 아는 일에 열심을 내는 일! 이것은 백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진리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사로잡혀 있습니까? 말씀에 불순종하고 타락하게 만드는 일체의 것들을 과감하게 잘라내기로 결심하십니까? 무관심과 무감각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그 때 지금까지 세워온 교회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 야웨께 불신실한 다른 교회가 우뚝 설 것입니다. 야웨께서 이런 배교한 교회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2. 야웨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린 심판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의 구원이 있은 40년 후 이스라엘은 다시 자기 방식대로 야웨를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다시 슬픈 일이 일어났는데 미디안의 손에서 압제를 당한 일입니다. 이 압제는 이전 가나안 족속의 손에서 받은 고난보다 훨씬 더 심했습니다. 7년의 기간은 20년의 압제보다 분명히 더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그 땅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미디안은 그들의 자랑인 약대를 몰고 폭풍처럼 이스라엘을 몰아쳤습니다. 마치 메뚜기 떼가 지나간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토지 소산물을 가져가고 남은 것을 불태웠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잿더미만 남았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황폐함을 보여줍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봅시다.

 역사에서 유목민들이 자연재해나 기근으로 인해 수확이 작아지면 주변의 국가들을 침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디안의 침공은 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의 대적,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싸웠고, 또 미디안과도 싸웠습니다.(출18장, 민22-25장)

 우리는 이스라엘과 싸웠던 동방의 많은 민족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기록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야웨께서 계신다고 말합니다. “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다.” 여러분, 이 일은 야웨의 손이 행하신 일입니다. 지금까지 야웨께서는 권능으로 이스라엘 주변의 악한 민족들의 습성과 모략을 억제하고 저지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의 심각한 우상숭배로 인해 야웨께서 그 빗장을 풀어버리사 주변의 대적들이 자기 정욕대로 이스라엘을 탐하고 보복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이 얼마나 크신지 이전에 야웨께서 심판하시고 그 악행을 억제시켰던 민족들을 사용하여 주의 사랑하는 자들을 파멸시키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움추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야웨께서 이전에 우리가 결코 경험한 적이 없는 이런 공포스러운 방식으로 우리를 압제하는 세력을 허용하시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런 압제와 핍박은 모두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야웨께서는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셨고,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참된 주님의 교회를 세우도록 불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야웨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진리에서 떠나, 주의 교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교회를 세울 때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전쟁입니까? 돈입니까? 번영을 추구하는 주변의 교회들입니까? 아니면 나약하고 결단력 없고 세속적인 자기 자신입니까? 때때로 우리가 삶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이 모든 문제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들이 권력과 돈과 사람들의 영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단순히 인간적인 일들이 아닙니다. 이 문제들은 신앙적인 일입니다. 야웨께서 진노가운데 허용하지 않으시면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디안의 압제가 기근이나 원한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웨께서 미디안을 사용하사 이스라엘을 압제하도록 허용하셨다고 말합니다. 야웨의 뜻이 아니면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게도 동일합니다. 머리털조차도 다 세신 바가 되고 자기 백성을 모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누가 이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교회를 삼키고 압제할 수 있습니까? 누가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교회를 빼앗아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무엇도.
다만 있다면 하나님 자신이고,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3. 야웨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언하신 말씀

 야웨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말할 선지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비참이 나의 탓인 것처럼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애굽으로부터, 모든 원수의 세력으로부터 너희를 구원한 것이 내가 아니냐? 너희의 땅을 주고 너희에게 모든 보화를 준 것이 내가 아니냐? 너희가 다시 원수들에게 압제당하고 너희의 땅이 파멸당한 것이 내가 너희를 구원할 힘이 없는 것처럼 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 분명히 나는 과거에 입증했고,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다. 너희는 너희 고통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내 백성이다. 내가 너희를 구속했고 너희와 언약을 맺었다. 너희는 내말을 듣고 내게만 순종해야 한다. 너희가 다른 길을 쫓아가면 너희의 죄와 함께 멸절될 것이다.”

 여러분! 야웨의 구원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저 땅에서 남보다 근심없이 잘 먹고 건강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야웨께서는 우리가, 주의 이름을 도움으로 삼으며 야웨를 위하여 살도록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미디안을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가나안을 심판하사 멸절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야웨께서는 진실로 이스라엘이 죄의 비참, 뿌리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의 문제(두통거리를)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 아니라.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될 때 비로소 참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교회가 자기 방식이 아닌, 자기 소견이 아닌, 야웨의 뜻을 쫓아 행하는 것, 그것이 주의 뜻이고, 구원받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야웨의 영광으로 인도받고 교훈받으면서도 야웨를 원하지 않고, 야웨의 명령에 불순종한다면 그 결과는 비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비참의 상황에 놓여 압제받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인 우리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스스로 비참을 쫓아간 결과입니다.

 성도여러분! 원수의 세력이 나타나 우리를 압제하고 곤궁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야웨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야웨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지옥과 죽음의 세력들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마귀와 악한 자들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야웨의 택한 백성이고 소유된 백성이기에 야웨께서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여러 환난과 고난으로 뒤섞여있을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분명하고 확고합니다. 우리의 삶은 언약적 삶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려내는 결과물은 오직 믿음과 신실함에 달려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오직 야웨만을 섬기기로 결심하십니까? 모든 우상들을 미워하고 혐오합니까? 여러분은 오직 말씀만을 순종하겠습니까? 자기 방식이 아닌 교회의 질서를 따라 ‘예’로서 순종하겠습니까? 야웨께서는 불신실한 교회에게 언약적 심판을 가지고 찾아오시지만 신실한 참교회에게는 위로와 평강으로 방문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언약적 삶의 현장입니다. 참으로 평강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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