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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5-10 (일)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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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의 부가 의미하는 것(8계명)
땅에서의 부가 의미하는 것
2020년 5월 3일 제 42주일 교리설교
봉독 본문 : 출3:21-22; 학2:6-9; 딤전6:17-19
설교본문 : HC4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복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교회 안에서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와 지는 것’이 곧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다’라는 도식이 대중적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재가 아래 합법적(?)으로 자신의 물질에 대한 욕망을 분출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흔히 자주 사용하기를 즐겨하는 성경말씀들이 “무엇무엇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구절들이나 구약성경에서 부유했던 많은 사람들의 예입니다.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 구절은 모조리 ‘물질적인 부’로 이해해 버리고, 구약성경의 부유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 복을 받아” 부자가 된 것으로 인용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빙자하여’ 세상의 물질적 복을 추구하려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무거운 죄입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우리가 동시에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실제로 부유했기 때문입니다. 족장들은 모두 부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대부호였고, 이삭 역시 그러했습니다. 야곱은 잠시 가난해진 것 같았지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나올 때는 그 역시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산 사람으로 유추되는 욥 역시 큰 부자였으며,  다윗, 솔로몬의 때에 이르러서는 그의 지혜와 함께 부를 자랑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금으로 지어졌고 왕은 상아로 만든 보좌에 앉았습니다. 실로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소위 ‘복을 받아’ 땅에서도 부자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많은 복들이 ‘현세의 복’으로 나타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언약의 복’을 보십시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언약의 복과 저주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복”이 나오지만, 이 복들이 사실상 ‘땅에서의 지복’입니다. 예를 들자면 언약에 순종하면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신28:5), “창고에 복을 주어 넘치게 하시고”(8절), “농사가 잘 되게 하며”(12절), 그래서 “꾸어주는 자가 되고 꾸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12절). 언약의 복은 사실상 ‘땅의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땅’도 이 땅에서의 재산입니다. 영적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들은 ‘땅’을 받았고, ‘부유함’을 받았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고 있노라면, 검소함과 절약을 강조하는 우리교회와 같은 교회들이 무언가 비성경적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저 기복주의적인 교회들이 더 성경의 내용과 부합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성경은 과연 물질에 있어서 기복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땅에서 잘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씀합니까? 둘은 치환해서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인 것입니까?

 땅의 부(富)의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본문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땅에서의 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땅의 부, 물질이 의미하는 바와 우리가 오늘 제 8계명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교훈이 직결되어 있습니다.

 1. 출애굽 당시

 먼저 출애굽 당시의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 봅시다. 출애굽기 3장 22절 말씀입니다.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하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른 주변에 있던 애굽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빌리던지 달라고 하던지 해서, 애굽 사람들의 패물이나 옷 따위를 받아 그것으로 재산을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명령은 출애굽기 11장 2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실제로 이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열 가지 재앙 중 아홉 번째 재앙까지 진행된 시기였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은 모조리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형국이었으므로(3절) 쉽게 패물 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는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얻은 이 물품들은 ‘자신들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물건들은 최소한 ‘빌린 것’이거나, ‘협박으로 뺏은 것’입니다. 탈취물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 후에 다시 돌려주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애굽을 떠나면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애굽사람이 순순히 내 주었다 할지라도 애굽 사람들이 원해서 준 것은 아니었고 하나님의 재앙이 두려워 쉽게 내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 사람들로부터 물건을 강탈한 것입니까?

 놀라운 사실은 이 일을 시킨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3장에서 이 일을 하도록 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21,22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 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결국 이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 물품을 취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것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주요한 포인트는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않겠다”는 부분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라는 부분입니다. 이 두 요소를 조합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의 물품으로 인해 부유하게 되었다”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였습니다.

 즉 출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인데, 이 구원에는 단순히 “애굽에서 나온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물품을 취함으로서 이스라엘이 부유해진다”는 개념도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의 구속 안에는 이방의 부를 흡수하여 부요케 되는 것의 개념도 들어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 선지서들에 나오는 ‘만국의 보배’

 이렇게 이 포인트에 관심을 갖고 성경을 보게 되면 성경에는 교회가 이방의 부를 통해 부요케 되는 많은 말씀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이 주제는 성경의 한 큰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 나라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에 관한 본문들에서 발견됩니다. 몇 가지만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예를 들어 이사야 18장 7절 같은 곳을 봅시다. 이 부분은 마지막 날 심판이 있게 될 때 일어날 일을 설명하고 있는 여러 장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영광스러운 날이 이르게 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쓰고 있습니다. “그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서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와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이 구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절정에 도달하게 되는 날에는 이방 나라들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께 나아올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2) 바로 그 다음 장인 19장 21절에도 보면 “그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재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0장에도 시온의 영광이 드러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이방의 재물을 의미합니다)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사60:3-5)

 3) 학개서 2장 7절에도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말씀하였고, 스가랴 14장 14절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스바냐 3장 10절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찌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지서의 가르침들을 종합하자면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금 이방의 재물을 받게 하신 의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말씀들에는 이방이 재물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나아오는 광경이 ‘마지막 날 일어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모습 중 하나로’ 그려져 있습니다. 즉 열방이 재물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은 ‘교회의 영광스러움이 어떠한 것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한 방편입니다. 이때 ‘재물’은 ‘교회의 영광’을 위한 도구입니다.

 4)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동방박사가 예물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찾아온 것은 이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동방’은 언제나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구약성경에 나와 있는 ‘이방인’의 대표자들이며, 이들이 예물을 가지고 온 것은 구약성경에 나와 있는 ‘이방이 재물을 가지고 나아올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마지막 날의 교회의 영광’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왕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선지서들이 말했던 “열방이 재물을 갖고 시온으로 나아오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앞에서 우리가 살폈던 이사야와 학개, 스바냐 등의 말씀들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역사의 마지막, 즉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하나님의 궁극적 통치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계시록 21장에서도 동일 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완성의 날에도 열국들이 자기 재물, 자신의 존귀한 것들을 가지고 이  나라 안으로 들어와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들이 가르치는 바는 무엇인가?

 그러면 이 말씀들이 가르치고 있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구약성경에 나오는 “땅에서의 부”, “족장들과 왕들의 땅에서 받게 된다고 명시된 부”, 더 나아가 신자에게 있어서 ‘땅의 부’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이 말씀들은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땅에서의 부는 ‘교회의 영광’을 상징함을 말해줍니다. 땅에서의 부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땅의 부는 교회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봉사합니다.

 1) 족장들 : 땅에서의 부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족장들의 풍요로움은 그들이 단순히 세상살이에서 좋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풍요는 하나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2) 언약의 축복과 가나안 땅 : 약속의 땅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이유도, 하나님 나라가 ‘땅의 지복’을 주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 나라의 복의 ‘보여지는 모형’이었습니다. 구약은 언제나 하늘의 복을 이렇게 그림책처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3) 그래서 다윗이나 솔로몬 왕의 번성 역시 단순히 ‘땅에서의 영광’이나, ‘국가의 힘의 강성’만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번성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솔로몬이 금으로 된 성전을 지었다는 것은 ‘신자의 삶의 목표가 금으로 된 집을 갖는 것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금으로 된 성전은 상징입니다. 호화롭게 지어진 하나님의 집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투영하는 땅에서의 모형일 뿐입니다.

 따라서 금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집은 본질이 아닙니다. 신자는 땅의 부가 언제나 ‘하늘의 영광’의 복사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4) 그래서 열방들이 보물을 가지고 교회를 향하여 나아오는 마지막 날의 묘사는 이방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값진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로 연합하여 오게 될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그때 이 열방의 부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돋보이게 하는 재료로 쓰입니다. 그 날에 세계의 부가 하나님 나라인 시온으로 몰려들 것을 보여줌으로써 교회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내용을 잘 이해한다면 부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 본질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 ‘교회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흉내내지 않습니다. 교회의 영광을 가지는 것이 신자의 삶의 목표이지 부를 갖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이 천국을 상징한다고 하면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 힘쓰지 비행기 표를 사서 팔레스타인 땅에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의 영광’이 구약성경의 부의 본질이라는 것을 잘 안다면 우리는 구약성경을 들먹이면서 땅의 부를 좇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잘 이해한다면 왜 신약성경이 부에 관하여 구약의 이런 예들과 전혀 다른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역시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땅의 부’를 ‘교회의 영광’에 적용시키지 않고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땅의 부’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곧장 이런 질문에 부딪힙니다. 왜 영적으로 가장 풍요했던 사도들은  헐벗고 가난하게 살았는가? 왜 사도인 바울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살았나? 왜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처럼 신자의 표본으로 나오는 이들이 모두 다 부자가 아닌가? 왜 오순절에 교회가 시작될 때, 경건한 사람들이 자기 소유의 땅을 팔아 사도들 앞에 내어놓았는가? 이런 질문은 구약의 ‘부’를 신약시대에도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장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마19:24)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서 부유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수긍하기가 너무 힘들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부자가 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기 더 어려워진다‘고 하십니다.”

 ‘어렵다’는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실상 가난한 사람보다 확실히 부자가 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부자에게는 더 유혹이 많습니다. 부자에게는 더 많은 탐욕이 뒤따릅니다. 부자에게는 더 많은 죄지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사실 그래서 고대교회 때 많은 이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덕으로 여겼습니다).

 땅에서의 부는 단지 ‘하늘의 부’의 투영물입니다. 구약의 ‘부’는 하늘의 영광과 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영광과 부’를 보여주기 위한 이 땅에서의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따라서 신자는 ‘땅의 부’가 언제나 제한적인 의미만을 갖는다는 것을 잘 인식해야 합니다. 땅의 부는 교회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종속요소일 뿐, 그 자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이런 개념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땅에서 돈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은총이 더한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가 우리에게 실제적 영향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다음의 신약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가장 실제적입니다.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은 창고를 지어놓고 양식을 가득 쌓아 놓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날 밤에 그 영혼을 찾으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주님께서 질문하시면서 결론으로 내리신 말씀입니다. 재물을 쌓는 것은 더 이상 하늘의 영광의 투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재물을 쌓는데 치중하는 사람은 오히려 천국에서 더 멀어집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눅12:22 이하)

 디모데전서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위해 부가 설명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신약의 이런 가르침들의 지향점과 일치함을 알게 됩니다. 방금 읽었던 신약의 구절들은 ‘땅의 부’를 경계하면서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고 가르칩니다. 즉 우리는 땅의 재물에 욕망을 갖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교리문답의 가르침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에 이해를 갖고 8계명을 대하면 이 계명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명확합니다.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십시오. “도적질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단순히 우리에게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것 이상을 가르칩니다. 이 계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이 ‘물질’에 관하여 가져야 할 자세에 관한 총체적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의 첫째 요지가 무엇입니까? “물질에 탐욕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요지는 무엇입니까? “물질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교리문답은 우리에게 땅의 부에 대한 바른 지침을 줍니다. 땅의 부는 우리에게 탐욕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탐욕에 대해 엄히 금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 땅의 부를 가지고 부 자체를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되고 ‘하늘의 부요함’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111문의 답을 보십시오. “나의 이웃의 유익을 증대시키는 일,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이웃에게 행하는 일, 어려운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과 또 그리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일하는 것”. 이것이 교리문답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이미 주로부터 받은 선물이 너무 많기에 이 은혜의 선물을 즐거워하며 참으로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든 하나님 나라가 현시하였음을 증거 하고, 교회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더 헌신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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