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회소개 | 예배안내 | 금주의말씀 | 자료실 | 포토갤러리 | 교제의광장

 secondsermon
주일오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3-08 (일) 12:43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ㆍ추천: 0  ㆍ조회: 20      
IP: 121.xxx.81
복있는 사람
복있는 사람
2020년 3월 8일 주일 오후 설교
성경읽기 : 시73, 눅6:20-26
설교본문 : 시1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누가복음을 살펴보면서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들었습니다. 오늘 그것을 정리하면서 누가 복된 자인지, 어떻게 주의 길을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지금까지 살펴온 누가복음을 잠시 정리하겠습니다.

누가복음에서 계속 강조되는 것은 ‘성전’입니다. 우리가 1장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누가복음은 성전에서 시작하여 성전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1장에 사가랴가 분향단에서 분향의 봉사를 이행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마지막은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성전에 머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끝납니다.

예수님의 할례 기사를 누가만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 성전을 떠나지 않고 이스라엘의 구속을 기도하는 한나에 대해 기록합니다. 열 두 살 된 예수께서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선생들과 논쟁하고 있는 사건도 누가만이 기록합니다. 또 누가만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기록합니다. 참으로 누가복음의 특징은 성전에서 시작하고 성전에서 끝내고 있습니다.

결례를 위해 올라가시고, 12세에 성전에 올라가 선생들과 담론을 나누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자신의 메시야 사역의 완성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합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기까지 예루살렘(성전)을 떠나지 말고 기다릴 것을 당부하며 승천하십니다. 참으로 누가복음은 성전신학이라 할 만큼 성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옛 시대가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예수님의 재창조사역을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시면서, 진정한 성전의 주인이시고 이제 이스라엘에게 구속을 가져오실 분이심을 증거해 줍니다.

또 이스라엘의 직분과 관련해서, 제사장으로 시작해서 제사장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1장 아론의 후손인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인 ‘사가랴’를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에서 ‘예수’라는 제사장에 관하여 읽게 됩니다. 1장의 제사장은 ‘벙어리’가 되어 성전에서 예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축복의 말을 선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24장의 이스라엘의 위대한 제사장인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복을 선포하십니다.

천사의 수태고지를 믿음으로 받으며, “하나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고백한 마리아, 그리고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방문하여 ’믿은 여자여 복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확고합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믿은 것을 믿는 여러분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실 뿐만 아니라 왕이십니다.

누가복음의 한사람, 의인이신 예수께서는 참으로 많은 죄인들과 오만한 자와 악인들에 둘러싸여 대치합니다. 마치 시편1의 정황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시편은 누가 복있다고 가르칩니까? 한 떼의 무리들과 대치해 투쟁하고 있는 상태를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차라리 시73편이 말하는 바와 같이 악인이 형통하고 오만한 자가 잘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 그런 형편을 복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정서입니다.
악인과 오만한 자들에 에워싸여 고난받고 역경속에 사는 삶이 어떻게 복될 수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 시1편은 현실감각이 없는 몽상가처럼 여겨집니다. 실제로 의인이 계획한 바는 대부분 좌절되어지고 우리가 많은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행하고 성령의 능력을 구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성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쨌든 본 시편을 함께 부를 수 있는 자들은 현실에 눈을 감아야 될 것처럼 보이며, 현실을 보면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바로 73편으로 기우는 것이 지당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시편73편은 사실 이 실망의 늪을 지난 사람이 부르고 있는 찬송입니다. 시편 73편은 우리 번역에는 잘 나타나있지 않지만 가정법적으로 시편기자가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그 악인처럼 오만한 사람처럼 입을 하늘로 두고 악인처럼 하나님을 향하여서 항거하고 싶은 바로 그 절망의 낭떠러지 속에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서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은 그 상태에서 이 시편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가 현실을 피상적으로 보면서 자기를 볼 때에는 진리를 바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악인 전체의 모습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됨으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바로 그들이 결국은 20절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그는 바로 자기가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현실이 참 현실이 아니라 위험한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제는 진정한 현실을 보고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27절"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로다"

시편1편은 복되도다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시편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시편이 이 '복되도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인생의 경험, 좌절과 그리고 실패, 때로는 그 가운데서 갈구하는 갈망과 기도와 그리고 인생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질투와 그리고 서로의 미움, 삶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나타나지만 결국은 그것들이 다 성령안에서 성화되어져서 '복되도다' 어떠한 소재로 이야기가 되어지더라도 시편은 복으로 가득찬 시편, 기자의 삶 그것이 바로 자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도록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우리가 잘 알죠. 거기에도 '복되도다', 사함을 받는 자들이 복되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주위에는 복에 대해서 굉장히 갈망하면서도 도대체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볼 겨를은 많지 않습니다. 대게 사람들은 무병장수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게 이 땅위에서 멋지고 신나게 살 때에 형통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이라는 것은 저쪽에 있는 것, 우리의 삶과 이 시대의 저쪽에 있는 것을, 상태를 복이라고 이해하나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복은 주님자체이십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저기 건너편에 있던 복이신 주님께서 강건너 와서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그것은 마치 저쪽에서 누릴 ‘복’을 지금 이곳에서 미리 경험하고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한 복의 그 즐거움을 여기에서도 맛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신앙안에서 누리는 기쁨, 지금 여기에서 누리고 있는 기쁨을 우리는 복이라고 할 수 있고 형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128편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내가 복되도다 형통하리로다". 스바여왕은 솔로몬을 만나고 난 다음에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솔로몬의 신복들이 복되도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주의 복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고 그리고 지혜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지혜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를 성경에서는 복되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5장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거기에 복받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을 한 번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복되도다하고 이야기는 하고 있으나 이 세상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복되도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의 특징입니다. 시편기자가 노래를 불렀지만 이것은 시편기자의 노래임과 동시에 주님의 말씀이죠.
주께서는 시편1편의 대치가운데 대결하면서 살고 있는 한사람을 가리켜서 복되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잘 보십시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도다". 5절 보십시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이것이 이 시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1절에서는 몇사람이에요? 1사람인데 5절은 '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 외로운 사람이 3절에 열매를 맺으니까 5절에 갑자기 의인의 회중이 나옵니다. 바로 한 사람의 복된 사람으로 인하여서 그 사람의 열매를 통하여서 여기에 의인의 회중이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의인들에게 순탄한 길만이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1절에 이것이 이미 드러납니다. 1절에 사실은 의인들이라는 복수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1절에는 의인들이 복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이 복수로 등장하고 있고 죄인들이 복수로 등장하고 있고 오만한 자들이 복수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실상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어울려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나가는 복수의 자녀들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편을 계속 읽다보면 이 외롭고 순탄한 길을 걷지 아니하는 한 사람을 인하여서 의인의 회가 있고 바로 이 마지막에 있는 의인들의 회 때문에 1절의 복되도다는 말씀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관점을 1절 자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무리들과 대치되어 있는 그 한사람의 모습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와서 5절의 관점에서 1절을 볼 때, 이 복되도다는 말이 무언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 사람,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고 있는 이 사람, 바로 이 사람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시편 1편이 애매한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삶이 이렇지 않습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들과 대치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주 구체적인 현실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바로 이 문만 나가게 되면 바로 이런 삶의 형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독한 위치에서, 이런 다수라는 상당히 많은 이 절대세력의 위협가운데서 우리는 정말로 쓸쓸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중이 지니는 위협입니다. 이 대중문화라는 것은, 대중성이라는 것,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형편을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숫자에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절대로 절대다수가 진리라고 하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왜 산상보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있습니까?

시편 1편을 한 번 보십시오. 절대다수가 있는 곳에 바로 힘이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많은 숫자에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함께 의논하고 함께 그것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악인들의 꾀라는 것은 그들이 함께 나누어 가진 인생살이입니다. 그들은 꾀를 모아서 우리의 형통한 삶을 누리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꾀와 의논인 것입니다. 바로 이 최대다수의 힘이 이제는 각자의 힘이 된 것입니다. 바로 그 힘센 집단에 가입되는 것이 개인이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가 어느 모임에 속하느냐? 바로 거기에 단순히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전체의 힘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나의 힘도, 각자의 힘도 거기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1장 1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9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제3계명) 파루시아 2020-03-29 8
138 예배의 특별한 방식(제 2계명) 파루시아 2020-03-22 4
137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제 1계명) 파루시아 2020-03-15 6
136 복있는 사람 파루시아 2020-03-08 20
135 믿음의 소망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파루시아 2020-03-01 18
134 전적 타락이라는 어두운 배경에 빛을 비추어 주시는 놀라운 은혜.. 파루시아 2020-02-23 19
133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파루시아 2020-02-16 31
132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과 믿음에 대한 고백 파루시아 2020-02-09 29
131 삼위 하나님의 은혜는 보존됩니다. 파루시아 2020-02-02 18
130 칭의와 성화에 대한 교회의 고백2 파루시아 2020-01-26 8
129 칭의와 성화에 대한 교회의 고백1 파루시아 2020-01-23 10
128 은혜의 방편에 기초한 언약적 예배 파루시아 2020-01-12 40
127 성례들에 대한 고백(벨직신앙고백서 제 33,34,35항) 파루시아 2020-01-05 22
126 2017년 9월 24일 오후 설교 관리자 2017-09-24 785
125 2017년 9월 17일 오후 예배 관리자 2017-09-24 381
124 2017년 9월 3일 제31주일 설교 관리자 2017-09-03 618
123456789
교회전화 : 053-638-2100 / 문의메일 : goorsend@hanmail.net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23 
운용지침 : 개인정보 관리책임 화원언약교회 운영위원회 / 개인정보 보호기간 : 회원탈퇴시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