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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28 (일)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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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8일 제10주일 교리 설교
섭리하시는 하나님
2017년 5월 28일 제10주일 교리 설교
성경읽기 : 시편33편
설교본문 : HC 10주일
찬송 : 시67:3, 73:4,5,8; 80:7,8; 34:1,8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10주일을 통해 듣게 될 말씀은 ‘섭리’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신경 해설에서 ‘성부 하나님’은 두 가지 사역으로 대표되는데, ‘창조’와 ‘섭리’가 그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이 만물을 ‘섭리’하십니다. ‘창조’라는 것은 ‘만드셨다’는 뜻이고, ‘섭리’라는 것은 그 만드신 만물을 계속해서 간섭하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전체 세상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고 있음에 대한 확신과 깊은 신뢰로 하나님의 이름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송영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이해로서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으셨다”는 개념이고, 둘째는 “저절로 되어졌다”는 개념입니다. 물론 이 두 견해 사이에 이런 저런 조금씩 다른 견해들도 있지만 크게 보면 이 두 가지입니다. 전자를 보통 “창조론”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진화론”이라고 부릅니다. 창조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때, 진화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을 때 나타나는 생각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진화론을 믿지 않지만, 진화론의 근원에 있는 핵심원리 무엇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연”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형성된 것은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라 주장합니다.
불신자에게는 “세상의 창조자”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이 존재하고 형성되는 모든 원리가 우연에 의해 된 것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창조의 두 방식 중 불신자가 생각하는 창조의 핵심 단어는 “우연”입니다.

성도여러분! 지난 주간에 우리는 “창조”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섭리”에 대해서 배웁니다. “창조”가 세상이 생기게 된 근원과 관련이 되어 있다면, “섭리”는 세상이 “유지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유지와 질서”에 관한 것에도 크게 나누면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불신자는 어차피 세상의 유지와 질서 자체가 우연히 된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놔두고, 신자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세상의 유지와 질서”에 관한 생각은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견해를 우리는 “섭리”라고 부르고, 두 번째 견해를 “이신론”이라고 부릅니다.

섭리는 우리가 오늘 27문을 통해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섭리 신앙은 27문의 뒷부분에서 고백하듯이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과 같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계시는 일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신론이란, “하나님께서 비록 세상을 창조하시기는 하셨지만, 세상을 창조하실 때 ‘법칙’을 함께 지으셔서, 세상을 이 법칙에 맡겨 버리셨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신론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관심한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버지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용입니다.

진화론과 이신론의 유사점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해 진화론과 이신론이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화론은 신을 부정합니다. 그런데 이신론은 신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이신론은 그나마 굉장히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이론은 사실상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둘은 닮았습니까? 진화론은 세상이 “우연”에 의해 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신론은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칙”에 의해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두 이론의 유사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에게서 “하나님을 소외시킨다”는 점입니다. 진화론과 이신론은 겉으로 얼핏 보아서는 하나는 무신론이고 다른 하나는 유신론인 것처럼 보이지만, 둘 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외시킵니다. 이것은 악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마태복음 10장 29-30절 말씀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은 “시장의 법칙”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장의 법칙이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렇게 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결국 시장에서 물건의 값이 결정되는 것은 누구에 의한 것입니까?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입니다.

2. 사도행전 17장 27절과 28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여기에서 ‘살다’, ‘기동하다’, ‘있다’라는 단어들은 헬라어로 모두 “현재형”입니다. 헬라어의 시제는 우리나라 말이나 영어와 좀 달라서, 시제가 단순히 ‘시간적 상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라어에서 시제는 “한 번 시행되어 그 결과가 그칠 때” 단순과거형을 쓰고, 현재형을 쓸 때는 “그것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 반복되어 되고 있는 상황”을 말할 때에 씁니다. 즉,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영어의 현재진행형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는 표현은 지금도 계속해서 그의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기동하며(움직이며) 있고,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손을 놓고 관망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에게 사역하고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3.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세계의 기초를 놓을 때 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이것은 창조와 관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장에서 창조에 관한 것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존하고 움직이고 계신 것에 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38:22-23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24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25-27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레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29-30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32 “네가 열 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지금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세밀하게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신론자들을 향하여 성경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섭리”에 대한 고백입니다.

섭리란 무엇입니까? 제 10주일은 이 “섭리”에 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도신경에서 “성부 하나님”의 파트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성부 하나님에 관하여 “성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오,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특별히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 방식”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그런데 9주일에서 교리문답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뿐 아니라,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서 이 창조한 모든 것을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는다”라고 가르칩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이” 일어납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가 앞에서 살폈듯이 이 섭리 사상과 정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연”입니다. 교리문답 27문의 마지막 부분은 섭리를 설명하면서 “우연이 아니라”라고 합니다. 즉, 섭리는 “우연”의 반댓말입니다. 세상은 우연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섭리입니다.

원래 섭리라는 말은 “계획”을 의미합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겠다라고 정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 계획은 성경에서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33:11)라는 말씀이나, “하나님은 그 뜻(계획)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6:17)라고 할 때의 의미입니다. 즉, 성경에서 섭리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기로 작정하셔서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섭리란, “모든 일이 주의 뜻대로 될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섭리의 어원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 단어의 헬라어 “프로노이아”는 동사형 “프로노에오”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돌보다”, “관심을 갖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디모데전서 5:8에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할 때,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섭리는 “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12:17에서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할 때, “도모하다”에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섭리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마음을 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헬라어에서 섭리라는 말의 의미는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섭리에 대해 종합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계획하시고,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것에 관심을 가지시고 지속적으로 돌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유지와 질서에 있어서 하나님을 결코 소외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을 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섭리신앙을 가질 때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교리문답은 우리가 섭리신앙을 가질 때의 유익을 28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도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을 통해 동일한 고백을 경험했습니다. 교리문답은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알 때,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역경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며
     장래 일에 대해 신실하신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음을 굳게 확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섭리 신앙을 가질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주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러실 수 있고”, “신실하신 아버지시기에 그리하기를 원하신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가르침에 하나를 더 얹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세계를 내버려 두시는 무관심한 하나님, 그래서 피조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에,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실 것을 믿으며, 따라서 역경에서도, 형통에서도, 장래 일에 관하여도 하나님을 굳게 붙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섭리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께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를 살펴봅시다. 시편 33편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하심”이 나타납니다.

6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어졌고,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습니다”
10절 “저가 열방의 도모를 폐하심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십니다”
13-15절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모든 인생을 감찰하십니다”
18-19절 “그리고 저께 기대는 자를 건지시고 살리십니다”

이 창조와 섭리를 고백하는 것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결과물은 무엇입니까?

예를 보면서 이해해 봅시다. 6절과 7절은 하늘과 바닷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난 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8절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고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보고 난 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1절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보게 될 때 나타나는 반응은 “찬양”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송영”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창조와 섭리의 아버지”로서 이해합니다. 우리는 방금 조금 전에, 이렇게 창조와 섭리로 이해할 때에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역경을 이기고,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에게 “송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편 33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큰 소리로 고백하는 것이 바로 “송영”입니다.
실로,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을 알고 고백하는 모든 신자는 전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송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성경이 그리는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이 분은 끊임없이 자기 백성의 앞길을 계획하고, 돌보시며,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이것을 깨달았다면, 마땅한 송영으로 나아갑시다. 송영으로의 삶, 그것은 참으로 개혁신앙이 추구하는 신앙이요, 크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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