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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21 (일)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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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1일 제9주일 교리문답 설교
하나님! 우리 아버지
2017년 5월 21일 제9주일 교리문답 설교
성경읽기 : 요17:1-26
설교본문 : HC 9주일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9주일과 10주일의 제목은 성부하나님과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한 분 하나님의 경륜적 사역에서 우리는 삼위로 사역하심을 배웠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 걸쳐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배우려고 합니다. 8주일에서 우리는 이 사도신경에 요약된 내용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통해 증거되며, 특별히 성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모두 나타나고 있는 부분을 통해 이 삼위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삼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우리의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배운다는 것은 한켠의 지식으로 쌓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것이 실천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삼위로 우리에게 계시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반드시 삼위로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았다면, 이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주간 동안 이 삼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 삼위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까? 신자의 모든 삶이 삼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과, 신자의 모든 구원이 삼위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셨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살아, 역동적으로 숨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실에서 배우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저는 오늘 천지의 창조주와의 독특한 결속관계에 관한 고백인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사도신경의 제일 첫 번째 부분으로 성부 하나님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도신경은 “신자가 되는 관문으로서의 세례문답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필수적으로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동반합니다. 초대교회 때에 신자가 되려 하는 자는 반드시 공적으로 ‘Credo’(나는 믿습니다) 라고 세 번 고백해야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입니다. 우르시누스는 이 부분에서 “믿는다”라는 의미를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에 대해 배울 때,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사실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는 역사적인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요, 후자는 참된 믿음 혹은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어떤 존재가 계시며, 그가 그의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그런 존재, 즉 영적인 본질이시오, 전능하시며 영원하신 성부 성자 성령이시라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그가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 즉, 그 하나님 자신과 또한 그가 가지신 모든 것이 다 나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믿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존재 사실을 믿는 것”은 단지 특정한 인격자가 그의 속성대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하나님께서 그에게 속한 모든 것들로 그의 아들로 인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우르시누스의 지적을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가 바로 나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보여주는 함의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중에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점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또한 창조만 하셨을 뿐 아니라,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 이 모든 것을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점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 안에서 한 가지 주제,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요리문답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 구문에서 요리문답은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요리문답은 이 창조를 행하신 성부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라고 표현합니다.
이 내용은 세 번째 문단에서도 나타납니다. 요리문답은 이 성부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부분”을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되시는 것이라고 수식어구를 분명히 넣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없는 문장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요리문답의 작성자들이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요리문답의 작성자들은 우리들에게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은 원래 우리의 아버지였던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해서 보여주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약간 신학적인 어구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철저하게 기독론적이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로마서 11장 36절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즉, 신자라는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으면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함!”, 신자라는 존재는 “그 존재의 근원 자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작성자들은 이 요리문답을 배우는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거저 된 일이 아님을 강조해서 알리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구원과 선함, 우리의 창조와 존재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모든 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이 절대로 선을 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불러 일으키는 죄인”일 뿐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이 사실을 잘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 분의 아버지” 곧, “미쁘시고 신실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실 뿐입니다.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는다면, 어떠한 인간도 결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용납 받았음을 배우기 이전에, 우리가 무시무시한 죄인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자신이 무시무시한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닫지 못하는 자는 절대로 구원의 은혜를 지각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우리는 요리문답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있어,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의존하고 있음”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할 때, 그 다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양자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의 실력으로, 우리의 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입양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속죄를 감당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한복음에서 발견합니다. 요한복음 14장 이후 17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는 잡혀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긴 말씀을 전하시는데, 이 내용들은 절절하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그 권세를 위임하셨는지”가 나타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17:6)...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9절)....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6절)...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21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바로, 아들로서....자기에게 주어진 자들을 성부 하나님께로 돌리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4-6)

우리는 우리의 아들의 신분이 우리의 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일임을 이 구절을 통해 발견합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첫 구절에서 “전능하시며,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 아버지라는 부름은 애초에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었고, 우리는 그 분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요리문답은 마지막 부분에서 이 “아버지”의 고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뒤에 설명으로 달아놓았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점이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자애로우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점으로 논증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크게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에 기인하여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시면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그리하실 수 있고, 신실하신 아버지이기에 그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 문장의 바로 위에 있는 내용들, 곧 그가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며, 이 눈물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 당하게 하시는 어떠한 악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을 내 뜻대로 조율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가까운 사람들이 죽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고나 전쟁을 겪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러한 경우 속에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이 모든 것들이 “전능하시며 천지를 지으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인줄을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바라볼 때, 조급하고 힘들고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바다에 풍랑이 치고 있을 때, 예수님이 한 배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죽을까하여 두려워 떨었을 때, 주무시던 예수님께서 깨셔서는 무엇이라고 그들을 야단치셨습니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막4:40)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파도와 폭풍을 일으키는 주재이신 예수님께서 거기에 함께 계신데, 그들이 어떻게 죽을 수 있습니까? 파도는 그들을 죽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입니다.
때로 몸과 영혼에 필요한 것이 부족할 지라도, 때로 눈물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 악을 당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신자는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자가 안심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맨 마지막 문장을 보십시오.
-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아버지이기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의지하며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오늘 우리는 사도신경의 첫 번째 부분, 성부 하나님에 관한 부분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원래 우리에게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이었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의 짐을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양자로 입양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능으로 우리가 아들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가능케 되었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아버지되심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으로 그 일들을 해결하실 수 있고,
- 하나님께서 신실한 아버지이심으로 그 일들을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이 “아버지”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입시다. 이 한 단어가 갖는 함의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우리를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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