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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11 (일)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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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1일 주일 오전 설교
한 사람이 있었다!
2016년 12월 11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읽기: 욥1:1-22,
설교본문 : 욥1:1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몇 년부터 짧게는 몇 주간 동안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든 사건으로 홍역을 앓았습니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어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사사로이 남용함으로 피해를 입은 자, 억울한 일을 당한 자, 심한 자괴감을 느끼며 울분을 토한 수많은 시민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책임을 진 자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공연히 고난을 당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의의 측면에서 선을 행한 자가 높임 받고 상을 받으며, 악을 행한 자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일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숨 쉬며 사는 세상이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님을 경험합니다. 의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을 받습니다. 부정을 행하며, 정의에 눈을 감고 사욕을 쫓아간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런 일로 인해 분노를 쏟아냅니다.

의인의 고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며 이해해야 할까요?
이면에 대해 욥기는 무엇을 보여주며 어떤 지식을 제공합니까? 앞으로 한 동안 주일 오전 욥기의 본문을 살피며 주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절 ‘한 사람이 있었다’로 욥기는 시작합니다. 욥의 구조는 1-2장은 산문, 3: ~42:6까지 시, 42:7-17은 다시 산문체로 되어 있습니다.

욥기의 긴 단락에서 증거되는 고난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끈질긴 투쟁은 어쩌면 1,2장에 기록된 천상에서의 회의 결과로 인하여 빚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상과 지상의 넘다들며 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며 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선인에게서 선행이 나오고 악인에게서 사악함이 나온다는 것이 사람들이 갖는 덕목입니다. 그러므로 상벌의 응보는 정의에 근거합니다. 까닭없이 어찌 그리 큰 재난을 당할 수 있는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쟁(3장이하)의 주제입니다.  그런 독자들에게 ‘고난’과 ‘하나님의 주권’을 다루며 설명합니다. 욥기에서 욥은 참으로 순전하고 매사에 여호와를 의뢰하고 인정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그런 욥에게 밤사이에 엄청난 고난이 연거푸 찾아옵니다. 그런 고난 중에도 욥은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고 그 확신이 욥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점점 더 심한 고난을 받게 됩니다. 그로인해 욥은 슬픔에 잠겼고, 그의 삶은 처절해졌습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바꾸셨는지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신실한 사람 욥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질문을 합니다. 왜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그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가? 왜 악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한 것을 기대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찾아오는가? 욥기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 관해서 말해줍니다. 욥의 입에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모든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비록 욥이 이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의 감정이나 지성으로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을 지라도 적어도 욥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얻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욥의 생애를 통해서나 우리의 인생살이를 통해서거나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체험한 인간의 고통을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원인을 찾아야했습니다. 그래서 해답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어긋나는 사실을 대면했을 때 편치 못 했습니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의 신비에 기꺼이 직면하려하기 보다는 그것을 풀어야 하는 문제로만 다루기를 고집합니다.  그로인해 그들은 욥기의 말미에서 여호와의 날카로운 책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욥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진행할 수 있는 용기와 소망을 주는 위안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욥은 누구?
욥은 신화적인인물이 아니라 실제의 인물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노아, 다니엘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겔14장) 그리고 신약성경 야고보서5장은 이 역사가 당대에 고난당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의 생존시기와 장소는?

성경은 우스땅에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우스 땅이 지도에 어디인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아 장소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욥이 가나안 땅에 살지 않았다는 점과 그가 유력한자로 한 도시 근처에 살았다는 점은 유추할 수 있습니다.(욥29:7)

욥의 생존 시기는
욥은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한 사람입니다. 8절에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나의 종’이라 하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대적자, 불순종하는 자입니다. 그 대적자에게 욥은 나의 종이요, 지상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는 큰 무리의 가축 떼를 소유한 거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이 이 소유물에 있지 않았습니다. 욥의 가장 큰 부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거부이면서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가 소유한 큰 가축 떼로 인하여 그는 양모와 가축을 매매하며 큰 사업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정직하고, 의로운 자로 신뢰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점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오늘날 정직하게 사업하면, 부조리한 관행을 다르지 아니하면 사업해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 모든 관행과 악에서 자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욥의 부와 형통을 인과율로 설명하려합니다. 욥은 경건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욥이 누리는 특권을, 그의 지위를 갑자기 거두어 가버린다면 그 때에도 욥은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이 말은 욥의 순전함의 이유를 하나님께 받은 복 때문이고, 또 그가 계속해서 경건을 지키는 삶을 사는 이유 도한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함이라는 시각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번영이 지속될 때는 하나님의 인도를 의지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갑자기 우리의 삶을 뿌리채 흔들어놓으신다면, 그 때에도 하나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 버린다면 그 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남아있겠는가?

욥(한가정의 아버지로서의)의 위치
아버지는 자기 가족을 이끄는 자입니다. 이말은 아버지는 완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자기 가족을 잘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또 선지자적 임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도록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경건한 언약 가정의 식탁에서는 성경을 읽ㄱ고, 기도하고 시편을 찬송하며, 자녀들이 교회로부터 배운 주의 말씀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지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선지자적 직무가 얼마나 무시되고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지요?

아버지는 가족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지는 일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합니다. 자녀들의 성적표나 그들이 다른 어떤 일을 성취하는 것에 대한 것보다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의 교제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욥은 참으로 아버지의 직무를 성실하게 잘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축제의 날에 자녀들이 잔치를 벌인 후 그는 자녀들을 불러 그들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립니다. (이 불타는 제물은 후에 갈보리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것을 미리 보여주며, 그리스도의 제사를 대신해서 구약적인 방법으로 자녀들을 위해 죄용서를 간구합니다.)

자녀들이 방탕하기 때문도 아니고, 자녀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도 아니라, 자녀들이 자신들의 일상의 삶과 잔치를 즐기면서 결코 그 일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번제라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배우게 했습니다. 욥은 불평하는 자, 즉 사단이 그 집에 들어오기 전에 자녀들을 위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욥에 대한 여호와의 판단

찬상에서 어전 회의가 진행중입니다. 사단이 세상을 순회하고 막 돌아와서 천사들과 함께 그 회의에 참석합니다. 계12장은 사단을 가리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우리 형제를 참소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사단은 세상을 둘러보며 도처에서 신자들이 타락하고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의 일, 엄청난 고발을 할 수 있는 자료였을 것입니다. “땅에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순전하게 행하는 자들이 없나이다. 당신의 백성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악을 행하며 불의를 쫓아 행하더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며 아껴주심은 불의합니다.”라고 사단이 하나님께 도전하지 않았을까요...그런 상황에 하나님께서 친히 강조하여 물으심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십니다. “네가 나의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하나님은 재차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그런 칭찬을 듣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가장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죄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욥의 경건을 칭찬하십니다. 참소하는 사단의 얼굴 앞에서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향하여 사단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물론 인과율을 끌고오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의 문제제기입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1:9)

사단은 욥의 경건을 이기적 욕망이 충족된 것으로 몰아붙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행복한 가정과 큰 부와 명예를 주셔서 그가 번영을 누린 까닭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면 욥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건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제기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평가를 신랄히 비판합니다. 참된 사랑 순정한 신앙은 없다고 사단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과연 사단이 옳고 하나님이 틀렸는가? 아님 사단이 틀렸고 하나님께서 옳으신 것인가?

우리는 욥기를 살피면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 문제는 큰 재난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입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신임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나님

성도 여러분! 사단의 고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일언지간에 “사단아!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 즉시 물러가라!” 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단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욥의 극심한 고난은 없었을 것이고 이후 본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마치 사단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듯이 허락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욥의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신뢰에서 찾고 싶습니다. 온 세상을 두루 다닌 사단이 본 모습, 의인은 없고 악인이 처처에 행행하며, 이기적 욕심을 경건이라는 포장에 감싸며 행동하는 많은 거짓의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다. 경건이 결코 부와 성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행위 조차 더 큰 복을 받기 위한 도구처럼 정죄하며 비난하는 인과율에 갇혀있는 사단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언약적 교제의 관계는 결코 인과율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함이 아닐까?라며 답을 해 봅니다.

욥으로 대표되고 있는 언약 백성의 믿음의 행위는 그 당사자 스스로의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의 열매이기에 따라서 사단의 어떤 공격에도 저항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자의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은혜가 항상 앞섭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이 앞설 수가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또 한 가지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신자의 믿음의 행위는 그의 언약적 행위임과 동시에 신자 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사실입니다. 욥 안에서 쉬지 않고 일하실 하나님이 불변의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언약의 야웨이시기에 하나님은 결코 사단의 모략이 성취되도록 손을 거두시고침묵하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비통한 슬픔이 우리를 감쌀 때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슬픔! 그것은 우리의 삶에 보람을 주는 행복이 사라질 때 찾아옵니다. 슬픔! 그것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우리의 기대가 좌절될 때 찾아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에서 믿음과 슬픔을 절충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 슬픔가운데서도 믿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욥은 인내와 경건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ㅇ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저와 여러분은 결코 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욥의 인내와 견인을 쫓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인내, 욥의 견인 그 자체는 우리에게 도전은 될지언정 결코 위로와 해답은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욥기에서 얻을 수 있는 복음의 부요는 우리가 욥과 동일하게 사람으로 지어졌다는 사실과 엽의 하나님이 동일하게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욥의 신앙을 확정하며 끝까지 견인하신 야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동일한 믿음을 주셨고, 견인의 복음을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욥기는 욥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예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쁨 소식이 됩니다. 이 복된 메시지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바라는 모든 자에게 “내가 너를 끝까지 도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욥이 당한 고난의 내용
사단은 욥의 가족과 재ㅔ산을 마음대로 처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욥 주변의 무고한 자들의 상당수가 죽어 희생됩니다. 사단은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칼, 번개, 대풍)을 사용하여 살해합니다.

이때 우리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욥에게 재난을 야기한 사단의 이름이 빠져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식을 전하는 자가 달음박질하여 욥에게 재난의 소식을 알려줍니다. 그 소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이어 다른 재난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이 재난이 상당히 치밀하게 계획되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장 강도가 높은 소식이 마지막에 보고됩니다. 사건마다 한 사람의 생존자가 남게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그 학살이 진행될 동안 사단은 욥에게 이 소식을 알려줄 생존자 한 사람을 보호해서 남겨둡니다. 땅이 번개로 불탈 때 사단은 한 사람이 도망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집이 폭풍으로 무너졌을 때도 사단은 한 사람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난을 전하는 자가 사단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가해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바사람이 그랬습니다. 욥이여! 번개 때문입니다. 갈대아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대풍 때문입니다!” 이렇게함으로 욥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저주하게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욥이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유혹한 자는 바로 보이지 않는 사단입니다.

문제는 욥이 자신에 관해서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거론된 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애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연거푸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욥은 큰 슬픔에 잠겨 자기 겉옷을 찢고, 머리와 수염을 깎았습니다. 이것은 욥이 비천함과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런 일연의 상황을 사단은 예의주시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순간이 왔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사단이 옳았음을 증명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성경으로 눈을 향하여 돌립시다. 욥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는 비천함과 겸비함을 드러내면서도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상체를 구푸립니다. 이것은 경배하는 자세입니다. 욥은 큰 슬픔으로 넛을 빼앗기고 자제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욥이 말하길,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왔으니, 벗은 채 돌아가리라.”
성도여러분! 욥은 스바 사람이나 갈대아 사람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는 번개와 대풍과 같은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욥은 그것을 초월해서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그는 사단도 언급하지 않고 곧 바로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욥은 머리에 떠오르는 수 백 가지의 의문에 대하여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수많은 ‘왜’라는 질문 가운데 그에게 분명했던 것은 “여호와께서 취하셨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이 고백을 단순히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조금 더 진행해야 합니다. 사단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욥이 이모든 불행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저주하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다른 이가 아닌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행복을 파괴시켰다고 욥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1:11,2:5)
정말 이 관점에서만은 사단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욥이 그 모든 재난에 여호와의 손이 함께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취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저주합니다.는 말이 욥에게서 나와야 하는데, 그러나 욥의 마지막 말은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십시오”입니다. 그의 구푸린 몸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여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성도여러분! 상과 벌이 주께 있습니다. 모든 것의 주권이 야웨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 처해서 나의 받는 고난과 환난이 여호와께로부터 왔습니다. 주님이 취하십니다. 이 말은 이 재난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욥이 원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하나님의 변덕스러움과 욥의 불굴의 신앙심만이 남게 됩니다. 욥의 경건, 욥의 신앙이 오히려 높여져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입장입니다.

욥은 자신의 소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함으로 스스로 그 어떤 것에도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후에라도 욥은 여호와께서 도로 취하실 권리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면에 있어 우리는 종종 실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이유없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권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를 취하시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건강을 멈추게 하시는 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우리에게 곤고한 날이 계속되는지 의문을 갖고 못견뎌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한 번 주어진 것은 계속해서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재산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면 다른 것으로서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계속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욥의 고백과 찬송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취하는 것을 통해서도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해 욥은 극심한 슬픔을 겪습니다. 당연히 욥이 갑작스런 자녀 잃어버린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 분별해야 할 것은 욥이 자기 불행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욥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욥의 소유에 대해 그렇게 행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은 선하고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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