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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1-20 (일)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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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0일 오전 설교
산 위의 동네인 교회
2016년 11월 20일 오전 설교
성경읽기 : 신6:1-27, 고후2:1-17
설교본문 : 요1:19-23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회가 참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대통령의 사과문의 한 인용구인 소위 “이럴려고 내가 ...”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가득이나 어려운 경제환경, 안보환경에다 국가의 국격이 송두리 체 흔들리며 끝없는 공항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합니다.
국민을 섬기도록 맡겨진 통치권력이 남용되고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지금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습니까? 광장입니까? 골방입니까? 방관의 자리입니까?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의 통치가 위협받고 무너졌을 때, 신자는 위정자의 죄를 책망하고 질책하는 것이 정당한 권리요 책임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빚어진 일련의 일들에 교회는 피해자인가 아님 가해자인가?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 ‘피해자’로 서있다면 우는 자와 함께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반면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다면 자신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 진솔하게 인정하며 참회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카오스의 한국 상황에 있어서 교회는 ‘가해자’입니까? ‘피해자’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이런 위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서야할 자리가 어디여야 할지 참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오전 설교의 주제는 “야웨께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증거하는 증인되게 하신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에 대하여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정체성, 즉 ‘내가 누구인가?’를 바르게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할 때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착각하게 되고 지켜야 할 자리를 분별치 못하는 자는 결국 주위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길, 나는 보내심을 받은 자로 세상에 빛을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고 외쳤습니다. 또 요한은 말하길,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요1:2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3:30)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렇듯 세례 요한은 어느 한 순간에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에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한 위대한 선지자로 오늘까지도 우리 가운데 우뚝 서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또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붙잡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첫째로 세례 요한은 그의 정체성을 밝히길,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1:8)고 말합니다.

자기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 이것이 세례 요한이 주님을 증거하는 목적인 동시에 주님의 도구로서 세례 요한이 지켜야 할 삶의 자리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야말로 교회와 크리스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이고 크리스천은 또 누구입니까? 교회와 성도가 빛 그 자체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도구요 증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까닭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빛을 보존하고 전하는 빛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때 그와 같은 우리의 삶을 등불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에 비취게 되고, 그 결과 온 땅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통로인 동시에 빛의 증인인 교회와 성도는 말씀 앞에서 부단한 자기 성찰과 자기 부인 그리고 자기 정화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교회와 성도는 빛은 커녕, 시커먼 욕망의 그을음만 뿜어내면서 자신뿐만 아이라 세상을 어둠으로 오염시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우를 우리는 지나간 2000년 교회역사에서 얼마나 많이 보아 왔습니까? 그리고 우리 시대의 교회에서 이 우울한 현상을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최태민, 최신실, 우병우, 이정현, 황교안총리 등 다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이 참신자인지 무늬만 신자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이 교회의 한 회중으로 또 공적인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한기총이나 WCC 명예총재인 김삼환목사 등이 세월호, 안기부 댓글 사태, 지금의 최순실 사태 등에 어떤 태도와 망언을 하면서 기독교를 웃음꺼리로 만들며,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또 옷로비 사건 등에 연류된 신동아그룹, 검찰총장, 햇불선교회 등이 국회 생방송을 통해 한국사회에 기독교의 맨얼굴을 여과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또 이명박정부 때의 ‘고소영’하며 소망교회 출신들이 야기한 문제 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경건’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모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 정체성’의 결여에서 기인한 현상입니다.

내가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내 욕망의 옛 삶으로 회귀할 것인가? 아님 사람을 살리는 빛의 증인이 될 것인가?, 주님의 교회인 화원언약교회가 단순한 사교단체로 빛의 걸림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구원하는 빛의 통로가 될 것인가? 이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 각자가 믿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바르게 지켜 나가느냐, 아니냐에 의해 판가름 날 것입니다. 주님을 세상에 보여주고 비추어주는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길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이사야 40장3절의 인용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의 징계로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 기한이 차매 포로에서의 회복 즉 예루살렘귀환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사막에 대로를 놓고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 얼마나 신나고  감격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이처럼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심은 죄의 포로가 되어 있는 자기 백성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고,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던 흑암의 땅에 생명의 능력으로 회복하는 일입니다. 세례요한이 주님 앞서 하고 있는 사역이 마치 이런 일임을 이사야 말씀의 인용을 통해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정체성은 한 마디로 “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소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허공에 울려 퍼지는 공기의 진동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소리에 의미가 부여되어 언어가 될 때, 그 소리는 허공 속에 사라지지만 의미는 남게 됩니다. 요한은 그의 삶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지라도 그 삶의 행적이 ‘하나의 가치’가 되어 생명의 의미를 전달하는 광야의 소리가 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고, 그의 마음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 지를 바로 깨달았습니다. 요한은 광야에 거했습니다. 광야는 빈들입니다. 빈들은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론 물 한잔, 쌀 한 톨도 만들 수 없음을 통감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만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광야야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요, 성령님을 만나는 자리요, 그리스도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한마디로 열린 귀와 열린 눈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단지 욕망과 욕정만을 좇아 보고 듣고 말하느라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비틀거리고 있습니까?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그 어느 분야 하나 비틀거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세례 요한이 필요한 때입니다. 열린 귀와 열린 눈으로 바른 것을 보고, 바른 것을 들으며, 바른 말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 이 시대를 위한 주님의 통로가 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례 요한 같은 새 시대의 안내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를 위해 여러분의 심령 속에 광야를, 빈들을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노릇을 잘하기 위해 먼저 그리스도로부터 받고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 안에 빈들을 마련한다는 것은 우리의 심령과 삶속에 하나님의 결재란을 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만이 아니라 가정에도, 일터에도, 자동차에도, 학교의 내 책상에도, 길거리에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결재란을 만듭시다. 철저하게 그 분의 말씀, 명령에 복종합시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장소, 하나님 임재를 경험하는 장소인 빈들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요한은 고백하기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잔치 집에 있는 신랑의 친구로 이해했습니다.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자신은 그 주인공 된 신랑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이러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광과 기쁨, 분노와 절망의 때에 자신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이 위기에서 벗어날까?”가 아니라,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자세가 이러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8)

“ 그런즉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세례 요한에게 있어 영광의 순간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으며 그가 사람들의 존귀와 칭찬을 받을 때가 아니라, 그가 예수님을 드러낼 때였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사명이자, 그의 인생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존재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망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가치에 붙잡혀 있는 성도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자신이 망하고 그리스도가 흥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쇠하고 그리스도가 부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속의 번영이 아닌 하늘 영광을 위하여 살 때입니다.  내 안에 죄를 죽이고, 세상적 욕망을 죽이고 주님의 가치를 위해 살 때입니다.
주님이 부해지는 것, 하나님 나라가 흥하여 가는 것이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되며 여러분의 최고의 즐거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정의의 회복을 위해 빈들에서 절망하는 이웃들과 함께하며 광장을 밝히는 촛불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더 시급하고 필요한 자리는 죄의 비참에 사로잡혀 욕망을 축하며 살아감에도 이 비참을 외면하고 스스로에게 절망하지 않고 여전히 인생에게 무언가 소망을 제시하는 신앙 없는 위치에 서 있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날’을 선포하며 교회가 악에 대해 눈 감았던 죄!, 악을 행하는 자에게 거짓된 평강을 전하며 헛된 위로를 주었던 조국 교회의 부정을 회개합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쇠함을 쫓지 않고 여전히 흥하려고 한 이 ’죄의 욕망‘을 ’복‘으로 ’성공‘으로 포장하며 거짓 신앙을 양산하였던 ’죄악의 회‘가 되어버린 한국교회를 붙잡고 애통의 눈물을 흘릴 성도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오 헨리가 쓴 《마음의 길》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세상물결에 휩쓸리게 되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례 요한의 정체성은 빛이신 주님을 알리며 증거하는 자였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주님의 흥함을 위하여 살다갔습니다. 우리 또한 이러해야 합니다. 옛것이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가치, 새 생명을 전하며 살아 갑시다. 우리 인생 또한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됩시다. 비록 우리는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 사라져도, 예수님만이 그 의미가 되어 남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우리의 흔적이 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흔적이 남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높아진 모든 것을 파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시다.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누구 입니까?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이 말씀이 여러분의 정체성이 되어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식 위에서 자기 성찰, 자기 부인 자기 정화를 부단히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을 앞지르거나 돌아섬이 없이, 항상 주님을 뒤좇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온갖 소음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열린 귀를 가진 성도되게 하시고. 육체의 시력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례 요한이 걸어간 삶의 행적같이 나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빛이 세상에 비추어지게 하옵소서. 날마다 빛의 통로, 빛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눈부신 빛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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