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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23 (일)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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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3일 주일 오전 설교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
2016년 10월 23일 주일 오전 설교
본문 : 벧전2:4-12, 빌3:1-14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세의 그 칠흙같이 어두운 시대에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를 비추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도 내년이면 500주년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개혁의 후손들입니다. 해마다 10월이면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키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각종 세미나와 강연 등으로 10월 한 달을 보내던 기억이 나는데 요즈음은 별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은 더 심하여 ‘개혁주의’라는 용어조차 낯설어합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종교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라는 말은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신앙 체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당시에 종교를 개혁한다고 할 때 기독교를 개혁하는 것으로 신앙체계, 곧 구원을 얻고 그 구원을 경험하는 방식을 개혁한다는 의미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쓴 유명한 『기독교강요』의 영어판 제목이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relig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religio에서 온 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 또는 신앙체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제목을 쉽게 풀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신앙체계, 곧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에 대하여 원리적으로 설명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에 있어서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고, 오히려 조국교회에서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오해하여 계명을 지켜야한다는 율법주의로 이해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게 사는 삶을 기피하면서도 스스로는 구원받은 것으로 자위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책임이 있는지 베드로전서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인 교회에게 명하여 주의 아름다운 덕을 증거하라 하신다.”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
둘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1.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

이 편지는 사도 베드로가 당시 로마 통치 하에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등 지금의 터어키 지방에 주로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벧전1:1-2). 사도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당시의 독자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많은 시련과 박해를 받았습니다.(벧전1:6; 3:13-17; 4:12-19; 5:6-10).

교회가 외적으로 핍박이 있고, 믿음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지금도 그렇지만 믿음생활에 회의가 들기도 하고, 여러 잘못된 가르침의 꾐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르침을 쫓으며 세속화되어 가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들이 당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당시 성도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기 시작하자 성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시키고, 신자의 삶이 무엇이며, 그 소망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배경에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전서 5:13에서 이 편지를 기록한 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이 말씀을 원래 기록된 헬라어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번역한 것이 표준새번역입니다. “나는, 내가 신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루아노의 손을 빌려서, 여러분에게 간단히 이 글을 썼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격려하는 동시에,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 안에 굳게 서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하여 이 본문에서 참된 은혜가 무엇이며 은혜 안에 서 있는 사람의 책임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 베드로전서 2:4-8에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 산돌이신 그리스도와 관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4-5에 보면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설명하면서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흥미롭게도 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하여 베드로전서 2:5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여기에 “너희도 산 돌 같이”라는 “산(살아있는) 돌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돌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머릿돌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그 머릿돌에 붙어 있는 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돌들은 머릿돌에 붙어서 신령한 집을 지어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설명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6-8을 보십시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여기에 구약성경 세 곳을 인용하여 머릿돌이 무엇이며, 그 머릿돌과 어떤 관계로 엮어져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벧전 2:6은 이사야 28:16을, 2:7은 시 11:22이며, 2:8은 이사야 8:14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28:16을 인용하여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였을 때 모퉁잇돌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돌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 건축자들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돌이 건축물에서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머릿돌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 보배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그리스도가 보배로운 존재인 줄을 알고 그에게 붙어 신령한 집을 지어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지만, 택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논의의 결론으로 산돌이신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돌들이 머릿돌과 연결되어 신령한 집을 짓듯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베드로전서 2:9에서 설명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특권과 책임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택하신 족속”이나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나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네 가지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관계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할 때 이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온 세상의 왕이시며 통치권자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세상의 중보자로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우리의 역할을 통하여 나타내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신자의 위치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한 일입니까?

다음으로 베드로는 우리 신자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를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다른 어떤 것과 구별된다는 뜻도 있고,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특별히 구별하여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신자들을 가리켜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의 온전한 뜻은 구약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베드로는 이 말씀을 해석하여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 “내 소유”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 “세굴라”(segullah)라는 말인데, 아주 보배롭고 보배로운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며 보배로운 보석과 같은 존재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신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네 가지 표현,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주셨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그 이유를 베드로전서 2:9-10에서 설명하기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신기하고도 놀라운 빛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말하는 “아름다운 덕”은 헬라어로 “아레테이”라는 말인데  죄인인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 본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벧전2:10).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선택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긍휼을 받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 당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덕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이름다운 덕을 전파하려면 어떤 삶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바로 그 점을 베드로전서 2:11-12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사도 베드로는 우리 신자들을 가리켜 “ 나그네와 행인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뜻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여기에서 “육체의 정욕”이라고 할 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추구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성실하고 책임있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려는 욕심, 거짓을 말하고 과장하여 자신을 나타내려는 욕심,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의식의 발로인 교만과 거만함, 돈이든 권력이든 어떤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자신이 잘났다고 드러내려는 욕심 등입니다. 이러한 본래의 의미를 알고 NIV 영어번역성경은 “죄악된 욕망”(sinful desires)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장에서 안드레의 형제 베드로와 또 다른 친구들이 예수께 나아왔을 때,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여기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하셨을 때의 그 ‘구한다’라는 말은 “찾다, 무언가를 탐구한다, 혹은 바라거나 갈망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것을 찾기도 하고 탐구하기도 하고 갈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과 연결될 때 그것은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향하여 가고 있느냐?”라는 질문과 상통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향해 나아온 제자들에게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다시 말하면, “너는 지금 나를 좇고 있는데, 너는 나를 좇는 일을 통해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냐? 너는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입니다.

주님을 좇아가는 일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 이유를 질문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 제자들이라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너는 지금 나를 좇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나를 좇고 있는 것이냐?”라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주님을 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거의 직전까지도 제자들에게서 보인 모습에 의하면 제자들 중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권세를 잡으시면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주님을 좇았습니다. 현대의 신자들 중에서도 주님을 좇을 때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병이 좀 나아볼까 하여 교회에 발을 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 믿으면 사업이 잘 된다고 하니까 예수를 믿어 볼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 사이의 친목과 교제를 위해서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신자인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근원적인 질문’인 “당신은 무엇을 위해서 주님을 좇고 있습니까?”라는 것에 대한 대답이 이렇게 현세적이고, 땅의 것 중심이고, 영의 것보다 육의 것을 좇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잘못 배운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 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것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가 주님을 좇아가는 일은 칼빈이 가리켰던 제네바 교리문답의 대답처럼 “사람의 사는 첫 번째 목적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1문답),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임”(3문답)을 분명하게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주변의 모습을 보면 “신앙의 이유”로 주님을 따르기보다는 ‘편익의 이유로“ 즉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성경의 하나님과 세상적인 종교의 신들과 혼동하여 그릇된 방식으로 신앙생활하며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봅니다. 자신은 성실하게 책임있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그로인해 오히려 전도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을 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이성문제에 대해 정직하지 못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 말로는 주의 일, 영광을 말하면서도 교회 연보를 개인 돈처럼 사용하다 교회에 큰 시험을 주는 사람들, 하나님의 정의의 시각보다는 보수, 진보의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접근하면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문제를 지적하면 좌경화되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목사들을 봅니다. 또 어떤 목사는 더 심하여 두 집 살림을 하거나, 목사에게 순종하지 않는 신자를 저주하기도 합니다. 잘못된 신학해석에 사로잡혀서 목에 피가 날 때까지 기도하며, ‘피’가 내뱉어지면 그것이 속에 있는 암덩어리라고 합니다.
고위공직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정부의 방침은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우선이 되어 있는 관료들, 또 국회의원들을 봅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에게 신앙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신자다운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삶일까요?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착하고 선한 행실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 신자들이 선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베드로전서 2: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특히 이 말씀에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여기에서 “본다” 아주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정기간 동안 주의해서 본다는 뜻입니다. 어느 한 때 한 순간의 삶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방문하시는 날에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행실을 선하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구원의 사역을 선전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신자의 착한 행실은 복음전파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마5:16).

교회역사 가운데 독일의 귀족이며 백작이었던 진젠도르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독일의 유명한 비텐베르크 대학과 유트레히트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습니다. 그가 1719년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뒤셀도르프 화랑에서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 그림은 가시관을 쓴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그림 밑에다 “나는 너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주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주느냐?”라는 글귀를 보고 큰 결심을 하고 작센 주의 백작으로 삶을 살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에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을 위하여 거처를 제공하였는데 삼백명이 넘었습니다. 그 거처를 “헤른후트”라고 하는데, “주님의 보호”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라비안 교단을 창설하여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유명한 존 웨슬리가 이들에게 큰 감명을 받아 그의 복음사역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백작으로서의 지위와 부에 대하여 많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와 야심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단 하나의 열망이 있노라. 그것은 바로 그 분, 오직 그 분 뿐이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읽은 본문인 빌립보서 3:10-1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바울은 이것을 빌립보서3:14에서는 그가 잡으려고 좇아가는 것을 “푯대”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화원언약교회 믿음의 가족들도 바울처럼 이 푯대를 위하여 달려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신비한 믿음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리켜 저는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 추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거룩한 추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종교개혁기념일을 앞두고 “믿음의 주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각자가” 개혁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왕 같은 살아있는 돌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우리 역시 살아있는 돌들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교제하는 복도 받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원의 사역을 전파해야 할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언약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늘 감사합시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매여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늘방식으로 사는 자입니다. 참된 행복이 세상의 성공과 부와 육체의 건강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것에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자들이여, 당신의 정체성에 걸맞는 자존심을 지키면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음의 증인이 됩시다. 주께서 여러분의 모든 소위를 아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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