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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16 (일)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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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6일 주일 오전 설교
다니엘의 기도
2016년 10월 16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읽기: 단9:1-27
설교본문: 단9:19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포로로 잡혀온 비운의 젊은이였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속과 회복을 소망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본문에서처럼 하루 세 번 자기 얼굴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무엇이 다니엘로 하여금 이 기도를 멈추지 않고 지속하게 했는지 그 이류를 본문은 제시합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동안 지속될 것을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때가 임박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금식과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약속을 성취해 주실 것을 탄원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와 함께 우리 본문은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보내어 어떻게 이 기도에 응답하시는지를 말합니다. 가브리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다니엘에게 통찰력과 이해력을 갖게 하신 것이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넘어서는 관점을 갖게하셨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70이레의 계시로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입니다.
첫째, 다니엘의 기도
둘째,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성령께서 듣는 마음을 주시고 순종하는 믿음을 주셔서 말씀의 다스림이 있게해 주시길 바랍니다.

첫째, 예루살렘의 회복을 구한 다니엘의 기도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사건은 메데 족속 다리오 원년에 일어났습니다. 바벨론에 승리한 메데 바사의 다리오는 전국을 통치하기 위해 방백 일백 이십명을 세우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는데, 다니엘이 그 셋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오랜 포로민의 시간을 보내어 연로했지만 여전히 직책을 맡아 봉사하고 있습니다. 다리오 왕의 시대에 다니엘은 분명 개인적으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관심은 자신에게 있지 않았고, 또 단순히 왕국에서 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한 사람 시민으로의 의무에 있지 않았습니다.(비록 그 봉사가 총리라는 대단히 옾은 권세의 일일지라도)

여러분! 여러 해 동안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다니엘의 마음에 간절한 기대와 소원은 예루살렘에 다시 성전이 재건되고, 재건된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몇 가지 놀라운 이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상은 야웨와 그의 백성에게 대적하는 권세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이 쏟아내는 무서운 박해와 시련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이 예루살렘의 회복과 대적들의 발흥이라는 이 부조화에 대하여 어떤 의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그 말씀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붙잡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29장 10,11절에서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해 줍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이 말씀에 반응하여 다니엘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 약속을 성취해 달라고 탄원하며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에서 하나님을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4절)이라 말합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의 시기를 보내어 오면서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야웨에 대한 신앙과 고백이 무뎌지고 또 불만을 쏟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로 주님을 말합니다. 또 다니엘은 주께서 의로우심을 인정합니다.(9:7,14) 하나님은 불의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포로로 형벌을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포로의 형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실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것을 분명히 이해했고, 이것을 그의 기도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5,6절) 다니엘은 자신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죄를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그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을 도모하며 삽니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땅 위에서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힘씁니다. ‘자아’는 21세기에 있어서 최우선의 신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긴 것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의 꿈과 계획을 섬기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이 죄를 인정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앞에 두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을 두고 있진 않습니까?

다니엘은 기도에서 이스라엘의 포로됨과 예루살렘의 황폐함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습니다. 포로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신명기 28장에서 야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께 대항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때에 일어 날 일에 대해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완고하여 야웨를 거부하고 우상을 헛되이 섬길 때에 그들에게 임할 저주를 상세히 기술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을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또한 자기 백성이 회개할 때에 그들 위에 임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도 기록했습니다.

본문에서의 다니엘의 기도는 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약속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해서 선포된 그 약속에 근거하여 호소합니다. 17~19절입니다. “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여러분, 다니엘의 기도의 초점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가져오실 야웨께 있었습니다. 분명 70년의 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언약 백성이 다시 회복되어 시온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회복을 위해 기도하지만 다니엘의 기도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은 야웨의 거룩한 이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더럽혀졌습니다. 야웨의 평판은 성전파괴와 하나님의 백성의 포로로 인해 타격을 입었습니다. 지금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으로만 보지 않고 야웨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위해 이 일을 행하여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기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합당하게 기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천지의 창조주이시고, 당신의 전능하신 손을 통하여 만물을 계속해서 통치하시는 왕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 하나님의 언약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행하는 자에게는 복과 생명을 주시지만, 하나님을 거부하고 당신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사망과 저주를 내리시는 하나님으로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할 때, 기꺼이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아버지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지 않게된다면 기도 또한 하나님의 뜻과 그 이름의 영광을 위한 인정이기보다는 ‘자아’, 즉 자기의 지금 이 순간의 구원과 즐거움을 얻고자하는 수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조바심 낼 것입니다. 인내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의 즉각적 결과를 이내 얻고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즉각적 인도하심이 없거나 지체된다면 기도하면서 마음에 화평이 없을 것입니다.
매 순간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많은 시련과 문제를 직면할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합당한 선택인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에서 매번 가장 좋은 선택을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가 취해야 할 좋은 모범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해 있는 매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함을 알려줍니다. 여러분, 우리는 큰 슬픔과 힘든 일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 생각에서 번민케하는 힘겨운 일들을 삶에서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언약의 부요하신 약속을 알기 위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 약속들에 호소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을 말해줍니다.

둘째, 자기 백성을 구속하실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21절입니다. “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23절입니다.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이 사실은 우리가 정말로 주목할만하지 않습니까?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 신속하게 일어났습니까? 기도가 시작하지마자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했다는 의미보다는 이미 하나님께서 행하시기로 작정하셨기에 그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경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의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응답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기대하는 때에 주시진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기도한다면, 우리는 우리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유대인들에게 칙령을 내려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한 바사왕 고레스입니다. 에스라1장은 이 일이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로 고레스왕 원년에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고, 그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를 흔드셨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백성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단순히 예루살렘으로의 귀환보다 훨씬 더 위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다니엘이 이해하고 깨닫도록 가브리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본문 24-27절에서 다니엘에게 전한 가브리엘의 메시지는 구약 성경 구절들 중에 가장 어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일부 해석자들은 이 구절들을 안티오코스의 시대에 적용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 해석이 갖는 어려움은 안티오코스가 그리스도 오시기 2세기 전에 살았는데 그 시대의 기간은 천사 가브리엘이 이를 넘어서서 폭넓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브리엘의 말은 메시야의 오심에서 성취를 강력하게 제안합니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내다보고 그 다음으로 시대의 끝에 일어날 일을 내다보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우리 본문을 설명하는 다른 해석자들이 있습니다. 역사가 순환을 통하여 진행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발흥하는 세상 권력들은 자신들 이전에 있던 왕국들을 대신합니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야웨께 대항하여 자신을 과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하려고 시도한 여러 적그리스도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본문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오심,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완성,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멸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24절에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 70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칠십 이레 곧 칠년의 칠십 번, 490년의 기간을 포함함을 또한 말합니다. 우리는 이 숫자를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 숫자를 문자적으로 적용하려고 시도하여 스스로 혼란에 빠짐을 봅니다.

마18장에서 베드로가 주께 말하기를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답변은 단순한 회수를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칠십은 충만함,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칠십 이레를 푸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대하36장 21절은 포로 70년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6년 동안 땅을 경작하여 수확물을 추수하지만 7년째는 그 땅을 경작하지 말고 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 추수물의 이삭을 줍도록 허락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701년 동안 포로 생활해야 했던 이유로 그 땅에게 안식일 안식을 주지 않았음을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이스라엘은 칠년마다 안식일의 안식을 준수하도록 명령받았을 뿐 아니라, 칠년의 일곱 번 후에 그들은 또 희년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50년째는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절기의 때였습니다. 해방의 해, 빛으로 인해 종으로 팔려갔던 모든 종들이 풀려나는 해였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팔았던 모든 재산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기업으로 각 가족에게 분배해 주신 대로 그 가족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70년뿐만 아니라 70 이레를 말할 때 우리는 이 기간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해방으로 이끄시는 충만한 때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가브리엘이 이 충만함의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언한 것을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의 백성과 그의 거룩한 도성을 위하여 정해진 여섯 가지 특별한 일을 확인했습니다. 허물이 마칩니다. 죄가 끝납니다.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의가 드러납니다. 이상과 예언이 확증됩니다.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사역을 통해 일어날 것을 예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속죄재물이 되셨습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죄에 대해 죽고 의의 새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히1장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예’와 ‘아멘’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거룩한 자의 기름 부음. 그것은 예수님의 세례에서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직분적 사역을 위해 그의 공적 사역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성령께서 그리스도 위에 내려오셨을 때, 이 모든 예언은 확정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은 충격적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18,19절)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을 희년의 성취로 설명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주의 은혜의 해’는 이스라엘에서 50년째 되는 해에 일어나야 할 희년에 대한 분명한 언급입니다. 그 때 종들은 자유케 되고 빚들은 탕감되었으며 모든 백성들은 자기 기업으로 되돌아가도록 허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자유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로 회복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단의 종됨으로부터 자유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24절 이후는 우리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더 폭넓은 개요와 설명을 제공해 줍니다.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라는 고레스의 칙령이 선언되는 사이에 더 짧은 시기, 일곱 이레 곧 칠년의 일곱 번이 있을 것을 압니다. 다니엘은 예상되는 반대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이 메시지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더 짧은 기간 일곱 이레 뒤에 더 긴 기간 메시야의 오심 이전에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입니다. 26절은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어떻게 끊어져 없어질 것임을 말합니다. 가브리엘은 죽음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난받는 종이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고 자기 백성의 허물을 인하여 침을 당한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기억하게 됩니다.(사53:8) 또 도성과 성소를 파괴시킬 통치자에 대해 계속해서 말합니다. 전쟁과 황폐에 대해, 그 파괴자가 어떻게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인지에 대해 말합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로마 장군 디도의 통치 아래서 주후 70년에 일어납니다.

여러분! 우리 본문은 가까운 미래에서부터 자차 일어날 일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당신의 성전이 재건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라는 조서가 다니엘의 기도 후에 즉시로 선언됩니다. 하지만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시온에서 예배의 처소를 재건하는 것 훨씬 이상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시는 야웨에 대해 말했습니다. 야웨께서 어떻게 자기 백서의 마음에 율법을 두시고 그들의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실 것인지를 말했습니다.(렘31:33) 하나님의 백성들은 육체적인 원수, 그 이상으로부터 구속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의 죄로부터, 사단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의 악한 성향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완전한 구속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70년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의 척도는 다니엘의 척도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해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당신의 아들을 보시기 까지 약 500년이 걸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장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고 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우리의 계획과 걸음이 번성하기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시간 척도는 항상 우리의 시간 척도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곤란과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으로부터의 도움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또 도움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가 원하는 덧을, 우리가 선택한 시간에 응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위해 최선이 무엇인지를 다 아십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투쟁을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방향 감각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거저 우리 자신에게 만족을 기쁨을 주는 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함을 압니다. 신앙의 길은 종종 고난을 통과하여 영광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언약에 매여 주의 약속을 호소할 때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입니다.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과 위로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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