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회소개 | 예배안내 | 금주의말씀 | 자료실 | 포토갤러리 | 교제의광장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09 (일) 15:42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ㆍ추천: 0  ㆍ조회: 513      
IP: 221.xxx.117
2016년 10월 9일 주일 오전 설교
작은 뿔에 대한 이상
2016년 10월 9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읽기: 단8:1-27, 살후2:1-17
설교본문 : 단8:9-14, 23-27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시대의 끝 이전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듣는 것이 혹 두렵지는 않습니까? 혹 여러분은 미래가 그리스도의 교회인 우리를 위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하고 있습니까?

지난 주 우리는 단7장의 이상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7장은 세상 무대에서 일어날 광경을 묘사합니다. 무서운 짐승들로 상징되는 세상 제국들은 서로 발흥하고 다투며 전쟁을 일으켜 그들 자신의 왕국을 설립하려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이 이상을 통하여 교회에게 위로를 주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아들, 인자께서 하나님의 왕국을 설립하기 위해서 오실 것과 그분께서 사역을 이루신 후 ‘옛적부터 계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구름을 타고 올라가실 것에 대한 계시였습니다.

단8장은 세상제국의 발흥과 쇠퇴중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다니엘은 수양과 숫염소와 그것들로부터 자라나온 뿔들에 대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더불어 여러 세상 제국이 일어설 것을 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이상의 초점은 언약 백성들이 포로 후에 살게 될 약속의 땅, 즉 ‘영화로운 땅’에 대항하는 작은 뿔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 작은 뿔은 그 자체로 야웨 하나님께 반대하여 섰습니다. 우리 본문은 말일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임할 무서운 박해에 대해 말합니다. 작은 뿔이 어떻게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어떻게 거룩한 백성들을 파멸시키는지 말합니다. 이 이상을 본 후 다니엘은 혼절하여 수일을 앓았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은 이 이상으로 인하여 너무나 놀랐습니다. 이 이상은 다니엘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야웨의 말씀(예레미야의 서책)을 붙잡고 여러 해 동안 포로에서부터 이스라엘의 귀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은 비참한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계속적인 박해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본문에 의해 상징된 사건들의 성취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 이상의 우선적 성취는 그리스도의 오심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로인해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이 이상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니엘이 본 이상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우리의 상황에서 어떤 중요성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물었습니다. “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24:3)  예수님은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어떻게 있게 될 것이며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인지, 어떻게 기근과 지진이 여러 곳에서 있게 될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서로 미워하여 배신할 것입니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입니다. 이렇게 악의 ‘증대’ 때문에 사랑이 점점 식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이 단축되지 않으면 아무도 생존하지 못하고 택한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 날들은 단축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마24:3~25)

이 동일한 일들이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 전에 일어날 것입니다. 어두움과 황폐화의 때에, 성도들이 “오 주여! 얼마나 오랫동안입니까?”라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단8장은 우리가 계속되는 압제와 극심한 핍박 아래 살 때에도 믿음 안에서 인내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힘을 우리에게 주도록 의도되었습니다.

오늘 오전 설교의 주제는 “야웨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물 골짜기를 걸어갈 때에도 확고하게 서서 끊기 있게 인내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입니다.

첫째, 작은 뿔의 특징
둘째, 끊기 있게 인내해야 하는 우리의 소명
셋째, 눈물골짜기 같은 이생의 삶에서 우리의 위로입니다.

성령께서 계시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켜 주시길 바랍니다.

첫째, 작은 뿔의 특징

여러분! 이 이상은 벨사살왕 제3년에 일어났습니다. 수산 성안에 있던 다니엘은 이 이상을 받았을 때, 여전히 갈대아 사람들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수산이 나중에는 바사제국의 수도가 되지만 지금은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 다니엘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들이받는 두 뿔을 가진 숫양을 본 것은 수산에서입니다. 이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한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동쪽에서 서와 남과 북을 향하여 뻗은 뿔이 권세와 왕권의 상징입니다. 8:20절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그가 본 두 뿔을 가진 숫양이 메대와 바사의 왕들을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크게 되어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이 본 이상에서 현저한 뿔을 가진 숫염소는 숫양을 공격하여 짓밟았습니다. 8:21절에서 가브리엘은 털이 많은 숫염소는 헬라 왕이고 그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헬라의 첫 번째 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우리는 이 왕이 자기 군대를 이끌고 세상을 빠르게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킴을 잘 압니다. 이 염소는 심히 강대해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세는 최고 지점에서 큰 뿔이 꺾이고 그 자리에 현저한 뿔 넷이 자라났습니다. 가브리엘은 이 네 뿔이 그의 나라로부터 나타날 네 왕국을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헬라제국은 넷으로 나누어졌고 그의 휘하 장군들 한 사람에 의해 각각 통치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세상 제국들은 한 제국이 일어나고 또 뒤이어 다른 제국이 일어날 것입니다. 단8장은 처음에 메대와 바사가 바벨론으로부터 권세를 취할 것이고, 나중에 헬라인들이 세상 통치자들이 될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다니엘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외국 땅에서 포로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알렉산더 대제를 대신한 네 뿔 중 하나로부터 생긴 작은 뿔! 이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뿔이 무엇을 하는지 다니엘의 이상은 이 작은 뿔에 거의 집중되어 있습니다. 9절을 봅시다.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이 뿔은 다른 뿔과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이 뿔은 잔인한 힘과 권력으로 다스렸고, 또 교활한 말과 속임으로 계략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생겨났던 권세들의 목적은 세상 통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영광과 능력과 통치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뿔은 더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은 뿔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그들에게 주실 그 기업의 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작은 뿔은 자의로 행하여 우리 본문 24절에 ‘거룩한 백성’, 즉 ‘하늘의 군대’(10절)를 대항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은 뿔은 스스로 높아져서 그 군대의 주재, 즉 하나님과 같이 위대해지려고 했습니다. 작은 뿔이 다른 왕국과 다른 것은 직접적으로 야웨와 그의 백성에게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작은 뿔은 왜 야웨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적합니까? 이에 대해 24절이 답변합니다.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 인간 통치자의 배후에 또 다른 권세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항상 야웨께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지려고 시도하는 권세, 그 권세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심하게 반대합니다. 분명 이 권세는 눈에 보이는 인간 권세를 말하지 않습니다. 인류를 죄로 이끌어 자기 통치 아래 두기를 원하는 영적인 세력, 곧 사단(타락한 천사)입니다.

작은 뿔, 헬라제국으로부터 생긴 이 강력한 왕은 적그리스도의 묘사입니다. 한편으로 그는 매우 강하고 자기 뜻을 강요하기 위해 잔인한 힘과 무서운 폭력을 사용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을 섬김으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해 은밀한 방편들을 기꺼이 사용하는 계략을 쓰는 주인, 교활한 원수입니다.

다니엘이 본 이 이상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두 세기 전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에서 그 시초적 성취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인물이 대대로 일어날 적그리스도의 원형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대의 역사 무대에 있던 왕들에 대한 이야기일뿐 아니라, 주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기 위해 교활함, 속임, 심한 박해를 사용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에 관한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고통의 시간을 끈기 있게 견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여러분! 적그리스도의 시초적 인물은 누구입니까?
알렉산더 대제 사후 그의 제국은 네 지역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알렉산더의 네 장수들이 분할하여 통치했습니다. 시리아를 통치하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계보로부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로 알려진 안티오코스 4세가 나왔습니다. 그는 주전 175년부터 163년까지 통치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는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만큼 위대하게 되려 했다. 즉 하나님처럼 위대해지려고 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가 권세를 잡았을 때 그는 동전을 만들었는데, 그 동전에 헬라말로 “데오스 안티오코스, 데오스 에피파네스”라고 새겨 넣었습니다. 이것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라는 이름이 나온 출처입니다. 이 동전들을 통해 안티오코스는 계시된 하나님,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최고의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 같이 높였습니다.

우리 본문은 23절에 “엄장하며 궤휼에 능한 왕(얼굴이 뻔뻔하고 술수에 능숙한 왕)”이라 말합니다. 또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을 궤휼을 이루리라.”(23-25)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다니엘이 보고 그 이상에 대해 가브리엘이 설명한 일은 즉시로 분명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에 역사에 어떻게 진행되고 성취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외경 중에 하나인 마카오베오 상하권이 이 시대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안티오코스는 헬라 관습과 이상을 받아들이도록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지 했습니다. 보좌를 얻은 후에 즉시로 안티오코스는 대제사장 집안의 두 형제 사이에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야손은 안티오코스에게 많은 돈을 뇌물로 바침으로써 대제사장직을 얻고 예루살렘에서 헬라 문화를 유대사회에 깊이 침투 시키는 것을 최고의 선택으로 여기는 정치적인 입장을 중시했습니다. 유대인들 중 좋은 직업과 재정적인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고유원리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안티오코스와 대제사장 야손은 예루살렘 성전 아래에 위치한 골짜기에 원형 경기장을 건축하는데 협력했습니다. 훈련하고 운동하고 벌거벗고 여러 가지 운동 경기를 하는 것은 헬라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들이 몸에 걸친 유일한 덮개는 얇은 오일 코트였습니다. 공적으로 벌거벗음은 유대에서 모든 정통 신자들에게는 동산에서 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 아래 골짜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이교도들은 나체로 운동을 했습니다.

이런 연합은 정통적 유대인들이 고수한 할례에 대해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기게 되는 문화적 긴장과 갈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벌거벗음으로 노출된 유대인들의 할례의 표에 대한 비웃음이 그들로 하여금 할례를 폐기해야 하자는 운동으로까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티오코스는 자기 왕국이 점점 강성해 지자 그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집트를 침공하여 점령했습니다. 몇 년 후에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간교하게도 그는 평화의 말들을 했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그는 도성을 함락시키고 삼켜버렸습니다. 수 만 명의 남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가옥들과 사면의 성벽을 파괴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안티오코스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미움을 봅니다.

그 때 안티오코스 왕은 자기 전체 왕국에게 조서를 내리기를 모두가 한 백성이고 각 민족은 자기 관습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에 사자를 보내어 날마다의 번제와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를 금지했습니다. 이 제사 없이는 공적 예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 대신에 안티오코스는 우상숭배적인 제단을 세우고 유대인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부정한 제물을 먹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의 유대인들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커서 만일 어떤 유대인이 어떤 유대적 의식에 참여했다면 그 형벌은 죽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준수하고, 자기 자녀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제사를 드리도록 허용 받지 못했습니다. 무서운 공적인 형벌들이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부과되었습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만왕의 왕이신 야웨 하나님께 대한 대적, 반역은 주전 167년 12월 16일에 일어난 악명 높은 사건에서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야웨의 성전을 헬라 신인 제우스를 예배하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안티오코스는 성전 안에 제우스의 형상을 세워두고 부정한 동물인 돼지로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돼지의 피가 성전 내벽에 모두 얼룩이 져서 성전 벽을 완전히 더럽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렇게 우리는 작은 뿔의 특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안에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구약에서 그는 사단의 참된 육화입니다. 마귀의 손에 들린 도구였습니다. 교활함과 폭력 둘 다를 가진 그 사람은 스스로를 높여서 야웨와 그의 백성에게 대적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김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 거의 그 시대의 끝에 일어났습니다.

둘째, 끈기 있게 인내해야 하는 우리의 소명

요일2:18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날이 “ 배도가 일어나고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기까지는 ”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바울은 이 주의 날에 적그리스도에 대해 묘사합니다. 살후 2:4절입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바울은 이 큰 불법의 시대에 대해 기록합니다. 사단의 역사가 어떻게 온갖 종류의 모조 기록과 표적과 이적들 가운데서 나타나는지를 말합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 속이는 온갖 종류의 악 가운데서 나타나는지를 말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의 마지막 날인 주후 70년 이전에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도 또한 불법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죄가 공개적으로 홍보가 되고 공적인 미디어에서 부추겨지고 있습니다. 낙태를 한 여자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구실 아래 허용되고 있습니다. 성적인 부도덕이 만연해 있습니다. 게이 권리 js장이 사회에서 동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어떤 다른 목적보다 더 성적만족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는 행한다. 다른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할 수 없다,’는 자신의 주장이 옹호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상황 가운데서 오늘 교회는 어떠합니까? 오늘 사회에서 교회의 위치는 어떠합니까? 오늘 조국 대한민국에서 많은 교회들은 세속화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선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성도들의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말씀을 선포해야 할 강단에서 성도들과 대화를 하고 개그맨이 되어 유머를 합니다. 거기에 수천, 수만의 소위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교회는 어두움의 역사를 돕고 선동합니다. 죄에 반대하는 대신에 그들은 죄 가운데 삽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혁교회의 한 회원으로 여러분은 세상에게 여러분의 증거를 어떻게 제시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방식에 따라가고 있습니가? 아니면 참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입니까?

혹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딴지를 걸며 우리의 생각을 꺾고자 합니다. 우리가 낙태, 동성애, 혼인의 순결을 주장하며 이 세대의 가치에서 비겨나고자 할 때, 그들은 근본주의자라고 하며 우리를 비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문화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살상무기로 서로 죽이고 손상시키는 싸움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참으로 맹렬하게 일어납니다. 이 전쟁은 우리 영혼을 위한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우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전쟁입니다. 영적인 전쟁 가운데서 사단은 많은 사람들을 가능한 자신에게 복종시키려고 합니다. 그 전쟁 가운데서 사단은 오늘 주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 또한 사로잡으려고 시도합니다. 속임과 간교함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심음으로 우리를 복종시키려고 합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시대처럼 우리는 진리가 땅 바닥에 내 던져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속임이 번창하는 것을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배당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복음의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도 한국교회 초기에는 심계명 정도는 알았고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나침판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말씀조차도 던져버렸습니다. 이전에는 두려움으로 인해, 양심으로 인해 덮어 두었던 것을 이제는 공개적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대항하는 권세와 세력들이 더 강력하게 성장할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사단은 기독교에 반대하는 지도자들을 일으켜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또한 심지어 사단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자기 종으로 삼아서 성도들이 복음에서 떠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세상 많은 것에서 성도들은 “주여 얼마나 오래입니까? 당신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얼마나 오래 걸립니까? 우리의 고난이 언제 끝납니까? 우리를 핍박하고 압제한 악한 자들에게서 우리의 피를 보복해 주시는 날이 언제입니까?”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일상사에 바빠서, 편안한 삶 때문에, 결혼과 가정생활을 즐기느라 이런 영적 전쟁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매 순간 영적 정쟁 가운데 있음을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계속해서 마귀와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의 죄악된 육신과 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 본문 12절에 옛 언약에서 적그리스도의 일어남이 “범죄함을 인하여”라고 말합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거짓과 속임에 유혹을 받았기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헬라문화의 방식들로 하나님의 방식을 대체했습니다. 그들은 야웨와 그의 방식들에 대항하여 반역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두려움으로 미래를 맞이하십니까? 우리가 세상 권세들 가운데서 적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에 세상 권세에 대해 막연히 거부감을 가져야 합니까? 아님 거기에 집착해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생애를 살아가야 합니다. 사단은 그리스도께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리스도와 대등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단지 피조물, 창조주를 거역한 타락한 피조물일분입니다. 사단은 지식이 있고 교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전지하십니다. 사단은 자기 일에 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전능하십니다. 우리는 은혜로우신 우리 구주의 돌보심 가운데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유혹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까지 우리를 굳게 붙들어 주심을 알고서 끈기 있게 인내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셋째, 눈물골짜기 같은 이생의 삶에서 우리의 위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때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끝없는 투쟁으로서 삶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슬픔, 불신, 고통, 압제를 직면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그런 삶은 때로는 우리의 불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기도 하고, 또 대로는 사단의 공격으로 인해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생에서 참으로 사방으로부터 압제를 당합니다. 그런 모든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정말 우리가 이생에서 눈물골자기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의 고통은 결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여, 얼마나 오래입니까? 이 고통이 얼마나 오래 갑니까? 주 예수께서 오시기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본문 13절에서도 유사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 일들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겠습니까?” 그 답은 2300일입니다. 그 때 성소가 다시 재건될 것입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날들에 이스라엘에서 의로운 남은 자들의 혁명이 있었습니다. 마카베오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와의 사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주전 165년 12월 25일에 그들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주께 봉헌했으며 다시 아침, 저녁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2300 날이라는 우리 본문의 답은 교훈적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무한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얼마의 시간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날들에서 그 때를 측정하십니다. 주야는 하늘에서 계산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역사의 달력에 다른 표시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고난 받는 백성을 잊지 않으십니다. 다니엘의 이상에서처럼 적그리스도의 통치는 끝이 날 것입니다. 우리 본문은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파멸당할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의 권세로 파멸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단과 사단이 고용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파멸당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위로와 확신을 발견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획이 항상 우리의 연약함, 반역, 죄에도 불구하고 사단과 그의 사자들의 맹렬한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이긴다는 보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기신 승리 때문에 지옥의 문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악이 무섭다는 사실, 악의 세력들이 이 세상에서 매우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죄가 교회 내부에서 범해 지든지 혹은 교회 외부에서 범해지든지 죄는 종종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깊은 어두움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난을 통과하여 영광에 이르게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주님께 사랑받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통해서, 또 진리를 통하여 구원받도록 우리를 교회의 회중으로 택하여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도록 하기 위해서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선포되는 가르침을 굳게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설후2:16,17) 아멘.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5 2017년 2월 12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2-12 506
104 2017년 2월 5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2-10 433
103 2017년 1월 29일 주일 오전 말씀 관리자 2017-01-29 486
102 2017년 1월 22일 주일 오전 말씀 관리자 2017-01-22 620
101 2017년 1월 15일 주일 오전 말씀 관리자 2017-01-15 427
100 2017년 1월 8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1-08 452
99 2016년 12월 25일 성탄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2-25 576
98 2016년 12월 18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2-18 494
97 2016년 12월 11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2-11 557
96 2016년 11월 27일 제43주일 설교 관리자 2016-11-27 447
95 2016년 11월 20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1-20 506
94 2016년 11월 13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1-13 557
93 2016년 11월 6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1-06 478
92 2016년 10월 30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0-30 497
91 2016년 10월 23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0-23 549
90 2016년 10월 16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6-10-16 511
12345678910,,,12
교회전화 : 053-638-2100 / 문의메일 : goorsend@hanmail.net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23 
운용지침 : 개인정보 관리책임 화원언약교회 운영위원회 / 개인정보 보호기간 : 회원탈퇴시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