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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1-08 (일)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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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8일 주일 오전 설교
욥의 탄식속에 감추인 복음!
2017년 1월 8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읽기 : 욥2:11-3:26
설교본문 : 욥3:20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상에서 두 번의 회의와 그로인한 땅에서 두 차례의 욥의 시련이 진행됩니다. 그 혹독한 재난의 소식을 듣고 세 친구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어 욥의 고백과 세 친구의 논쟁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오늘 본문은 욥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욥과 세 친구의 이야기의 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된 욥과 전혀 다른 욥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이런 욥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습니까?
오늘 설교의 주제는 “욥의 탄식 속에 감추인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가 항상 우리의 유일한 해답이며 소망입니다. 성령께서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을 그리스도로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3장에서 욥은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엽니다. 우리는 욥의 깊은 탄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3장은 새 개의 주요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주(3-10절),  탄식(11-19절), 고뇌에 찬 질문(20-26절)입니다.

3-10절에서 욥은 자기의 날을 저주합니다. 그는 하나님이나 다른 누군가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태어난 날이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날이 더 이상 기쁨이나 축하의 의식이 남아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그 날이 저주받기를 바랍니다.

11-19절
그 다음으로 일련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왜 자신이 태어날 때 죽지 않았을까?(11) 왜 그가 편안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어서 그를 돌보았을까?(12) 왜 그는 사산되지 않았을까?(16) 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갈망하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야 하는가?(20) 왜? 왜? 오 주여, 왜?

“어찌하여”라는 질문으로 반복되면서 결국 욥의 절망적 탄식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욥이 불안해하는 큰 이유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신자가, 경건한 사람이 이처럼 혹독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명할 길 없는 환난이 욥의 도덕의 기초와 질서 정연한 우주의 기초를 뒤흔듭니다. 이런 까닭에 욥은 이 우주적 질문의 해답을 찾을 대까지 쉴 수 없으며 쉬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를 우리가 직면한 문제(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초월자의 시선에서 관주해 봅시다. 욥의 자리(인생의 모든 절망을 근원적으로 해결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맞은 편)에서 던진 무수한 질문에 대해서 아무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텅빈 무덤의 이편에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욥의 질문들을 다른 양상에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라고 부르짖었던 그분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욥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모든 심연의 바닥에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히4:14-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 시점의 욥에게는 “어찌하여”라는 질문만 있을 뿐입니다.

20-26절
욥의 비탄은 당혹감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앙의 한계, 즉 조금만 더 나가면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부인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둘러싸여’(23절) 있는 이 절망의 감옥(1:10절의 둘러싸임 보호와 안전을 나타낸다.)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낙심하고 있습니다. 탄식과 앓는 소리가 욥의 음식이자 음료가 되었습니다.(24) 욥은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합니다.(25) 3장은 짧은 네 마디의 부르짖음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26)

앤더슨은 이 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나는 쉴 수가 없다!
진정할 수 없다!
휴식할 수 없다!
마음의 동요가 계속 나를 사로잡는구나!

욥의 탄식을 보면서 이것이 비단 한 개인의 처절한 체험으로만 이해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욥의 고난은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적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20절에서 ‘고난당하는 자(곤고한 자)’는 단수이며, 그래서 우리는 욥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픈 자(번뇌한 자)”는 복수입니다. 따라서 욥이 하는 질문은 욥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셨다’는 동사는 1:21에서처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하나님이 이것을 주셨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마음이 번뇌하다는 말은 깊은 낙담과 비탄을 말합니다. 이 표현은 삼상30:6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사용되고, 이사야 38:15에서 병들어 절망하는 히스기야 왕에게 사용됩니다. 이들은 모두 모든 희망을 잃었기에 삶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왜 애초에 이들에게 생명을 주셨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24절은 탄식이나 앓는 소리는 진을 빼는 슬픔입니다. 예레미야의 동료 바룩은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라고 말합니다.(렘45:3) 이것이 욥이 매일 먹는 음식입니다. 이것이 욥에게 빵대신 주어집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을 먹고 살 뿐입니다. 성도여러분! 이것은 다윗이 시22:1에서 통해내는 탄식입니다.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슬픔은 오랜 시간 뒤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칠 때 성취되었습니다.(마27:46)

콜러리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바로 그 분이 아니라, 그분에 관한 자신의 신념을 믿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큰 고난은 그 같은 신념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이제까지 욥은 여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에 관한 자신의 신념(신앙)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칼 바르트는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욥의 슬픔 중에서도 진정한 슬픔 그러므로 그의 불평의 주된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곧 욥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심오한 지식과, 하나님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모르는 심각한 무지의 결합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욥의 지식(선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아버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인애와 긍휼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주권적 하나님, 의로운 자를 시험 가운데 이끄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그분의 선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와 하나님이 품고 계시는 하늘의 목적들의 신비(하나님의 주권, 위엄, 영광, 그리고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용하시고 인도하시는 작정, 등)에 관해서 알고 있는 바가 여기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참기 어려운 긴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욥이 겪는 고난의 깊이와 본질입니다.” 욥은 자기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신앙 안에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욥이 경험하고 있는 실제적인 삶의 체험에서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갖고 계신 생각이 선하시다는 생각에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일어난 압도적인 불행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과 접촉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하나님이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인지 심한 혼동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이 3장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욥의 모습입니다.

“그는 단 한순간도 자기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성격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사실은 욥을 거의 미칠 지경으로 몰고 갑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 욥에게 어떤 분이 되셨는가? 이것이 욥기가 지금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욥에게서 느끼고 싶은 신앙 감정은 무엇입니까?
초지일관 1,2장의 신앙고백의 전사로 견고하게 서 있는 욥입니까? 아니면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는 욥입니까? 인생의 큰 문제에서 해답을 차지 못하고 낙담하며 무너지는 욥입니까?

욥3:1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욥을 만납니다. 이 모습은 뭔가 생소한 모습이고 우리가 결코 보기를 기대하지 않는 전혀 의해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욥기 3장에 나오는 절망은 하나님께 처음에 인정받았고(1:8; 2:3) 마지막에 또다시 인정받는(42:7) 사람의 실제 경험입니다.

욥기3장에 복음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라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압니다. 더 나은 것이 언제나 앞에(미래) 있습니다. 미래는(내일) 하나님의 것이며 최종 영광이 성도에게 약속되어 있기에 그런 점에서 신자의 내일은 희망적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생애에서 가까운 미래가 공허해 보이고 그저 뒤를 돌아보며 ...라면 이라고 되내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욥기3장은 바로 이런 처지입니다. 암담한 때입니다. 그 순간에도 복음은 여전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온통 절망 속에 탄식하며 어두움이 자신을 삼켰다고 하며 하나님의 부재를 토로하면서도 욥은 하나님은 어딘가에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20절의 “주셨으며”가 이것을 나타냅니다.

욥의 어둠은 더 깊은 어둠을 예표합니다.
3장 끝에서 욥은 철저히 혼자입니다. 친구들이 위로하려고 옆에 앉아 있으나 할 말이 없습니다. 파산의 침묵, 상실의 절망이 가져다 준 그 껌찍한 침묵의 욥에게 누구도 위로의 말을 내뺃지 못하였던 것처럼, 2천 년 전 또 다른 한 사람이 깊은 어둠에 빠졌고 한낮에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밤의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 예수님을 삼켰습니다. 그 사람의 아들의 입술이 열리고 큰 외침이 쏟아집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욥이 겪은 영혼의 어둠은 그의 구속주가 겪을 그 깊은 어두움을 예표하기에 오히려 그 속에 구원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고난당하셨기에 이제 그 어떤 신자도 욥처럼 깊은 고통을 홀로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참으로 깊은 위미와 위로를 줍니다. “고통은 사람을 외로움으로 에워쌉니다. 욥과 친구들 사이에 엄청난 심연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욥을 낯선 사람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더는 욥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골짜기를 건너실 수 있습니다. 비탄의 심연으로 내려가 가장 깊은 지옥으로 뛰어드십니다.”
지금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리 혼자라고 느끼더라도, 욥과 달리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소유를 아끼시고 보존하십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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