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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18 (일)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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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8일 주일 오전 설교
시험받는 믿음
2016년 12월 18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읽기: 욥2:1-13, 계12:7-12
설교본문 : 욥2:10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욥기 1,2장은 서론이면서도 전체를 지배하는 배경이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 살펴본 것처럼 땅의 무대의 배후에 천상에서 진행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땅의 결과가 하늘의 승리를 입증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욥의 첫 번째 시험과 승리를 1장에서 살펴보았고 오늘은 욥의 두 번째 시험을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오전의 설교 주제는 “하나님께서 시험을 사용하여 우리의 믿음을 입증시키신다.”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가르침을 잘 받아 우리 또한 견고한 신앙의 사람이 되도록 듣는 마음을 주시길 바랍니다.

1:22에 사단이 욥을 떠난 후에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또 다른 천상회의가 펼쳐집니다. 첫 번째 천상회의와 두 번째 천상회의 사이의 시간이 얼마나 경과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공통점은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사단이 여호와 앞에 서고,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에 대해 평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내 종 욥을 유의해서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

그러면서 첫 번째 천상회의 후 땅에서 사단이 욥에게 행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지적합니다.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욥이 순전을 굳게 지켰다.”(3절) 여기서 우리는 욥에 대해 두 가지를 더 알게 됩니다. 첫째, 욥은 환란 중에도 참된 성도로 순전함을 유지했다. 둘째, 사단의 실제 동기입니다. 처음 사단은 하나님의 영광에 기초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욥을 시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과율’, 즉 “까닭 없이 욥이 하나님께 순전을 지키리이까?” 그러나 사단이 실제로 보고 싶은 것은 시험을 통과하는 욥이 아니라 무너지는 욥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욥을 무너뜨리고, 산 채로 삼키며, 죽이시길 원했습니다. 이것은 정당하지 않지만(까닭 없이, 3절) 그럼에도 사단은 그것을 원했습니다. 사단은 사단의 의도대로 욥이 원망하며 하나님을 저주하길 기대했지만 이일이 실패로 끝나자, 하나님에게 핑계를 댑니다. 욥의 소유는 손을 대는 것을 허락했지만 욥의 몸은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처사가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주 말씀드린 것처럼 완전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허용적 뜻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바깥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허용적 뜻을 세상에 대한 완전한 질서로부터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재난을 하나님이 지정하신 것, 즉 세상을 향한 그 분의 계획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완전한 질서에는 죄가 없고, 질병이 없고, 사단의 시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이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원래의 세상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 뜻은 타락한 세상의 필요들을 통하여 굴절된 상태로 임하고 있습니다. 욥기의 처음 두 장은 사단에게 욥을 시험해도 좋다고 허용하시는 신적인 허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욥은 시험당하는 대상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구별하지는 못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욥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욥은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가장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럼에도 욥은 자신의 불행을 하나님의 감추어진 손길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겠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욥의 문제입니다. 욥의 경건은, 욥의 신앙은 그의 고난을 경감시켜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묘한 일은 여호와께 속한”것입니다. 신앙은 어둠 속에서 모르는 채로, 분명한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신앙은 불확실한 현실을 수용하며 살아가도록 돕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체험 외에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욥과 그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과 체험을 함께 유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볼 뿐입니다. 첫 번째 회의와 달리 두 번째 천상회의에서 하나님께서는 욥에 대한 사단의 시험결과를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승리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단은 또 다른 ‘허용’을 요구합니다. 그런 이유로 사단은 새로운 시도를 요청합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4절) 이 표현은 해석상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베두인족들이 화폐의 ‘등가적 교환’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입니다. 사단은 자신의 논거를 통해 욥이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야웨께 욥의 뼈와 살을 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 사단은 확신했습니다. 이번에도 야웨께서는 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시고 사단의 손(시험)에 욥을 맡깁니다. “그를 네 손에 붙인다.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6절) 비록 사단은 욥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에 실망하지만, 이 글을 읽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많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왜 또 다시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가? 이미 욥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은 확인되었고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기시지 않았는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사단을 멈추게 하시며, “이제 되었다. 그만 해라. 너의 시험은 실패했다. 욥은 그 많은 곤궁함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 결코 네가 주장한 것처럼, 재물과 성공에 대한 이기적 욕심으로 나를 예배한 것이 아님이 이미 입증되지 않았느냐?”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다시 허용하고 있습니다. 욥의 온전하고 깊은 순종을 통한 완전한 승리를 보이심으로 하나님께서 그 어떤 상황에도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이로 인해 두 번째 사단이 여호와 앞에서 물러나고 네 번째 장면이 땅의 일이 진행됩니다.(2:7-10)
이번에는 “하루는”이라는 형식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긴박합니다. “사단이 하나님 앞에서 물러가는” 즉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합니다.” 1장과 달리 사단이 직접 욥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로 인해 욥은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습니다.’(8절) 욥의 모든 것이 박살났고 이제 완전히 혼자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이것이 시험입니다. 이제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는 단지 하나님이 욥에게 주시는 선물 때문이라는 게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거둬 가셨습니다. 이에 더해 최후의 시험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욥의 아내를 통하여 온 시험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줄 곳 그 자리에 함께 있었지만 당황한 가운데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무대 중앙으로 나온 그녀가 한 말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또 하나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을 포기하라!“

성도여러분! 우리가 욥의 아내에 대한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녀를 이방인이라 해야 합니까? 믿음없는 초신자라고 해야 할까요? -남편의 고통을 도저히 볼 수 없기에 차라리 죽음이 주는 평안을 선택하길 바랬는지... - 어거스틴은 그녀를 ‘악마의 보조자’라 말했고, 칼빈은 그녀를 지옥에서 온 ‘사단의 도구’라 말합니다. 또 크리소스톰은 왜 마귀가 욥에게 그의 아내를 남겨 두었을까 하는 질문을 하면서 욥에게는 그의 아내가 그 어떠한 수단보다 더 악랄하게 재앙을 주는 채찍으로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욥의 아내 또한 한 순간에 자녀의 죽음을 직면하고 재산을 순식간에 잃어버렸습니다. 게다가 경건한 남편 욥이 설명할 수 없는 곤고와 고난을 겪는 모습을 보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선을 행한 자는 상(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경건한 사람이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욥의 고난은 그녀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인데 남편 욥은 그 와중에도 단 한마다의 항의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 아내에게 행하신 그 모든 일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욥의 아내는 하나님의 인도를 해석해 보려거나 그것을 신앙으로 극복해 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재난(고통)을 당한만큼 과격해져서, 이러한 재난을 받을만한 짓을 하지 않은 욥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는 동안 사단은 무대 뒤로 영영 숨어버립니다. 2장 이후 우리는 욥기 어디에서도 사단에 대해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단이 수행하는 일을 대신 수행하는 사람들은 찾을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그 역할을 욥의 아내와 세 친구들이 대신합니다. 욥의 아내는 1,2장에서 사단이 두 번이나 제시하였던 것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1:11, 2:5,9) 그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사단의 대변자가 되어, 사단이 원했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아내)으로부터 온 시험, 그것은 욥을 참으로 위태롭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욥이 아내의 의견을 따랐다면 그는 영원히 잃어버린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단의 올무입니다.

성도여러분! 욥기에서 욥 자신도 그가 겪는 고난의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의인의 겪는 고난에 대해 아내에게 설득시키거나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고난 가운데 처해있는 신자가 행해야 할 올바른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인생의 커다란 혼란 속에서도 확실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복과 재앙을 주시는 분이 동일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찬란했던 과거를 주신 하나님이 어두운 현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욥은 믿었습니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욥은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아내에게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아무리 큰 슬픔이 닥치드라도 말이오!”

아내에게 한 욥의 말은 믿음이 시험받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델과 같습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과 같도다.”(10절) 욥은 하나님을 욕하기는커녕,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고 되묻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자신만을 말하지 않고 자신과 아내 둘 다 말합니다. “우리가 ... 아니하겠느냐?” ‘받는다’는 말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겸손히 엎드려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제 결론에 도달합니다. “욥이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이 구절은 욥이 시험을 통과했음을 확인해 줍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고 시험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욥기는 계속 이어지고 38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실 때까지 하늘이 침묵합니다. 우리는 42장에 가서야 욥이 옳다고 인정받는 것을 확실히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나 나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아무 이유없이 단지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중요합니다.
욥의 이야기는 매우 극단적입니다. 욥은 엄청나게 주자이고 명예를 지닌 존귀한 자입니다. 그런 욥이 극단적으로 추락합니다. 서서히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들, 모두를 잃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욥의 체험을 우리의 생애에 병행시킬 때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아무리 깊더라도, 우리가 하는 경험은 욥에 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욥처럼 순전하지도, 행복하지도, 부유하지도, 철저히 외롭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졸지에 순식간에 가난해지지도 않았고, 저주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욥의 생애와 우리의 생애에는 큰 간격이 있어 보입니다. 욥의 체험은 오히려 훨씬 극단적 실체의 그림자이며, 흠도 없고 죄도 없으신 모든 영광의 버리고 육신이 되어 십자가에서 벌거벗긴 채 모욕적이고 수취를 당하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아버지와 성령과 나누는 영원한 교제를 뒤로하고 십자가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욥의 이야기는 얼마간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여기서 ‘너희는’ 사도를 가리킵니다. 사단은 사도들 앞서 욥을 체로 까불러서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시험해야 한다고 했듯이, 사도들도 까불러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내보내 욥에게 하게 하셨듯이, 사도들에게도 이렇게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허용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

오랜 시간 후 인생의 말년에서 베드로는 시험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소망의 편지에서 그들이 당하는 시험이 꼭 필요하다면서, “너희 믿음의 확실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6,7)고 말합니다.

성도여러분! 욥기는 분명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고 또 신앙과 고난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어떤 면에서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냥 공포영화와는 다릅니다. 욥기가 무서운 책인 까닭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의 시대를 살며, 따라서 욥기가 성취된 이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골2:15)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셨습니다.”(히2:14,15)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여러분! 십자가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십자가 승리의 결과로 욥기 1,2장에서와 달리, 사단이 더는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참소하기 위해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사단은 땅으로 내쫓겼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7-9)
사단은 여전히 위험하고 크게 격분해 땅을 두루 돌아다닙니다.(영적으로, 실체는 결박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고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싸우는 자들은 능히 이깁니다.

성도여러분! 이것이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 형제를 참소하던 자”가 더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참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더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먼저 예수님의 위대한 생애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욥의 길을 걸으셨고, 우리를 위해 욥이 당한 고난의 깊이를 헤아리셨으며, 우리를 위해 옳다고 인정받으셨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의 불순종과 이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넘어지게 하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상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도 인내해야 할 때입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13: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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