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회소개 | 예배안내 | 금주의말씀 | 자료실 | 포토갤러리 | 교제의광장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4-02-11 (일) 13:46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ㆍ추천: 0  ㆍ조회: 18      
IP: 222.xxx.145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2024년 2월 11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 봉독 : 마태복음 6:19-34



 
 설 명절 행복하게 잘 보냈습니까? 가족을 돌아보기 위해 마음을 쏟았고 동일하게 오늘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마음을 쏟기 위해 한 회중으로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사 여러분의 모든 수고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시고, 여러분의 의지가 더 강하여지고 여러분의 지각이 더 뛰어나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에 더 특출나길 바랍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은 무엇에 집중하고 살고 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까? 오늘 아침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던지고 계시는 질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아침 본문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의 눈이 가리키는 곳이 여러분들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낸다”는 주제로 주께서 주시는 말씀을 설교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19절, 20절에서 우리들의 눈이 향하는 곳을 두 군데로 나누어 대조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십니다. 첫 번째는 19절 말씀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는 말씀처럼 ‘땅의 보물’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20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처럼 ‘하늘의 보물’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진솔하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 너는 지금 땅의 보물을 보고 있느냐? 아니면 하늘의 보물을 바라보고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땅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땅은 무엇인지 그리고 땅의 보물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땅은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즉, 존재의 영역’ 모두를 칭한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의 보물’은 ‘돈, 물건, 또 재산’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유형의 ‘땅의 보물’이 있다면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땅의 보물’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명예,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평판, 인간관계, 그리고 건강, 혹은 권력’같은 것 등등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시선이 가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땅은 인간들이 관여하고 살아가는 존재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하늘은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시는 영적인 영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보물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신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또한 아들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 하나님,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간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의 덕목들, 이런 것들이 ’하늘의 보물‘일 것입니다. 그것들을 열거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들, 구원, 죄용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심, 그리고 영생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과 재림의 축복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평강과 기쁨 또 그리스도의 승리에 댓가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사들, 이렇게 하늘의 보물도 헤아려 보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9절에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거기에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좀은 벌레나 나방이 옷장에 들어가서 옷을 먹어 치워서 더 이상 옷을 입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동록은 철의 산화로 인해서 생기는 녹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녹이 철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도둑은 몰래 침입해서 소중한 것을 훔쳐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을 잠그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약탈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나의 건강을 빼앗고, 사업을 망하게 하고, 나라의 경제를 침체시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처럼 좀, 동록, 도둑은 이 땅의 삶을 상징적으로 아주 잘 보여주는 죄인된 인간들의 삶의 실체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들의 삶이 ‘좀과 동록과 도둑’들로 가득차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땅의 보물을 탐하는 탐욕들은 모두 다 타락의 쓴 열매입니다.
 시편 102편은 이처럼 파산된 인간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3-11절까지 찾아서 읽도록 합시다.
“ 대저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숯) 같이 탔나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시편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시들어버린 풀과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고,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습니다. 그래서 재를 양식같이 먹고 눈물 섞인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인생이 우리들입니다. 이런 곳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49편 말씀에 무엇보다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6-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자기 재물과 부유함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자는 결국 죽어서 재물을 남에게 남겨두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 재물로 아무도 구원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속전을 바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생들은 재물과 부를 모으는데 갇혀서 비참하게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늘에 보물을 쌓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곳은 좀이나 동록이나 도둑이 없습니다. 그 어떤 위협이 없는 안전한 곳입니다. 그렇치 않습니까? 하늘에는 갉아 먹는 것이 없습니다. 산화되거나 증발 되거나 부패 되지도 않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20절의 말씀인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을 우리들이 먼 훗날 죽어서 천국에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누리고 받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말을 ‘땅은 지금, 그리고 하늘은 미래’로 대조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만약 여러분들이 텃밭을 경작해서 콩을 심으면 여러분들이 그 콩을 아주 먼 미래에 콩을 먹을 것이다라고 기대하면서 키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시기에 맞추어서 직접 재배한 콩을 신선하게 먹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키우지 않습니까?

 지금 예수님의 말씀도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어라’는 말씀의 의미가 먼 미래의 일을 기대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하늘의 보화를 누리고 맛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26절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는 이것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고 덧붙이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지금 현재 말입니다. 오늘도 말입니다. 이렇게 천국의 보물은 영원의 때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마태복음 4:23-24절에서 하늘의 보물인 천국 복음이 현실속에서 어떻게 맛보았는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이 고쳐지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가지고 온 선물의 지극히 작은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땅에 보물을 쌓는 일을 할 때에 많은 노력과 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보물을 쌓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하늘의 보물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하고 땀을 흘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보물은 모든 것들이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4장의 말씀에서 보았듯이 하늘의 보화는 약한 자들과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값없는 은혜입니다. 보십시오. 4장에 언급되고 있는 수많은 병자들과 약한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서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그들이 얼마의 비용이 들었습니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했나요? 없지 않습니까? 은혜였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되어진 것 임을 본문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장의 팔복은 ’하늘의 보물‘이 누구의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그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들이 받습니다. 이들이 노력하고 땀 흘려서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은혜로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늘의 보물을 쌓는 일은 은혜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명확하게 ‘하늘의 보물을 쌓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소개합니다. 우리 함께 21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이 구절이 오늘 설교의 주제 구절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늘의 보물을 쌓는 방법은 우리의 마음을 그 보물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늘의 보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과 그분의 사역들, 그리고 예수님의 나라와 그의 의, 또 평강과 기쁨, 죄용서와 사랑”과 같은 소중한 하늘의 보물들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어 22절에서 ‘시선’을 언급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 있는 그곳에 우리의 눈이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의 눈이 향하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의 보물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땅의 보물에 가 있는 것이고, 반대로 우리의 눈이 하늘의 보물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도 하늘의 보물에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22절, 23절에서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소중한 하늘의 보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그가 전한 천국 복음 안에, 놀라운 하늘의 보물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여 있습니까?

 자동차를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는 헤드라이트가 향하는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동시에 두 군데를 바라보면서 두 곳으로 달려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곳만 향하면서 바라보고 달려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똑같습니다. 땅과 하늘을 동시에 보고 마음을 두 곳에 두고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24절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함께 읽도록 합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주일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천국의 보물에 마음을 두시고, 그리고 월요일부터는 ‘은행 계좌, 사람들의 평판, 가지고 싶은 물건, 건강’과 같은 땅의 보물에 마음을 두고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두 마음을 품고 두 곳을 바라보면서 시선을 향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아마도 영적으로 정신분열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본문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오직 한 곳, 하늘의 보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외눈박이 비전’을 제시하시고 있습니다. 땅의 보물을 보고 사는 자들은 그리고 두 곳을 바라보려는 자들은 ‘불안과 스트레스’와 같은 많은 어둠의 것들로 몸이 나빠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요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도 왜 여전히 우리들은 자꾸만 땅의 보물들에 마음이 가고 우리의 시선이 머물까요? 무엇 때문입니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반을 허무는 사람들의 공격과 비난들 때문에 항상 불안합니다. 그래서 염려합니다. 걱정합니다. 결핍은 인간들에게 항상 불안을 조성하고 또한 근심 걱정과 염려를 만들어 놓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왜 우리들이 땅의 보물에 마음이 향하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25절에서부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사랑하는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걱정하고 근심하지 마십시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보물을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 여러분들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그분께 여러분들의 마음을 두십시오.

 예수님은 26절에서부터 ‘하늘의 아름다운 보물’을 소개합니다. 어떤 보물입니까? 그것은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은 너희의 하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책임지듯이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천국 보물을 소개해 주십니다. 함께 26-32절까지 읽어봅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렇습니다. ‘공중나는 새’를 기르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십니다. 우리들은 그것들보다 귀합니다.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니 바로 이 하늘의 보물을 바라보시면서, 여기에 마음을 두시고 시선을 고정하고 사십시다. 바로 이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고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32절의 말씀처럼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땅의 보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33절에서 오늘 말씀을 결론 맺습니다. 함께 읽도록 합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들의 시선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두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그곳에 두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바로 하늘의 보물입니다. 한 시선으로 한 마음으로 ‘외눈박이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시면 하늘의 아버지께서 여러분들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이 질문에 좋은 답을 제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히브리서 11:8-10절을 찾아서 읽도록 합시다.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나올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늘 아버지만 신뢰하면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안한 삶입니까? 그의 삶은 항상 염려하고 걱정하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땅의 보물에 시선을 두지 않았고 마음도 두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그의 시선과 마음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습니다.’ 바로 이런 믿음이 그를 모든 신자들의 믿음의 조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바라보는 시선들이 모아져서 우리의 삶을 이루어 갑니다. 내 마음이 머물러 있는 그것들이 모아져서 우리의 인격을 만들고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갑니다. 내가 바라보는 그것이 나를 만들어 갑니다. 땅의 보물을 바라보며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가는 외눈박이가 됩시다. 여러분들도 올 한해 새로운 의지와 새로운 각오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선택을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다시 홈페이지가 개통됩니다. 관리자 2019-02-10 648
333 약속의 땅,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파루시아 2024-02-25 12
332 하나님을 기억하라 파루시아 2024-02-18 20
331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파루시아 2024-02-11 18
330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 파루시아 2024-02-04 27
329 계명을 통해 생명을 주신 야웨 파루시아 2024-01-28 21
328 이스라엘아 들으라! 파루시아 2024-01-21 27
327 도피성 제도에서 구현된 복음 파루시아 2024-01-14 21
326 형상이 없으신 하나님 파루시아 2024-01-07 28
325 여호와의 말씀이 생명이다 파루시아 2023-12-31 29
324 예루살렘의 평강을 위한 기도 파루시아 2023-12-24 39
323 물질적 복에 대한 욕심이 약속의 복을 위협하다 파루시아 2023-12-17 34
322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의 멸망이 보여주는 것 파루시아 2023-12-10 80
321 언약의 긍휼과 그 결과 파루시아 2023-12-03 38
320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파루시아 2023-11-26 38
319 누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가? 파루시아 2023-11-19 38
12345678910,,,21
교회전화 : 053-638-2100 / 문의메일 : goorsend@hanmail.net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23 
운용지침 : 개인정보 관리책임 화원언약교회 운영위원회 / 개인정보 보호기간 : 회원탈퇴시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