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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2-09-11 (일)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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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머니 교회
우리의 어머니 교회
2022년 9월 11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읽기 : 갈4:21-31, 창21:1-12
설교본문 : 갈4:2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신자를 모으시고 보존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태어나게 하시고 양육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인 참된 말씀의 씨를 가진 교회가 계속해서 생명을 잉태하고 해산하도록 양육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참된 말씀을 가진 진짜 어머니인 교회 가운데서 생명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 이 교회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목적과 본질이 되지 않고 수단이 되어 있는 자칭 ‘교회’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수많은 종교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교회”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방패로 사용하고, 그들의 모든 과오를 교회라는 이름의 덮개로 덮어버리려 합니다. 이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이고, 교회가 우리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를 상당히 혼란스럽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다 같은 교회로, 교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누가 참된 신자이고, 누가 가짜 신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의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인지 가짜 어머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어머니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순수한 말씀의 씨, 참된 복음을 통하여 자녀를 잉태하고 해산하고 양육하고 있는가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우리의 죄악 됨으로 인하여 이 분명한 구별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가짜 어머니가 유혹하는 가짜 복음에 넘어가서 어리석은 길로 빠지려고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오늘 설교본문은 성령에 사로잡힌 사도 바울이 바로 이와같은 상황에 직면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하나의 비유 곧 알레고리를 통하여 엄중하게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좇아서 가짜 어머니에게 유혹을 당하여 어리석은 종으로 전락하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다. 왜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가 계집종의 자녀가 되려고 하느냐?”

 성도 여러분, 분명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주어진 경고이지만, 성령께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가짜 어머니에게 유혹당하는 교회들을 경성시키기 위하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은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 바른 분별과 바른 판단을 하여 우리의 진짜 어머니의 품 안에서 양육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에게 비유를 통하여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다”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이 비유의 이유
 둘째, 이 비유의 내용
 셋째, 이 비유의 경고입니다.

 첫째, 사도 바울이 이 비유를 말하게 된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라고 말함으로써 이 비유를 들어야 하는 청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창21장 아브라함 가정에 대한 말씀을 알레고리로 사용하여 두 언약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율법아래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왜 율법 아래 있고자 합니까? 왜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경고를 해야 합니까?
 본문에서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은 주후 48년 직전에 거론되었던 이방인들도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받아야 하고(5:2), 절기와 월삭과 특정한 날에 대한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4:10)고 선동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즉 다른 복음을 좇아갔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의 성도들입니다. 이런 거짓 교훈들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새 언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옛 언약의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는 거짓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교회들 가운데 등장하였고, 갈라디아 교회들의 성도들은 이 다른 복음에 유혹을 당하여 전체 교회들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항에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을 향하여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사도 바울의 말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도대체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가?” 율법 즉 모세 오경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에 따르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율법과 복음이 반대되는 것인가? 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율법과 복음은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단순히 율법 그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말하는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것을 본문 앞의 본문인 4:1-7에서 유업을 이을 자의 경우를 들며 설명을 합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어렸을 때는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했지만, 때가 차 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모든 율법을 성취하시고 우리를 속량해 주심으로 이제 우리는 아들이 되었고,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언약에 관한 말입니다. 옛 언약 시대에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율법 아래 있었습니다. 옛 언약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포함된 많은 의식들과 날과 절기와 해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려서 지켜야 하는 그런 초등학문의 종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옛 언약의 질서이며, 옛 언약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어 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전 것은 지나고 새것이 왔습니다. 따라서 복음의 요구를 따라 살아가는 삶도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의 성도들이 살고 있는 방식이 여전히 옛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새 언약 안에 있는 우리가 다시 옛 언약의 율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할례와 의식법들과 날과 절기 등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것은 다른 복음이고 다시금 유대인들의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 갈라디아에서 율법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폐기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히7:12의 말씀처럼 제사 직분이 바뀌면 율법도 바뀌는 것입니다. 율법 그 자체의 본질은 언약의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율법의 형식과 영광에 있어서 각각의 언약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옛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새로운 언약이 왔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 시대에는 옛 언약을, 옛 언약의 율법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강요하는 것은 구속사의 시계를 되돌려 놓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무효화시키고 참된 복음을 무너뜨려서 결국 새 언약 교회들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의 성도들이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잘못된 모습입니다. 이것은 참된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은 잘못에 충분히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새 언약에 속한 교회들인데 다시 구약의 율법을 따라 행하려고 하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의식들과 법들을 제정하여 스스로 그 올가미에 속박당하여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는 주일을 구약과 안식일과 같은 그런 의식법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의식법으로써 구약의 안식일은 분명히 폐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의 날로써 일주일의 한 날을 쉬고 예배드리는 일을 위해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구약 율법의 의식법처럼 그렇게 지켜져서 우리에게 올무와 속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시 이런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만일 오늘 우리도 율법 아래 있고자 한다면 우리도 갈라디아 성도들과 함께 본문을 통하여 사도 바울의 아브라함의 가정에 대한 두 언약의 알레고리를 들어야 합니다.
 둘째, 사도 바울이 제시한 아브라함 가정에 대한 알레고리의 내용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가정을 예로 들어서 두 언약에 대하여 말하는 이 알레고리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의 구속 역사적 상황을 잘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모세오경인 율법에 포함된 한 사건을 예를 들어 자기 시대의 두 언약의 중첩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두 언약 곧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대조를 선명하게 해 줍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가정 교회에서 일어난 역사를 지금 주후 30년에서 70년 사이의 옛 언약 교회와 새 언약 교회가 중첩되고 있는 교회 역사에 적용시켜 두 언약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교회의 중첩의 역사는 이러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부부입니다. 사라는 잉태하지 못했지만 그 가정의 어머니임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통하여 약속된 아들이 태어날 것이고, 그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잉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라가 자기의 계집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들을 낳게 했는데, 이 아들이 육체를 따라 낳은 이스마엘입니다. 그 후에 이스마엘이 16세가 되었을 때 사라는 약속에 따라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의 죽은 태를 부활시켜서 낳은 자식이 바로 이삭입니다. 그래서 계집종인 어머니로부터 육체를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과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로부터 약속을 따라 태어난 이삭 사이에 대립이 있게 되었습니다. 한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자녀가 공존하는 중첩기가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은 약속의 땅 밖에 있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을 상징합니다. 이 시내산은 옛 언약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곳입니다. 옛 언약 시대의 율법은 백성들을 의식법들과 날과 절기와 할례와 같은 것들로 속박했습니다. 하갈은 바로 이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시내산에서 율법에 속박받는 종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이 시내산과 일치하고, 그 자녀들과 함께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저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는 가나안 땅 안에 있지만 상징적으로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 언약이 왔는데도 여전히 옛 언약에 머물러 있으며 옛 언약조차도 거짓된 교훈과 의식들로 변조시켜서 지키고,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새 언약의 교회들을 박해하며 핍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 예루살렘은 배교한 옛 언약백성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약속의 후손이고, 정통교회이고, 하나님께서 이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만을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유자이고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사라가 진짜 어머니입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진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산 위의 도성”(마5:14)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루살렘 도성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에서 땅에 내려옵니다. 예루살렘 도성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이 땅 위에 세워진 새 언약 교회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속박하는 율법의 종노릇하는 지금의 예루살렘이 우리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하갈이고 가짜 어머니입니다. 약속을 따라 자녀들을 낳을 수 없고 육체를 따른 자녀들인 종들을 낳는 음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상황도 이와 유사합니다. 바울은 족장시대의 아브라함의 가정교회의 상황을 알레고리로 사용하여 주후 30년~70년 사이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의 상황에 적용시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 동일한 패턴이 역사의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배교하고 거짓된 교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리기 위해서 교회라는 말을 계속해서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거짓된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의 입이 봉해져 있고 인간의 소리들만 들립니다. 순수한 복음의 선포가 없습니다. 성례가 올바르게 시행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을 참된 복음도 없습니다. 참된 신앙고백도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순수한 가르침을 지지하는 교회를 찾아서 그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단체들 가운데서 무엇이 참된 교회를 구성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분명한 표지를 남겨두셨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고 틀림없는 분별법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보탬이 없이 성실하게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복음이 순수하게 전해지는 곳과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인도되어 하나님 안에서 모든 필요를 구하는 곳에서 드러납니다. 바로 모든 영광과 참된 복음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집이고 성소이고 우리의 어머니인 참된 교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된 교회를 통하여 생명을 얻었고 더 풍성히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단체에게나 교회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양 떼와 유대인들의 변절 후에도 끝까지 남아서 충성한 사람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신자들의 모임에게만 교회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주셨고 어머니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리석게 저 배교한 교회들의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배교한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이 알레고리를 통하여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교회들 가운데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가 공존하는 상황이 아무런 충돌이 없이 그냥 평화롭게 지속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28절에서 알레고리가 끝나는 것 같았지만, 다시 29절에서 “그러나”로 시작하여 이 알레고리에 하나의 경고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라고 말씀하는데, “그 때”는 창21장에서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있을 때, 특별히 이삭이 젖을 떼었던 날에 배설했던 잔치의 때를 말합니다.

 그 때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다고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핍박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젖을 뗀 어린 이삭을 희롱한 이스마엘의 행동을 핍박으로 해석한 사도 바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를 희롱한 것은 분명히 핍박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교회 안에서 두 다른 교회, 두 백성 사이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계집종의 자식이 자유로운 여자의 자식을 핍박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했습니다. 거짓교회가 참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이 핍박은 단순히 이삭이란 어린 아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삭에게 주어진 언약을 멸시하고 조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멸한 것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손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하여 오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삭의 언약이 되고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하여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이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다면 결코 이삭을 핍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이삭을 핍박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복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일이 “이제도 그러하다”(29절 후반부)고 경고합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금 있는 저 예루살렘”의 배교한 언약 백성들, 유대인들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 새 언약 백성들을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13,14장에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이 이 배교한 옛 언약 백성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조롱하고 이삭의 계보를 통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우리가 사도행전을 볼 때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 저 배교한 옛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이,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의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고 핍박하는 우리의 원수는 불신자들만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쉬운 상대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본질을 공격하거나 다른 복음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참된 교회를 세워가는 신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다른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들의 기독교인들입니다.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들은 참된 믿음으로 참된 교회로 결단하려고 하는 자들의 길을 막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복음을 변조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참된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참된 교회에 연합하지 않고 가면을 쓰고 교묘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작고 연약하고 소수라는 것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서 우리의 진짜 어머니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비록 우리 주변에 많은 교회들이 난무하고 교회로 가장한 많은 종교단체들이 있고 참된 교회를 핍박하는 가증스러운 기독교인들이 있을지라도 낙망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가증스러운 거짓 교회들을 하나님의 교회에서 추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들을 당신의 발아래 두실 것입니다.(고전15:25) 따라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멸시와 비판을 당하고 소외를 당해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어머니를 붙들고 끝까지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짜 어머니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먹고 잘 수 있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자녀로,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로 살도록 해주셨음을 감사합시다. 일평생 동안 우리의 진짜 어머니의 품 안에서 먹고 마시고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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