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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11-21 (일)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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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사단의 공격과 하나님의 보호
교회에 대한 사단의 공격과 하나님의 보호
2021년 11월 21일 주일 오전설교
성경봉독 : 창3:1-7, 9:20-29, 계22:1-19
설교본문 : 창9:22-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회중 여러분!
 지난 시간에 우리는 노동 뒤에 오는 안식을 통하여, 이 땅 위에서 쉼을 누리며 살아가는 샬롬의 상태를 노아를 통하여 조명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의 쉼에 큰 위기가 생기게 된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발견하게 됩니다. 가나안의 아비 함이 노아의 장막에 침입하여 노아의 노출된 상태를 보고 형들에게 고함으로 홍수 이후에 첫 번째 교회 속에 위기가 닥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세상의 첫 번째 교회에 사단이 뱀을 통하여 침입하여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에 빠뜨렸듯이 두 번째 세상의 첫 번째 교회 속에 사단이 잠입하여 함을 통하여 형제들을 유혹하여 교회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던 셈과 야벳은 첫 번째 교회의 아담과 하와처럼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소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보존합니다. 즉 셈과 야벳은 특별한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교회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아버지 노아의 상징적 위치를 지켜줌으로 교회의 참된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교회 안에서 두 부류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투쟁을 보게 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야웨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침투한 사단의 공격을 상징적 계시를 통하여 무너뜨리심으로 교회를 보존하신다”입니다. 이 주제로 다음 두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교회 속에 침투한 사단의 공격





 둘째, 상징 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방어

 첫째, 홍수 후 첫 번째 교회, 곧 하나님의 성소 속에 침투한 사단의 공격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와 대지의 요점들을 들으면서 본문에 이러한 말이 어느 곳에 나오는가 하고 의문을 갖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 문자적으로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시 역사적 관점에서 본문을 제대로 해석하자면 분명히 본문은 이런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노아의 위치와 사역과 안식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설교 본문 바로 앞에 21절에 보면 노아는 포도원 성소에서 물러나서 포도주를 마시고 안식했습니다. 즉 땅의 주인이고 왕적 권세를 가진 노아는 자기 장막 안에서 안식하고 노아의 아들들은 포도원 성소에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상황은 첫 번째 세상의 창조 후에 첫 번째 하나님의 성소 곧 교회에서 일어난 일과 동일합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 있는 동산 성소에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때 노아가 직분자로 섬긴 교회는 홍수를 통과하여 구원받은 작은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홍수 후에 노아는 포도원을 심어서 그 포도원을 임시 성소로 삼고, 하나님처럼 자기 사역을 마치고 자기 장막에서 안식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이름처럼 두 번째 세상의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식을 얻고 있습니다. 노아를 통하여 참된 위로가 세상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가나안의 아비 함이 노아의 장막에 허락 없이 무단으로 침입하여 노아의 노출된 몸을 보고 형제들에게 고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첫 번째 세상의 에덴의 동산 성소에서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가 안식을 누리고 있을 때 뱀을 통하여 사단이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하와에게 고하면서 유혹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성소에 사단이 가나안의 아비 함을 통하여 등장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전에 일어난 일과 동일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사였던 사단이 하나님의 통치권에 도전하다가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아담과 하와도 자기와 같은 타락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함도 먼저 자신이 노아의 통치권에 도전하여 타락하게 되고, 다음으로 형들도 자기와 같은 타락에 빠뜨리려고 유혹합니다(적어도 함은 타락한 첫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 믿음으로 사는 삶을 선택함으로 방주에 들어간 여덟 명의 의인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함은 홍수 후에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 세상의 처음에 뱀에 의해서 행해진 그 악을 새로운 세상에서 그대로 모방하여 그 방식대로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❶ 과연 함이 자기 아버지 장막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나체를 본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인가? ❷ 아버지가 벌거벗고 잠자고 있다고 형들에게 말한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되는가?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함은 잘못이 없는데 노아가 괜히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선언한 것이 됩니다. 과연 땅의 주인 노아가 별일도 아닌 것으로 과민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함은 분명히 죄를 범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24절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라고 말합니다. 노아가 저주를 선언한 이유는 “작은 아들이 행한 일”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작은 아들 함이 행한 일이 무엇이기에 이것이 저주받을 죄가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함이 행한 일은 자기 아버지의 노출된 몸을 보고 형제들에게 고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 속에 함의 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❶ 먼저 함이 노아의 “ 노출된 몸을 본 것”이 어떤 의미에서 죄가 되는 것일까요? 어떤 분들은 이것을 동성애로 봅니다. 분명히 노출된 몸을 덮지 않는 것은 성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레18장). 그러나 여기서는 의미가 다릅니다.

 레위기 18장에서 노출된 몸을 보거나 덮어주는 것은 분명히 성관계를 말합니다. 즉 남녀의 생식기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노아의 노출된 몸을 보았다는 것은 함이 노아의 개인적인 부분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함의 형들의 행동과의 분명한 대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함은 노출된 몸을 보았고, 형들은 노출된 몸을 덮어주었습니다. 만일 함의 행동이 성적인 것이라면 함의 형들의 반대적인 행동은 보지 않은 것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형들이 일부러 자기 아버지의 옷을 덮어주기 위해 장막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함의 행동이 죄가 되는 것은 노아의 신분적 위치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첫 번째 성소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 성소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두 번째 세상의 첫 하나님의 성소에서는 그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 나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땅의 주인인 노아가 포도원 성소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을 상징하는 특별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소에서 셈과 야벳과 함과 그의 가족들은 모두 노아의 권위와 통치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함의 죄는 바로 불법적으로 노아의 장막에 침입하여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에 대항한 반역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여호와의 통치권에 대항하여 타락한 것처럼, 아담이 타락한 것과 동일한 범죄입니다. 스스로 아버지처럼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것입니다(함 또한 아담처럼 참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찬탈하려 한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에덴동산의 성소가 회복된 것이 성막입니다. 이 성막과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을 나타내는 노아의 장막을 비교해 봅시다. 곧 “지성소 안에 노출된 상태로 있는 언약궤”와 “장막 안에서 노출된 상태로 있는 노아”를 비교함으로 함의 죄가 얼마나 큰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언약궤 위에 두 그룹이 있고, 그 그룹 사이의 속죄소에 여호와의 보좌가 있습니다. 다시말해 성막 안 지성소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는 특별히 지성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궤가 지성소에 있을 때는 언약궤가 노출된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성막이 이동할 때, 언약궤가 밖으로 나올 때는 휘장으로 덮어서 궤 사면을 채로 궤어서 어깨에 메고 가야 합니다. “행진 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창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꿴다”(민4:5-6). 이렇게 궤를 덮는 이유는 궤를 함부로 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성소 안에 있을 때에도 언약궤는 휘장에 의해서 가려집니다(출26:31-34). 그러나 그 휘장 뒤에서 언약궤는 노출된 상태로 있습니다.

 이 그림은 본문에서 노아의 상황을 잘 설명해 줍니다. 따라서 본문은 에덴에 있던 동산 성소를 복사한 것이고, 동시에 미래에 세워질 성막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을 상징하는 인간 노아는 마치 지성소의 언약궤처럼 장막 안에서 노출된 상태로 있었고 장막에 의해서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노출된 몸을 보는 것은 여호와의 통치대권에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제사장 외에 성소 출입 금지, 웃시야 왕 함부로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다가 문둥병이 생기는 심판받음).

 ❷ 그리고 함이 형들에게 아비의 노출된 몸을 보았다고 한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요?

 100살이 넘은 사람이 단지 아비의 노출을 보았다고 형들에게 알리고 비웃은 것일까요? 이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함이 노아의 장막 안에 불법적으로 틀어가서 아버지의 노출된 몸을 본 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에 도전한 악이었습니다. 특별히 이 일은 두 번째 세상의 초두에 일어났습니다. 노아는 이런 가나안의 아비 함을 저주함으로 앞으로 이런 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막고 있는 것입니다. 함의 행동은 자신의 반역에 형들이 함께 할 것을 유혹한 행동입니다. 단순히 노출된 몸이 문제가 된 것이라면 굳이 셈과 야벳이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 옷으로 노아의 몸을 덮어 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셈과 야벳이 옷으로 노아의 몸을 덮어 준 것은 분명히 함의 어떤 제안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 행동의 결과가 함의 행동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째, 의로운 셈과 야벳이 노아의 노출된 몸을 덮어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하여 함을 통한 사단의 공격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지켰습니다.

 셈과 야벳의 행동이 상징적 행위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굳이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 노아를 옷으로 덮어주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이미 장막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단지 함의 유혹을 거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23절에서 셈과 야벳의 행동의 핵심이 ‘옷’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옷은 그 사람의 신분과 위치를 드러냅니다. 노아가 벗어 둔 옷은 그의 직무의 옷, 권위의 옷입니다.

 여러분 셈과 야벳이 이 옷을 취하여 귀퉁이를 각각 한 쪽씩 잡고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을 쳐서 노아를 덮어주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뒷걸음을 친 것은 노아의 노출된 상태를 보지 않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어깨에 옷을 걸치고 뒷걸음질 쳤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깨가 중요합니다. 왜 하필이면 어깨입니까?

 여기 어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세겜’입니다. ‘세겜’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이름에도 사용되고 지명에도 사용됩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창33:18)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겜은 지역입니다. 야곱이 도착한 성의 이름입니다. 창33:18이후에 계속해서 보면, 세겜 성의 왕은 하몰이고, 하몰의 아들의 이름이 또 세겜입니다. 세겜성은 지리적으로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하는데, 마치 말안장처럼 가운데 깊이 패여 있는 지형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산꼭대기 곧 산봉우리를 머리라고 표현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창8:5, 계17:9) 그래서 세겜 지역은 이 산봉우리인 머리들을 떠받치는 어깨들에 해당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몰의 아들 세겜은 그 세겜성의 머리인 하몰을 떠받치는 어깨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겜 곧 어깨라는 말이 성경 전체에서 뭔가를 떠받치고 유지하고 지지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특별히 하나님의 보좌를 떠받치고 지탱하는 개념에 사용됨).  

 성경에서 어깨란 뜻의 더 정확한 의미는 ‘카테프’입니다. 이 단어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의,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말입니다. 또 이사야 22장 22절은“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둘 것이다”말합니다. 민수기 7장 9절에서는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것이다”라며 고핫 자손에 대해 말합니다. 대상15:15에는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여기서는 어깨와 하나님의 궤를 연결시켜서 말합니다.

 여러분! 이 상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아 시대 이후에 성막과 성전의 구조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성막과 성전에서 ‘기둥’이라고 나와 있는 단어들이 바로 어깨입니다(출27:14-15,38:14-15; 왕상6:8; 왕하11:11; 대하23:10...).

 성소는 성전의 머리로 만든 것이고, 성전 뜰의 청동제단은 발입니다. 그러니 기둥들은 바로 머리인 성소를 떠받치고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 전체는 한 사람의 모양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실제로 자기 어깨 위에 하나님의 성소인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두었습니다.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찌며”(출28:12), 또 하늘의 바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어깨 위에 있었습니다(왕상7:30,34). “받침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 넷이 있는데 그 어깨는 받침과 연하였고”. 이처럼 성막과 성전의 구조는 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고 대제사장 한 사람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보면 노아의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노아의 권위를 지지하고 지탱하는 어깨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언약궤를 성막 기둥 곧 어깨들에 걸쳐있던 휘장을 걷어서 덮듯이, 셈과 야벳은 자신들의 어깨에 걸쳐있던 노아의 옷을 자신들의 어깨로부터 분리시켜서 노아의 노출된 몸을 덮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셈과 야벳의 의로움입니다. 그들은 아버지 노아의 통치권에 도전하자는 함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의 질서를 파괴시켜서 타락에 빠뜨리려는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버지 노아의 권위를 유지시켰습니다. 교회를 보존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의 의로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창11장에 셈과 야벳의 후손들은 니므롯을 중심으로 하는 힘의 원리를 추구하는 일에 동화되어 바벨탑을 쌓는 일에 참여하고 맙니다. 다시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떨어지고 맙니다.

 이런 배교한 교회 중에서 참된 성소를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과 창세기의 족장들은 제단을 쌓고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음으로 동산 성소를 부분적으로 재건하였습니다. 이들은 힘의 논리, 세력의 힘이 아닌, 흩어짐으로 무기력하게 보이나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며 사는 믿음의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세상나라와 달리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세워져 갑니다. 이 길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선지자, 제사장, 왕직인 직분자입니다. 그러나 이 직분자들이 타락함으로 온 이스라엘이 배교하여 다시 동산 성소가 타락에 빠져 더럽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여 결국 이방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됨을 보게 됩니다.

 400년의 어둠의 시기가 지난 후 마침내 때가 차매, 여자의 씨 약속하신 메시야께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오셔서 장막을 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육체가 참 성전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역을 통해 동산 성소를 회복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으로, 참 성전으로, 참된 언약궤로서 야웨의 통치권을 가진 권세자로서 사역하셨습니다. 참된 동산 성소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러나 함과 같은 백성들의 무지와 죄악으로 인해 말씀이신, 참 언약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나무에 달려서 노출당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에 도전하였습니다. 동산성소에 침입한 사단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신포도주를 받아 마신 후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다 이루시고 잠드셨습니다(요19:30).

 여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참된 노아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마치시고, 신포도주를 마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심을 통하여 참된 동산 성소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요19:41)고 합니다. 이스라엘(세상) 땅에 동산이 있고, 그 동산 안에 새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에 바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장사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언약 시대에, 새 세상에서 첫 번째 동산 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몸을 통하여 동산 성소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성도여러분! 큰 돌로 봉인된 예수님의 무덤은 하나의 지성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무덤 속에 누워계신 예수님의 몸은 에덴동산에서 여호와의 보좌가 있던 지성소를, 두 번째 세상에서 포도원에서 장막 안에 누워있던 노아를, 이스라엘의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에 놓여있던 언약궤를 완전히 성취하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요20:12을 보면 이 사실은 더 확실해집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였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 이것은 바로 출25:17-19에 기록된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지성소의 언약궤의 모습을 보면, 언약궤 위에 속죄소가 있고 그 속죄소 양편 끝에 두 그룹 곧 두 천사가 속죄소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몸이 놓였던 자리가 있고 예수님의 몸의 양 끝에 두 천사가 예수님의 몸을 둘러싸고 앉아 있습니다. 그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에덴에 있던 동산 성소를 여기에 당신의 몸으로 새롭게 설립하심으로 새 언약 시대를, 새로운 세상을 열고 계십니다. 이제 동산 성소를 완전히 성취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시고(요20:22) 새로운 명령을 주시면서 당신께서 가지신 통치의 대권을 제자들에게 위임해 주셔서, 제자들로 하여금 더 완전한 동산 성소인 교회를 이 땅위에 설립하게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위임받은 제자들은 온 세상으로 향하여 나가서 동산성소 곧 교회를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계21장과 22장은 제자들을 통하여 세워진 완성된 동산 성소 곧 새 언약의 교회를 완성된 형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완성된 동산 성소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으로 친히 이루신 동산 성소가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산 성소는 이제 더 이상 동산이 아닙니다. 동산이 완성되어 도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산 성소의 완성인 새 예루살렘성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는데, 이 단장된 것은 에덴에 있는 동산의 풍성한 성취입니다. 완성된 형태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그 가운데 거하고, 온갖 보석들과 생명나무를 포함한 아름다운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고, 생명수 강이 어린양 보좌로부터 흘러넘칩니다.

 이 아름다운 동산 성소가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들과 나무들과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넘치는 곳입니다. 교회는 바로 동산 성소의 완성된 형태인 산 위의 도성입니다. 사방을 향하여 문이 열려 있는 아름다운 동산 성소로, 새 예루살렘 도성으로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옵니다(계21:24-26). 그러나 속된 것이나 가증한 것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누구도 이 아름다운 성소에, 산 위의 도성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산 위의 도성을, 동산 성소를 여기에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보좌 곧 언약궤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이 강단을 통하여 여호와의 통치의 대권이 실현됩니다. 세우신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 여호와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보석들로, 아름다운 나무들로 여호와의 보좌를 둘러싸며 하나님의 도성을 이루면서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도성은 사방을 향해 열려 있고 사람들이 믿음으로 결단하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소에 들어와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경고가 주어집니다. 함처럼 감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 속에 주어져 있는 야웨의 대권에 도전하는 자는 이 거룩한 성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셈과 야벳처럼 야웨의 통치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지키는 자들만이 이 영광을 계속 누리면서 하늘의 도성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새하늘과 새 땅, 영광스러운 회복된 동산 성소에 있는 자들도 말씀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을 달리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을 형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마시기를 거부한다면 이 거룩한 성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완성된 도성 안에 있는 백성에게 요한을 통하여 주시는 경고를 듣겠습니다. 계22:18-19 “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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