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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11-14 (일)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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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사역과 안식
노아의 사역과 안식
2021년 11월 14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창2:1-3, 9:20-28
설교본문 : 창9:20-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수로부터 구속하신 당신의 백성인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원을 심고, 그 포도원에서 나오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자기 장막에서 옷을 덮지 않고 자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으레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여 본문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교회 역사 가운데 오랫동안 믿음의 조상 노아는 ‘술에 취해서 벌거벗고 추태를 부린 늙은이’로 그리고 함의 타락을 조성한 원인 제공자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다른 각도로 다루고자 합니다. 성경은 단순한 윤리 도덕책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인 기준으로 볼 때, 기독교인이, 직분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더군다나 술에 취해 자기 집에서 벌거벗고 잠든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단순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모세처럼 직분자이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창세기라는 책 속에서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아의 행동을 ‘선지자적인 행위 계시’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노아의 마지막 생애에 대해 기록된 본문이 속한 단락을 창조 사역 후 하나님의 안식과(창1-3장) 셋 계열의 안식(창4:25-26)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노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땅의 주인 노아는 포도원을 심고 포도주를 즐기며 안식하였다”는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노아의 위치
둘째, 노아의 사역
셋째, 노아의 안식입니다.

 첫째, 홍수 후에 새하늘과 새 땅에서의 노아의 위치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세기에서의 본문의 위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6:9-11:9까지의 노아의 톨레도트는 마치 창조 사역의 셋째 날과 상응합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큰 단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셋째 날 전반부에서처럼 홍수 후에 육지와 바다의 새로운 분리가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셋째날의 후반부에서 육지에 식물들이 증가하는 것처럼 창10장에서 “이는 노아의 아들들의 계보이다”고 하는 서론으로 시작하는 증가된 “민족들의 목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벨에서 흩어짐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톨레도트에서처럼 노아의 톨레도트는 두 이야기가 계속되며 새로운 이중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타락은 함의 타락이고(이는 아담의 타락과 유사), 두 번째 타락은 그 이후 후손들의 타락입니다(가인의 타락과 유사).

 9장의 문맥에서 보면 땅의 주인 노아가 포도원을 심는 일을 하고, 그 포도원에서 나온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옷을 덮지 않고 자기 장막에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함이 노아의 장막에 침입하여 노아의 노출된 몸을 보고 형제들에게 반역하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이 유혹을 뿌리치고 노아의 권위를 존중해 주는 행동, 즉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옷을 뒷걸음쳐 들어가 덮어주므로 포도원을 지켰습니다. 노아에 의해서 복과 저주가 선포됩니다. 그리고 셈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안식이 약속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배경에서 본문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20절의 한글개역성경은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기록합니다.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땅의 주인인 노아는 포도원을 심었다’입니다.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노아의 위치가 어떠합니까? 본문은 노아가 “땅의 주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주인’이란 히브리어 ‘이쉬’는 여인의 주인, 종의 주인, 백성의 통치자로서의 남자를 말합니다. 그러니 노아는 땅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의 위치가 홍수 후의 새 땅에서 새아담으로 회복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구속사의 진전).

 아담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를 침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땅의 통치자에서 땅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노아를 새로운 땅의 통치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단지 원상의 회복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은 비록 다스리는 사명을 부여받았지만 그 사명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었습니다. 아직은 사람이 직접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노아를 시작으로 하여 형벌에 대해 재판할 수 있는 권세를 인간에게 주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9:5-6). 살인자를 죽이는 권한과 연관되는 것으로 동물을 죽여서 음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도 주었습니다. 이제 노아는 진정한 의미에서 땅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노아가 안식하는 동안 벗어 둔 옷, 셈과 야벳이 뒷걸음쳐 노아에게 덮어준 그 옷임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옷은 특별한 상징 혹은 의식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우상을 버리고 회개할 때 옷을 바꾸어 입으라고 합니다(창35:32). 요셉이 애굽을 통치할 때 통치의 상징으로 세마포 옷을 입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봉사할 때 특별한 옷, 에봇을 입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노아의 옷은 땅의 주인인 노아의 위치를 말해 줍니다. 이는 노아의 권위와 가족에 대한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본문에서 홍수 후에 새 땅에서 노아는 포도나무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고 통치자인 왕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주인으로서의 이 권리는 노아의 후손에게 계속 주어집니다. 그러나 교회가 타락하게 됨으로 대권을 상실하게 되고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을 약속하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인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타락하게 되고 이로 인해 땅에 대한 통치권을 빼앗기고 결국에는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70년 포로 생활 후 마침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부터 귀환하게 됩니다. 귀환 후 이스라엘은 새롭게 회복된 땅에서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주인 노릇은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또 다시 타락함으로 땅의 통치권을 타인에게 빼앗겼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에게 통치권을 빼앗겼습니다.

 여러분! 땅의 주인인 이스라엘이 아담처럼 오히려 범죄하고 타락하여 땅의 주인이 아니라 땅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 땅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었을 때,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당신의 새 창조 사역을 통하여 그 땅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마28:18)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셨습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바로 이 땅을 기업으로 분배해 줌으로(막10:30)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신자들이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거룩한 회중으로 모여 삼위께 예배하며, 주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제 새 땅의 통치자입니다. 말씀이라는 수단으로 이 땅을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들 각자는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고, 자기 자녀들에게 가르침으로 통치를 나타내고, 말씀사역자는 교회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함으로 통치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노아는 무엇을 했습니까?)

 둘째, 땅의 주인 노아는 포도원을 심었습니다.

 이 표현은 창2:8을 기억나게 합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창설하다’란 단어는 본래 ‘심다’라는 단어입니다. 즉 “야웨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쪽을 향하여 동산을 심으시고 그곳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특별 상징인 노아는 하나님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 사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 땅에 동산을 심으신 것처럼 땅의 주인인 노아는 방주를 통해 홍수에서 구원을 받고, 새롭게 된 땅에서 에덴 땅과 같은 한 지역에서 포도원을 심었습니다. 이것은 노아가 성숙했고 충분히 하나님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지위가 주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분명히 하나님은 왕이시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특별 상징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되자마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드러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더욱 자라가야 했고 충분히 통치자 되도록 성장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 나무가 주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는 하나님의 통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창조 이후에 미처 성숙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공식적으로 그에게 통치권을 위임하지도 않았는데, 이 권한을 스스로 잡아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120년 동안 인내하면서 방주를 건설했고, 벌써 601세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충분히 성숙했고 공식적으로 하나님께 통치권을 위임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노아는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닮은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동산을 심으신 것처럼 자기를 위하여 포도원을 심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아담이 에덴에 있는 동산 성소에서 쫓겨난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 동산을 회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모세가 지은 성막 이전에 이 포도원은 동산 성소의 모형이고, 임시 성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노아는 첫 번째 하늘과 땅을 본떠서 새롭게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에 포도원을 심음으로 동산 성소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래합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야웨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7).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주의 기업의 산에 포도원으로 상징되는 백성을 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가나안 땅에 주의 백성을 포도원으로 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도 출애굽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께서 심으심 포도원에 비유합니다(사5:7).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하여 당신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마20:1, 21:28; 눅13:6). 이렇게 포도원은 성경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심겨진 하나님의 백성 곧 성소를 가르치는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노아가 포도원을 심은 것처럼 성소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심겨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출애굽한 우리도 이 땅에 포도원으로, 성소로 심겨졌습니다. 이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으신 동산이고, 노아의 참 후손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심으신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노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 성숙되어 우리가 속한 교회를 이 땅에 심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자들로 성숙되어 아름다운 포도원, 아름다운 주의 교회를 심어가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단순히 자기 한 몸 겨우 살아가는 연약한 성도가 아니라, 이 땅 곳곳에 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하여 고심하며 수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본문은 포도원을 심는 일에 대한 기록으로 끝나지 않고 노아가 포도원을 심고 그 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마시고 자기 장막에서 잠든 것(안식)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셋째, 노아의 안식입니다.

 어떤 분들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추태를 부렸고, 그것이 노아의 죄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노아를 책망하는 말씀을 읽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일로 말미암아 함이 정죄 받고 있습니다. 마치 창12장의 아브라함의 사래를 누이라 속인 사건으로 아브라함이 책망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바로와 그의 집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본문을 보면 노아는 적당량의 포도주를 마시고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밖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자기의 장막 안에서 즐겁고 평안하게 옷을 덮지 않고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옷을 입지 않았지만 장막에 의해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죄라기보다는 평안한 안식의 상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노동 후의 안식입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조용히 쉬고 있는 안식입니다.

 본문은 직접적으로 창2장과 병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심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떠나 안식에 들어가신 것처럼 하나님의 특별 상징인 노아도 하나님처럼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아의 안식은 그의 아버지 라멕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라멕은 노아의 이름을 지으면서 예언하였습니다.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야웨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5:29) 라멕은 노아의 사역의 결과로 땅의 저주가 풀릴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저주가 풀리는 것은 안위 곧 위로의 형태로 주어질 것입니다. 땅은 여전히 하나님의 저주를 호소할 것이고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를 통하여 그 저주 가운데서 위로가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연 노아는 타락하고 부패한 땅에 안식을 주기 위하여 무엇을 했습니까? 노아는 죄가 관영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집인 교회 곧 방주를 건설하면서 죄인들에게 의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홍수를 통한 타락한 옛 세상에게 내리는 심판 중에도 보존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여는 자가 되었습니다. 곧 옛 세상의 파멸과 새로운 교회의 보존의 사명을 완수함으로 위로를 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홍수 후에 대규모의 희생제사를 드리고 포도원을 심음으로 수고로이 일하는 자들을 안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자기 장막 안에서 노출된 상태로 평안히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완전한 사역 곧 일을 다 마친 후에 주어지는 안식과 위로를 상징합니다. 포도주는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한 날의 일을 마치고 긴장을 풀고 평안히 쉬면서 그 일의 열매를 즐기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적들에게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창14:18)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브람도 노아처럼 자기 일을 마치고 돌아 올 때 포도주를 선물로 받아 즐기면서 안식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포도주는 종말론적인 음식입니다. 일을 마치고 즐기는 음식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포도주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실하게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광야에서 멸망받았습니다. 포도주는 신실하게 봉사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종말론적인 선물이기 때문입니다(고전9:7).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성막에서는 포도주를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일을 다 마친 제사장들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민6:15-20;15:5-24;28:7-24;29:6-38). 구약성경 곳곳에서 포도주는 종말론적 메시야 왕국의 잔치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새언약 시대는 포도주를 풍성하게 마시고 포도주가 흘러넘치는 것으로 예언하였습니다(사25:6, 렘31:12; 암9:13-15).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이다(마8:11). 또 그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눅13:29)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분명히 포도주 잔치와 천국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왕국의 도래는 모든 민족들이 성소에서 잔치를 베풀기 위하여 함께 모여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신약성경 요2장의 가나의 혼인 잔치는 바로 새언약의 시대인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증거로 잔치에서 포도주로 모두가 흡족하게 마시고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상의 모든 사역을 마무리하실 즈음에 제자들과 유월전 만찬을 나누시게 됩니다. 이때 떡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 단번에 당신의 제사장적인 사역을 완수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안식으로 들어가셨습니다(히4:14). 이렇게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도 안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아가 자기 사역을 끝내고 안식에 들어간 것처럼,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역을 끝내시고 하늘로 올라가 안식을 누리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매 주일 예배로 모여서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고, 말씀을 듣고 찬양을 올림으로 안식을 누립니다. 우리는 특별히 예배 중에 주께서 제정해 주신 성찬을 통하여 주의 상에서 떡과 포도주를 마심으로 안식을 누리면서, 종말론적인 안식을 소망합니다. 이것은 영원한 안식의 현재적인 성취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포도주 잔치에 대한 예언이 현재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매 주일 예배 가운데로 초대하시고 당신의 식탁에 초대해서 성찬을 배설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안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주의 평강을 경험합니다. 안식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6일 동안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힘써 수고하다가 주일에는 어린양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포도주에 흠뻑 취하여 긴장을 풀고 위로를 누리고 새 힘을 얻어서 다시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게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히4:11은 우리가 이미 안식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안식할 때가 남아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더 완전한 안식을 바라면서 오늘도 땅의 수고와 고통 중에도 우리의 일을 하고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노아처럼 패역한 이 세대에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당세에 완전한 자요 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노아처럼 여러분이 우리 시대의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의와 심판을 증거하며 사셔야 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여러 상황으로 힘겹고 낙담되기도 하지만, 천국을 여시고 종말의 음식인 포도주를 먹이시는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의 한 위치가 있음을 잊지마십시오. 믿음의 길을 살도록 부름받은 새 시대의 직분자인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여러분이 예배하며 봉사하며 섬기는 삶이 가장 좋은 복음의 사용설명서가 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처럼 하나님 섬기는 ‘의의 후사’를 많이 남기며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하며 살아가게 될 때 신실한 백성에게 주셨던 주의 위로를 동일하게 받게 될 것입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라”(살후1:7),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주의 언약의 말씀 붙잡고 종말론적인 안식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을 통해 복음의 진리가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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