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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9-19 (일)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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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2021년 9월 19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전도서 3:1-15, 11:9-10
설교본문 : 전도서 3: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움 중에서도 날마다의 일상이 이어져 어느듯 10월을 앞두고 있는 추석명절을 맞이했습니다. 지나온 시간 여러분은 행복하셨습니까?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을 즐거워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저는 “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기에 우리는 삶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주제로 교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려 합니다.

 1절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서, 즉 땅 위에서 행하는 만사에는 하나님이 정한 기한이 있고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때와 그 때에 따른 특정한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이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전도자는 3:2-8절에서 긍정과 부정의 서로 상반되는 열네 쌍의 긴 목록을 제시합니다. 이 목록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나는 일로서 인간의 출생으로부터 죽는 날까지의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전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포괄적인 계획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서로 대조되는 것들의 묘사로 시작이 됩니다. 또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 식물의 생명조차도 심고 거두는 것(2절)이 하나님의 계획의 범주속에 있다고 교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국가를 심고 뽑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손 아래서 이루어짐을 말씀합니다(렘18:7; 스바냐2:4).

 만사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생각하여 보면 인생은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행복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인생에는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바랄 때가 있고 실망할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어느 날 우리는 초상집에서 곡하고, 그 다음 날 우리는 혼인 예식집에서 웃습니다. 이것이 삶이고, 이렇게 인생은 지나갑니다. “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습니다”(5-8절).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직면하는 이와 같이 서로 대조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비교적 부유함과 평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죄 가운데 타락한 한 측면과 맞대어 살면서 대단히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타락한 뒤에, 인생이 먼지와 같으며,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기력이 서서히 약해져 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고통 가운데서 자녀를 출산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를 잉태하고 해산하면서 당하는 시련과 또 양육하면서 받게 되는 고통과 더불어 유쾌하지 못한 현실을 요람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여러분의 이마에서 땀을 흘리지 않으면 먹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의 삶은 죄로 인해 파산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의 죄의 결과로 일어난 것에 붙잡혀 있고, 죄의 타락에서 오는 결과에 의해 짓눌려 있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에 의해서 압박당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파산된 삶의 헛됨을 제거하려고 애써보지만, 누구도 이 고통스러운 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만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수고 그 자체가 사건의 시기나 환경 또는 통제를 변경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과 역사가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각자의 인생과 역사 속에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정해져 있다면 무엇을 그렇게 이루려고 애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때를 따라서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전도자는 9절에서 이렇게 반문합니다.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 무엇이랴?” 했습니다. 이 전도서 3;9은 1:3에서 제기한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무슨 의미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는 문제의 반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면 사람이 애써 수고하여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한 것이 정작 그 사람에게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전도자는 앞 1-2장에서 인간의 한계를 말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태어난 날을 정하며 어떻게 우리가 죽는 날을 정할 수 있습니까? 또한 자연 법칙, 사회 질서, 환경들 여러 가지 것들이 한계가 있고 그 한계의 근원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불신자와 신자의 관점이 다릅니다. 불신자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믿는 자는 인간의 한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며 이 한계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인생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한계를 따라서 이 땅에서 수고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한계를 두셨다는 것을 아는 정도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11절에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 있어서 모든 사건과 관계들을 “아름답게” 지으셨다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와 질서가 오히려 인생과 역사를 의미 있고 아름답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뜻을 따라 자기 힘으로 자기를 위해서 행하는 것들에 의미와 가치가 있으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나 실은 정반대입니다. 우선 사람은 유한하고 무지하고 죄로 인하여 불완전하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이 세상은 인간의 죄성이 난무하는 불의하고 불법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질서를 아름답게 하시고 그 아름다움에 덧붙여서 하나님의 계획의 모든 세밀한 것까지도 서로 조화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11절에서 천하의 범사에 때가 있어서 나의 한계로 인한 좌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오히려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이 순간들을 결정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앞에 장례식이나 잔치를 두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두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0주일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양식과 음료,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와 같은 손길로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신 제 때에 아름답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아름답습니다. 심지어 고통도, 눈물도, 전쟁도, 우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 않습니까? 믿음은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의 비참으로 떨어진 직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뱀에게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적대감을 여자의 후손과 뱀의 씨 사이에 심으셨다는 것이고 그리고 계속되는 그들 사이의 투쟁 곧 전쟁이 있을 것과 전쟁의 결과로 여자의 후손은 발꿈치를 상하나, 사단은 머리가 상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생이 눈물을 흘릴 것이며, 고통이 있을 것이며, 재난이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눈물과 고통과 상함의 목적을 선포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승리가 고통과 눈물을 통해서 들어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고하는 고통이 하와에게 임하고, 그리고 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하와는 이 모든 일에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와는 하나님께서 죄와 사단을 패배시키기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하와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아담은 날마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시와 엉겅퀴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시와 엉겅퀴가 아담을 압도시키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인생이 파산한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오게 하시기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중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인생의 갖가지 시련들로 좌절해야 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중이셨고, 구속의 날을 서두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안에서 구속의 길이 상함과 분투와 전쟁을 포함하는 것임을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한 전도자는 11절에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셨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과 그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길을 승인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을 믿어야 하며, 주님이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고, 웃을 때나 울 때나, 사랑할 때나 미워할 때나, 전쟁할 때나 평화로울 때나 이 모두가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

 그런데 또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모든 일이 일어난 그 원인과 그 목적을 알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 방법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마음속에 불어넣으셨습니다. 그것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서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자 하며,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 세상의 속성과 구성의 의미를 알고자 하며, 또한 세상의 목적과 운명을 인식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범사가 어떻게 해서 완전하게 서로 연결되는가 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과 능력이 있습니다. 이 세상과 오는 영원한 세상이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가? 그리고 살아가면서 먹고 일하며 즐기는 일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사랑하라고 하는 소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계획은 매우 광대하고 영원하며 넓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힘으로 발견하고자 시도할 경우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전도자가 이제는 무엇을 깨닫습니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 ‘모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깨달음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측량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아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가집니까? 인생이 가진 한계는 우리 인생을 좌절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아름다운 뜻이 있어서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조성하신 한계임을 깨닫습니다. 분명 우리가 잘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라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 한계 때문에 허무하고 좌절하고 말았다면 이제는 그 한계 때문에, 그 한계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며 오히려 인생을 아름답고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전도자는 깨닫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딪히는 한계에 대하여 일차적으로 원망하거나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방법임을 믿음으로 오히려 그 한계로 인하여 감사하는 심정으로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동일한 사건을 놓고 신자와 불신자가 정반대의 해석을 내리고 정반대의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즐기는 것

 이 땅에서 주신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비록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잘 모르는 한계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아담에게 먹지 말라고 요구하신 것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선한 것이었던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게 보이고 죽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따르는 것이 가장 낫다고 여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며 이 땅에서 수고하며 낙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손길에서 나온 선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12-15절).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하는 것이 자기 인생의 분깃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즐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튼일을 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을 비롯한 이 세상의 것들과 진리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 즉 믿지 않는 한 인생은 비참한 불안과 낭패 속에 빠질 것입니다. 이런 확신은 우리를 만족함으로 이끌고 또 먹고 마시고 즐거워함으로 이끕니다. 전도자는 12-13절에서 말하길,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노라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그래서 삶을 즐거워할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고 나갑니까? 1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할 수도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또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라고 솔로몬은 말합니까?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으로 서는 법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경이로움을 갖고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아시고 날마다 우리를 안전하게 이끄신다는 것을 믿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앞에서 오직 경외하는 자세로 받아들일 뿐 거기에 더할 수도 감할 수도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제 때 곧 긍정적인 일이든지 부정적인 일이든지 일어나는 모든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초조해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삶을 즐겨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에게 닥치는 암울한 시절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먹고 마시는 삶을 즐겨야 합니다. 하박국은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15절에서 그 사실을 말합니다. ‘현재의 역사는 과거 역사의 반복이요 미래의 역사 또한 오늘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역사는 어떤 근본적인 틀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같은 것을 반복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역사가 어떤 규칙과 한계와 틀과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때 항상 같은 원칙을 가지고 일관성을 가지고 하신다는 뜻입니다. 진실로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님이시요 하나님이십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영원한 작정과 섭리를 믿고 사는 것은 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이것이 자동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았을 때에,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서 거짓으로 모함받고 옥에 갇혔을 때에, 요셉이 얼마나 고뇌를 겪었겠습니까? 분명히 쓰디쓴 원망과 불평이 요셉의 마음에 얼마든지 자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요셉은 삶의 큰 숙제 즉 이런 일이 다가온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주님께 맡겨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옳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그의 형제들이 애굽에 왔을 때에,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으로 이 모든 일을 행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다윗은 악신들린 왕 사울에 의해서 변방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쫓겨다니는 신세였습니다. 다윗이 이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까? 다윗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록한 시편에서 그는 주님을 신뢰했다고 고백했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길은 선하며, 하나님의 사역은 아름답다고 인정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 하나님에게 새나 꽃보다 더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자녀들을 새나 꽃보다 더 존귀하게 대하여 주십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삶의 여러 가지 고통과 어려움과 풍랑 속에서도 안전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슬플 때나 웃을 때나, 전쟁할 때나 평화로울 때나, 씨를 뿌릴 때나 곡식을 맺지 못해 뽑아낼 때나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삶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패역한 어둠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즐기며 살 수 있습니까? 아니 삶을 즐기는 것이 ‘죄’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복음의 부르심을 입고 공적 신앙을 고백하며 새로운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제 삶의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갈보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해 아래의’ 모든 비참을 제거하며 헛되지 않은 새로움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전도자는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시기 오래 전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성전의 복음을 알았습니다. 오실 구세주의 피를 통한 죄 용서를 알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삶을 즐거워할 것을 제시하며 삶의 기회들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것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승리 이후에 살고있는 우리는 훨씬 더 강력하게 “그렇다. 죄가 극복되었다. 그러하기에 죄로 야기된 삶의 의미가 또한 극복되었음”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절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삶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결국은 죽을 것이라는 핑계로 죄와 죄의 결말에 여러분을 내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자기 당대에 경건한 젊은이들에게 즐거워하라고 도전합니다. 주님 안에서 자신을 즐기라고 도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 안에서 자녀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즐기십시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4:11)고 말합니다. 분명히, 인생에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읽으나, 모든 것에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만물을 통제하시며, 또 그러하기에 주의 자녀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초조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영광의 길은 고난을 통해서 이릅니다. 이렇듯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부분의 기회들에 안심하십시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음식을 즐기며, 음료를 즐기며,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로 타락한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곤경, 질병, 슬픔, 근심, 파산됨이 이 타락한 세상을 특징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만물을 완벽하게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부침들을(물위에 떠올랐다 잠겼다 함) 마주할 수 있고, 우리에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를 영광으로 이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부침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삶을 주안에 즐기며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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