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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1-02-14 (일)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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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으로의 삶
송영으로의 삶
2021년 2월 14일 주일 오전 말씀
성경읽기 : 삼상2:1-10; 눅1:26-56
설교본문 : 눅1:37-38上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명절 복되게 잘 보냈습니까? 어떤 형편에서든 “내가 너의 간구함을 들었다”고 말씀하시는 주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셨습니까? 누가복음은 특별히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는 위로의 책입니다. 1-2장에서 다섯 개의 찬가로 시작하여 24장 “큰 기쁨”과 하나님에 대한 계속적인 찬양으로 끝이 납니다(24:52,53).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온통 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누가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적실성 있는 말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에 지배당하며 살아갈 것인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의 위로를 기다리던 참 교회의 기쁨과 삶의 비결을 배우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6절에 엘리사벳이 수태한 날로부터 여섯째 되는 날에 천사 가브리엘이 이번에는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그에게는 처녀 마리아에게 전해주어야 할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전에 사가랴에게 수태를 알려준 것보다 이번에는 더 기이한 소식을 전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종들인 천사들은 신속히 하등의 의문도 품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28-38절까지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이한 일에 대한 예고를 받았지만, 마리아는 37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고백과 함께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순종할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참된 겸손입니다.

 39절 이하에서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 고지를 받은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위해 서둘러 나사렛을 떠나 유대 땅 한 동네에 이릅니다. 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고 싶어했는지 본문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받은 메시야 잉태 계시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확실한 표적을 보기 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유대까지의 거리는 대략 120~160km 정도인데, 3~4일 정도의 여행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친척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태어나실 예수그리스도께서 유다(왕)와 아론(대제사장)과 다 관련되어있는 참 왕이시며 참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줍니다.

 먼저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영접과 축복을 받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42절).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45절).

 처녀인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은 참으로 기이하고 난처한 소식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던 경건한 백성들은 그 사실의 기이함보다는 주 야웨께서 참으로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위한 구속자를 보내셨다. 여인 중에 너(마리아)가 복되도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주의 계시를 따라 믿는 신앙이요, 언약신앙입니다.

 성령에 의해 영감 받은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께서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젊은 여자 마리아에게 가장 위대한 영예를 돌립니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

 여러분,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향해 “내 주의 모친”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벳은 놀랐고 기뻤습니다. 엘리사벳은 믿음으로 세상 가운데 빛이 비치기 시작하고 이스라엘의 소망이 최종적으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심 없이 처녀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기뻐하고 축복하였습니다.

 이 사실 이전에도 마리아는 가브리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이제 확고한 표적들로 말미암아 더욱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문한 마리아를 본 엘리사벳에게 다시 기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엘리사벳의 태 속에 있던 아이(세례 요한)가 마리아의 방문에 기쁨으로 뛰놀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임신 6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것이며, 사람을 알아볼 것이며, 또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기뻐하며” 반응할 수 있는지 그저 신비로울 뿐입니다. 다만 이 일에 대해 성경이 말하길, “성령이 충만하여”(41절) 행한 것이라 말합니다.

 이런 엘리사벳에 대한 마리아의 화답으로 47절 이후 찬송이 나옵니다. 이것이 소위 마리아 찬가(노래)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마리아의 노래’를 통한 주의 계시를 들을 것입니다. 이 노래가 구약의 ‘한나의 노래’와 어떤 연속성이 있는지, 또 ‘마리아의 노래’에서만 보여주는 진전은 무엇인지 살피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송영으로의 삶”이란 주제로 ‘마리아의 노래’를 통한 주의 계시를 듣겠습니다. 이 주제도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계집종의 비천함을 들어주심.
 둘째, ‘오실 그분’은 누구신가?
 셋째,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첫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47-48절에서 마리아는 “내 영혼(프쉬케, 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프뉴마, 영)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고 노래합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온 영과 혼을 다 드려 기뻐하며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리아 찬가 첫 부분의 주제입니다.

 먼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 고백을 마리아 개인의 고백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비천한 시골 처녀에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어 태어나시다니... 그 놀라운 일을 감당치 못해 겸비함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읽게 되면, 이 노래의 고백은 교회적 노래가 아니라, 단지 마리아 개인의 고백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고백을 공교회적 고백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나의 노래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한나의 노래 제일 첫 부분에서 한나도 역시 마리아처럼 자기에게 당한 일 때문에 하나님께 기뻐하며 찬미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삼상2:1).

 사랑하는 여러분! 한나의 노래에서 한나는 단순히 ‘개인적 감정’을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나는 ❶ 자신의 뿔이 여호와로 인해 높아졌으며, ❷ 자신의 입이 원수를 향해 열렸고, ❸ 주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노래합니다.

 성경에서 뿔은 ‘권능’, ‘권세’를 나타냅니다(신33:17; 시92:10; 삼상2:1; 시18:2; 계5:6; 등). 그래서 여호와가 ‘구원의 뿔이시고’(시18:2), 계시록에서 어린양으로 묘사된 그리스도는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한 여자가 임신으로 인해 높아지게 되는 상황을 ‘뿔이 높아졌다’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나가 ‘뿔이 높아졌다’는 것은 사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권능을 행하시는 것, 권세를 높이심을 말해 줍니다.

 또 “입이 원수를 향해 열렸다”는 것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성경에서 원수는 하나님의 권세를 대적하는 세력들입니다. 뱀의 후손들이요, 사탄의 세력들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원수는 블레셋, 아말렉과 같은 이들입니다. 따라서 태어날 아이가 대적을 멸하며,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가져올 것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나가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권능이 이 잉태한 아기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한나의 시대는 기준(왕이신 하나님)이 없이 자기 소견 따라 살아가는 시대, 다시 말해 어두움이 지배하며, 언약의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마치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시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역전시킬 한 사람, 사무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탄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임하셔서 자기 백성의 구원의 뿔을 높이시고, 원수를 쳐서 멸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한나의 노래는 불임 여자의 슬픔을 위로해 주신 개인적 노래가 아니라 “자기 백성의 구원의 노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상황을 마리아 찬가와 연결해 봅시다. 마리아의 노래는 한나의 노래의 성취이자 진전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으므로 기쁨의 찬송을 드린다”고 한 것은 무엇에 관한 것입니까? ‘계집종의 비천함’이란 단지 자기 개인의 형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마리아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전체 상황을 대변합니다(성경에서 ‘여자’는 종종 ‘교회’를 상징합니다. 계집종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곤고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천과 곤고함의 상황에 떨어져 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볼 메시아 탄생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이제 오실 그분을 통하여 구원의 뿔이 높아지고, 대적을 향해 주의 백성들이 입을 크게 열게 될 것입니다. 비천과 곤고함에 처해있던 주의 백성들은 구속하신 주를 찬양하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리아 찬가의 첫 부분에서 우리 주님께서 자기 백성의 비천함을 돌아보사 높여주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심을 만나게 됩니다.

 둘째, “오실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구원자이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슬픔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도움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에 대한 인식은 주께서 행하시는 사역에 맞춰져 있습니다. 초점을 주님 자신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왕”이십니다.

 마리아 찬가의 두 번째 주제는 “하나님께서 권세 있는 자들을 낮추시고 자신의 왕권을 드러내 보이신다”입니다(51-53절). 여러분, 왜 주께서 세상의 높은 자들을 낮추시고, 세상의 비천한 자들을 높이십니까? 그것은 세상의 권세자들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참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의와 공평을 위해 그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행합니다. 이것은 속이는 것이요, 남용입니다. 이제 주께서 스스로 높아진 교만한 자들을 치사 낮추시고, 그 왕권을 취하실 것입니다.

 한나의 노래는 거의 전체가 이 부분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3절 “교만한 말을 하지 말라”, 4절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띤다”, 5절 “풍족하던 자들은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주리지 않다”, “잉태치 못한 자가 일곱을 낳았고 자녀가 많았던 자가 쇠약하다”, 8절 “가난한 자를 일으키시고 빈핍한 자를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고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할 것이다.”
 전체의 주제와 결론이 6절과 10절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6절),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10절).

 여러분, 한나가 노래하고 있는 것은 ‘왕권’에 대한 것입니다. 왕권이 마치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높이고, 강한 척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진짜 왕’께서 부수시고 낮추실 것을 말합니다.

 메시아 시편인 시편 2편이 이 주제를 노래합니다. 열방은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비웃으시고” 그들을 철장으로 질그릇같이 깨어 버리십니다. 인간의 교만함과 강한 척하는 어리석음은 실로 부질없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없이 자기를 높이지만, 참 신자는 오히려 왕이신 야웨께 “떨며 즐거워합니다.”

 성도 여러분, 천사를 통해 수태 고지를 받고 또 그 친족인 엘리사벳과 그 태아를 통해 영접받은 마리아가 왜 이 시점에서 이런 내용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왜 한나는 사무엘을 임신했을 때 ‘한나의 노래’를 불렀으며, 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마리아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 백성을 비천함으로부터 구원하실” 예수님께서 큰일을 행하셨는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기”(50절)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마리아의 노래에서 비천으로부터의 건짐 다음에 “하나님의 왕되심”이 나타나고, 교만한 자가 꺾여지고 하나님의 왕권이 설 것을 말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안에 서는 방법은 바로 이 인정, 진정한 겸손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겸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적인 겸손을 생각합니다. “자신을 남보다 낮추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사울왕이 처음에는 겸손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의 ‘겸손’은 ‘자기를 남보다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겸손과 다를 바 없는 도덕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겸손은 도덕적 겸손이 아닙니다. 성경의 겸손은 오히려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자기의 욕망은 그 하나님을 거스르려 하지만 그때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그 ‘순종’이 겸손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자기 낮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부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비천한 자들을 다시 높이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높은 자들을 떨어뜨리실 것이며”, “왕과 귀족들은 낮아지고, 천한 이들이 높아지며, 부자는 공수로, 가난한 이는 풍족하게 될 것이며, 많은 자녀를 둔 자들은 쇠하여지고 자녀가 없던 자가 일곱을 갖게 될 것”을 말씀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참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만 백성들에게 진정한 긍휼이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왕권을 세우실 분임을 보여줍니다.

 참 왕이 오셔서 원수들을 파하시며, 스스로 높아진 자를 산산이 부수었습니다. 주의 통치를 통해 ‘의’가 나타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경건한 성도들과 더불어 우리 또한 우리의 왕이 오셨음을 기뻐합시다. 참 왕의 다스림을 “떨며 즐거워”합시다. 주는 믿는 도리의 사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께 끝까지 순종하신 겸손의 주님!,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사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이시다”입니다.

 이 주제는 한나의 노래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부분입니다. 54절 말씀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단어는 ‘기억한다’입니다. 이 단어는 55절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라는 말씀과 이어집니다.

 마리아의 찬가에서 확인되는 예수님의 특징은 첫째, 왕으로 오시는 분이시며 둘째, 자기 백성을 비천으로부터 건지시는 분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을 왕으로 맞으며, 그 왕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교리문답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비참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 참으신다’는 사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되, 그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그 자비를 보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은 언제나 이 사실을 기억하고 살았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조상들로부터 야웨께서 행하신 일들을 들으며 믿음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이 ‘언약의 전승’이요, 55절이 말씀하는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을 건지실 참된 메시아가 세상에 왔다”는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부단히 계속해서, 잊지 아니하시고, 신실하게” 이루어 오고 계셨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 구절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셨다”는 말씀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로 연결되는 이 구절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주제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긍휼과 자비하심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했고, 그 잉태로 인하여 성령에 감동하여 한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의 주제는 왕권에 대한 것이요, 그 왕께서 하시는 일은 비천함 가운데 처해있는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 구속적 사건은 자기 백성을 향한 지극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함께 또 다른 마리아의 찬가를 부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왕이 되심을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또 다른 찬가로 드러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긍휼을 베푸신 것을 기억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종의 섬김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찬가를 부릅시다. 그리고 장구한 역사의 흐름 동안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같은 자비하심을 보내오신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기억하여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을 찬양합시다.

 여러분, 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늘 힘써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친척이면서 주를 향한 같은 신앙을 가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 일어나는 교제를 보니 놀랍지 않습니까? 가족간의 덕담이나, 신앙의 위로나 상담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구속 사건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또 복중에 있는 아이(세례 요한)가 그 주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노는지라, 기쁨으로 뛰놀았도다!”(41,44절). 이 아이는 주님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실 때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주일 예배당으로 오실 때, 주의 이름으로 심방받을 때, 여러분의 신앙 태도가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복중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 주에게 반응하며 뛰놀았습니다. 이미 태중에서 요한은 주 예수를 위한 길을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가랴는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일하게 될 요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아이여 너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왜냐하면 너는 주의 앞에 가서 그를 위하여 길을 예비할 것이기 때문이다”(76절).

 실제 선지자의 사역을 수행할 때도 요한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에게 향하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요한의 제자들이 시기하여 불평할 때조차도 “ 신랑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벳은 말하기를 “복되도다! 믿는 여자여! 주께서 당신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은 그 여자 마리아를 복주셨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통하여 주신 그 메시지를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메시지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서 마리아에게 삼중적인 확증으로 당신의 약속을 더 확고하게 해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이 확신을 붙잡았습니다. 마리아가 그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리아를 복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확고합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믿은 것을 믿는 여러분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실 뿐만 아니라 왕이십니다.

 이 땅의 왕국들은 세워지고 또 망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태에 가진 아이를 “내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에 앉아계신 그분을 더욱더 주님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그 자체가 ‘송영의 삶’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할지는 이 송영에 따른 세부사항일 뿐입니다. 내가 학교에 다니며 배우든, 가정을 돌보며 지키든, 공장에서 일하든, 밭에서 농사짓든, 경매하든, 병원에서 일하든,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장사하며 가업을 운영하든지 우리의 삶이 우리 왕 예수께 대한 찬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예배하고 복종하는 여러분들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결정적으로 영원히 우리 가운데 다시 오셔서 의와 평강의 왕국을 설립하실 것을 믿는 여러분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송영의 삶으로 주의 왕권을 드러내는 겸손한 자리에 늘 머물러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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