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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1-15 (일)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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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해서 주의 자녀들에게 감사의 제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해서 주의 자녀들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을 요구하신다.  
2020년 11월 15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로마서 12:1-3; 말라기 1:6-2:9
설교본문 : 말 2:5,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12장 1-3절은 우리의 삶의 비망록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반향(反響)하는 구속받은 백성인 하나님의 제사장들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감사의 산제사를 드리라고 요청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말라기 당대의 교회가 다시 배워야 했던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이 사실은 저와 여러분 또한 배워야 하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해서 주의 자녀들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을 요구하신다.”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자 합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주님께서 요구하신 감사의 제사
2. 언약 백성들이 바쳤던 감사가 없는 예물
3. 감사가 없는 예물에 대한 주님의 심판

1. 주님께서 요구하신 감사의 제사

 말라기서는 여섯 개의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언약 백성들의 느슨하고 미지근한 태도에 대해 주님께서 불평하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은 적절하게 열의와 열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고 두 세대가 지나면서, 그들은 희생제사의 관례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제사, 즉 감사의 일들을 마지못해 시늉만 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또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일에서 그들은 이 일들에 대한 의미를 거의 대부분 상실했습니다.

 첫 번째 논쟁(1:2-5)에서 주님께서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그들에게 깨우쳐주셨습니다. 두 번째 논쟁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이 그들에 요구하셨던 반응을 상기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선택하시는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반응해야 했습니다. 본문 1장 14절은 서원한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 서약은 주님께 어린양을 희생제사로 드리겠다는 약속이자 맹세입니다.

 이와 같은 서약, 이와 같은 희생 제물은 야웨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누군가에게 어떤 엄청난 축복을 주셨거나, 아니면 주님께서 누군가를 가공할만한 곤경과 재앙에서 건져내셨다면, 그때 그 사람은 야웨 하나님께 특별한 예물을 드릴 것을 약속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제사를 말입니다.

 아니면 다른 예를 들어보면,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만일 자신들에게 이것저것을 행하신다면 하나님께 특정한 예물을 드리겠다고 주님께 서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유명한 예로, 벧엘에서 서약한 야곱의 맹세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하였기에 아비 이삭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꿈에서 나타나셔서 당신께서 친히 야곱과 야곱의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28장 20절부터 22절까지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야웨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모든 것의 10% 즉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소떼 가운데서 송아지나, 양떼 가운데서 양을 드리겠다는 서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7장 6절은 서약한 것 때문에 드렸던 예물, 희생 제물에 대한 서원 예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표현으로서 드린 서원 예물입니다.

 이와 같은 예물은 완전한 것이라야 했습니다. 눈먼 것이나 절름발이나 병든 것은 서원 예물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22장 17-25절에서 주님께서 반복해서 당신에게 드리는 동물이 상해를 입은 것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신 답례로 그들에게 최상의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그들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그들이 살 수 있는 광활한 땅을 주셨습니다. 언약의 백성들이 죄 가운데로 빠질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시고 그들을 벌하셨습니다, 또 징계하시고 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은총 가운데 돌이킬 때에 항상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첫 맏물과 최상의 것을 당신에게 바침으로 당신께 대한 감사함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이것을 언약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상기시켜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족속을 분별하셔서 그들에게 이스라엘 안에서 특별한 과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바로 생명과 평화의 언약을 말입니다. 레위 족속들은 백성들을 위해서 희생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레위 족속들은 백성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했습니다. 레위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해설해야 했습니다. 레위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 안에서 요구하셨던 바를 백성들에게 상기시켜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과 평화를 즐겼습니다.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와 세워놓으신 언약으로부터 유익을 얻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누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선지자들과는 다른 과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새로운 계시,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옛 율법(모세 율법)에 대해서 말해야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르치고 수호해야 했습니다.

 야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사소한 일이 아니라, 참으로 큰일이었습니다. 야웨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올바른 방식으로 드려야 했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머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선에서 벗어났다면, 예를 들어 누군가가 합법적이지 못한 예물을 들고 성전에 나왔다면, 만일 어떤 사람이 최상의 것은 자신을 위해서 제쳐두고, 모퉁이가 상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한다면, 그때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그를 야단치고 교정해야 했습니다.

 거의 100년 동안,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과업에 충실했습니다. 레위 지파는 주님께서 요구하셨던 바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야웨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야웨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참된 교훈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해설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명하신 것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고 가르쳤습니다. 제사장들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죄인들을 책망하고 교정하여 야웨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만군의 야웨 하나님의 사신(使臣)으로 야웨께 첫 맏물과 최상의 것을 드리라고 언약의 백성들에게 그 자신들의 의무를 상기시켰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희생 제물로 첫 맏물과 최상의 것을 요구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가 하나님의 최종적인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흠과 점이 없는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흠과 점이 없는 완벽한 이 어린양은 영원한 죽음에서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자기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오직 완전한 표본이며, 흠과 점이 없고, 불완전함이 없는 어린양만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희미하게나마 예시하도록 의도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눈멀고 절름거리고 병든 어떤 동물이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제거되었습니다. 최상의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제사장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언약적인 의무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언약적인 의무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반향하는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첫 맏물과 최상의 것을 드려야만 합니다. 제사장인 우리(벧전 2:9; 계 1:6)는 하나님께 인색함으로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즐거이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시지 인색하게 내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반향해야 합니다. 또 그러하기에 우리는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기록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몸을,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바입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심에 대해 감사함에서 나오는 산제사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우리의 영적인 예배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날마다 우리 생활과 상관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가 주일 공적인 예배로 함께 모였을 때에도 상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결코 사소하거나 시시한 문제가 아니라, 참으로 중요하고도 큰일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는 주의 깊은 준비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토요일 늦은 밤까지 밖에서 머물러 주일 예배드리기 위해 준비하는데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토요일 충분한 휴식을 취함으로 우리가 주일에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르게 우리가 위대한 왕을 만나기 위해서 예배드리러 나아간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하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우리는 대단히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 말씀 선포를 들음으로, 찬양을 함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신중함을 보이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주님께 최상의 것을 또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하겠습니까? 우리가 공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는 주일에 우리가 가진 첫 번째 것과 최상의 것을 주님께 드리도록 합시다, 뿐만 아니라 한 주간 내내 최상으로 것으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첫 번째 것과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대강 헌신하지 않도록 합시다.

2. 언약 백성들이 바쳤던 감사가 없는 예물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것과 최상의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최악의 것과 꼬투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제사장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불평하셨습니다, 특별히 제사장들에 대해서 질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공경한다. 나는 너희의 아비다. 너희는 어찌 나를 공경하지 않느냐? 종이 자기 상전을 공경한다. 너희는 나의 종이다. 너희가 어찌 나를 공경하지 않느냐? 나를 공경하기는커녕, 너희는 나를 무시하고 내 식탁, 내 제단을 더럽히고 있다. 어떻게 더럽히느냐고? 눈먼 동물을 제단에 가져오고, 병든 것과 절름발이 동물을 가져옴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토색한 물건들을 가져오고 있다. 이 제물들은 너희가 너희 이웃에게서 쉽게 훔친 것들이다, 그렇게 한 다음 경건한 척 하면서 성전에 가져와서 나에게 바치고 돌아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고 있는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부르셨습니다. 14절입니다.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만군의 야웨의 말이니라.”

 언약 백성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위태위태한 처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라기 당대의 언약의 백성들이 처신하고 있었던 바였습니다. 눈먼 송아지나, 절름거리는 양이나 병든 염소는 시장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들은 전혀 값어치가 나가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주님께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주님께 희생 제물로 드렸지만 실제로 주님께는 이런 것들을 더 이상 희생 제물로 받지 않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정의상 제물은 자신을 넘겨주는 혹은 자신을 건네는 어떤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제물은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제물이 자신에게 주는 즐거움과 유익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이스라엘 백성은 실제로 자신을 부인해야지만 자기 양떼나 소떼 가운데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로 드릴 수 있습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1:8). “너희 절름발이 양을 너희 총독에게 선물로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이스라엘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기뻐하지 않습니다.”입니다.

 9절에서 주님께서 빈정대는 어투로 언약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나에게 그런 희생 제물을 가져오라. 너희 총독은 그 제물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그런 재물이라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선 너희가 병든 염소를 받치면서도 하나님께 은혜를 베푸소서! 라고 탄원해보라. 만왕의 왕인 내가 너희에게 은총을 베풀겠느냐?”

 백성들이 예배드리는데 느슨하게 되어 대강 대강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의 패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초점을 맞추어서 예물 혹은 제물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바를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미치지 못하는 예물을 가져 왔음에도 그냥 눈감아버렸습니다. 제사장들은 결핍이 있는 제물을 백성들이 가져왔을 때에, 백성들을 되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오, 아무  문제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으로 충분해요,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첫 번째 것과 최상의 것을 간직하도록 하세요, 여러분 자신을 먼저 생각하세요. 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2장 9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제사장들은 편파적임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있는 언약의 중보자들입니다. 그런고로 언약의 양 당사자에게 공정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이 봐주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온갖 종류의 약속을 파기하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자신의 사역에 싫증이 났습니다. 본문 1장 13절에 보면,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사역이 극도로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정을 갖고 성전에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는 대신에, 그들은 우물 쭈물거리면서 마지못해서 했습니다. 또 그러하였기에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경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마음으로 대우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더 이상 백성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2장 8절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장들 스스로가 본업에서 이탈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레위 언약을 부패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과 평화를 가져왔던 그 언약을 말입니다. 생명과 평화 대신에, 제사장들은 언약 백성들의 머리 위에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구약 제사장들과 오늘 교회 직분자들을 일직선 상에 둘 수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보도록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구약 교회 안에 특별한 직분자들로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교회에도 특별한 직분자들을 주십니다. 목사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반드시 참된 지식을 파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야웨 하나님의 신실한 사신들로서 직분자들은 바른 교훈을 회중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자들은 몸소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그 자신들의 언약적인 의무를 계속 상기시켜야만 합니다. 직분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방편으로 해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 계속 말해야 합니다. 직분자들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께 이와 같은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함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계속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종, 교회의 일군된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책무를 다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하셨던 바를 기억하십시오. 감사의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반응하십시오.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생활을 드리십시오.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계속 즐겁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다투기 시작한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소홀하게 대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공할 진노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진노 앞에 갖다 놓는 격이 될 것입니다.

3. 감사가 없는 예물에 대한 주님의 심판

 하나님께서 몇 가지 방식으로 당신의 심판을 드러내셨습니다. 1장 10절에서 야웨 하나님께서 아무 쓸모도 없는 예물들을 당신께 받치지 않도록 성전 문을 닫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 백성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예물을 가지고 감사도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애정 어린 감사도 없고, 공경도 경외도 없는 예배는 전혀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보다 더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1: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필요치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사역을 필요치 않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이름이 다른 열방 안에서 찬양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에서 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전 세계에 걸쳐, 사람들이 유일한 참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 도처에 유대인들이 퍼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함께 모이고 있었습니다. 세상 도처에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을 예배드렸던 “개종한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 역시 오순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구원의 복음과 참된 믿음이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필요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등을 돌릴 때에, 그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실 것입니다. 동시에 이방인들을 향한 은혜로운 행위는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 위에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적인 요구를 경시한 사기꾼들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축복을 저주로 바꾸실 것입니다. 언약의 축복 대신에 언약의 저주를 이스라엘 위에 비 내리듯이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몹시 질책하시고 내치실 것입니다(2:3).  제사장들은 흠이 있는 동물들의 창자와 같은 내장이나 찌꺼기처럼 취급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동물의 내장과 찌꺼기들은 성전과 거룩한 도성 바깥으로 치워져서 특별한 장소에서 불태워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하실 일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굴욕을 제사장들이 당하게 될 것입니다.

 2장 4절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레위와 맺은 당신의 언약이 존속되도록 그들에게 이와 같은 심판으로 위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과 위협 둘 다에 항상 신실하십니다. 언약의 축복과 언약의 저주 둘 다에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공할 전율이 감도는 심판으로 당신의 백성을 위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문제를 마음에 깊이 새기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 진지해져야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백성에 대한 심판의 위협을 비웃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위기에 비웃게 될 것입니다. 이 본문은 분명한 심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도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소망도 싣고 있습니다.

은혜의 소망은 2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서 발견됩니다.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제사장들과 세우셨던 언약에 신실하심 때문에, 다른 제사장이 왔습니다. 더 나은 제사장이 왔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이미 말했던 바로 그 제사장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장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구약 제사장직을 끊어 내버리시고 새로운 출발을 하셨습니다. 이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유다 지파에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잠정적인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있었던, 아론의 반차에서 임명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대제사장인 멜기세덱 반차에서 나오셨습니다(시 110; 히브리서). 왕족에서 나오신 새로운 제사장은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완전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를 바라보십시오. 예수께로 관심을 돌리십시오. 거기에는 여러분을 향한 심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안에서 생명과 평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주의 가르침, 주의 명령을 따르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여러분은 결코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교훈이 주님의 입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높이시고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더욱 더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신실한 제사장으로서 여러분은 예수를 섬기십시오. 감사의 제사를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께 드리십시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해서 거저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의 제사로 그분께 우리 자신을 드림으로 우리의 감사함을 하나님께 보여드립시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날마다의 영적 예배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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