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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1-08 (일)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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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도 여행의 계획 과정에 발생한 일과 성령의 인도
2차 전도 여행의 계획 과정에 발생한 일과 성령의 인도
2020년 11월 8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행 15:36-16:10, 갈2:11-21
설교본문 : 행 16:6,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 우리는 이방인 신자들의 구원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교회의 통일성, 보편성을 제시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사항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2차 전도여행의 계획 과정에 발생한 일과 성령의 인도에 대한 말씀을 듣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과 헤어짐

 예루살렘 회의의 권고 내용이 안디옥 교회에 전해지자 교회는 위로를 받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 후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과 복음전파의 사역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기 중의 어느 때에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교회를 방문한 베드로의 외식문제가 발생하여 교회를 근심되게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일이 갈라디아 2:11-21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이로 인해 베드로를 책망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가 베드로를 면책한 것은 교회의 보편성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형제사랑으로 안디옥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이미 전해진 공의회의 결의사항을 재차 확증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을 받아 교회의 회중으로 참여함을 제시하며 안디옥교회의 형제들을 은혜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세우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베드로는 처음에 이방 형제들과 어떤 거리낌도 없이 같이 밥을 먹으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와중에 유대주의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안디옥에 오게 되는데, 그러자 베드로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외식했고, 바나바도 유혹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교회의 큰 시련으로 여겼기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더 이상 차별이 없는 보편성을 위해 사도를 책망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즉시 개입하여 사람을 외모로 보지 못하도록, 특정 그룹의 우월주의가 하나됨의 교회를 허물어뜨리지 못하도록 바울의 입을 열어 진리를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 교회는 주의 평안 가운데서 든든히 서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를 보내는 중을 우리 본문은 ‘며칠 후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더불어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의 형제들을 위문하고 돌아보기를 원하여 다시 선교 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교팀 멤버를 선정하는 문제로 바나바와 크게 다투게 되는데 그 원인이 마가 요한의 동행문제였습니다.

 37절에 보면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의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36절에 있는 대로 두 사람의 계획은 “우리가 지금까지 주의 말씀을 전했던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원래 생각한 대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계획은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각각 길을 나눠서 딴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수리아 땅으로 길리기아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자기 고향인 구브로로 갔습니다. 이 시점 이후부터 바나바에 대한 기록은 더이상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적용) 사람의 계획과 성령의 인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선교팀의 갈등으로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잘한 것입니까? 아님 잘못입니까? 이것이 죄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발생한 사실만을 설명하지, 그 일 자체를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후에 어떻게 이들이 다시 연합하며 동력하는 지를 알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실라를 택해서 동행했지만, 마가와 영영 이별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말년에 마가가 늘 바울 가까이 있었습니다. 마가는 좋은 수종자였고 좋은 위로자였습니다. 골 4:10에 보면 마가를 골로새 교회에 추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마가는 주후 62년경에 로마에서 바울을 수종 들고 있었습니다. 또 11절은 마가와 그 밖의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며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며, 이런 사람들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주후 67년 경쯤 딤후 3:11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후에 마가는 예수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서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결코 따뜻한 성품의 사람은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다투며 각자 선교를 가게 된 것은 마가 문제 때문에 마음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이 외식문제로 베드로를 면책한 것을 보면 그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곧은 성품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바울 개인의 성품이 다는 아닙니다. 개인의 성정을 떠나 주님에 대한 열심,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했든 본문을 통해 성령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경영을 환경의 어려움이나 인간들의 연약성 때문에 도중에 좌절시키거나 실패하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표호가 여호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표호의 뜻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 표호는 언약의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여호와의 표호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것은 “나는 나의 하려고 하는 바를 반드시 행하여 이루시는 자” 바로 야웨이심을 알려주십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격론해서 다른 길로 간 것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바울이 가려고 했던 아시아를 막으시고 다른 길로 가게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식의 오묘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일을 볼 때 우리가 비록 내일 일을 모르고, 우리가 앞길을 경영할 수 없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라도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려주십니까? 일의 모든 경영을 자의대로 결정하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간섭하심을 알려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주를 의지하고, 주께 염려를 맡기는 자를 한 걸음씩 매일 인도하시니 걱정하지 말라 하십니다. 내가 잘 모르고 넘어졌으면 넘어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맡기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언약 백성의 삶의 궤적이 수놓는 역사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럽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분명히 바울과 바나바의 분란이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때에는 그것이 별로 칭찬할 만한 것도 아니고 아름답고 좋다 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도 하나님의 성령의 오묘하신 역사가 인간의 부족과 한계 위에서 일하심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통과하면서 서진(西進)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시작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은 서쪽으로 전진하는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첫 걸음을 묘사합니다. 전반부는 장소의 이동을, 후반부는 시간의 진행으로 구조를 이루며 본 장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6장의 대부분의 내용은 빌립보에서의 사도 바울의 활동이 주를 이룹니다. 그럼에도 전체 선교 여정의 키를 누가 지고 계시는지, 주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성령께서 어떻게 관여하고 계시는지 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도행전 16장은 크게 빌립보 이전 활동과 빌립보 활동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립보 이전 활동은 루스드라와 드로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1. 루스드라 활동 (행 16:1-5)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에서 가장 먼저 루스드라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지형적으로 루스드라는 더베와 이고니온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이미 제1차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이 지역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14장 참조). 따라서 이 지역에는 이미 교회들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교회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제자(1), 형제들(2), 교회들(5)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루스드라를 중심으로 하는 사역은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로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으며(1-3), 둘째로 여러 교회에 공의회의 결의를 전하였습니다(4-5).

1)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음(1-3)

 누가는 지금 바울이 바나바가 떠난 뒤에 그가 다녔던 여정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첫째로 누가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자기의 일행으로 선택한 사실을 보고합니다. 바울이 경솔하게 혹은 깊이 생각함이 없이 일을 진행한 것이 아님을 알게하려고 누가는 디모데가 그 곳 형제들에게 칭찬을 듣고 있었고 그의 경건이 그들에게 입증되었음을 말해줍니다.

 후에 바울이 교회의 일꾼들을 뽑을 때 지켜야 한다고 지시했던(딤전3장) 그 선택의 방법을 따라서 지금 사람을 뽑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딤전1:18) 성령께서 예언으로 디모데를 선택하셨다고 말하지만 지금 현시점에서 누가는 그 일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디모데는 분명 '형제들' 가운에서 훌륭한 평판을 얻고 있었습니다. 교회 밖의 외인들에게도 선하다는 증거를 얻은 사람(딤전3:7)이어야 하지만, 그러나 교회의 회원들에게서 훌륭한 평판을 얻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세상을 판단할 지혜를 경건한 사람에게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양심을 가진 경건한 사람들은 합당한 증인들이요, 성령에 의하여 정확하고 지혜롭게 분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니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가 추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음으로 교회가 그들의 비난과 중상을 당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3절.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디모데가 그의 모친 유니게, 그의 외조모 로이스의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말합니다. 형제들에게 칭찬 듣는 디모데였지만 그는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헬라인 아버지의 영향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선교팀의 동력자가 되는 디모데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먼저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할례든, 모세의 법이든 어떤 짐도 더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 공의회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디모데가 지금 할례를 행하였을가요?

 이점에 대해 누가는 디모데가 이 표적에 의한 신앙이 아직도 계속 존재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바울이 비방꺼리를 피하기 위하여 할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할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 거리낌을 주지 않기 위하여 행하여졌습니다. 적어도 디모데가 받은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셨던 그러한 성례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를 실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의문(할례)에 관하여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할례는 그리스도께서 오심과 동시에 끝나는 것이지만 그것의 사용은 일시에 완전히 폐지되지 않고, 복음의 빛으로서 더욱 분명하게 살펴보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심을 모두가 알게 되기까지 시행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형태로 자유롭게 남아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합법적입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제물을 드렸다면 이는 합법적이지 않습니다. 할례의 사용이 자유의 영역으로 아직 남겨진 이유는 이방인들의 부르심이 모든 곳마다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특권은 유대인들에게 여전히 허락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 삼으심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부터 만민에게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기까지 덕을 세우기 위하여 구별의 표가 남아 있게 허용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행할 경우에 복음의 순전한 교훈을 포기해야 했고 원수들의 중상을 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할례를 행하든 안 하든지 이 자유는 덕을 세우는 일과 교회의 공통된 복과 이익에 유의하며 행해야 했습니다.  

2) 공의회의 결의사항을 전함(4-5)

  사도 바울은 여러 성을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들"(4)을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 "규례들"은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의미합니다 (행 15:28-29). 사도 바울이 이 결의사항을 "전달하였다"는 것은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을 위해서입니다. 이 규례들이 각 교회에서 채택되고 인정되면서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들은 연속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 지역에 있는 교회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상속되고, 일치는 교회의 하나됨을 유지하는데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교회순회와 결의사항의 전달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첫째로 교회들이 믿음에 견고하게 되었고(5a), 둘째로 교회들이 날마다 수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5b). 후자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많아졌다는 뜻일 수도 있고, 교회의 수가 많아졌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교회들이 "믿음에" 견고하게 되었다는 것이 내적이며 질적인 안정을 의미한다면, "수적으로"는 외적이며 양적인 부흥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안정과 부흥에 있어서 참된 믿음의 일치와 그 믿음이 유지 되고 상속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드로아 활동(6-10)

1) 성령의 금지(6-8)

 복음전도는 사역자의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생생하게 체험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전도에 성공함으로써 계속 아시아로 나아가려 했으나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6).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동쪽에 있는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통과하여(6) 서쪽에 있는 무시아를 향하다가 북쪽에 있는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으나(7) 성령께서 이것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7).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이 계속 서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이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가는 것은 막지 않았습니다(8).

 적용) 여기서 또 하나의 더욱 어려운 의문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바울이 아시아에서 말하는 것을 금하시고 그가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에 사는 이방인들은 구원에 관한 교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었다고 대답한다면, 반면에 '마게도냐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욱 가치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반문이 나올 것입니다. 극히 지혜롭게 되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이 분간의 이유를, 주님께서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복음에 순종하고자 하는지를 아시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에 의하여 그 사람이 복음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간구하신다는 사실에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와 같은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구하지 않은 자들에게 나타나 주셨고 자신에 관하여 묻지 않는 자들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성령에 의하지 않고 다른 무엇에 의하여 유순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천성적으로 믿음을 향하여 적대적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로를 앞세워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들을 자기 은혜를 받을 만한 자들로 여기시고 또 원하시는 자들을 그 은혜를 빼앗아야 마땅한 자들로 여기시는 자유와 권한을 가지신 분임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참으로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은 은혜에 의한 것이므로 그 은혜로부터 흘러나오는 부르심 역시 은혜에 의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근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심은 누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복음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음에 대한 합법적인 이유를 가지고 계시지만, 그 이유가 그의 은밀한 목적 안에 숨어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2) 환상(9-10)

 드로아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한 사건을 통하여 새로운 사역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밤에 사도 바울에게 보인 환상 때문입니다. 계속적인 성령의 인도로 드로아에 내려온 사도 바울은 환상을 통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달려가야 할 새로운 사역지가 어딘지 확인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환상의 내용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사도 바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환상 속에서 마게도냐 사람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요청합니다.

10절. 인정함이더라.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 환상이 환상으로서 그치지 않고 성령의 증거가 밑받침되고 있음을 추측한다. 왜냐하면 사단 역시 믿지않는 자들을 희롱하기 위하여 속이는 술책으로 환영과 유령을 나타내어 보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환상은 사람의 마음에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하는 상태만을 남깁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확실한 표적으로 인을 쳐주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헌신하도록 시키시고자 하는 자들이 요동하거나 주저하지 않게 하십니다.

 이에 선교팀은 성령의 인도로 알고 즉각 순종하며 길을 떠납니다. "곧"이라는 단어는 사도 바울 일행이 매우 긴박한 행동을 취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간단히 사람의 생각을 접고 순순히 하나님의 생각을 따랐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경영을 사용하시기도, 돌리시기도 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을 배우면서 매사에 주의 뜻 아는 일에 힘쓰고, 주의 뜻에 순복함으로 성령의 사역에 쓰임받는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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