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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0-18 (일)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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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
바울은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
2020년 10월 18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행13:13-52
설교본문: 행13:38,3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덜란드 앞핑헤담(Appingedam)이란 지역에 가면 아주 독특한 교회당이 있습니다. 그 교회당은 이전에 회당으로 사용되었던 장소인데 개혁교회의 예배당으로 사용합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황금 별들로 장식된 진한 하늘 색 천장이 있습니다. 교회당 앞에 두 기둥은 휘장으로 덮여 있고, 그 휘장 뒤에 골방 같은 것이 있고, 그 위에 율법의 돌판의 복제가 놓여 있습니다.

 그 회당의 건물은 거의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개혁교회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 개혁교회의 예배당, 어떤 의미에서 매우 본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또한 매우 작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건물뿐만 아니라 그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도 그러합니다. 회당에서 행하는 일과 개혁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은 정말로 거의 형식상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예배는 바울과 바나바가 약 2000년 전에 안식일에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편의 멜로디에서 회당에서 불렀던 시편의 멜로디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우리 유대인 형제 자매들이 안식일의 예배 끝에 들었던 동일한 복을 들을 것입니다. “야웨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야웨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야웨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아침에 우리는 바울이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선포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서 나그네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매 교회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아직 옛 언약백성들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유대인 형제 자매들은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편안히 앉았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봉독한 후에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권할 말이 있으면 하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안디옥의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이 복음을 함께 듣겠습니다. 이제 저는 “바울은 유대인 형제들의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는 주제로 오늘 설교를 요약하겠습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그들은 이 선포의 진리를 인정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이 선포의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셋째, 그들은 이 선포에 의해 이전에 배제된 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이 선포의 진리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디옥에 있는 그 회당의 중심에, 혹은 방들 중 하나에 강단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오늘날의 설교단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회당장들에게 이 강단에 설 수 있도록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회당장들은 예배를 맡은 장로들의 회로부터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개혁교회 안에서 목사가 강단에 오르기 전에 악수를 하는 장로들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이렇게 장로들이 교회 전체를 대표하여 예배 시작 전에 목사와 악수를 함으로써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 성도들에게 선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한다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회당에서도 이와 유사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안식일 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봉독한 후에, 회당장들은 그 말씀을 설명하고 청중들에게 적용할 사람을 정해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지금 안디옥의 회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브로 섬에서 사역을 마친 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소아시아의 본토로 배를 타고 건너와서 버가를 지나서 여기 이 도성에 도착했습니다. 이 도성의 이름은 비시디아 지역에 있는 안디옥입니다. 일주일의 일곱째 날에 그들은 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어디에서 회당장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소개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당장들에게 청중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요청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여기 안디옥 회당에서 지금 강단에 서 있습니다. 바울은 강단에서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유대인 형제들을 보았습니다.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부자, 가난한 사람, 보통 사람, 학자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이들은 다 낯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유대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우리는 압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민족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특별히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란 말은 바울이 설교를 시작한 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 곧 언약 백성들입니다. 나중에,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에 대해 기록할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만일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잘려나갈지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들들로 택하셔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모세의 율법을 주시고 성전예배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바울이 자란 고향이고, 같은 동족입니다. 그들은 형제들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설교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설교한 것의 요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과거 이스라엘 역사의 회고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회상시켜줍니다. 그들의 선택, 애굽으로부터 구속, 약속의 땅을 받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왕 다윗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유대인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주신 약속을, 구주에 대한 약속을 회상시켜 줍니다. 그 약속이 바울에게 도약하는 출발점이 되어 구약의 기사를 오늘과 연결합니다. 바울은 그 약속에 따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들로부터 구주 예수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때 회당 안은 매우 조용해졌습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예수에 대해 지적했던 것과 같이 요한이 한 매우 분명한 말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구주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들처럼 그들도 안식일마다 회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여러분이 읽는 것과 동일한 선지자들의 글의 봉독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주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습니다. 성취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에 대해 기록된 모든 것을 실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내려져서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었습니다.”

 “이 예수를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예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바로 그 구주이심을 선포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이것이 정말로 참된 복음인지 증거를 요구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증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복음이 옳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죽었고,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사셨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수와 함께 여행한 그 동일한 사람들은 예수를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살아나신 예수를 보셨습니다. 예수는 부활 후에 잠시 동안이 아니라 여러 날 동안 그들에게,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예수의 증인들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바울은 그들이 직접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을 안디옥 사람들에게 들이대고 있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그의 서신에서, 즉 고린도 전서에서 동일한 일을 할 것입니다. 동일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따라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사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전체 메시지의 근거해 있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면, 그때 우리가 선포한 것은 헛된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거짓 증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때 여러분은 나의 선포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설교는 계속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설교본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사실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내가 말한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정말로 죽은 채로 있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결코 그분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유대인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강단으로부터 여러분은 율법과 선지자들로부터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고 내가 경험으로 알고 여러분처럼 내가 열중했던 그 말씀들, 그 진리들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 예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썩음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모든 일을 행한 다윗도 섞음을 보았습니다. 죽음이 다윗을 붙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 다윗의 아들을 죽음이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 예수는 여러분이 안식일마다 고대했던 바로 그 거룩한 분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시편에서 노래했던 바로 그분입니다. 여러분은 섞음을 본 거룩한 자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바울의 음성에서 열정을 느끼고 있습니까? 이 유대인 회당의 형제들이 이 진리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예수가 바로 그분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를 선포했습니다. 여기 회당에서 안식일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듣는 이들보다 더 이 진리를 잘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기를 원합니다. 숨을 죽이고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회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설득력 있고 능력있는 메시지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여기 이 교회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포를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선포의 진리를 인정하십니까? 복음은 믿음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믿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선포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증거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빌라도의 직분으로 공식적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그때 예수의 시체가 장사되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는 당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친구들, 그의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확실히, 그 사이에 이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그들의 증거를 확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증인들의 증거를 읽을 수 있다면 여러분이 원하는 증거가 더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여전히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어찌 의심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그분을 보았고, 그분과 대화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분의 믿음은 공격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심과 질문들로 공격을 받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참된 것입니까?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라는 공격을 우리는 끊임없이 받습니다.
 부활의 사실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혹은 여러분은 “목사님, 당신의 말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이 오늘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까?

 여러분! 부활의 기적에 대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부활에 대해 증언하는 많은 증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증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습니다! 사도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 예수를 통하여 죄 사함이 너희에게 선포되었다. 너희는 그 선포를 의심할 필요도 없고 의심할 수도 없다.” 이제 우리 설교의 두 번째 요점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이 선포의 자유를 경험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당에서 안식일에 설교를 전하도록 바울이 정해지기 전에, 먼저 율법으로부터 봉독이 있었습니다. 성경봉독은 예배에서 정해진 요소입니다. 회당과 모세의 율법은 매우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연결은 모든 회당에서, 회당의 강단에서 매우 밀접합니다. “모세의 자리”라고 불리는 특별한 의자가 있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회당장은 두 기둥 사이의 휘장 뒤에 골방에서 율법의 두루마리를 빼내서 봉독대 위에 올려놓고 그 두루마리에서 한 부분을 백성들에게 봉독해 줍니다. 이것은 이 유대인 형제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랑이 어떠한지를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위대한 보화였습니다. 우리는 이 율법이 그들의 삶이 되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율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동시에 어떤 값을 지불하고도 살 수 없는 보화입니다. 율법에는 어떤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은 선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에 그들의 삶의 기반을 둔 이 사람들이 무엇인가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열심히 배우고 행하면 할수록 더욱 그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결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유대인들에 대해, 이스라엘에 대해 롬11장에서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열심히 구하여도 얻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까? 의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죄나 두려움이나 불확실성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서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께서는 나를 보고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모든 것은 우리 가운데 완전히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회당에서 그렇게 행할 수 없었습니다. 회당 안에서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회당에서 죄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취해야 할 엄격한 표준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본문에서 아직 여자들에 대해 듣지 못합니다. 마치 여자들이 그곳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들도 있습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회당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칸막이에 의해 남자들과 구별되어 특별한 장소에 앉아있습니다. 남자들이 예배 중에 여자를 보면 간음하고 죄악된 생각을 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나의 형제들아!”라고 형제들만 언급합니다. 바울은 여자들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이런 방식으로 죄악된 생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바울이 “이스라엘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율법에 자기 생활의 기반을 둔 사람들은 결코 우리가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의미한 바를 설명해 줍니다. “너희와 하나님 사이에 서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너희에게는 항상 죄의 짐이 있다. 너희는 의를 구하지만 얻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율법을 통하여 너희는 너희 삶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왜곡되고 뒤틀려져 있는지를 더욱 분명히 볼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말합니다. “다윗도 그것을 결코 이룰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이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윗도 또한 죽었고 장사되었고 섞음을 당하였습니다. 그의 몸은 흙으로 돌아갔다. 죽음이 그를 다스린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 말합니다. “심지어 요한이 나타났을 때, 요한도 여전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심지어 가장 율법에 매여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흠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그들이 모두 위선자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한이 회개와 세례를 전파했지만 그들은 구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고, 열심히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의롭게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이 결코 여러분에게 줄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다면 구하여도 결코 얻지 못한 것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은 안식, 자유, 해방, 모세의 율법으로 결코 여러분이 의롭게 될 수 없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칭의를 발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여러분에게 값없이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기 회당에서 바울이 선포하고 있는 자유, 해방이 무엇인지 이해하십니까? 바울은 지금 그의 유대인 형제들에게 그들이 이전에 삶의 근거로 둔 그 보화, 모세의 율법보다 훨신 더 위대한 보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보화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구하던 것을 이제 찾았습니다! 의, 칭의가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값없이, 무료로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의, 칭의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뭔가 바르게 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환영을 받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했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여기 회당에 앉아서 그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유대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또한 머리에서 나오는 그런 생각을 이제 제거하라고 합니다. 그 자유, 그 해방은 값없이 여러분에게도 또한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 거듭 참된 믿음으로 이 복음의 약속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에 무엇이 적합하고 무엇이 적합하지 않은지를 토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 토론은 완전히 다른 토론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계속해서 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자유, 그 해방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 설교의 마지막 요점입니다.

 셋째로, 그들은 이 선포에 의해 이전에 배제된 자들을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앞에서 이미 여러분에게 이 유대인 회당 안에서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여자들이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보호하는 방법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어쨌든 회당의 회중 전체를 나누는 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또 다른 나누는 벽이 회당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다 더 열등하게 보였고, 그것은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본문 26절에서 이 구분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바울은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이방인들은 구별된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교도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으로 들어오도록 허용되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도록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큰 문제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아들이시는가?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당신도 또한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유대인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는 것은 상당히 이해할만합니다. 만일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일평생을 바쳤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때 확실히 이렇게 생각하는 특별히 그런 이방인들, 성인이 되어서 회당에 연합했고, 할례를 받지 않았으며 결코 정말로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살고 회당에 통합되지 못하는 그런 이방인들에게서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얼마나 자주 개혁교회 신자로서 우리가 우리 교회에 연합하기를 원하는 외부의 사람들에 대해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지를 주목하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의 생각의 체계 안에 갇혀서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이 우리 교회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이미 교회 안에 회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울은 이 유대인 형제들에게 주저없이 말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의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너희가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던 그것이 이제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잘 모른 한쪽 모퉁이에 있는 이 사람들, 회당안에서 듣는 히브리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통역을 해 주어야 하고, 충분히 알지 못하고 표현을 잘 할 수 없거나 혹은 어리석은 말을 해서 겁에 질려있기 때문에 토론에도 참여할 수 없는 이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의롭게 됨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도 또한 받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선포가 어떻게 회당의 닫혀진 문을 활짝 열게 했는지를 이해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 말씀들이 여지를 인정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음 안식일에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기 때문입니다(행13:44). 그렇습니다. 그때 안디옥의 이 유대인 형제들이 그들이 들은 이 선포와 연관하여 무엇을 행했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기사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울의 선포를 듣는 기쁨에 유대인 형제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선포의 진리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그 사실은 이제 우리가 그 부활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들은 이 선포의 자유, 해방을 경험할 것입니다. 항상 열심히 구하였으나 결코 얻지 못한 그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이 선포로 전에 배제된 자들을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의는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의 복음의 선포에 의해 인정되는 이 화합, 하나됨에 저와 여러분도 또한 포함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지,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그 해방,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복음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이 놀라운 바울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오늘 우리 모두가 복음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함께 복음 안에서 참된 자유, 참된 해방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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