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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9-13 (일)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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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의 탄생과 성장
안디옥교회의 탄생과 성장
2020년 9월 13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사도행전 11:19-30절
설교본문 : 행11: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최신형 휴대폰이나 전자제품이 다른 나라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한국에서만 개통되고 판매된다면 매니어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연이어 소개되는 New 모델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만 소유가 허락된다면 세계시민들에게 대한민국 시민권을 소유한다고 하는 것이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할 것입니다. 나라의 국력이 똑같지 않으니 이런 일들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의 일에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신령한 일, 하늘의 일에 관해서는 더욱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강하지 않겠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유대 독점주의가 복음을 지배해 왔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 유대공동체 내에서조차 예루살렘과 갈릴리의 차별, 심지어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배제가 있어왔습니다. 실로 보편적 주의 복음이 옛 언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만은 유대주의적이고 배타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런 구분을 당연시해왔습니다. 마침내 이 구도에 균열이 생기고, 유대 독점주의가 허물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앞서 살펴본 사마리아의 복음전파와 이방인 고넬료 집의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들이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흩어지게 되었고 안디옥까지 이르러 먼저 유대인에게 전도하였는데, 그 중에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한 내용입니다. 21절은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셨다고 말함으로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한 결과로 수다한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본문은 증언합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복음을 전하였지만, 누구 한 사람도 이방인에게 나타난 이런 놀라운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직 그 당시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에 사로잡혀 움직이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이제 저는 “안디옥 교회의 탄생과 성장에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 지금까지 없었던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스데반의 환난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자 주의 회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이들 중 일부가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안디옥으로 갔던 사람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사도들 외에 흩어진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안디옥까지 갔던 사람들도 일반 회중이었습니다. 이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방식은 사도들처럼 설교한 것이 아니라 ‘그 도’를 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냥 일상적인 삶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구원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사랑하는 성령충만한 성도들이 흩어지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씨를 사방에 뿌리고 심고 다닌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이들이 안디옥에 오게 된 원인은 예루살렘의 핍박 때문입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서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나서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러저리 왔다갔다 하며 이동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리로 가서 ‘도’를 전하고, 저리로 가면서 ‘도’를 전하면서 사방에 전하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땅의 사방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유명한 자들이 아닙니다. 사도도 일곱 집사도 아닙니다. 어쩌면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조바심 내며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통해 예수의 복음이 이방지역까지 전해지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참으로 기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조직해서 조직한 사람이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일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자기네가 원치 않았던 일, 즉 핍박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여서 할 수 없이 흩어졌는데, 흩어진 곳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로서의 교회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는데, 정작 하나님의 백성들은 흩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땅 끝의 추수의 사역을 위해 교회가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자발적으로 길 떠난 사람, 할 수 없이 흩어진 사람,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흩어진 사람들이 소유한 것이 하나님 나라의 씨요, 거룩한 복음의 씨였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그 씨를 심고 돌아다녔습니다.

 이것이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전진해 가는 모습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그 거룩한 뜻을 알아 능동적으로 순종하든, 그러지 못하든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살면서 결국은 구속역사의 전진과 함께 한 생애입니다. 이것이 갈 바를 알지 못하며 순종한 아브라함의 생애이며, 광야 40년의 이스라엘의 행로입니다. ‘쉐키나 구름’의 인도를 받아 지시하심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행보입니다. 때로는 역경이, 삶의 고난이 수없이 그들의 발 앞에 놓여졌지만 언약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배우며 역사의 숨결 속에 새겨진 기억을 붙잡는 시간되기도 했습니다. 조상들의 실패도, 조상들의 순종도 신앙의 기억으로 남겨져 언약을 배우는 조각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은 비단 그 당대의 삶의 흔적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소망을 이어주는 가교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입니다.

 종교 개혁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아서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으니까 피해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종교 개혁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영국에 개혁 신앙을 전한 것도 핍박을 피하여 간 사람들을 통해서 된 것입니다. 자꾸 누르니까 피해갔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가 새롭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해결해야 할 엄청난 문제들이 있습니다. 재난, 파산, 질병 등의 문제들은 우리가 한 장소, 한 직장에 계속해서 머물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때론 이런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의 전후에 어떤 답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섭리의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인정합니다. 신자들의 삶의 변화를 하나님께서 허용하고, 인도하시고, 경영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지나치게 낙담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안디옥 교회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왕성하게 전해지는 일에 우리의 일상이, 심지어 삶의 변화조차 사용되어 지도록 하나님의 선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성도 됩시다.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함

 그런데 여러분! 안디옥에서 이방인들 가운데 대대적인 개종의 역사가 있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의 귀에 들려졌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특별히 바나바가 파송된 이유는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한 자들의 출신지와 바나바의 출신지가 같다는 점과 바나바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인정받는 사람으로 헬라어를 잘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에 온 바나바는 이방인 가운데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고 아주 기뻐합니다. 바나바는 주님을 영접한 이방인 신자들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님께 신실한 자로 남아 있도록 권면합니다(23).

 24절은 바나바의 인격과 안디옥 교회의 성장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바나바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그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안디옥에서의 그의 사역은 너무나 적절했습니다. 인정받는 그의 인격에 근거하여 신자들을 양육하는 사역은 ‘위로의 아들’이란 의미를 가진 그의 이름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일이었고, 이로 인해 큰 무리가 안디옥 교회에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에 갑니다.(25). 바나바는 모두가 사울을 핍박자로 알고 두려워할 때 친히 데리고 가서 소개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를 자기 홀로 감당할 수 없어서 바울을 찾아서 소아시아의 다소로 가서 같이 동역하기를 청했습니다. 바나바가 찾으려고 갔다는 것은 바울이 있는 곳을 확실하게 몰랐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과 같은 사람이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교회가 더 든든히 설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첫째는 교회가 전도를 해야 하되 그 다음 단계는 모인 사람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크게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성장을 하였습니다.

 1년 동안이나 지속된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으로 신생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선교의 센터가 될 만큼 성령과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갑니다. 안디옥신자들의 뚜렷하면서도 분명한 신자의 삶은 당시의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이는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증언으로 안디옥교회의 신자들이 이교도들이 보기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뚜렷하게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이 이름은 자기들이 스스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명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의미이기에 그들은 이 이름을 붙이지 않고 지금도 ‘나사렛’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이제는 구체적으로 정체성을 가진 신자들로 이방인들에게 인식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적으로도 은혜 가운데 장성하였다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를 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구제(27-30)

 안디옥 교회가 성장하고 있을 때,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 왔습니다. 이들 중에 아가보라는 선지지가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온 세상에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28). 그 예언은 로마 총독 글라우디오의 통치 기간에 실현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물론 유대 지역까지 연속적인 흉작과 이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가 이르게 되었습니다. 유대지역은 A.D 45-48년 사이에 기근으로 혹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유대에 사는 성도들은 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아마 신앙 때문에 경제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교회는 구제 헌금을 보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29절).

 아마 이 일을 주도한 분은 과거에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운 성도들에게 필요에 따라 구제금을 자발적으로 지원해 준 일을 잘 알 뿐 아니라(행 2:44-45, 4:32), 이 일에 친히 본을 보였던 바나바였을 것입니다(4:36-37).

 안디옥 교회 제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때 “각각 힘대로 ”하였습니다. 구제금을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이 됩니다. 부조를 마치고 마가를 데려왔다고 말합니다(12:25).

 안디옥 교회의 성장과 발전은 예루살렘 교회가 영적으로 후원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안디옥 교회가 경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돕는 것은 이제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서로 하나의 몸인 교회가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서 모든 예언들에서 말하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그 빛을 받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예언한 내용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설교를 정리하기 전에 신실한 하나님의 일군인 바나바에 대하여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위로의 사람입니다(행 4:36).
 당시의 상황은 정치적으로는 나라가 없는 로마의 통치 아래에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고, 더욱이 모세의 율법과 유전의 계율로 짓눌린 예루살렘의 유대 사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핍박과 위협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특수한 초대 교회의 상황 아래에서 바나바의 눈과 마음은 주를 믿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말과 물질로 교회를 봉사하며 섬겼습니다.

 신앙생활 하다 낙담하여 뒤로 물러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안스럽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에 비추임을 받고 뒤로 물러나 있는 것,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저들의 무거운 삶이 저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 생활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의견차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좋은 일을 하다가 서로 다투게도 됩니다. 문제없는 공동체가 없기에 문제없기를 기도하기보다는 문제를 주의 이름과 능력으로 지혜롭게 해결하는 성숙한 교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사도행전 속에 나타나는 교회는 완전하거나 완벽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하지 않고 성령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일차전도 여행하다 마가 요한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 후 2차전도 여행을 위하여 준비할 때 요한의 동행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서게 됩니다. 이는 교회의 아픔이었고, 마가 요한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잠시 아픔이 있었지만 그 후의 성경의 기록으로 보건데, 바나바의 섬김을 통하여 마가 요한이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굳은 사람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바울과의 관계도 회복하였습니다. 빌레몬1:24 ‘나의 동역자 마가’, 딤후4:11절 ‘그는 내게 유익한 자라’고 후에 바울은 고백합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벧전 5:13절에서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보다 더 괄목할 일은 마가복음서를 기록하는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위로자 바나바의 사역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됩니다.

 영적전투 하다 상처 입은 부상자로 가득 차 있는 오늘날 교회에 누가 가장 필요합니까? 상처를 싸매어주며, 격려하여 전투의 자리에 다시 서게 하는 위로자 바나바 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고, 탐욕과 정욕에 지배당하며, 비참 속에 있던 세상에 ‘위로’의 주로 구속주께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유효한 열매로 오늘 교회는 안식의 공동체요, 위로의 공동체로 서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평안이 있는 하나님의 집을 증거하는 산위의 도시입니다. 우리 또한 이 ‘위로’를 알고 위로의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은혜를 주셔서 참된 위로자 되신 주님의 사역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사람 됩시다.

 둘째, 바나바는 성경의 사람입니다(11:26).

 구약에 능하였던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1년 동안 이방인 신자들을 체계적으로 양육하며 훈련시키게 됩니다. 바울과의 공동사역 결과 안디옥교회는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안디옥교회는 그 당시의 이교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공식적 칭호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존경의 의미로 했던, 아님 경멸의 의미로 했던지 간에 이방인들의 눈에도 확연히 비춰질 만큼 안디옥의 신자들이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는 무엇 무엇을 따르는 자라는 뜻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그리스도의 추종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점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단번에 얻어지지만, 성숙한 삶은 배움과 훈련을 통하여 얻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세상에서 신자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살아가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성경을 들고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는 점에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경제적 삶의 방식이나 윤리 문제,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 방식에 있어서는 신자, 비신자 간의 구별이 되지 않는 실증입니다. 신자의 정체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계적인 양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제자는 탄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부모는 배우는 부모입니다. 가장 좋은 교사는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교사입니다. 과거의 배움이 끝이 아니라, 현재도 그리스도에 대하여 목말라하며,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늘 배움 가운데 던져 넣는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의 사람이요 그리스도로 부요한 사람이 됩시다.
 셋째, 바나바는 헌신의 사람입니다(4:37).

 바나바는 재물뿐 아니라, 그의 몸과 삶을 주님께 드린 사람입니다. 가난한 형제들의 필요를 위하여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드렸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교회를 돕기 위하여 파송할 때도 바나바는 기쁘게 순종합니다. 그리고 행13장에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성령의 부름을 받아 선교사로 세워질 때도 금식하며 순종합니다. 참으로 바나바는 성령의 감동과 주님의 뜻에 기쁘게 무엇이든지 결단하며 드리는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에 헌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어떤 일입니까? 여러분의 돈이 가장 많이 지출되고 있는 것은 어디입니까?

 정리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기이한 손으로 운전하시되 사람은 그 역사 과정을 모르고 황량한 광야에 선 것같이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인도하시며 어느 때는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인도하시며 어느 때는 그 사람들이 원치 않을지라도 불가피하게 떠날 수밖에 없도록 하십니다. 그리하여 신실한 증인은 가는 곳마다 늘 증거자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나가십니다. 또 바나바와 같은 성령 충만한 제자는 무엇이 교회에 필요한가를 잘 알아서 그에 대한 지혜로운 판단을 하여 사울과 같은 훌륭한 동역자를 데려다 놓고 가르쳤습니다. 사울 역시 바나바가 초청하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안디옥에 가서 협력하여 사역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바나바가 주도하여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의 큰 일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1:27-30은 이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서 새로운 세력과 묵은 세력이 모두 협력하여 하나가 되어서 전진하고 점점 더 발전해서 나갔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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