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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9-06 (일) 15:25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ㆍ추천: 0  ㆍ조회: 21      
IP: 121.xxx.81
이방인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
이방인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
2020년 9월 6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행9:43-10:48, 갈3:7-14
설교본문 : 행10:4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한 식탁에 둘러앉아 성도의 교제로서의 모임을 갖지 못하고 슬프게도 비대면 영상예배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든, 교회든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감염병시대에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위해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대면 예배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다며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옳습니까? 주께서 명백히 주의 행해야 할 바를 인도하기 전 우리는 누구도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다만 죄의 비참 아래 있는 이 상황을 애통하며 우리의 죄가 이 심판을 야기했음을 인정하며 겸손히 주의 위로와 도움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현재 우리의 상황은 안녕하지 못하지만,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신 주로 말미암아 우리가 늘 하나님께 안녕한 자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속의 베드로가 머물고 있던 곳은 시몬의 집인데, 그는 피장, 즉 죽은 짐승의 가죽을 제조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죽은 짐승의 가죽을 취급하는 직업은 부정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피장의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많은 의문을 줍니다. 왜 그랬을까?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의 관습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면 베드로가 피장의 집에 머물고 있는 사건을 통해 앞으로 주님께서 하실 일을 미리 보여주기 위함인가?

 사도행전의 저자는 베드로가 피장의 집에 머물게 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10장에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에 앞서 이 일이 기록된 것을 보면 베드로로 대표되는 사도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의 약속으로는 알지만, 삶의 일상으로 아직 받아들이는 데 인색한 이방인들의 복음으로의 참여에 대한 강한 자극과 도전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경건한 유대인의 표상인 베드로가 이방인과 같이 취급되는 피장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묵시적으로 이제 하나님 앞에는 부정한 사람과 부정하지 않은 사람이 따로 없다는 10-11장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이미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성령의 오심을 통하여 증거된 방언이 곧 창세기11장의 바벨탑의 심판처럼 배교한 옛언약 백성에 대한 심판의 표징이요, 바벨이후 교회와 세상으로 구분된 구속역사의 시대를 끝내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으로 인해 하나로 통일되게 하심을 보여줍니다. 오순절의 시점 이후 이제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은 제거되었습니다. 이제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누어질 뿐입니다.

 아마도 13장 이후 전개되는 바울의 복음 전도여행으로 땅 끝인 이방(열방)이 주의 은혜의 나라에 참예하는 것을 미리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뿌리 깊은 편견과 전통에 대한 관습이 복음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어 왔기에 주님은 더 강력한 사건을 통해 교회가 주의 사역이 가져온 복음의 결과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도록 인도함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고넬료 가정에 성령께서 강림한 사건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복음전파를 듣고 있는 중에 성령께서 모든 사람 위에 임하셨고, 그들은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보면서, 다만 외적으로 나타난 성령의 역사(방언)에 관심을 두지 말고,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셨는지, 그리고 고넬료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의도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예수님께서 이방인 고넬료 집에 성령을 보내심으로 바벨의 심판을 회복하신다"는 주제로 주의 말씀을 설교하려 합니다. 이 제목으로 다음 두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방인들이 받은 물세례

첫째로, 높아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넬료의 집 사람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신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듣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고넬료는 로마제국의 군인입니다. 그는 황제 직할 부대로서 가이사랴에 주둔해 있었던 이달리아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행10:1).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이 섬기는 야웨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 그는 이방의 우상들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야웨를 믿는 신앙으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고넬료는 자기와 자기 집 전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고, 또 백성들을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10:2).

 그런데, 어느 날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는데, 천사가 와서 사도 베드로를 초청하여 그의 전하는 말을 들으라고 지시했습니다(3-8). 이에 순종하여 고넬료는 멀리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간의 일을 알리고 정중하게 초대하였습니다(22). 이 초대에 응하여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오게 되었고, 그는 그 집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34-43). 그렇게 베드로가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도중에 성령께서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44-46절입니다. “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방언에 대하여 오후에 살펴본 바와 같이, 오순절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은 이 본문에 나타난 대로 단지 성령의 외적인 현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 고넬료의 집 사람들은 모두 다 성령을 받았는데, 그들이 방언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것이 바로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성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런 외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성령 받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높아지신(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왜 주 예수님께서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시고, 그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외적으로 나타난 성령의 역사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의 선물 부어주신 그 본질에 대하여 주목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첫째는 고넬료와 그 집 사람들의 정체성과 둘째는 이 집에 임하신 성령의 정체성입니다. 먼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10:24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고넬료의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45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모두 다 이방인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넬료와 그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이 다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또 그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합니다. 여기 할례 받은 신자들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은 제자들을 말합니다. 왜 이들은 깜짝 놀랐을까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 어떤 의미가 있길래 깜짝 놀랐던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로 고넬료 가정에 임하신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해야 합니다. 47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여기 보시면,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넬료 가정에 임한 성령님은 베드로와 같은 유대인들에게 오순절 날에 임하셨던 바로 그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이방인들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것을 증거해 줍니다. 주님은 승천하기 직전에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 끝'은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임하셨던 그 날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의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2:38-39). 여기 먼데 사람은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부르시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57:19). 그렇게 약속하신 성령이 지금 이방인들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님은 오순절 날에 이미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강림하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은 이 사건을 가리켜 우리는 이방인의 오순절, 이방인의 성령강림이라 말합니다.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임하신 것과 동일한 성령께서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확증해 줍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일은 고넬료의 집에 오기 전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분명히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오시는 성령, 그래서 이방인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세우시는 새 언약에 참여하게 하시는 성령, 그가 바로 오순절 날에 오셨던 성령이시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오순절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들이 방언을 말했다면, 오늘날 우리들도 성령을 받을 때, 반드시 방언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방언이 없습니까? 다시 한번 45-46절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를 비롯하여 할례 받은 신자들,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유대인 신자들은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받은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첫째는 방언을 말했고, 둘째는 하나님을 높이게 된 것, 곧 하나님을 찬양한 것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것이 성령 받은 외적인 증거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외적인 증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성령을 받은 당사자들인 이방인을 위해서 필요합니까? 아니면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을 위해서 필요합니까? 물론 두 당사자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본문에서 볼 때 사도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이 꼭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외적인 증거가 왜 필요하고 중요합니까? 예수님은 이미 사도들에게 땅 끝(이방인)까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이때까지도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다윗의 집, 즉 유대인들만을 위한 그리스도인 것으로 생각했고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오셨을 때 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것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1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돌아갔을 때, 다른 사도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일에 대하여 오히려 기뻐하기보다는 베드로가 이방인을 만나 교제하고 온 것을 힐난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과 동일한 성령의 선물을 이방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11:17). 그때 사도들과 유대인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하면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11:18).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외적증거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외적인 표적들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굳이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외적으로 증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넬료 가정의 성령강림 이후로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이방인이 새 언약의 백성으로 가입하게 된 것은 고넬료 가정이 최초였습니다. 물론 성경 기록상 고넬료 가정보다 먼저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의 전도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성령이 강림한 것은 고넬료 가정이 최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고넬료 가정을 통해서 사도들과 유대인 형제들은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이후에 성령강림에 대한 외적인 현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 대부분이 성령을 받을 때 방언을 하지 않은 줄로 압니다. 만약 방언이 성령을 받은 외적인 증거라면, 방언을 하지 않았던 우리는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되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직 되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엄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누구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때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사람들이 방언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오고 오는 교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우리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성령 받은 증거이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 역시도 성령 받은 증거입니다(롬8:15-16).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옛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이것도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갈5:16, 엡4:22-24).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방언과 같은 외적인 증거가 없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방언을 받기 위해 헛된 수고를 하는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이 복된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었고, 세상에서 소망도 없었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엡2:11-12).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늘로 오르신 높아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받았던 그 동일한 성령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엡2: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가 되어 주셨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고, 성령께서 이 모든 일의 보증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고넬료의 집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 베드로가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47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동일한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물로 세례 주는 것을 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여러분, 고넬료 집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증거합니다(롬6:3-5).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에 참여하고, 그가 주시는 모든 은혜와 은사에 참여한다는 것을 공적으로 증거합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할례를 통하여 언약을 맺은 것과 같이 이제 신약의 백성들은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방인으로서 고넬료와 그 일가와 모든 친구들은 물세례를 통하여 공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안으로 들어옴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자기 자녀로 받아 주셨다는 것을 외적으로, 공적으로 증거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올 때, 하늘로서 들렸던 그 말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한 그 동일한 말씀이 세례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물세례에서 이들 이방인들에게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성령께서는 그들 가운데 내주하셔서 이 언약의 보증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의 보증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 모든 복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 용서함을 받았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 자녀이기에 상속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기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살아서 영생을 얻었고,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첫 번째 의미입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이방인들

 두 번째로, 고넬료의 집이 세례를 받은 것은 오순절 날에 시작된 새 언약의 교회에 공식적으로 가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이방인이 유대인과 함께 교제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전에는 이것이 도무지 불가능했습니다. 유대인은 결코 이방인과 함께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관계를 단절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 교제의 단절은 이방인을 하나님과 유대인의 원수로 보는 것입니다. 이 교제의 단절은 오직 유대인들만, 아브라함의 자손들만 하나님께 복을 얻는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장차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고, 장차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날 유대인들을 섬기는 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높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새 언약의 시대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오기 전날에 욥바에 있는 피장 시몬의 집에 거할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한 가지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10:9-16). 하늘에서 한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모세 율법에 금한 부정한 음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 부정한 것들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까지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부정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환상을 통하여 주님께서 사도 베드로와 신약의 교회에 주신 계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제 이방인들이 더 이상 속되거나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방인들도 성령으로 세례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복에 참여하는 이방인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례를 받아 새 언약의 교회에 속한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유대인과 원수가 아니라 형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유대인의 모든 것을 함께 상속하고, 유대인의 모든 기업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모두 노아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을 때 사실상 그때부터 우리들은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 바벨탑 사건 이후에 선택받은 사람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이 오시고, 약속의 성령께서 오심으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닌 우리 이방인들도 이제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도록 불러주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계획하셨던 일입니다(창12: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면서 땅의 모든 백성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갈3:8). 사도 바울은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갈3:7)"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말미암은 우리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갈3:9).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속된 백성이 아닙니다. 더 이상 깨끗하지 못한 부정한 백성이 아닙니다. 죄와 허물 가운데서 살고, 마귀의 미혹을 받으며,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백성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정결하게 씻음을 받고, 새롭게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성소에 들어가 교제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기업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방인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고넬료 가정에 임한 성령강림에 대하여 아는 것이 오늘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세상의 역사와 우리의 운명에 대한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그 섭리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만이 참된 진리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정체에 대하여 모르고 살고, 또 알려고 노력하지만, 확실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영원한 목적이 없고,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다만 이 땅의 것만 추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복을 삼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과 인간의 타락과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실 때,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을 행하시는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분과 우리의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어디에 행복을 두고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가 성령을 보내어 속되고 부정한 우리를 당신의 피로 정결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답게 사십시오. 세례가 요구하는 믿음의 순종을 하십시오. 예수가 참으로 주와 임금임을 고백하고, 그의 다스림을 기뻐하며 사십시오. 예전 조상들의 배교의 길을 다시는 걷지 마십시오. 바벨이 상기시키는 반역, 하나님 없는 삶을 좇아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십시오. 우리 이름을 내고, 우리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십시오.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신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삶을 움직이며 주장한 것처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시고, 영원한 것을 소망하며, 오직 하늘에 계신 주 예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사 믿음의 복을 더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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