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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5-17 (일)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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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승천과 두 천사의 증언을 통해 교회에게 주는 유익
그리스도의 승천과 두 천사의 증언을 통해 교회에게 주는 유익
2020년 5월 17일 오전설교
성경읽기: 행1:9-11, 눅24:1-9
설교본문: 행1: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신 것만으로 끝나신 것이 아니며, 부활하신 것만으로 끝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처럼, 승천사건 또한 우리에게 한없는 유익을 줌을 줌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짊어지심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죄용서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을 이기는 부활을 선물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승천하심으로써 이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마침표를 찍으실 뿐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커다란 유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오심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9절). 이때 구름이 승천하는 예수님을 가리웠다고 말합니다. 9절에 언급된 구름은 눅9장에 언급된 변화산 사건 때 등장한 구름을 연상시킵니다. 변화산 사건은 장차 예수님에게 임할 부활의 영광을 예고하는 구약의 신적 현현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변화산 사건에서 초자연적인 구름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를 갈랐듯이 이제 승천하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또다시 갈라놓았습니다. 변화산 사건 때 앞으로 있을 예언된 사건이 이제 예수님의 승천 때에 실현된 모습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예수님을 유심히 주목하며 쳐다보고 있을 때에 갑자기 두 천사가 나타나 제자들의 시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예수님의 승천에서 재림으로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 두 천사가 나타난 일과 본문의 사건이 서로 이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24:5-6)고 한 말과 제자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한 말은 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두 증인인 천사들의 증언을 통하여 확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유익을 한껏 누리고 계십니까?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분으로 인해 참된 자유를 얻었습니까? 또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한 유익을 한껏 누리고 계십니까? 지금 여기에서 ‘현재 부활한’ 것으로 인한 ‘마땅한 삶’과 ‘장차 부활할’ 것으로 인한 ‘경이로운 소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이 우리에게 끼쳐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맛보아야 할 차례입니다. 이 주제는 교리문답 18주일과 19주일이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다음 세 가지 요점을 제시합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우심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
 둘째,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
 셋째, 그리스도께서 장차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

 오늘 오전 말씀은 이 중 첫 번째 주제인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우심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에 관한 것입니다.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본 제자들에게 주어진 크신 은혜가 우리들에게도 임하여, 이 유익을 함께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우심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

 교리문답 제 46문을 보면 “‘하늘에 오르셨고’라는 말로 당신은 무엇을 고백합니까?”라고 물은 다음에 제일 첫 대답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땅에서 하늘로 오르셨고”

 46문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부분은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중에 하늘로 오르셨다”, 둘째 부분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거기에 계신다”, 셋째 부분은 “장차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세 요점입니다.

 여기에서 첫 부분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땅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어떤 것입니까?

 이 질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 보면 “왜 주님께서는 자신이 승천하는 모습을 굳이 자기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을까요?” 왜 주님께서는 홀로 승천하시지 아니하시고,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까?

 물론 주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은 이유는 그 올리우심을 ‘공적으로 증거하시기 위함’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칼빈도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는 실상 주님 자신이 그 사실을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하시려고 또 그처럼 공공연히 하늘로 오르시고 또는 그밖의 상황으로써 그 확실성을 확증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에 그가 남몰래 가만히 사라지셨다면 제자들은 정말로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께서 하늘로 올리워지시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하늘로의 승천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로서의 지상 사역을 통해 죄 값을 지불하시고 이제 죄에 대하여 ‘무죄하심’을 성취하였습니다. 그 무죄하심에 대한 결과가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그리스도의 ‘칭의’를 증거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하심에 대한 공적인 입증이 승천 사건입니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입은 주의 자녀들이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히4:16)

 교리문답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 질문할 때, “그리스도는 왜 장사되셨습니까?”(41문)라고 묻고는 “그리스도가 장사되심은 그가 진정으로 죽으셨음을 확증합니다.”라고 대답함으로써 무덤이 그의 죽으심을 ‘진짜’ 증명한다고 말씀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신 것은 그분께서 ‘진짜’ 승천하셨음을 보이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단지 “법정적 증언만을 위해, 사실임을 확인시키시기 위해” 승천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승천을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은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본문, 사도행전 1장의 말씀이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1. “정말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함을 통해 제자들을 굳게 하셨다.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심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이유는 제자들을 위해서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실망했던 제자들의 모습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모든 제자들이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낙심하였고, 그분께서 공생애 사역동안 가르치신 내용들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전의 생업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새 언약교회”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신약성경은 교회의 터를 말할 때 “사도와 선지자”라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이 “사도들을 통하여”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에 있어서의 사도들의 확신이란 결단코 없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닙니까?

 도마 사건을 잘 기억해 보십시오(요20장).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신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주님께서 보이신 반응은 놀랍습니다. 지금 시대의 어떤 신자가 “나는 주님의 손바닥과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라고 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실제로 자신의 몸에 손가락을 넣어보도록 허락해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신자라고 생각지 않고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마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주님의 메시지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셨습니다. 그렇다면 넣어 보게 하지 않고, “보지 않고 믿게” 하셔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실제로 그 손가락을 넣어 보게 하셨습니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옵니까? 이 차이가 바로 도마가 ‘사도’였다는 사실에서 옵니다. 도마는 사도였고, 우리는 사도가 아니라는 차이에서 옵니다. 사도는 “새 시대의 교회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사도에게는 일말의 의심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의 자격은 요한일서의 말씀대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유다로 인해 생긴 사도의 공석을 메꿀 때도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1:21-22)고 하였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친히 경험하고, 그와 대화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입니까? 그들이 “교회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오늘 말씀에서도 ‘사도들’이 본문의 핵심에 놓여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1장 전체를 죽 훑어보십시오. 물론 여기에는 사도들 외에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본문이 일차적으로 대상자로서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사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9-11절의 말씀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사도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사도들에게 이 승천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들이 이 승천 장면을 보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실제 눈으로 주님의 승천을 보고” 굳게함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유익은 “확신”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승천을 직접 눈으로 목도함으로써 주님의 승천을 확고하게 증언할 수 있는 교회의 기둥과 터가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집니다. 교회는 그들이 확고하게 목도한 승천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그들의 확신이 교회를 낳았고, 따라서 이후 세워진 교회인 우리들은 그들의 확신을 함께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을 사도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교회의 신앙을, 우리의 신앙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구름이’ 가르쳐 주는 것
 그러면 제자들은 이 주님의 승천을 보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실을 확인받아야만 했습니까? 이 사실을 위해서는 사도행전 1장 9절 말씀의 한 단어에 유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여기에서 ‘구름이’라는 단어에 주목합시다.

 보통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읽을 때면 ‘구름이’를 ‘구름에’로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고, 하늘로 올라가시다 보니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구름은 그냥 배경화면밖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구름은 그저 주님을 가리는 배경으로서, 즉 ‘구름에 가리워지신 것’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분명히 ‘구름이’ 주님을 가리웠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구름’은 성경의 수많은 곳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 즉, “쉐키나의 구름”입니다. 이 쉐키나의 구름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 그들의 행군에 앞서 길을 인도하며 그들에게 구름기둥으로 쉴 자리와 불기둥으로 따뜻함과 밝음을 제공하여 주었던 그 구름입니다.
2) 이 쉐키나의 구름은 홍해 앞에서 애굽의 군병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올 때 장막을 만듦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을 보호한 구름입니다.
3) 이 쉐키나의 구름은 모세를 통해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그리고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그 성막과 성전에 가득하게 찼던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입니다.
4)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빽빽한 구름 가운데 계셨고,
5)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것은 “영광 구름”이 떠나시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겔10:3-4).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언제나 쉐키나 구름으로 가득찬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6) 눅9장의 변화산에서 제자들은 구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에 에워싸인 채로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즉 주님의 승천은 하나님의 영광구름 가운데 휘감긴 채로 올리우신, 즉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서의 승천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본 것은 이 놀라운 사실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는 승천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주님을 따랐던 사실이 실수가 아니었음을 승천사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승천 장면에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나타내심으로써 그들이 다시금 확고하게!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맹렬한 복음에의 순종자로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신 이유”는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이 제자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교회들입니다. 이들이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교회에 전파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은 이 승천사건을 본 이후 곧바로 오순절 성령강림과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했습니까? “너희가 죽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주님께서는 승천모습을 사도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교회인 우리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확고하게 붙들게 하십니다.

 2. 천사들의 증언이 주는 교훈

 그리고 주님께서 승천하신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주신 교훈에는 이어지는 ‘천사들의 증언’을 통한 교훈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름 가운데서 승천하셨고, 제자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들이 제자들을 향해 이야기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천사의 이 말 속에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우심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유익이 들어 있습니다.

 1) 마음을 땅에 두지 말라
 첫 번째 것은 천사가 그들에게 “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느냐?”라고 꾸짖듯이 말한 것에서 찾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천사는 그들에게 ‘꾸짖듯이’ 이야기합니까?

 칼빈은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이미 올라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천사가 한 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본 것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름이 이미 그들 사이를 가로막아 육체적 감각으로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계속해서 그를 육안으로 보려고 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올라가셨고, 다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오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은 육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다시 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구절에서 배워야 할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구나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주님께서는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법정적으로 ‘승천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께서는 하늘에 계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역시도 우리의 본향이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다는 것을 겸하여 깨달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주님께서 계셔야 할 본질적인 곳은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본질적으로 있어야 할 곳이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계십니다. “너희 마음을 땅에 두지 말라!”, “너희는 나그네다!”, “너희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주님께서 다시 땅으로 내려오시기를 바라지 말고, 너희가 하늘에 올라가는 자가 되거라!”. 주님께서 승천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그들의 이러한 본질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고, 우리 역시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2) 올리우심과 다시 오심
 뿐만 아니라 천사의 메시지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말씀까지를 포함합니다. 오후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대해 배우면서 조금 더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우리는 주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신 사실을 통해서 단지 그분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늘로부터 다시 오시는 날이 있다”는 것까지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사실, 그리고 천사가 메시지를 통해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땅에 속한 자”처럼 살지 아니하고, “하늘에 속한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다시 오실 날을 고대하며 바라보면서 살고, 동시에 그분께서 심판하실 날을 두려워하면서 겸손하게 우리의 죄악된 몸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일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중, 특별히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들은 말씀대로, 주님께서 승천 모습을 사도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교회를 든든한 확신 가운데 세우려 하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그분이 하늘로 오르시는 장면을 목도한 사도들을 통해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리스도를 알고 보고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본질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땅으로 내리려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 주님이 가버리셨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께서 계신 곳이 하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신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장차 갈 곳이 저 하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고백하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열매를 나타내며 살 수 있는 확고한 기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하늘에 오르시는 모습을 통해서 발견합니다. 그분은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올라가셨고, 그 모습대로 오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를 잘 기억하고 마음에 새깁시다. 우리는 이 땅에서 100년도 채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짧은 인생이 무언가에 휘둘리면서 의미없이 사는 시간들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주의 다시 오심을 대망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소망을 확고히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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