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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05-10 (일)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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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길 기다리라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길 기다리라  
2020년 5월 10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행1:1-8절
설교본문 : 행1: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1장은 사도행전 28장의 전체의 서론과 같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누가복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거룩한 복음의 의미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이제 그것에 이어서 이야기를 해 나가는데 그것이 사도행전입니다. 1장에는 예수님의 생애의 맨 마지막인 부활하신 후에 약 40일간의 지상사역을 설명함으로 사도행전을 써 나갑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내용을 크게 구분해 보자면 1:8에 있는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받고 첫째는 예루살렘, 둘째는 유대와 사마리아, 셋째는 땅끝까지 거룩한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의 내용이 뻗어 나가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장 서론을 지나서 2-7장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이고, 8-12장은 유대와 사마리아 땅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다음에 13장에서부터는 복음이 멀리 퍼져 나갑니다. 하나님의 크신 경륜속에서 서쪽을 향하고 로마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서 복음이 전진해 나갑니다.

 사도행전은 영광의 왕 예수께서 그 은혜의 왕국인,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시고 경영하시는 최초 약 한 세대의 역사입니다. 교회의 설립 시기를 주후 30년이라고 하면 바울의 로마에서의 사역으로 사도행전이 끝나는 시점은 대략 63년경입니다. 1장의 첫째 대지는 14절까지입니다. 지난 주 1-3절을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8절까지의 본문을 살펴볼 것인데 그중 5절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주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4-5절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4-5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와 둘째,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사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망의 성격에 대해서 유의해야 합니다. 사람이 제 마음에 내키는 대로 경솔하게 만들어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둔 것이어야 참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자기들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도록 허용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첨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물로 세례받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받는 것이 대조되는 것입니까? “성령으로 세례 받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오르시기 전까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많은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펴서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의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주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하나님 나라가 무슨 의미이며, 어떻게 임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40일 동안 우리 주님께서는 오순절 날, 성령강림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신 후 첫날부터 이미 성령강림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요20:22). 이런 동일한 사실을 우리 본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의 하늘로 오르심을 생각하기 이전에,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전에 막1:8에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한 요한의 말씀을 언급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본문에서 성령으로 세례는 물로 세례와 대조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 대조를 이해하는가? 혹은 우리가 물로 세례와 성령으로 세례를 어떻게 연관시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특별히 오순절 진영과, 또 일반적으로 은사주의적인 침례교 운동, (그리고 오순절주의적이고, 은사주의주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한국의 대부분 장로교회들)과의 토론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령으로의 세례”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오순절 진영은 이 대조에 대해 이렇게 구분합니다. “물세례는 별로 의미가 없는 단지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이다, 물세례는 소위 말하는 첫 번째 축복이지만 정말로 더 낮은 단계이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참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됨의 내적 증거이다. 성령세례는 두 번째 축복이고 훨씬 더 높은 단계이다.” 여러분은 이런 구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오순절주의자들, 은사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여러분! 그들이 질문한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당신이 당신의 마음속에 성령의 내려오심을 의식적으로 경험했는가? 방언을 말하고, 환상을 보는 등의 여러 가지 영적 현상들이 따라오는 것을 경험했는가?” 만일 여러분이 “아니오”라고 답을 한다면, 여러분은 비록 그리스도인일지는 모르지만 열등한 단계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물세례는 성령세례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식 안에서 유아세례를 생각한다면 유아세례가 약간, 혹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유아세례를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언약에 대한 몸에 새겨진 표를 그들은 이렇게 육에 새겨진 의식으로 취급하고 무시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까?

 이런 은사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개혁신앙인들 중에도 성령으로의 세례를 경험해야만 하는데 왠지 우리교회는 무언가에 짓눌려있는 것 같아 우리는 잃어버린 요소를 회복해야 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세례 받는다”는 표현은 무슨 의미입니까? 성령세례라는 표현은 오순절적 운동의 신학을 통해 다분히 일반적인 교의학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령세례라는 말을 본문의 문맥 가운데서 합당하게 이해해야 하고, 문맥에서 떼어서 이해하거나 원래 주어진 의미를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순절 날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제자들에게 너희 제자들이 몇 날이 못되어, 곧, 특별한 때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행2장에서 이 성령으로 세례의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때에 대해 지시하신 특별한 약속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지시하신 일반적인 명령으로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분명히 문맥에서 주님은 당신의 사역의 입증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오순절주의자들, 은사주의자들은 약속을 “당신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약속을 반복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정말로 정확하게 오순절 날에 성취되었습니다. 그 약속은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표현이 성경에서, 여기 행1장에서뿐만 아니라 다섯 번 더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다섯 구절을 보면, 마3:11, 막1:8, 눅3:16, 요1:33, 행11:16입니다. 그 각각의 경우에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대조합니다.

 각 본문에서 언급은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사역에 근거하여 세우시고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이 행할 수 없었던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피로 당신의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고, 당신의 교회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으심 직전에 성찬식에서 성령의 오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위로자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요14-16). 요한복음 15:26이나 16:7을 보면 장차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직접적으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요20:22) 성령님의 오심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오심의 약속은 분명하게 주어졌고, 상세하게 반복되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성취될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설교본문인 5절에서 세례요한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제 예수께서 당대에 세례요한이 말 한 것을 말하고 바로 성령으로 세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세례요한 이래로,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래로 있게 될 큰 진전을 가리킬 때 물세례와 성령으로 세례를 그렇게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즉 성령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충분히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세례 요한이 베푼 물세례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막1:4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는 구절을 읽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오심을 선언하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하여 메시야를 예비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오실 메시야를 통해 죄를 씻기 위해서 회개해야 했습니다. 오직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 물세례 안에서 표해진 것처럼 씻겨질 때만 그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새롭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시고 새롭게 하심을 통해서, 그들은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요한은 물로 세례에서 표하는 것처럼, 구속과 새롭게 하심의 필요성을 선언하고, 약속을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속과 새롭게 하심을 일어나게 하십니다. 요한은 이미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말했을 때 이런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나는 오직 전파하고 약속하는 예비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는 당신 자신의 피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고,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너희를 새롭게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는데, 그 물은 분명한 표이고, 분명한 인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주심으로 너희에게 내가 물로 세례에서 표하고 인친 것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부으실 그 날을 선언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를 부으심이 성령을 부으심을 위한 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령으로 세례를 주리라”는 표현은 특별히 오순절 날에 일어나는 사건을 표하는 것이고, 그 사건과 그 날은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을 보내심은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이 이제 끝나고 그분께서 메시야로써의 사역을 다 이루었음을 공적으로 입증하신 사건입니다. 세례 요한으로 대표되는 옛 세상이 끝나고 이제 그 사역이 진정으로 가리켰던 은혜의 나라가 이 땅에 설립됨을 알려줍니다. 메시야,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이 끝나면 그 결과 그분께서 승천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좌정하시며 당신께서 세우시는 은혜의 왕국인 교회에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가져올 효력있는 죄용서의 은혜를 자신의 몸에 표와 인으로 새기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을 받는 것은 일반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열매요 결과입니다.

 행1:6-8 저희가 모였을 때에

 본문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40일 동안 계실 때에 가르치신 내용으로 제자들의 물음에 답하신 말씀입니다.

 6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의 질문은 사도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이 질문이 나왔다고 누가는 지적합니다. 그것은 한 두 사람만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이런 질문이 생겨진 것이 아니요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삼년의 세월에 걸쳐 그처럼 완전하고 조심스럽게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마치 그들은 한 마디도 듣지 못한 것 같은 무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질문 안에는 많은 과오가 들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왕국에 관해 묻고 있지만 그것은 지상의 왕국을 꿈꾸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상 왕국이란 부와 사치와 외부적 평화 또 그와 유사한 복된 사항에 의존합니다.

 그들이 현재를 왕국을 회복할 시기로 정할 경우에 그들은 싸우지 않고도 승리를 기뻐하려고 열망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임명받은 일에 손도 대기 전에 일의 대가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동족 이스라엘에 한정시킴으로서 과오를 범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땅끝까지 그 범위를 넓히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그 나라의 영역을 이스라엘로 한정해 버리는 편협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 절에서 '회복'이란 말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많은 피해로 파괴되고 망가뜨려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새의 마른 그루터기에서 한 가지가 돋아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처참하게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주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의 헛된 호기심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주께서 숨겨두시기 원하신 것을 알려고 원한 것은 그들의 불법한 주제넘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시는 것은 재빨리 배워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알리시지 않고 숨겨두시기를 원하시는 일들은 기꺼이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지혜를 얻는 참된 길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고 헛된 호기심은 거의 우리 모두가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주재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만큼 배우려고 열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주께서 숨겨두시려고 원하시는 것을 알아내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리해야 우리는 지혜로우면서도 절도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한도를 넘어 더 알려 하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마음이 어지럽게 될 때마다 주께서 말씀하신 "너희의 알 바 아니다"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과 명하시지 않는 일을 가지고 애타하지 않는 이상, 이 말씀은 우리의 자유분방한 마음의 본성을 억제하기에 넉넉할 것입니다.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에서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의 가르침을 전 세계에 전하는 일을 제자들에게 임명하실 때에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어질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동시에 주님은 제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견해를 교정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육체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만이 이스라엘 백성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위치상으로는 유대의 이웃이면서도 시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마리아도 역시 그들이 거두어들여야 할 곳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밖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다른 종교의 백성들도 동일한 은혜에 참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반드시 모여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분리시킨 수렁이 얼마나 큰가는 잘 알려진 일입니다(요4:9).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리의 장벽이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들을 한 몸으로 만들어서(엡2:14) 그리스도의 왕국이 도처에 세워지도록 명령하십니다. 제자들이 경험한 가장 악의에 찬 적들이 가득한 예루살렘, 즉 유대의 지명을 주께서 말씀하심으로 그들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심으로 그들이 조급한 승리를 생각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유대인을 우선적으로 지정하시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 그들을 장자로 보신 것입니다(출4:22). 그러면서도 일찌기 구원의 소망에서 소외되었던 모든 국민을 차별 없이 부르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복음이 도처에서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 결과 마침내 우리들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엡2:7).

 마지막으로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선언으로 두 가지 잘못을 시정하십니다.

첫째, 주께서는 그들이 승리를 희망하기 전에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왕국 성격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은 농부는 수확을 거두어들이기 전에 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딤후 2:6). 이 사실에서 우리는 이제 장차 올 생명의 상태에 대해서 쓸데없는 공론을 하는 대신에 차라리 현재로는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는 그 길에 우리의 관심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늘에 올리어질 때에 그들이 받을 미래의 복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거기에 이르기 위하여 가야 할 길은 유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세상을 단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즐기게 될 장래의 생명의 성격에 대해서 추론하지만 한편 그들은 우리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기 위하여 그의 죽음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기울이지 않습니다(딤후2:11).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두 다 그리스도의 깃발아래서 용감하게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그 길을 따라서 우리 모두 장부답게 끊임없이 전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때에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고 선언하심으로 제자들이 지상의 왕국에 대해서 품고 있는 그릇된 생각을 교정해 주십니다. 은혜의 왕국은 복음 선교에서 성립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복음 선교를 통하여 이 세상을 자기에게 굴복시키실 때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펼쳐집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 세상 방식과는 달리 영적으로 통치하심을 알려줍니다.

 천년왕국 신봉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서 천년동안 지배하신다고 믿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현세의 왕국들의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묘사한 여러 예언들을 가장 육체에 적합하도록 적응시켰습니다. 우리들 또한 똑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전파된 복음을 듣는데 마음을 기울여서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하여 통찰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참여한 은혜의 왕국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의 열매요 결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우리가 소유한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며 믿음으로 삶의 어떤 자리에서든지 자족하며 증인노릇 잘하며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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