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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19-02-10 (일)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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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의 택함받은 복된 이스라엘
야웨의 택함받은 복된 이스라엘
2019년 2월 3일 주일 오전 설교말씀
성경봉독 : 민수기 22:39-23:12, 시 111편 1-10
설교본문 : 민수기 23: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민수기 23장과 24장은 발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네 가지 계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웨께서는 네 번에 걸쳐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넣어주셨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말입니다. 네 번이나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에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첫 번째 계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선택하사, 그들을 부르시고 구별하시고 복 주셨는지에 대해 말합니다.(민22:39-23:12)
 두 번째 계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계시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변하신 신실하심을 선포하게 하십니다.(민23:13-23:26)
 세 번째 계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에게 거주할 땅을 주실 것인지에 대해서 말합니다.(민23:27-24:14)
 네 번째로 마지막 계시는 한 왕의 도래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 한 의로운 왕이 일어날 것을 예언합니다.(민24:15-25)

 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께서 발람을 통해 주신 이 첫 번째 계시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저는 “ 발람은 하나님의 선택하사 복 주신 백성들을 저주할 수 없었다.”는 주제로 교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귀를 기울여 성령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발람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별된 백성이 되었는지 말한다.
2. 발람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이 되었는지 말한다.
3. 발람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의로운 백성이 되었는지 말한다.
1. 발람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별된 백성이 되었는지 말한다.

 여러분! 우리가 지난 주일 살핀 바와 같이 분명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자기 욕심이 원한(저주하면 발락왕에게 막대한 돈을 받을 수 있기에)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발람은 저주하고자 했고, 여러차례 시도했습니다. 참으로 끈질기게 시도했습니다!

 나중에 발락 왕이 모압 변경에서 발람을 만난 뒤에, ‘기럇 후솟’이라 불리는 도성으로 함께 갔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위해서 연회를 배설했습니다. 발락은 선견자 발람을 공대하고 신들을 고양하기 위해서 우양을 잡아 대접했습니다. 아울러 발락은 발람과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를 꾀러 갔던 모압 귀족 사절단에게도 이 잡은 우양으로 대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자신들의 성소인 바못바알로 갔습니다. “바못(Bamoth)”이라는 단어는 “높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바알의 높은 곳. 이교도들은 자신들이 높은 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신들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특정한 몇몇 높은 지역, 예를 들면 산꼭대기를 거룩한 장소로 신성시했습니다.

 여기 높은 곳에서, 발람은 저 아래 있는 이스라엘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은 너무 엄청난 규모로 진이 너무 방대하고, 백성의 수효가 많아서, 발람은 단지 이들 가운데 일부만 볼 수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발람은 이스라엘 진 끝을 바라보았습니다.

 발람은 이제 일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가 발락왕에게 “발락 왕이여, 여기 높은 곳에 나를 위하여 일곱 단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준비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발락은 즉각적으로 시행했습니다. 발람은 전문가였습니다. 북방 메소포타미아 출신의 명성이 있는 마술적인 선지자였습니다. 발람은 신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발락이 일곱 단을 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발람과 발락은 제단마다 각각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모두 번제로 드렸습니다. 동물 전체를 불태우는 제사로 말입니다. 선택된 열 네 마리 짐승이 불태워져 신들에게 연기로 올려졌습니다.

 발람과 발락이 했던 바는 그 당대의 통상적인 풍습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바벨론 문서에서 이와 같은 절차가 시행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서에 의하면 “동이 터기 전에, 에아, 삼마쉬와 마르둑(이들은 바벨론 신들이다) 앞에 일곱 제단을 쌓아… 일곱 양의 피를 부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희생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신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며, 다음으로는 희생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내장과 간을 살펴보고서 신들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발람은 희생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내장과 간을 살펴보고서 신비로운 징조를 읽어서 신의 뜻을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점” 혹은 “사술”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발람이 이전에 사술에 의지했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24장 1절에서 말하기를 첫 번째와 두 번째 계시 때에는 사술을 의지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고대 동방에서 점쟁이, 마술사로 사술을 행하였습니다. 점술학은 메소포타미아(발람의 출신지)에서 크게 여겨졌습니다. 그 지역 전체에서 사술은 각광을 떨쳤고, 심지어 이 지역 출신 왕들도 점을 칠 정도였습니다. 에스겔21장 21절을 보면,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길머리에 서서 징조를 찾기 위해서 점을 쳤다고 말합니다. 왕은 활로 점을 치든지, 자기 우상에게 자문을 구하든지, 동물의 내장이나 간을 살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간을 생명의 좌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간은 다른 부분과 구분되어집니다. 그래서 영흠이 있는 사람들은 간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살펴서, 은밀한 것을 읽고, 신들의 생각을 알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마술에 상당히 능하다면, 그는 신들이 미래에 행할 활동을 미리 읽어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발람은 살펴본 결과 징조가 좋다고 결정했습니다.(그것이 허위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래서 그는 발락 왕에게 제단 곁에 머물라고 말합니다. 발람은 불모지인 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야웨가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야웨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나 야웨께서 발람에게 무엇을 계시하든지 그는 발락에게 말해야 합니다. 발람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발락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마술가인 발람은 이 신(야웨)과 만나기 위해서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희생제사를 받으시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발락이 바라는 방향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제물이 야웨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야웨께서 발람을 만나주셨습니다. 발람은 야웨께 자신이 했던 것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내가 일곱 제단을 준비했나이다. 각 단에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수양 한 마리를 드렸나이다.” 발람은 마치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자신이 했던 모든 것을 전혀 보시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마치 발람의 주문과 속임수를 보지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하심에 놀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단번에 발람과 발락과 귀족들과 불을 가진 제단을 불살라 죽이시는 대신에 오히려 야웨께서 발람의 입에 메시지(전언)를 넣어주셔서 발람이 그 전언을 가지고 발락 왕에게 돌아가서 들려주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인내는 놀랍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발락과 발람에 대해 이런 식으로 행하신 이유를 압니다. 왜냐하면 야웨께서는 발람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징집된 발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계시를 선포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여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발람)의 입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에게 할 말을 주셨던 것처럼, 이제 악한 사람 발람에게 할 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하신 것은 나귀가 진실을 말하도록 하신 것만큼이나 놀라운 기적입니다. 어떻게 이방의 거짓 마술사의 입을 열어 계시하실 수 있습니까? 이는 기적입니다.

 발람은 어떻게 발락이 자기 고향으로부터 자신을 데려와 삯을 주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는지를 진술함으로부터 계시를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했습니다! 노력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으신 사람들을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자들을 비난하고 탄핵할 수 없었습니다.

 발람은 바못 바알 높은 곳(바알 산당)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발람은 구별되게 살면서 자신들을 다른 열방 중의 하나로 간주하지 않는 한 백성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어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분과 정체성을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이 놀라운 진리는 신명기에서도 자주 반복됩니다.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너는 야웨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야웨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7:6).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야웨께 속한 것이로되 야웨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았음이니라(신10:14-15).

 너는 너의 하나님 야웨의 성민이라 야웨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14: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신들에게 영광일 뿐만 아니라 소명(召命)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민족들과 이러한 구별을 유지하고 많은 민족들로부터 구별하여 자기 소유로 삼으신 야웨와 맺은 언약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는 동안은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길을 받아들임으로 사실상 자신들의 구별과 독특성을 상실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위협하십니다. 그 위협에도 불구하고 야웨를 계속 거부하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성별된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흔들어 열방 가운데 흩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진짜로 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성별된 삶을 사는 대신에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전에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훨씬 강력하게 적용됩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새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된 백성들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저주를 대신 지셨기에 복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가 져야 할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지셨기에(주의 날 제15주일), 우리는 저주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죄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아 있는 저주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복된 이스라엘이 되도록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비참 가운데 있는 인류로부터 우리를 불러내시고, 구별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온 세상으로부터, 세상의 세초에서 세말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위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선택된 한 교회를 모으고 보호하시고 보전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원한 파멸을 향해 무섭게 달려가는 반역한 세상으로부터 구별됩니다.  

 세상과의 구별은 우리의 복입니다. 동시에 이런 구별은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구별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우리가 세상을 닮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말씀과 하나님의 영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 즉 우리가 구별된 백성이며, 거룩한 백성이며, 주님께 순종하는 백성이라는 것을 잊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저주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저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악된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발람의 첫 번째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나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서 발람을 통해서 말씀하신 이 복 안에서 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스스로를 복된 사람으로 인정하십니까? 또 “나는 자 자신을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름받은 존재로 여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스스로를 구별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 세상에서 나그네 된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불신자의 자녀들과는 성별되고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칩니까? 이 말은 우리 자녀가 불신자의 자녀들과 아무런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향해 “너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해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전 인류로부터 모으시는 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늘 상기시켜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언약의 자녀라는 그들의 경이로운 신분을 주지시키지 않는다면, - 만일 우리가 자녀들을 세상에 자신들의 자리를 발견하고 세상에 속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때 우리는 자녀들을 저주 아래 넘겨주는 것입니다.

2. 발람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이 되었는지 말한다.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은 구별된 백성들일 뿐만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백성들입니다. 발람은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10절)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을 위협케 한 이유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큰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애굽은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았습니다(출1장). 이 많은 수의 이스라엘은 또한 발락 왕을 위협했습니다. 민수기 22장 2-3절에서 말하기를, “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서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번민하니라.”

 이스라엘의 수효가 땅의 티끌과 같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고, 이스라엘의 수효가 중다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바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13:16)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야곱에게도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28:14)

 이렇듯 이스라엘이 수가 많아 그들의 사분의 일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발람은 말합니다. 우리는 민수기 2장에서 이스라엘이 사면으로 진을 쳤다는 것을 압니다. 성막이 진영 한 가운데에 세워졌습니다. 그 다음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우리는 발림이 단지 백성의 일부만 보았다는 것을 알기에, 필시 발람은 진영의 1/4만을 보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 1/4 조차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셨습니까? 과연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땅의 티끌처럼 번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3장 29절에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면,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라 유업을 이을 상속자들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편에 속해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난 받음의 결과로 얻은 자손을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는 우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메시아의 고난 받으심의 결과로 얻은 자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보전하시는 셀 수 없는 무리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모여서 하늘의 시온산 위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메시아를 찬양하게 될 방언과 나라들로부터 나온 셀 수 없는 무리들에 속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사소한 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합시다. 여러분이 언약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모든 약속을 이을 상속자라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우리가 이러한 신분을 즐기수 있는 것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이 사실을 가볍게 여긴다면, 만홀히 여긴다면 여러분은 시온산 위에 모인 셀 수 없는 무리들로부터 추방될 것입니다. 주의 경고를 엄중히 받읍시다. 개들과 술객들처럼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내어 좇기지 않도록 ... 여러분! 우리 모두 셀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무리와 함께 모이게 될 그 날을 바라봅시다. 우리의 주님과 나누게 될 영원토록 복된 교통의 그 날을 말입니다.

3. 발람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의로운 백성이 되었는지 말한다.

 이스라엘은 성별된 백성이며 셀 수도 없는 백성일 뿐 아니라, 의로운 백성입니다.
발람은 첫 번째 계시를 “나는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고 함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의로운 백성입니다. 의롭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의롭게 되다(to be righteous)는 말은 바르게 산다(to live right)는 뜻입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의인의 죽음으로 죽는 것이 뭐 그리 대수입니까? 왜 발람이 자기의 종말이 이스라엘과 같기를 바랍니까? 왜냐하면 의인은 죽을 때에 피난처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잠14장 32절은 “…심지어 의인은 죽을 때조차도 소망(피난처)를 가지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피난처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야웨의 천사입니다. 몸과 영혼을 가진 의인들은 사나 죽으나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의인들은 단지 죽을 때만 피난처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죽을 때조차도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 갑니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의인은 죽은 자로 머물 수 없습니다. 의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전적으로 의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말하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그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24) 죄인들은 죽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죽음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의인으로써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서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발람이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에, 그는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복 주시려는 목적을 위해서 발람의 입에 이 말씀을 넣어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의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인들은 죽을 때조차도 강력한 피난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보루이신 야웨의 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람이 이 말로 말했던 것과 관련하여, 그에게 이 말씀은 단지 공허한 바람이었습니다. 불경하고, 악인에게서 나오는 헛된 바람 말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허락하시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불경한 악인이었습니다.

 발람이 했던 바와 동일한 방식으로 죽음과 죽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의인이 죽는 것같이 죽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들은 의인이 사는 것처럼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들은 장래에 하늘에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 지상에서 성도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잘 들어셔야 합니다. “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백성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만일 여러분이 직분을 사랑하고 직분적 소명을 다하지 않으신다면, 그때 여러분은 불의한 자가 죽는 것처럼 죽게 될 것입니다. 악한 자가 죽는 것처럼 죽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올바로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믿음에 의해서 오늘을 의롭게 살아갑시다. 이 의로움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일에 두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십시오. 설사 이것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발람의 첫 번째 계시는 어떻게 이스라엘이 축복받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는지를 말함으로 끝납니다. 야웨께서 발람의 입에 축복의 말씀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발락 왕은 발람이 선포했던 말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발락 왕은 말하기를,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11)고 했습니다. 발람은 대답하기를, “야웨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12)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발람의 입에 넣어주셨습니다. 이 말씀들을 선포하는 것 외에 발람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발람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축복의 말씀을 선포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 축복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되고 복 받은 사람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 여러분은 성별된 백성으로, 온 인류로부터 모아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구별된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셀 수 없는 무리 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언젠가 하늘의 시온에서 어린 양 앞에 모아지게 될 그 무리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의인들입니다. 여러분의 이러한 신분을 바르게 아십시오. 바르게 평가하십시오. 바르게 인정하십시오. 여러분의 신분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신분에 걸맞게 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소명입니다. 이 복된 사람들과 함께 여러분이 펼치는 향연이 노래가 되고 고백이 되고 삶이 되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역사에 쓰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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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네 미래의 소망을 내게 맡기라! 파루시아 2019-02-10 110
137 2017년 9월 24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9-24 1078
136 2017년 9월17일 주일 오전설교 관리자 2017-09-24 521
135 2017년 9월 10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9-10 583
134 2017년 9월 3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9-03 309
133 2017년 8월 27일 주일 설교 관리자 2017-08-27 392
132 2017년 8월 20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8-20 336
131 2017년 8월 6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8-06 346
130 2017년 7월 30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7-30 291
129 2017년 7월 23일 주일 오전 설교 관리자 2017-07-23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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