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회소개 | 예배안내 | 금주의말씀 | 자료실 | 포토갤러리 | 교제의광장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4-05-26 (일) 13:23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ㆍ추천: 0  ㆍ조회: 55      
IP: 203.xxx.206
이방을 비춘 은총
이방을 비춘 은총
2024년 5월 26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 읽기 : 눅4:16-30, 7:11-17, 왕상17:17-24, 왕하 5:1-16
설교 본문 : 눅7: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7장은 병을 고치시는 이적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적이 연이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본문 앞의 내용은 이방인 백부장의 이웃사랑과 믿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누가복음 4장 24-27의 말씀과 관련됩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새 엘리사로 오셔서 옛 시대의 나아만에 해당하는 새 시대의 백부장을 고쳐주셨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에서는 백부장이 어떻게 복(병고침)을 받았는지 치유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과 달리 누가는 언약의 복을 받고 있는 이방인의 신분에 집중합니다. 이를 통해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설교 말씀은 두 번째 이적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입니다. 누가는 이것을 통해 더 뚜렷하게 대조시킵니다. 예수님- 엘리야와 엘리사, 나아만과 과부의 죽은 아들- 치료받지 못한 이스라엘, 이방인인의 은혜의 참여- 이스라엘의 심판입니다.

 설교의 주제는 “ 이방을 비춘 은총 & 이스라엘에게 거두어진 은총”입니다. 주께서 듣는 마음, 순종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첫 번째 이적의 장소는 가버나움이며 두 번째 이적의 장소는 나인입니다. 두 장소는 대략 40km정도의 거리입니다. 따라서 서두르면 하루길 정도입니다. 두 사건은 아마 거의 연이어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떠나신 예수님께서 나인 성의 성문에 도달할 때는 거의 오후 늦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동 중 예수님의 일행에 많은 무리가 합류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거의 성에 도달할 무렵, 일행은 한 무리를 만나는데 이들은 ‘장례행렬’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과부의 독자였기에 장례행렬의 비통함과 슬픔은 더 배가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죄가 파생한 비참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인생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과부를 향하여 “울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14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죽었던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고, 그것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났다”라고 소리쳤습니다(16절).

 여러분,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쉽고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아울러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비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이 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죽음과 함께 살아왔기에 늙고 병드는 것!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저항할 수 없는 이 무력감으로 슬퍼하며 애통합니다. 그런데 이 늙고 병듬과 죽음이 왜 발생하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40km나 떨어져 있는 가인 성까지 하룻길에 이동하셔서 해질 무렵에 이 여인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이 장례행렬과 맞추치기 위해 이동하셔서 나인 성에 들어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이 일을 행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7장 앞부분의 첫 번째 이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은 의도적으로 두 사건을 병렬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이 ‘나아만 장군’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한 사건입니다. 동일하게 두 번째 사건도 나아만장군의 동시대인 엘리사의 사역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아만 장군이 낫게 된 일은 ‘엘리사 시대’의 일입니다. 열왕기하 5장 말씀에 이 일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 이야기의 바로 앞장에 보면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기사는 서로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열왕기에서는 먼저 여인의 아들을 살리고 나중에 나아만을 고치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먼저 백부장의 종을 고치고 나중에 과부의 아들을 살리고 있다는 순서상의 차이가 있을 뿐 누가복음 7장은 엘리사의 두 이적을 예수님께서 재현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전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주님은 두 이적을 통해 열왕기를 떠올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는 일은 앞서 엘리야가 행한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이야기와 연결됩니다(왕상 17장).

 따라서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열왕기의 두 이야기와 똑같이 병렬 배치함으로써, 이 성경을 읽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일을 통해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생각하게 의도하였습니다. 그것은 누가가 이미 누가복음 4장을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에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4:24-27)

 여러분, 이 말씀은 정확히! 우리가 오늘 살피고 있는 누가복음 7장의 두 구약 이야기를 그대로 신약의 정황에 가져와 인용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두 이야기를 통해서 하시고 계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너무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 배고픈 자에게 떡을 주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고독한 이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으시고 친구가 되어 주시는 예수님, 상한 감정을 치료하시는 예수님 등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의 이야기를 자신의 사역에 적용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사렙다 과부처럼 우리도 어려움 중에 먼저 주의 종을 대접하며 섬기자”, “큰 나라의 존귀한 자였지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나아만을 본받자”라고 적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구약시대 당시의 그 인물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방식으로 구약의 본문을 현 상황에 적용시키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이스라엘을 떠나 과부와 나아만에게 보내셨는데, 이는 말씀의 옮김, 말씀의 부재를 나타내며, 곧 배역한 언약백성에 대한 심판이라 말씀합니다.
 여러분, “엘리야 시대에 온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도 수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과부들에게 엘리야를 보내시지 않으시고, 이방 땅에 있는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다.” 이 역시 같은 뜻입니다. 이스라엘에도 많은 문둥병 환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이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은총의 손을 이방백성에게 펼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께서 열왕기의 두 사건, 즉 나아만 장군과 사렙다 과부 사건을 해석하신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께서 이 가르침을 펼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달려들었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눅4:28-29)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복음 4장의 나아만과 사렙다 과부의 사건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들에게서 말씀과 은총을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아합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때 그들에게 기근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선지자를 빼앗아가셨는데, 이것은 곧 말씀의 부재를 나타냅니다. 이후 선지자 곧 말씀이 나타난 곳이 어디입니까? 이방 땅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특정 장소가 은혜의 좌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이든 은혜의 자리입니다. 엘리야를 데려가셔서 숨기시고 사렙다 과부에게 공궤를 받게 하신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야웨께서는 언약에 불순종하는 이들에게서 말씀을 거두어 가십니다.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이고 죄는 죽음을 가져오지만, 특히 문둥병은 ‘죽음’을 나타내는 병입니다. 인생이 죄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문둥병을 낫게 해 주시는 은총을 이스라엘에게는 베푸시지 않으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호의는 ‘자기 백성에게’ 주어집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시대에는 다릅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호의가 자기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무엇을 증거합니까? 하나님께서 언약의 복, 은총을 거두어 가신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눅7장의 두 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먼저,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는 모든 세계에 항상 말씀이 없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 우리 시대를 영적으로 진단한다면, 마치 아합 시대와 같을지 모릅니다. 그 시대는 왕에게 아첨하는 말은 있었지만, 참 왕이신 야웨로부터 오는 말씀은 없는 ‘말씀부재의 시대’였습니다. 거짓선지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인기를 얻고, 영향을 강력하게 미치게 되면, 말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상교훈과 같은 거짓 복음들이 가득 채우게 됩니다. 이는 말씀의 실종이요, 설교의 타락입니다.

 여러분! 왜 아합 시대가 그토록 영적으로 혼미하고 가짜 복음으로 득실거렸습니까? 배교한 직분자의 영향입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타락한 백성들이 언약의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거짓 복음을 추종하며 쫓아갔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번영의 복음, 탐욕의 복음이 주류가 되어 강단을 점령한지 오래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시대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거두어 가 버리신 시대가 아닌지 애통해하면서 주께 여짜오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배역하는 세계에 은총이 없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번영의 복음을 쫓는 교회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나아만이 받았던 은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부귀와 영화의 은총이 아니라, 끔찍한 죄를 상징하는 문둥병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은총이었습니다. 여러분, 죄로부터의 탈출, 죄의 결과인 사망으로부터의 탈출이 있는 곳이 은총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진정한 은총이 있는지 잘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은총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교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 시대가 하나님께서는 등을 돌리시고, 교회에 은총을 주시고 계시지 않는데,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 잔치하는 흑암의 사사시대는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7장의 두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보이고 계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사역을 통해서 자신이 엘리야와 엘리사이심을, 그래서 자기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총이 떠나고 있는 시대임을 증거함과 동시에 이방인들에게 지금 은총의 복음이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건질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십니다. “내백성아! 돌아오라!”

 비록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느 시대에나 “믿는 자에게 복을! 회개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이는 자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실패했을지라도, 이후의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 그들처럼 실패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붙드는 이들에게는 다시 은총을 주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패역한 시대에서도 쉬지 않고 일하시며 자기 백성을 찾으시고 모으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주께서는 말씀으로 죄의 어두움을 물러나게 하시며, 죽음과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폭풍과 투쟁이 없는 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은혜 언약을 설립하신 하나님, 우리로 세례에 반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분깃이 되십니다. 마귀가, 세상이 우리의 걷는 걸음 앞에 올무를 놓을지라도 놀라지 맙시다. 기도하시는 주님을 모범 삼아 우리도 언약의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우리의 믿음을 보존하시도록, 패역한 시대를 쫓아가지 않도록. 언약의 의무를 수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을 우리와 자녀들에게 아침마다 허락하사 새롭게 하시도록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수년 내에 우리를 부흥케 하소서! 아멘.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다시 홈페이지가 개통됩니다. 관리자 2019-02-10 695
344 그리스도인은 돈을 따로 저축해 두어야 한다 파루시아 2024-06-09 24
343 지혜의 자녀의 특출함 파루시아 2024-06-02 20
342 이방을 비춘 은총 파루시아 2024-05-26 55
341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하리라 파루시아 2024-05-19 35
340 성찬 기념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 파루시아 2024-04-21 46
339 너희가 열심을 내지 않으면 토하여 내침을 당하리라! 파루시아 2024-04-14 75
338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죄 용서의 기도 파루시아 2024-04-07 49
337 부활을 믿으십니까? 파루시아 2024-03-31 49
336 하나님의 Big Picture 파루시아 2024-03-24 41
335 신포도주 파루시아 2024-03-17 57
334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인도하시는 하나님 파루시아 2024-03-03 126
333 약속의 땅,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파루시아 2024-02-25 78
332 하나님을 기억하라 파루시아 2024-02-18 82
331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파루시아 2024-02-11 61
330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 파루시아 2024-02-04 81
12345678910,,,22
교회전화 : 053-638-2100 / 문의메일 : goorsend@hanmail.net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23 
운용지침 : 개인정보 관리책임 화원언약교회 운영위원회 / 개인정보 보호기간 : 회원탈퇴시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