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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4-01-28 (일)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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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을 통해 생명을 주신 야웨
계명을 통해 생명을 주신 야웨
2024년 1월 28일 주일 오전 설교 말씀
성경봉독: 신 6:10-25
설교본문: 신 6:24-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구약 율법의 말씀을 함께 봉독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은 민족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나라이고 제사장 나라입니다.
 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절기는 항상 구원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이 야웨의 구원 사역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과거에 그들의 조상들을 향하여 주셨던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념하고 그 구원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을 지금 찬송 드리며 구원을 현재화 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 역사가 현재 구원의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본문 20절에 보면,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이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요 하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구원의 하나님을 그 구원 사역을 통하여서 대대로 이야기를 통하여서 전수해 주며 그 조상들의 하나님이 자기들과 후손들의 하나님으로 동일한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을 기도하며 원하며 그렇게 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이스라엘의 자녀 교육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게 언약적 가정의 자녀 교육입니다.

 과거 사건을 전승하고 또 그와 같은 절기를 지킴으로 옛 조상들이 야웨와 맺었던 그 언약을 그들은 날마다, 해마다, 주일마다 갱신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갱신이요, 또한 이 언약 갱신예식이 예배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가 주일날 언약의 말씀으로서 십계명을 선포하는 것은 야웨의 언약과 약속을 다시 한번 듣고 함께 언약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교독할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며 그 말씀을 읽고, 또 읽음으로 듣는 우리는 그 말씀에 응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 교독 되어지는 계명의 말씀이요. 그 말씀에 우리는 아멘 하면서 고백하는 순서가 주일날 십계명을 교독하는 순서입니다. 이 의미를 기억하면서 우리가 십계명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 순서에서 꼭 언약의 말씀 선포로서 십계명을 선포하는 순서를 빠뜨려서는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십계명을 선포할 때에 그 옛날 야웨가 시내산에서 특정 민족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그 말씀을 그냥 옛이야기 삼아 다시 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로 그 구원의 하나님 앞에서 생생한 말씀을 직접 그분의 입을 통하여 듣는 것이요. 그 명령을 따라 그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하나님이 기업으로 삼으신 백성, 하나님이 값지게 사신 우리 자신들이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살겠다고 서약하는 의식이 바로 이 순서입니다. 어떤 분들의 말씀처럼 십계명은 옛 율법이니까 예배 시간에 선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옳지 않습니다.

 언약의 하나님 야웨는 십계명을 통하여 언약을 갱신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지속시켜 주시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십계명 서론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산 자들, 기업, 보물, 언약의 백성, 그들을 지키시는 그들이 자기의 소유로 계속 유지되게 하는 것이요.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에게는 생명이 계속 유지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본문을 중심으로 ”야훼 하나님께서 계명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고 지키신다“는 주제로 설교를 요약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본문 24절 하반 절에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야웨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하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5장 33절에 나와 있는 말씀과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번역에 차이가 있습니다.

5장 33절 끝에 보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라고 합니다. 실제로 여기에 "생활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보다 "너희로 하여금 살게 함이라."는 번역이 좀 더 낫습니다. 여기서 "산다"라는 것은 그냥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산다는 것은 생명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항상 구약에서 “사시는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나올 때 거기에는 생명의 주인으로서의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듯이, 여기 우리 본문에서 “생활", "삶이라는 말은 사실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얻어서 “너희들이 죽은 자가 아니고 산 자들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우리 본문에서 무엇을 하면 산다고 말합니까? “계명을 지키면 산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행함으로 구원받는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우리 본문 24절에 보면 “야웨께서 이 모든 규례를 우리에게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하나님 아를 경외하며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야웨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삶을 얻고 우리로 하여금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로 있도록 하기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계명을 지킨다는 것, 이것은 생과 사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그야말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고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는 산 자들로써 표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아주 특징 있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존속 되어지는 것', '호적에 올라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성경은 '살아있는 자', '생명을 가진 자다’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4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8장 1절에도 보면,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계명을 지킬 때에 생명을 얻게 되고, 계명을 지킬 때에 살게 된다는 말은 생명이 우리 속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없어서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생물학적인 존속 자체만을 생명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생명을 이야기할 때는 바로 우리 속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고 "우리가 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이 생명 없는 자들이 생명선인, 생명의 젖줄인, 생명의 탯줄인 계명을 지킬 때에 생명이 우리 바깥에서 우리 속으로 주어지고 그 생명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공급되어진다는 것을 바로 우리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명이라는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렇게 소유함으로써 우리의 것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이 없던 자들이고,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요, 그 삼위 하나님께서 생명을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표적으로써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계명을 지킴으로 생명을 가진 우리를 향하여서 죽은 제물이 아니라 우리를 가리켜서 산 제물이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지키게 하심으로 생명을 공급하여 주시는데 이로써 우리는 그의 생명을 이어받아 우리의 생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을 가리켜서 “사시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 곳곳에 이와 같은 말씀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신약에서도 한 여자가 있어 결혼을 했습니다. 남자가 죽었습니다. 둘째 형제가 결혼을 해서 또 죽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형제가 다 결혼을 해서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했습니다. '가시떨기 나무에서 나타나신 야웨'를 가리키면서 “왜 너는 죽은 자들의 하나님을 믿느냐? 우리 하나님은 바로 산 자들의 하나님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안 죽는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는 산 자들이요,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면서 나타난다고 구약과 신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0장 15절 말씀을 보면,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라고 말씀하고 16절에서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또한 '생존하며'는 '생명을 얻을 것이며'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은 번역입니다. 생활, 생존, 삶이란 말보다 그야말로 생명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즉 "그리하면 생명을 얻을 것이요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야웨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그야말로 이와 같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쯤 되면 왜 우리가 계속 계명을 지켜야 되느냐는 말을 해야 되는가? 계명은 구약에 나타나 있는데, 왜 우리가 계속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해야 되느냐? 우리는 신약의 성도로 있지 않느냐?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무슨 행위 구원을 주장하느냐? 구약 율법을 지키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의 한 신학자는 십계명을 지키는 교회를 가리켜서 “시내 산에 있는 교회다. 시내 산에 정차한 교회, 시내 산에 말뚝 받은 교회, 그런 식의 표현을 하면서 신약의 성도들은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 신율법주의자, 바리새인들이라고 해버립니다. 최근에 한 신학자는 예배 시간에 십계명을 선포하는 교회는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약 율법의 모든 것은 사망법이니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고 예배 시간에 낭독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책이요, 신약은 교회를 위한 책이라는 그런 주장을 종종 듣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에는 시민법도 있고, 제사법도 있습니다. 또 지켜야 될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들어갈 필요도 없습니다. 또 그곳에 들어가서 그곳 시민들을 진멸시켜야 될 명령과 책임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된다든지,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의 사람들을 다 멸절시켜야 된다든지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든지 뭐 이런 이야기는 신약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민족으로써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에 명령하는 그와 같은 제사를 드리거나 시민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 되는, 특별히 십계명을 지켜야 되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대개 생각하기를 계명 자체를 무시하면서 이런 주장을 많이 하게 되는데, 우리 본문 25절 마지막을 한 번 보십시오.

 우리가 신약의 관점에서, 로마서의 관점에서 이 본문을 읽으면, 도무지 해석되어지지 아니하는 본문이 바로 말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아웨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이거 로마서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위, 지킴을 통하여서 우리의 의로움이 증명되어진다는 것을 로마서의 입장에서만 접근하여 해석하려면, 이것은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신칭의의 관점에서 해석이 안 됩니다! 즉 바울 신학적인 관점에서 옛 율법은 사망법이니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해 버리면 신명기는 해석이 안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이신칭의, 이방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는 그 말씀이 유일한 말씀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이 계명을 지킴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신칭의 뒤에 오는 것이기에 계명을 지키지 않고 의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계명을 지킴으로써 의로움을 증거합니다.

 우리에게 의롭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서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리고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될 표징으로 우리에게 이런 계명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한 두 본문을 더 읽어 봐야 되겠습니다. 구약의 시민법이나 제사법은 신약에 인용되어 있지 않지만, 구약의 계명들, 특별히 십계명들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약 전반에 걸쳐서 십계명은 계속 반복하여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3장 9절 이하를 보면,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야고보 2장 11절 같은 본문에서도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디모데 전서 1장 9절, 10절 말씀을 읽어보시면,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하는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하는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이것은 제 8계명입니다. 5계명도 나오죠, “아비와 어미를 치는 자며" 6계명 "살인하는 자며, 7계명 “음행하며 남색하는 자며, 8계명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8계명이 원래 인신매매와 관련된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며, 5계명에서 9계명까지의 말씀이 여기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개혁교회들에서는 성찬을 집행할 때에 성찬의 중요한 거룩성을 강조를 하고 자기 몸을 살펴서 성찬에 참여할 것을 권고합니다. 성찬식에서 죄를 먹고 마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서 여기에 나와 있는 본문들을 기초로 하여서 1계명에서 10계명을 범하는 범례를 나열하고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할 것을 권고한다는 강한 표현으로써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참여할 수도 없고 참여된 상태의 자격이 박탈되어 진다는 것이 우리의 성경적 가르침에서 나오는 개혁교회의 전통이고, 우리가 매주일 성찬식에서 듣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 교회는 시내 산에 못을 박아 놓은 교회가 결코 아닙니다. 사망법을 지키는 어리석은 교회가 아닙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의로움이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구약만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요, 제 2위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께서도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생명이라는 강한 말씀을 우리에게 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9장 말씀을 보면, 거기에 부자 청년이 한 사람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6, 17절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분명히 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느 계명입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께 부자 청년이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고 물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계명을 지켜야 영생을 얻는다, 생명을 얻는다고 그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부자 청년이 한 질문 자체는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신 영생에 관한 교훈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켜라." 그런데 여러분! 잘 보십시오. 계명을 나열하실 때, 하나님을 섬겨라에 해당되는 1-4계명을 나열하신 것이 아니라 5-10번째 계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그리하면 네가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바로 인간에 대한 의무로써 언급되어 있는 이런 6가지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언약 백성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언약 백성에 대한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언약 백성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언약 백성에 대한 계명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것, 그것이 곧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것은 언약 백성을 존중해야 된다는 뜻도 되지만 바로 언약 백성에 관한 계명이 곧 하나님 당신을 섬기는 것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께서 여기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언약 백성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 그러면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로마서 1장하고 충돌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말씀은 바로 율법을 알고 있는 자들, 야웨의 언약 백성으로써 영생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에 신명기 6장 마지막 절에 있는 말씀처럼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의로움이니라." 예수께서 같은 방식으로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지금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입니다. 십계명은 신약 교회에게 유효하며 계명을 지키는 것은 이 방식 이외에 달리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받은 계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2장49절, 50절에서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명령 곧 계명을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 곧 계명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 곧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이 내게 있다고 하시는데, 그 계명이 무엇인가 하면, 아버지의 생명을, 영생을 나누어주는 그 일을 아버지로부터 성자는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 예수의 행위, 예수 그분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일서 5장 20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한 마디로 '생명, 영생'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신 아버지의 사랑의 형상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삶 속에 우리를 위한 대속의 영생이 나올 뿐만 아니라, 곧 첫 번째 이신칭의와 연관된 생명이 나올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살아가는 그 삶 전제가 계명을 지키는 삶이었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삶 전체가 곧 생명인 것입니다. 살지 아니하는 제물, 죽은 제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받쳐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제물됨, 제사,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킴으로 생명을 가진 자로써 생명을 가진 인간의 모범으로써 아버지 앞에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 앞에 받음직한 제물로써 당신을 받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 계명을 지켜서 생명을 얻기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는 생명이 있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생명이고, 그리고 그분의 삶 전체가 영생을 얻기 위한 계명 순종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계명을 통하여서 완전하게 순종하신 참 인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계명 지킴의 모범이 되십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계명을 지키시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계명을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구약의 계명을 강화시키기도 하셨습니다.

 그냥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그냥 두시지 아니하시고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삶을 통하여서 당신이 어떻게 살 것을 스스로 예언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삶을 통하여서 우리의 모범이 되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 함으로 은혜를 더 받은 자, 계시가 진전되어져서 구원의 도리를 더 많이 아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야 될 것을 우리에게 깊이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삶은 생명이요. 그 생명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는 자는 계명의 완성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그의 삶을 그대로 살아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그것이 곧 사랑의 삶이 되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계명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어놓을 공로가 없습니다. 이런 무능하고 개심한 우리 인간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당신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서 피로 사신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를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피로 산 소유된 우리를 하나님 당신이 권리를 주장하시면서 "내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것을 결코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당신의 것을 끝까지 간수하시고 파수하시기 위하여서 우리를 위하여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요한 일서 3장 24절을 읽어보면,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계명에 애착을 가지고 우리가 계명을 지켜서 생명을 얻어야 되겠고 우리가 우리의 의를 얻어야 되겠다는 각오와 결심보다는“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그 하나님 당신의 권리 주장, 이것은 하나님 당신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당신의 기본 권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계명을 주심으로 아들을 약속하시고 아들 속에서 생명을 주시려고 아들을 약속하시고, 아들 속에서 생명을 주시려고 아들을 버리셨기 때문에, 피 흘려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를 결코 포기하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의 권리 주장이 있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시고 바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 모두를 쉬게 하리라. 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우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주신 계명,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그분이 주신 계명은 결코 무겁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간수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무겁지 않고 가볍다고 하는 것을 예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심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생명이고, 바로 이 생명을 위하여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다라는 것, 그리고 지금도 작정하고 계시다는 것, 앞으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서 작정해 주실 약속을 이 성경 말씀이 주고 있는 위로인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주장하는 것이 일차적이요, 그 속에서 우리가 뛰어노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로써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로써 나신 자가 누구입니까? "성자께서 저를 지키시니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나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노니 우리에게 지각을 주셔 우리도 참된 자를 알게 하시고 또 우리로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저를 지키시니", 헬라어로 "내가 계명을 지키는 것도 같은 단어인데 우리는 계명을 생각할 때 내가 지킨다는 면에서 “지킨다."를 자꾸 생각하는데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그가 우리를 지켜주는 "지킨다" 입니다. 우리를 간수하시고 우리를 보관하고 우리를 파수하시는 바로 그 일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이 위로를 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가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킴으로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로서 하나님 앞에 그 생명이 있음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모든 사람들 앞에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은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우리를 계명을 통하여서 지켜주시기 위하여서 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그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가 산 자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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