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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3-11-05 (일)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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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것
교회의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것
2023년 11월 4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신 1:9-18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내에서는 직분을 기능적인 면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속사적인 이유나 하나님의 의중이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당연히 직분자를 세울 때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교회가 이 사람을 세워야 할 “필요성”에 대한 검토이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성경이 직분자를 어떤 식으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한국교회에 함량미달의 직분자들이 많은 이유는 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종교개혁자들과 개혁교회들은 직분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개혁주의 진영 내에서 장로와 집사라는 교회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교회에 나타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장로교회 헌법에도 보면 ‘장로’와 ‘집사’의 이 직분들을 ‘항존직’이라고 불렀습니다. “항상 존재하는 직분”이라는 의미이죠. 직분이 단지 기능직이라면 왜 항존직 같은 것이 존재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모세가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드러내는 방편인 이 직분이 올바르게 구현되기 위해서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겟습니다.

1. 이 직분은 언약의 성취를 통해 세워진 것이다

본문이 우리에게 먼저 가르쳐 주고 있는 이 직분의 근거는 “그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모세는 “나는 홀로 너희 짐을 질 수 없도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언약백성들에게 홀로 짐을 질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10절의 말씀에 기초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와”
즉,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혼자서 다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 말에 동감합니다. 어느 조직체계이건 간에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지면 거기에는 그 조직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에서 “그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단순히 숫자가 증가했다는 입장으로서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다”고 말합니다. ‘번성케 되었다’, ‘하늘’, ‘별’과 같은 단어들은 명백하게 족장들에게 주셨던 “바로 그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직분을 언약 성취와 연결해서 이해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명기의 이 말씀이 옛 언약을 상기시킬 목적임이 분명한 이유는 창세기에 약속되었던 그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모세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가하다’, ‘번식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라바’, ‘별’을 의미하는 ‘코카브’, ‘하늘’을 뜻하는 ‘샤마임’이 이 본문들에서 모두 같은 문장 안에서 다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씨를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실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열 두 아들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명기가 창세기와 다른 점은 창세기에서 미래형으로 쓰여진 말씀이 신명기에서는 완료형으로 쓰여져 이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는 지금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들아! 과연 우리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절도 같은 맥락에서 이 언약이 더 진전되기를 바란다는 측면에서 똑같습니다. 별과 같이 이미 많아진 너희들을 하나님께서 천 배나 더 많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전형적인 족장의 축복 구절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세가 직분자들을 세우고 있는 이 본문의 내용이 단순히 관리적 입장에서 행정적 편이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시는 것은 ‘언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신약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7절 이하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에베소서는 시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8절에서 말씀합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을 마치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는 장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승천하실 때 사로잡은 “사로잡힌 자”란 사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 8절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이루셨을 때 사탄을 결박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8절의 하반부에는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사로잡으신 후에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선물이 7절에서는 “은혜”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11절에는 이것이 구체적으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전도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직분입니다.

즉, 이것을 정리해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구속사역을 이루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그 구속사역의 결과로서 교회에 선물을 베푸셨는데 그 선물이 바로 교회에 세워진 각종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직분의 사역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교회에 실제적으로 나타나고 기능하게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직분자들의 사역을 통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손이 교회 가운데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개혁교회들은 직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장로가 교회에서 다스리는 사역을 통하여 개개인의 성도들이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지를 살필 때, 그것은 장로 개인이 성도를 ‘살피는’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장로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살피시는 것이요, 집사가 교회에서 구제하고 긍휼히 여기는 사역을 통하여 교회의 약한 자들을 돌볼 때, 그것은 집사가 호의를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집사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 직분의 기능이 교회 안에 제대로 없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심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가 직분을 필요로 하는 것은 결코 기능적, 관리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드러내는 방편”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직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직분자들의 선출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임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지도자들에게 요구된 조건을 통해 더욱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들을 택할 때에,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겉으로는 셋인 것처럼 보이고, 한글성경으로는 뜻이 다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셋 다 “아는 것”과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

❶ ‘지혜’라는 말의 ‘하캄’은 여러분이 들어보셨을 ‘호크마’(지혜)의 형용사형입니다.
❷ ‘지식’이라는 말의 ‘빈’ 역시 하캄과 거의 비슷한 용례로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두 말은 비슷한 말인데, 이 ‘빈’은 ‘지각’, ‘이해’, ‘분별력’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❸ ‘유명한 자’라고 할 때 역시 ‘알다’라는 의미의 ‘야다’의 수동형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알려진 자”입니다. 이 말 역시 ‘아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이 세 단어는 모두 다 ‘아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왜 사람을 다스리는 일을 하는 자들을 뽑을 때 “리더십이 있거나 관리능력이 뛰어난 자”를 뽑지 않을까요? 오늘날로 말하자면, 정치를 하려면 정치가를 뽑아야 하는데 왜 지식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이들이 지혜 혹 앎을 가져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대답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뽑혀진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을까요? 16절에서 18절까지를 보면, 이 뽑혀진 지도자들이 해야 하는 가장 궁극적인 일은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입니다. 곧 ‘사사’의 역할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재판”과 관련된 모든 성경의 내용을 다 다룰 수는 없지만, 모세가 다스릴 자들을 뽑을 때 “재판”을 궁극적인 역할로 주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굉장한 통찰력을 줍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참 재판관, 이스라엘의 참 사사는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 재판하다

원래 “재판하다”는 말은 “선악을 분별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것이 선하냐, 어느 것이 악하냐, 이것을 분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선악을 분별할 때에는 분명히 그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를 결정하는 기준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 본연의 목적에서는 이 선과 악의 판단기준이 항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을 때,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을 먹지 않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기로는”이라고 토를 다는 순간, 그 선악의 판별 기준이 ‘하나님’에게서 ‘나’에게로 바뀌게 됩니다.

제가 선악과를 예를 들었죠? 왜일까요? 바로 ‘선악과’가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시면서 그것을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라고 이름을 붙이셨습니까? 선이냐 악이냐가 어디에서 결정나느냐? 하나님께 결정의 기준이 있느냐, 아담에게 결정의 기준이 있느냐? 이것이 바로 그 나무의 의의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선악의 기준이 되시는 것”을 부인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을 왕좌에서 밀쳐내고 자신이 왕좌에 앉는” 곧, 선악의 기준이 자신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이 바로 ‘사사기’의 상황입니다. 사사기의 핵심구절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와 사사시대의 패악은 똑같은 궤를 달리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사사기의 핵심구절은 우리에게 그 때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왕이 없었습니다. 왕이 없으니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제 맘대로 합니다. 선악의 판단기준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기의 핵심구절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왕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이 선과 악을 분별하는 기능으로서의 재판이 굉장히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기능이야말로 “하나님의 왕되심”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사사의 의의(意義)

방금 말한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사사들이었습니다. ‘사사’라는 말은 ‘재판관’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 재판관”이라는 등식이 성립했습니다.
3. 왕의 의의

또한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백성을 재판하는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재판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왕상3:8-9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왜 재판하는 지혜를 구했습니까? 재판이야말로 “누가 왕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면 하나님이 선악의 기준이 되실 것입니다. 사람이 왕이라면 사람이 선악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왕이신 하나님”을 대리해서 보여주어야 하는 왕에게야말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재판하는 능력을 주셔서 곧바로 두 여인이 한 아기를 갖고 싸울 때 명판결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왕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재판’이었습니다.

4. 세 단어의 의미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들을 뽑을 때, 그 사람들을 “재판하는 사람”으로서 뽑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것은 “관리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나타내는 일”을 통해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관리하는 사람은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즉,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를 하나님의 편에서 판단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직분자가 선출되었습니다.

모세가 뽑은 사람들이 이렇듯 “재판을 하기 위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앞에서 말한 세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지혜와 지식과 유명한 자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첫째, 우리말 ‘지혜’에 해당하는 호크마는 성경에서 단순히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거나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될까요? 이 말은 용례가 매우 많은 말이기는 하지만, 성경 전반의 용례를 볼 때 이 지혜란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호크마, 곧 지혜에 대해 가장 중요한 내용이 잠언에 나옵니다. 잠언이 말하는 지혜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잠언이 말하고 있는 지혜는 우리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롭다”고 할 때의 그 지혜가 아닙니다. 잠언 2장 6절은 “여호와께서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신다”고 하였으며, 잠언에서 지혜로운 자와 우둔한 자를 비교할 때는 지적인 총명함을 가지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법에 얼마나 성실한가”를 가지고 말합니다. 그래서 음란한 여인에게 들어가는 젊은 청년은 ‘우둔하다’고 하며, 이 여인을 피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잠언 8장 22절 이하의 말씀은 이 지혜가 바로 ‘말씀’ 곧 성자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잠언 8장의 내용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성경의 지혜란 이런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아는 잠언 9장 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뽑은 “지혜로운 사람”이란 분명히 세상 지혜가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인 “지식”에 해당하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 ‘빈’이라는 표현 역시 용례가 많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단순히 우리의 삶에 필요한 이해력, 분별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단어 사전에 보면 이 ‘빈’은

 “수많은 예들에 의거해서 볼 때, 통찰력이나 도덕적 이해력은 하나님에게서 온 선물이지(단 2:21) 경험의 열매는 아니다. 인간은 그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며(시 119:34) 이런 통찰력이 오로지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드러내기도 하며 숨기시기도 한다(사 29:14). 통찰력의 자리는 마음이며 여호와의 일(시 28:5), 여호와에 대한 경외(잠 2:5), 공의와 공평(잠 2:9), 그리고 지켜야 하는 그의 말씀인 그의 뜻(시 111:10)을 분별하는 것 혹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이 이해력, 통찰력, 분별력을 의미하는, 우리말로 ‘지식’이라고 번역된 단어 역시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앞에서 왕의 역할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열왕기상 3장 8절과 9절의 말씀입니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여기서 솔로몬이 구하고 있는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의 ‘분별하다’가 바로 이 ‘빈’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열왕기상 본문을 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바로 모세가 신명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너무 많습니다. 재판할 수 있는 지혜 곧,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것은 지금 모세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 내용이 아닙니까? “백성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주시옵소서” 똑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지식, 곧 이해력, 분별력이라는 말 역시 하나님과 관련된 것입니다.

세 번째 조건인 ‘알다’를 의미하는 ‘야다’ 역시 성경에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사용된 말입니다. 요즘에 와서는 이 ‘야다’에 대한 내용은 잘 알려져 있어서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전 포괄적인 인격으로 아는 것, 즉 그와의 인격적인 교감, 교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흔히 부부관계에서 성적으로 서로를 경험한 것을 말할 때 곧,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했다거나(야다),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기노스코) 못한다고 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 역시 전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직분을 세우는 의의를 살펴보았습니다. 단순히 기능적, 관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판을 위한 것” 그러니까, 선과 악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왕이 되실 수 있도록 역할하는 자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자 선출은 결코 세상적인, 기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직분이 성직매매가 되어 교회를 타락하게 한 것을 봅니다. 직분 앞에 ‘명예’를 붙혀 명예 집사, 명에권사라 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직분을 세워야 한다고 말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직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주의 자비와 겸손을, 주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도구로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일군이 세워져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해야 하겟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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