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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2-09-04 (일)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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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삶과 아들의 삶
종의 삶과 아들의 삶
2022년 9월 4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갈4:1-11
설교본문 : 갈4: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 당시의 그리스­로마 사회는 청지기, 후견인 제도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어린 자녀가 상속받았을지라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는 사용할 권한이 없고, 오히려 후견인의 통제 가운데 있어야 했습니다.

 본문 1-2절이 이런 상황을 유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 상속자임에도 아무런 권한이 없는 즉,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사도는 이어 3절에서 “이와같이”로 본론을 제시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하였더니”

 바로 그렇습니다. 사도는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 학문 아래에서 종 노릇 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1-2절을 유비로 끌고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사도가 말하는 “세상의 초등 학문”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초등 학문”이라는 말은 헬라어 ‘스토이케이온’이라는 단어를 의역한 말입니다. 이 의미가 전달해 주는 이미지는 ‘유치함’, ‘미숙함’, ‘덜 성숙했다’는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당시 헬라 세계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던 원래 뜻은 ‘우주의 성분 요소, 즉 우주의 기초’ 혹은 ‘세상 만상의 기본 원리’ 같은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골로새서 2장 8절과 20절에도 쓰였고,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도 나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여기 “체질”이 스토이케이온입니다. 베드로후서의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모든 것이 다 해체됨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때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기본적인 요소들이 다 해체된다고 말할 때 “체질이 불에 풀어진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이 ‘체질’을 ‘물질’이라고 번역했는데, 영어성경(KJV, NASB)의 ‘element’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3절 말씀을 다시 보면, 이것이 어떤 의미로 보여집니까?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스토이케이온에 종노릇 하였다”

 이 말씀은 다분히 ‘어떤 세상의 기초적 원리’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믿음이 없을 때 헬라적 가치관, ‘세속적 세계관’을 가지고 산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스토이케이온에 종노릇 했다”라는 말의 뜻은 불신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원리나 가치관들, 이런 것들에 종노릇 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9절에 나오는 “초등 학문”을 살펴볼 때, 더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라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하여 하느냐?”

 9절이 말하고 있는 “초등 학문”이란, “그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던 것”, 바로 그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신자가 되기 전의 이방신들을 섬기던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세상의 초등 학문”이 이 의미만을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온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약속과의 관계’, ‘율법과 성령과의 관계’,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었지, 세속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말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 “세상의 초등 학문”은 단어의 의미로 보자면 ‘세속적 세계관’, 곧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던 그 때의 삶의 원리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까지 사도가 다루어 온 주제를 고려해 본다면 세속적 세계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이방인 시절의 삶의 원리는 뜬금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따라서 계속 이야기해 오던 논지를 따라 생각해 보면 “세상의 초등학문”이란 ‘율법’을 가리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3절에 “초등 학문”을 말한 다음 4절부터 사도는 어떤 주제로 말씀하고 있습니까? 4절을 보시면 “때가 차매, 아들을 보내어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5절 역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갈라디아서 4장에서도 앞에서 말씀해 오고 있는 그 주제가 계속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는 것이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1,2절에서 설명한 상속자가 아직 아버지가 정한 기한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종과 같다는 말씀, 곧 우리가 “세상의 초등 학문 아래 있어 종노릇 했다”하는 이 말씀의 의미가, ‘율법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 율법 시대를 종식시키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 율법이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루게 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초등 학문”이란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을 때 우리들의 세속적인 인생의 원리들’을 말하며, 또 한 편으로는 ‘율법’을 말하는 것임을 알 게 됩니다. 이것을 풀어 설명하면,

 ‘세상적 가치관’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입니다. 예를 들어 신자는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 이런 거라고 한다면, 불신자들의 삶의 목적은 ‘건강하고 장수하며, 부해지고 명예를 얻는 것’ 같은 것이거나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율법과 약속과의 대조’의 측면에서 보면, “세상의 초등 학문”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룬, 약속의 성취, 바로 그것이 오기 전의 시대, 그러니까 죄를 ‘깨닫게는’ 하고 죄를 ‘지적하기는’ 하지만, 죄를 ‘해결할 수는’ 없는 그런 그리스도 이전의 시대, 곧 율법 시대, 하나님의 구속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구현되는 그 해답이 오기 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 두 의미로서의 ‘초등 학문’을 사용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가 이렇게 한 이유는 “약속이 온 이후로도 율법 안에 산다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세속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바로 이것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둘 다 “세상의 초등 학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의,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던 때도 “세상의 초등 학문”이고,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율법 아래 종노릇하고 살아가고 있던 시기 역시 또한 “세상의 초등 학문”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둘이 같다는 것! 사도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살아가던 바로 그 삶의 방식을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고 말했는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종식시키신 시대, 곧 율법의 시대 또한 동시에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고 말함으로 율법의 순종으로 ‘의’에 이르려고 하는 어리석음, 불신앙의 삶을 쫓아가지 말 것을 권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이것을 이렇게 이해하고 3절을 보시면, 사도는 매우 교묘하게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이겠습니까? 왜 사도는 “너희”라고 안 했을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도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라고 하면 유대인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에게는 ‘율법 시대’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3절 말씀을 9절 말씀과 똑같이 쓰면서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 아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 했으면 “너희”를 썼어야죠. 그런데 사도는 “우리”라고 씁니다.
 왜냐하면, 3절 뒤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세상의 초등 학문”은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는 이방인인 갈라디아 교회 성도뿐 아니라 유대인들까지 다 포함됩니다. 즉 이렇게 쓴 이유는 ‘믿지 않던 이방인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 안에 들어왔을 때’ 과거를 말하면서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고 하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약속의 성취의 시대, 복음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도, 여전히 율법을 따라야 한다면서 율법을 따라가려는 것이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똑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약속이 성취된 시대에 율법을 좇아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을 때의 세속적 가치관이, 결국은 같은 바탕을 공유하고 있다, 둘 다 “세상의 초등 학문이다”. 왜 둘 다 세상의 초등 학문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하여 4절~7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핵심적인 단어가 하나 나오지요. 무엇입니까? “아들”입니다. 이 아들과 대비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네, “종”입니다. 4절부터 7절까지 말씀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 그대로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께서 갈라디아서 4장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주제가 무엇입니까?

 사도는 “약속이 온 이후에도 율법을 따라 살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의 세속적 가치관과 같은 것이다, 곧 둘 다 세상의 초등 학문이다” 이렇게 말씀함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 둘의 공통점, 그러니까 율법을 지켜야겠다는 삶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삶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9-11절을 보십시오. 9절에 나오는 “세상의 초등 학문”은 ‘하나님을 믿기 이전의 삶’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10절과 11절에서는 ‘예수 믿기 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는 믿는데 절기를 지키는 것’을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둘 다 “세상의 초등 학문”이지요. 약속의 아들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겠다는 것, 곧 그 날들이 보여주는 외형의 것을 따라가겠다는 것은, 그 사고방식에 있어서 무엇과 똑같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던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아들의 삶’과 ‘종의 삶’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종과 아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종은 상속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종은 집도 자기의 집이 아니요, 거실, 주방, 창고, 모두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단지 자기가 맡은 일만 하면 됩니다. 식당 종업원이 월급을 똑같이 받는 입장에서는 손님이 적게 와서 일이 적은 것이 더 좋습니다. 일이 많아지면 힘만 들지, 그런다고 해서 월급을 더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종의 태도지요. 종은 자기가 맡은 일만, 주인에게 혼나지 않도록, 주인이 분부한 것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아들은 어떻습니까? 아들은 거실도, 주방도, 창고도, 모두 다 자기의 것입니다. 자신이 상속자니까요. 영업이 잘되어 일이 많든 적든, 고객이 많아 가게에서 종일토록 쉬지 못하고 일하여 피곤하든, 그렇지 않든 아들은 주인의 마음으로 일할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일만을 하지 않고,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일을 찾아 행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사도께서는 ‘율법을 좇는 삶’을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의 삶’과 마찬가지인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말했을까요?

 구속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율법 시대의 삶은 ‘아들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 시대의 삶은 ‘종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주일에도 분명히 보았듯이, 율법은, 약속에 비하여는 결코 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율법은 연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지만 실행할 수는 없고, 죄를 비추어 주지만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비슷하게 율법의 행위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행위들이지만, 거기에 약속이 없다면 이 율법의 행위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 자체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겉모습만 보여주고, 껍데기만 보여줍니다.

 아까 살핀 대로, 왜 사도께서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것”을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고 말했습니까? 분명히 날을 지키는 것이 율법 시대 때 지켜야 할 규율로 주어졌지만, 만약 그것이 약속을 통하여 성취되지 않는다면, 그 지켜야 할 규율들은 결코 하나님을 알려주지는 못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원리를 잘 알아야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21-22절).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7-28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들 대적지 말고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38-42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의 내용과, 권위를 갖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 간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종의 태도’라면, 주님의 명령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자원하여 순종하는 아들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것을 많이 듣습니다. 왜 율법의 시대는 종의 시대일 뿐이고,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의 우리들이 아들의 시대를 살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는, 하나님을 ‘명령을 주시는 분’으로만 여기는 ‘종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어디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살피는’ ‘아들의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모두 성취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요구들, 곧 행위로서 무언가를 해내는 것에만 치우쳐, 인격적 하나님과의 교제가 일차적 목표가 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본질에 있어서 마치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사람과 같다고 말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들이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를 ‘율법’이라는 후견인에게 맡겼습니다. 본래 율법은 유익한 것이고, 우리를 약속으로 이끌어 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율법이 요구하는 기준을 다 이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속자임에도 실상은 율법이라는 후견인에게 종노릇 하며 살아왔습니다.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진정한 상속자로서의 아들의 지위를 얻게 하고 아들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복음이 온 이유입니다. 복음! 그 신령한 은혜의 부요함을 알고 모든 것을 상속받은 아들임을 잊지 말고 마귀와 세상과 이성의 속삭임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세상적 가치관에 종노릇 하지 않는 자유자인 아들로 사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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