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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1-22 (일)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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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하신 여호와
불변하신 여호와
2020년 11월 22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 봉독 : 민 18:8-24, 말 3:6-12
설교 본문 : 말 3: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근에 주의 도성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나님이 변하셨다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이전 조상들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행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조상들에게는 복을 주셨고, 풍성한 수확과 열매 맺는 포도원을 주셨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경제 사정이 나빠졌고, 쇠퇴하고, 돈이 잘 안 풀리고, 수확이 빈약하고, 병충해가 수확물을 파괴시키고 각양의 질병들이 계속해서 발생해 이스라엘의 삶을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이 변하셨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 그 후에 백성들은 울고 통곡했습니다. 왜냐하면 야웨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물을 호의로 받아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최근에 경제적인 환경에 있어서 변화는 하나님이 변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옛날에 선하게 행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지금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뻔뻔스러운 백성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나 야웨는 변역지 아니한다.” 다시말해 “나 야웨는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변했습니다. 백성들은 변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복의 대로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야웨께로 돌아온다면, 그때 야웨께서 그들에게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신 하나님, 야웨이시다”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 야웨는 그의 신실하심에 있어서 변역지 아니하신다.
 둘째, 야웨는 그의 요구들에 있어서 변역지 아니하신다.
 셋째, 야웨는 그의 복에 있어서 변역지 아니하신다.  

 첫째로, 야웨는 그의 신실하심에 있어서 변역지 아니하신다입니다.

 야웨는 “나 야웨는 변역지 아니한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십니다.(히13:8)

 야웨께서 당신의 신실하심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야웨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야곱 자손들이 소멸되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심의 증거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변하시는 분이시라면, 하나님이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당신의 백성에게 신실하실지라도, 야곱의 자손들은 소멸될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전체 구속역사를 통하여 당신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변하지 않으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하고 전체 세상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당신께서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혈육을 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방주 안으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로부터 부르시어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아브람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고, 그 민족 즉 아브람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변하지 않으시고 신실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을 주셔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전에 결코 변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변하지 않으시고 신실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복주심의 역사입니다. 백성들이 야웨께 등을 돌렸을 때 야웨께서는 한 가지 혹은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면 원수들을 보내거나 기근으로 백성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또 백성들이 다시 야웨께로 돌아오면 야웨의 복을 받게 되고, 또 다시 죄를 범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되었습니다. 반복되는 멜로디처럼, 이스라엘 역사는 이런 식으로 거듭 거듭 진행되었습니다. 그 모든 역사에 걸쳐서,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야웨의 신실하심 때문에 그들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형벌로 인해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이교적인 생활방식 때문에 그들을 포로로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야웨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에게 신실하셨습니다.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계획에 있어서도 신실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변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매일 매일 여러 가지로 바뀌는 하나님이시라면, 그때 백성들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 땅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야웨께서 변하지 않으신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처럼 변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입니까? 왜 경기가 침체되고 어려움이 생깁니까? 왜 소출이 빈약하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황충이 등장합니까? 왜 전염병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까? 포도원에서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변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안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에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야웨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대로 행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풍성한 소출이 있고, 많은 가축들을 가지게 되고,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야웨께로부터 떠난다면,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떠나고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새로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웨께서 본문 7절에서 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7장에서 이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야웨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전에 당신의 백성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면,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너희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퇴보할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서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의 권고를 무시하는 뿌리 깊이 스며든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를 요청하셨습니다. 야웨께서 “나에게로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른 길로 돌아오라, 나의 복 아래로, 나의 은혜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라, 너희는 내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너희는 다시 내가 신실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의 요청은 항상 구원의 약속을 동반합니다. “나에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만군의 야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백성들이 옳은 길로 돌아오면, 그때 백성들은 만군의 야웨께서 그들에게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야웨의 복이 야웨 앞서 임할 것입니다. 야웨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웨는 당신의 신실하심에 있어서 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고 즐기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면, 그때 우리는 불변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으로부터 추방당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바랄 권리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율법에 무지하면,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이 더 이상 우리에게 임하지 않아도 놀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대로로 행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 길에서 벗어나서 다른 길로 행하면, 하나님을 떠나 사방으로 행하면, 그때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로부터 잘라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돌보심하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삶을 경건하게 살아갑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당신의 긍휼과 호의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항상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즉시로 소멸시키지 않으시는 것을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즉시로 죽이시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더 신실하게 행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만군의 야웨의 인애하심을 즐기십시오.

 만군의 야웨께서 백성들에게 당신의 불변하신 신실하심을 선포하신 후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회개를 요청하신 후에, 백성들은 실망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회개하라는 요청에 약간의 놀라움을 표현합니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회개해야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회개하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뭐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그들은 정말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웨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요구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야웨께서는 당신의 요구에 있어서 불변하십니다.

 야웨께서는 두 가지 매우 특별한 요구를 하십니다. 야웨께서는 폭넓고, 모호하고 일반적인 순종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십니다. 야웨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매우 특정하고 주의깊은 순종에 대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야웨께서 선포하신 두 가지 요구는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백성들이 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야웨 앞에 경제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솔직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적질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십일조와 헌물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레위인들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고, 헌물은 아론의 자손들, 제사장들인 레위인들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이지만, 모든 레위인들은 다 제사장들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각 지파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만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레위지파는 가나안 땅에서 기업이 없었습니다. 레위지파는 12지파 중에 한 지파로 구별되어 성막에서, 나중에는 성전에서 일했습니다. 레위지파가 살아가고 성전에서 주님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머지 11지파들이 십일조를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11지파의 백성들은 레위인들을 지지하기 위하여 소출의 10%를 성전에 가지고 갔습니다. 야웨께서 민수기 18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수기 18장 24절은 백성들이 야웨께 십일조를 드리고, 그 다음으로 야웨께서 거룩한 곳에서 하는 일을 위하여 레위인들에게 그 십일조를 주셨습니다.  

 한편으로 헌물은 특별히 제사장들을 위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성전에 희생제물을 가지고 오실 때마다, 희생제물의 일부, 동물이든 곡식이든 그 일부를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하여 제사장들에게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민수기 18장 8절이하에서 이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야웨께 십일조와 헌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야웨를 위하여 거의 드려지는 것이 없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줄 것이 없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죄는 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서 도적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야웨께서 우리 본문 8절과 9절에서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성전에 가져오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이 계속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별하여 하게 하신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 13장에서 이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13장은 우리 본문과 같은 포로귀환 후의 시대입니다. 느헤미야 13장10절에서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레위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성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 성전에서 직무를 버려야 했습니다. 대개 이렇게 된 것은 제사장들 자신들의 잘못입니다. 우리가 말라기 2장에서 제사장들의 잘못을 보았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더 이상 백성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백성들이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더 이상 성전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지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언약의 결속을 위한 성전의 사역이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위협되자,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웨께서는 말라기 3장 9절에서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통하여 성전 사역을 유지하시고, 그 성전에서 사역을 통하여 화해의 사역을 행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셨는데 백성들이 이 하나님의 사역을 도적질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체 사역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행하는 사역에 의존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은 이 성전 사역에 의존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더 이상 불변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너희 곧 온 나라”라고 칭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나라’란 단어는 항상 이방인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유대인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고,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이방인’, 곧 ‘나라’처럼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이때에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복음이 아직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함으로, 유대인들이 스스로 이방 나라들처럼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이런 무서운 상태가 되었으므로 정죄를 받아야 했습니다. 불변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요구에 있어서도 불변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은혜 아래서 저주 아래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은 영원히 찬양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설교의 마지막 요점입니다.
 셋째로, 야웨께서는 당신의 복을 주심에 있어서 불변하십니다.

 야웨께서는 백성들에게 당신을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지 안 주시는지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입니다. “만군의 야웨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야웨께서는 불변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라고 당신의 백성에게 요청하십니다. 당신을 시험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내가 명령한 대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을 성전 창고에 들여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한 양식이 있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로 내가 하늘 문을 열어서 너희에게 복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에게로 돌아오라. 내가 나의 복을 가지고 너희에게로 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서 저주를 제거하고 그 대신에 복을 줄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신실하고 신뢰하는 순종에 반응하여 병충해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해 주고 그들의 들판에 있는 포도나무들이 소출이 풍성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파멸을 위하여 하늘의 문을 여신 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7장과 8장에서 우리는 야웨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신 것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때 야웨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어 엄청난 비를 내리게 하여서 홍수로 땅을 뒤덮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파멸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것들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문을 여실 것입니다. 하늘의 문을 열어서 당신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 주변의 다른 나라들은 야웨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행하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주변 민족들은 이스라엘을 야웨의 축복을 받은 민족으로 칭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은혜를 받은 민족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전에 포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웃고 조롱하던 다른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쯤 본문에 대해 말씀을 드렸으면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이 본문을 여러분에게 적용할 것인지를 기대하실 것입니다. 구약 성전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렸듯이 오늘 우리도 교회에 대해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몇 퍼센트를 헌금해야 하는가? 이 적용을 여러분은 기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는 말라기 선지자가 살던 시대와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지지하기 위해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제도는 구약 시대에 속한 것입니다. 이런 제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성전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하면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의 사역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일조와 헌물을 끝내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성전에 가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이 십일조와 헌물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행하시는 사역을 지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지갑을 꼭꼭 닫아놓고 열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조금만 헌금하거나 아무것도 헌금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우리는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청지기직을 실행할 수 있도록 특정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청지기는 그들의 청지기직을 행한 것에 대해 직고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율법은 그리스도를 지시합니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장차 올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가져오신 삶의 새로운 질서를 지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율법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율법의 더 깊은 의미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는 우리가 감사함으로, 즐거이 율법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를 주의깊고 정확하게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폭넓고 공허하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감사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행할 것을 매우 명확하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율법이 홀로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행하십니다.

 예를 들면, 율법은 일곱 날 중에 한 날을 야웨께 거룩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일곱 날 모두를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날이 다 야웨께 거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12지파 중에 한 지파가 제사장들이 되도록 구별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전체 성도들이 다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백성들의 소유의 십일조를 요구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라고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직고해야 하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만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기여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심는 대로 거둡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제국에만 관심을 가지고 모든 물질적인 재료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왕국에는 관심이 없다면, 결국 세상 제국이 여러분을 질식시킬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람을 심으면 회오리 바람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둔다면, 그 왕국의 왕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복 주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왕국의 의를 위하여 투쟁한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의롭게 될 것입니다. 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교회에서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항상 민감한 문제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과 그의 교회에 대한 성도들의 재정적인 책임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침묵하기를 원합니다. 재정적인 문제는 성도들 개인의 생활의 직접적인 부분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의 재정적인 책임에 대해 결코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과 교회의 유지를 위하여 재정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에 대해 답을 해야 하고 우리의 청지기직에 대해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이 땅의 것들을 모으는 것입니까? 이 땅의 재료들을 모아서 이 땅에서 나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까?

 고린도후서 9장 7-8절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시다. 그때 언제나 신실하신 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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