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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20-10-11 (일) 15:39
홈페이지 http://www.hwc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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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수종자
예수 그리스도의 수종자
2020년 10월 11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행13:4-14, 갈4:12-14
설교본문 : 행13:5, 26: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시작으로 바울의 전도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앞 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안디옥교회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땅끝의 사역을 위한 일군으로 바나바와 사울을 세웠습니다. 본문 4절은 이들의 구체적인 선교행적에 대해  알려 줍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먼저 실루기아로 갔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인 구브로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함이었습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 서쪽 2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였습니다.

 요한을 수종자로 삼은 바나바와 바울은 실루기아에서 그들의 첫 번째 목적지인 구브로, 즉 지금의 사이프러스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묘하게도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왜 성령님께서는 첫 번째 일정으로 구브로를 정하셨는지 우리는 그 면면을 다 알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땅끝으로 보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갈릴리로 부르신 다음,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의 증인된 삶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갈릴리는 바로 제자들의 고향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신 주님께서는, 바울이 그 즉시 복음을 증거하려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무려 13년이나 바울의 고향인 다소에서 거하게 하신 다음 안디옥으로 불러내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로 바울과 함께 바나바를 따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시기 전에 먼저 구브로로 보내셨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자-즉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를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갈릴리였고, 이런 의미에서 주님 역시 고향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든 혹은 그리스도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든, 그것은 반드시 고향-다시 말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자들이기에, 그 앞에서는 꾸민 연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들에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그들이 나자신 보다도 나의 실체를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 앞에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만,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예배당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닌가? 과연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도, 바울도, 바나바도, 모두 그들의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신의 그리스도 되심과 자신의 그리스도인 됨을 보여주었으며,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요구사항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에 도착하여 무엇을 했는지에 대하여는 본문 5절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그들이 처음 출발했던 실루기아에서 가장 가까운, 구브로 섬의 동쪽 항구 살라미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엔 여기저기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 회당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것을 이방선교를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구브로 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이후에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에베소 등, 바울은 가는 곳마다 먼저 현지에 있는 회당을 복음전파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회당은 율법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회집을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가기만 하면 언제든지 많은 회중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회당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이나 바나바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주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 35절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로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당신 사역의 거점으로 삼으셨던 곳 중의 하나가 각 동네마다 자리잡고 있는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역시 주님을 본받아 가는 곳마다 회당을 먼저 찾았던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2천년 전에 이미 세계 어느 곳이든 유대인이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회당이 있기 마련이었으므로, 복음전파에 관한 한 회당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장소였습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벨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나 유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들에게 신앙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경배드릴 성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성전의 기능을 대신할 장소를 필요로 했고, 그 필요의 충족이 곧 회당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회당이란 기도와 율법학습을 위한 장소나 기관 혹은 제도를 통칭하는 명칭이었습니다. 외국으로 이주하지 않고 이스라엘 내에 남아있던 유대인에게도 회당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채로 방치되어 있어, 더 이상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전 517년 바벨로니아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이후에도, 그동안 발전을 거듭해온 회당제도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외국에 있는 유대인들은 어차피 성전이 없으므로 회당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스라엘 내에 있는 유대인들 역시 절기를 맞아 짐승을 제물로 제사드리는 예루살렘 성전과는 별도로 손쉽게 율법을 배울 수 있는 동네회당이 계속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벌써 이스라엘 내 각 동네는 물론이요, 세계 어느 곳이든 유대인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회당이 세워져 있었던 이유입니다. 따라서 만약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지 않았으며, 그 당연한 결과로 유대인들이 세계 각처로 흩어져야 할 필요가 없었다면, 회당제도가 그처럼 폭넓게 뿌리내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며, 성전이 훼파되고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것은 분명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수치와 눈물을 비단 고통의 눈물로만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인의 시대가 끝난 후 다시 회복의 때가 올 때, 열방에 주의 복음이 증거될 수 있는 구심점이 될 회당을 준비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신묘막칙 하십니다.

 그렇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다. 유대인들이 삶의 거처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 눈물로 낮을 적시고 밤을 지새울 때, 비록 그것이 그들 죄의 결과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때도 그들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도구 삼아 복음의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회당의 터를 닦으시고 또 세우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그 아픔의 나날들은, 실은 하나님 안에서 아름답게 쓰임 받는 천금보다 더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소중한 사실을 깨달은 유대인들의 감격은 시편 126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본문 6절-7절 상반절은, 구브로 섬 동쪽 첫 번째 항구인 살라미에서 여러 회당을 거점으로 복음을 전하던 바울 일행의 그다음 행적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그들은 구브로 섬의 한 가운데를 동서로 관통하여 살라미에서 180Km 떨어진 서쪽 항구 바보에 당도하였는데, 거기엔 총독 서기오 바울의 관저가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바울 일행이 총독을 만나보니, 그의 곁엔 바예수란 거짓 선지자 박수가 붙어 있었습니다. 박수란 단어 ‘마고스(magos)’는 박사, 점성가, 마술사, 무당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건 상관없이 본문은 그를 가리켜 거짓 선지자라 단정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거짓된 사람이었는가 하면, 자칭 바예수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수아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식 이름인 여호수아는 구원자란 뜻이고, 그 이름의 헬라식 표기가 예수입니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 구원자의 아들, 즉 자기 역시 구원자 예수임을 사칭하던 자였습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8절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방해자가 그들 앞을 가로막고 나선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그 방해자란 다름 아닌 박수 바예수였습니다. 박수가,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나섰습니다. 여기에서 '믿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원문의 본뜻은 '왜곡시킨다' 혹은 '비틀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즉 바울이 전하는 말마다 박수가 구구절절 그 뜻을 비틀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복적, 성공주의, 심리학에 매몰된 기독교가 이런 모습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응이 어떠했었는지는 본문 9절-12절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있던 바울이 박수로 하여금 보지 못하도록 저주하매, 그는 그 즉시 소경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직접 목격한 총독은 주님의 말씀을 놀라워하며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행적을 13절은 이렇게 전해줍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세계선교를 위해 안디옥을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바나바의 이름이 선두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본문에서부터 공식적으로 바울의 이름이 선행되고 있습니다. 이름의 순서가 곧 사람의 서열을 뜻하는 유대인의 관습이고 보면, 출발 당시엔 바나바가 팀장이었으나, 첫 번째 기착지인 구브로 섬을 지나면서 리더의 역할이 바나바로부터 바울에게로 넘어갔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 일행은 이윽고 구브로 섬의 바보에서 다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도착했습니다. 밤빌리아는 당시 로마제국의 속주로서 현재의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 지방이며, 버가는 그 지방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당도한 이후, 바울과 바나바의 수종자로 따라나섰던 마가 요한이 웬일인지 그만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안디옥교회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자기 집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버렸습니다. 이는 수종자로서의 자기임무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어쩌면 선교팀에 엄청난 시험을 던져주었을 것입니다.

 이 요한의 연고로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 선교팀은 결별하게 되고 각각 선교여행을 하게 됩니다. 분명 큰 아픔이고 시련과 역경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사도 바울의 시선과 발걸음이 로마제국의 심장인 로마로 향하게 됨을 사도행전은 알려줍니다.  그것은 참으로 신비스런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한 인간의 무책임한 잘못마저도 합력하여 선으로 귀결되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잘못마저도 합력하여 선으로 귀결케 하시는 주님을 고백할 때, 그것은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을 찬양키 위함이지, 결코 무책임한 인간 스스로 자신의 무책임함을 합리화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한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버가에서 자기임무를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통해 신비스런 주님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전혀 잘못으로 생각치 않거나, 혹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 산다면 그가 과연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 있겠습니까?

 초기 선교여정에서 보여준 마가 요한의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중에 마가복음의 기록자가 됩니다. 베드로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칭합니다. 이로 보건데 요한은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고, 주의 사랑으로 무장하여 이전의 미성숙을 반복하지 않는 장성한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연약한지라 잘못을 범치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가능한 한 피할 수 있는 잘못을 범치 않도록 진리 안에서 자신을 훈련시켜 가야 할 것입니다. 한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해간다는 것, 신앙인이 경건의 훈련을 스스로 쌓는다는 것은 모두 불필요하고 유해한 잘못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잘못마저도 합력하여 선으로 귀결케 해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라면, 잘못에 빠짐없이 주님을 바르게 좇으려는 사람을 통하여는 얼마나 더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주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 시점에서 마가 요한이 왜 버가에서 무책임하게 돌아갔을까 생각해봅시다. 이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이었습니다. 따라서 출발할 때와는 달리 선교여행 도중 바울이 리더의 역할을 하는 데 대해 요한이 불만을 품고 돌아가 버렸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던 버가는 지형상 저지대인지라 온갖 질병이 만연하고 있었는데, 특히 말라리아의 기승이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이에 요한이 겁을 먹고 돌아가 버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혹은 요한이 향수병을 이기지 못해 돌아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누가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 14절입니다.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여러분! 버가에 도착한 바울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버가로부터 230Km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이었습니다. 따라서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바울이 나아갔던 길을 직접 따라 가보면, 요한이 그 길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버가에서 술탄 산맥의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타우로스(Tauros) 산맥을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험산준령으로 이루어져 있는 타우로스 산맥은 예로부터 강도와 산적들의 소굴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반인이 그 산맥을 넘는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반드시 강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해발 2천 미터에서 3천 미터에 이르는 고봉(高峰)들로 이루어져 있는 타우로스 산맥은 그 길의 험하기가 얼마나 심한지, 2천년 전 도보로 그 산맥을 넘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요한이 버가에서, 바울이 그 험한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가려는 것을 보고 그만 기가 질려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요한이 포기해버린 그 길을 바울과 바나바는 중단없이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사도행전 13장 5절은 요한을 가리켜 바울과 바나바의 '수종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수종자'를 의미하는 원어 '휘페레테스(hupeeretees)'는 본래 배 밑창에서 노 젖는 종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로마 군함의 밑창 좌우엔 노를 젖는 노예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습니다. 그들에겐 밖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밖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배가 동쪽으로 가느냐, 혹은 서쪽으로 가느냐, 그것은 그들의 결정사항이 아니라 함장의 소관입니다. 그들의 임무란, 단지 고수(鼓手)가 치는 북의 속도에 맞추어 힘을 다해 노를 젓는 것일 뿐입니다. 요한은 바로 그와 같은 '휘페레테스'였습니다. 다음 행선지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삼을 것인가, 혹은 예루살렘으로 정할 것인가, 그것은 그의 소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할 일이란 바울이 행선지를 정하는 대로 바울을 좇으며 최선을 다해 그를 뒷바라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타우로스 산맥 너머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을 다음 행선지로 삼은 바울의 결정을 무시한 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주의 일을 위해 성령께서 세우신 바울과 바나바의 수종자임을 망각한 것입니다. 온 교회가 기도하여 보낸 일군이 바울과 바나바였습니다. 처음 마가 요한은 교회의 부름 앞에 기꺼이 즐거움으로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처음 각오와 결심은 간곳없고, 자신이 휘페레테스임을 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타우로스 산맥 앞에서 자기임무를 맥없이 포기한 요한이 젊은 청년이었던데 반해, 그때 바울은 이미 장년이었습니다. 청년이 포기한 타우로스 산맥이라면 장년에겐 더 버거운 대상이요, 청년보다 더 먼저 포기해야할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청년이 외면한 그 산맥을 바울은 끝까지 포기치 않고 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주님의 휘페레테스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년의 그는 아그립바 왕을 향해,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부르신 주님께서 자신에게 하셨던 말씀을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행26:16).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환(휘페레테스)으로 쓰시기 위해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그 시점부터 바울은 자신의 종됨을 잊지 않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4장 1절-2절을 통하여 바울이 증거하는 고백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이 주고자하는 귀중한 메시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휘페레테스됨을 자기 심령 속에 각인하고 살기 전까지는, 아무리 기도하며 열심을 내어도 자기중심적인 삶을 탈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주님을 자기 생의 주인으로 모신 자들이란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휘페레테스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에만 우리의 모든 행위가 참된 봉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기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기 싫어도 주님의 명령이기에 행할 바를 행하며 오직 주의 이름만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14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버가는 로마제국의 속주였던 밤빌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기원 전 12세 경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최초로 건설되었던 버가는 주전 334년 헬라제국의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되었다가, 그 이후 로마제국에 편입되면서 도시의 전성시대를 맞았습니다. 1947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버가의 유적터를 직접 찾아가 보면, 그 도시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야외경기장, 야외극장, 시장, 신전 등의 규모는 그 도시가 얼마나 번성한 도시였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울은, 대 인구가 밀집해 있는 버가를 그냥 지나쳐 곧장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하였습니다. 우리는 질문치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구브로 섬에서 배를 타고 애써 버가에 당도했던 바울은, 왜 번성한 도시 버가를 마다하고 그냥 지나쳤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바울은 그때 한가한 여행길에 나선 관광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사람에게 빚진 마음으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난 전도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버가는 더 없이 좋은 전도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버가는, 바울이 지금까지 거쳐 온 구브로 섬의 살라미나 바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히 큰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평소 성품대로라면, 그 큰 성읍에 가득 찬 사람들을 향해 신명나게 복음을 전해야 마땅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버가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둘째, 왜 버가 다음의 목적지를 하필이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삼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버가 인근에는 앗달리아, 아펜도스, 시데 등의 큰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버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대신 인근 도시를 찾아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손쉬운 길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에 대해 완전 무지한 상태였음을 감안 한다면, 바울이 어느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건 복음전파의 의미 자체는 동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타우로스 산맥의 역경을 무릅쓰고 그곳을 찾아갔기에, 우리는 그 까닭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난해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은 로마제국의 속주 갈라디아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았다는 것은, 곧 갈라디아에 그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하여 갈라디아의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를 차례로 방문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갈라디아에 대한 전도의 결과로 그 지역엔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후에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해 바울이 써 보내었던 편지가 신약성경의 갈라디아서입니다. 그 갈라디아서 4장 13절을 통해 바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여기에서 처음이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음으로 갈라디아 지방에 첫 발을 내딛게 된 때로서, 바로 오늘 본문의 시기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때 버가를 그냥 지나쳐 갈라디아의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게 된 까닭은, 바로 자기 육체의 약함으로 인함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말 '약함'으로 번역된 원어 '아스데네이아(astheneia)'는 곧 '병 앓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애써 찾아간 버가를 지나쳐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자신이 병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버가에서 앓았던 병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울이 평소 앓던 지병-즉 안질이거나 간질병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별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의 ‘약함’이 복음을 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점입니다. 바울은 그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하며 그의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귀로에 바울은, 예전에 포기했던 버가를 다시 찾아가 복음을 전했음을 사도행전 14장 25절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보다는, 저지대인지라 온갖 질병이 만연해 있던 버가에 당도한 바울이, 즉시 그곳에서 말라리아나 그 이외의 풍토병에 감염되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지대인 버가가 무덥고 습한 기후인 것과는 정반대로 비시디아 안디옥은, 선선하고 건조한 해발 1천 미터의 고원지대였습니다. 이로 미루어 버가에 당도하자마자 뜻하지 않게 풍토병에 감염된 바울이 험산준령의 타우로스 산맥을 넘으면서까지, 버가와는 정반대의 환경조건인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았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귀로에 버가를 다시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은, 갈라디아의 고원지대를 다니는 동안 버가에서 걸린 풍토병이 치유되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버가에 당도한 바울이 그곳에서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 험한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바울은 구브로 섬의 살라미와 바보에서 그랬듯이 먼저는 자신이 목표지로 삼았던 대도시 버가에서 말씀을 전했을 것이며, 뒤이어 버가 인근의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버가에서 바울을 덮친 이름 모를 질병이, 그 자신의 고백처럼, 바울의 발걸음을 버가와는 전혀 다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이끄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분명 누구보다도 복음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지닌 바울이 버가에 도착하는 즉시, 단 한 마디의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무서운 질병에 걸리고 말았을 때 그의 낙심천만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또 선교팀 ㄴ부에 생긴 갈등으로 마가 요한이 이탈하여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여기에 신비스러운 주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이때 바울이 육체의 질병으로 인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복음이 갈라디아 지방에 전파될 수 있었고, 또 그곳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세밀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 우리의 무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의 약속을 자신 안에 새기시고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취로 가져온 복음의 결실이 땅의 모든 끝에서 추수될 때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우리 또한 우리의 삶의 자리와 위치에서 어떤 시련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신실하고 충성된 삶을 살아갑시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에 힘주시고 기억하시며 선대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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